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102화
물건은 더러운 작업장이 아니라 연구소에 위치한 아서의 개인 작업실에 있었다.
아서의 개인 작업실은 정말로 멋졌다. 그가 만든 강철 갑옷들이 벽면에 줄줄이 전시되어 있어 박물관을 방불케 했다.
금속의 광택을 뽐내며 남성미를 과시하는 육중한 갑옷들의 모습은 딱히 기계에 흥미가 없는 김건마저도 감탄을 토하게 할 정도였다.
그러한 진풍경의 가운데에, 무언가 거대한 것이 검은 천막에 덮여 있었다.
아서는 기름때를 닦아 낸 수건을 책상위에 던져 놓으며 검은 천을 잡았다.
“항상 그렇지만 이때가 제일 떨린다니까.”
긴장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그는 숨을 내쉬며 단번에 천을 끌어내렸다.
화악!
바람 소리가 나며 안에 있는 것이 모습을 드러낸다.
“음.”
김건은 감탄 대신 신음을 토했다.
상상했던 것이랑은 전혀 다른 모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갑옷이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갑옷과는 상당히 달랐다.
묵광의 신체.
하체보다 상체가 더 크다.
부풀어오른 등과 어깨가 상당한 위압감을 과시했다.
유선형으로 번득이는 표면은 갑옷이라기보다는 인간의 근육을 연상시켰다.
거북이의 등을 연상시킬 정도로 커다란 등허리를 두들기며 아서가 설명했다.
“언뜻 균형이 안 맞아 보이지만 괜찮아. 네가 공수해 온 오르하르콘 대부분이 하체에 들어갔거든. 일반적인 금속보다 비중이 훨씬 높아서, 겉보기에는 이래도 무게 중심은 완벽해. 관절 설계도 잘해 놨으니까 움직이는 데에도 불편한 건 없을 거야.”
오리하르콘.
그것은 마계의 금속이 아니었다. 마계와는 관련이 없는 온전한 이 세상의 금속이다.
그 정확한 출처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저 외계 어디선가 운석이 되어 날아온 정체불명의 금속일 뿐이다.
특정한 온도와 특정한 진동을 통해서가 아니라면 파괴가 불가능하다고 알려진 절대 강도를 가진 괴물질.
그것을 이루고 있는 원소가 무엇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김건이 알던 미래에서는 다른 누군가가 심해에서 끌어올린 그것을 재련해 삼신기라 불리는 무기 중 하나로 만들었지만, 지금 그것은 김건과 한서리, 그리고 아서와 노바의 손을 거쳐 이렇게 갑옷으로 만들어졌다.
아서가 설명을 이었다.
“나머지 오리하르콘은 주문대로 이쪽에 들어갔어.”
그는 갑주의 팔뚝에 부착되어 있는 역수검을 보여 주었다.
팔꿈치 바깥쪽으로 뾰족하게 솟아 있는 칼날. 팔뚝으로 치거나, 팔꿈치를 휘둘러 대상을 베어 낼 수 있도록 설계된 무기였다.
“남은 게 많지 않아서 검신 부분에 합금을 조금 섞었어. 그래도 구조상 내구도는 충분할 거야. 버트가 목숨 걸고 만들어 낸 물건이니까.”
“그러면 걱정 없죠.”
내구도, 그것은 무기의 신뢰도를 나타내는 제일 중요한 척도다.
그리고 김건은 이제까지 버트만큼 신뢰도 있는 무기를 만들어 내는 자를 본 적이 없었다.
칼날의 표면에는 물결 같은 무늬가 표현되어 있었는데, 오리하르콘과 다른 강철을 합치며 생긴 것 같았다.
빨려 들어갈 듯이 그 무늬를 지켜보고 있는 김건을 내버려 두고 주변에 널려 있는 패널을 조작하던 아서가 책상 위에 놓인 패드를 가지고 왔다.
패드에 표기되는 터치 화면을 누르자 웅, 소리가 울리며 갑옷이 울부짖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웅!
주변에 연결된 동력선으로부터 전력이 주입되며 가동을 시작.
철컥철컥 소리를 내며 갑옷의 표면부가 벗겨졌다.
사람이 탈 수 있도록 설계된 내부가 드러나며 그 안쪽에 만들어진 접합부가 보였다.
아서는 투구의 뒤쪽, 탑승한 사람의 뒤통수와 마주할 부분에 솟아 있는 장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인터페이스는 좀 구식이야. 신격과도 싸울 수 있는 요건을 갖추려면 어쩔 수 없었어. 요즘 디지털 기계는 너무 예민해서 신격과 마주치면 작동을 제대로 못하거든. 완전 아날로그는 아니지만 최대한 외부의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해 뒀으니까 동작은 문제없을 거라고 봐. 대신 약물 주입으로 보정을 좀 해야 하고…… 뇌에 직접적으로 부담을 주는 방식이니까 오래 사용하는 건 추천하지 않아.”
그러면서 계속해서 패드를 조작한다.
패드에 표시되어 있는 갑옷 모양의 팔 부분을 건드리자 곧장 그것에 반응해 갑옷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검은 갑주가 키잉, 키잉 기계의 소리를 뿜어내며 팔을 들어 올려 주먹을 쥔다.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부드러운 움직임을 보여 주었다.
“각 부마다 인공 근육이 탑재되어 있으니까 동력만 충분하다면 S급 영웅 정도의 힘은 끌어낼 수 있을 거야. 대단한 출력은 아니지만…… 마법으로 보조를 해 줄 수 없어서 물리적인 한계를 뛰어넘을 수는 없어. 게다가 문제는 그 동력이 제대로 공급되는가인데…….”
아서의 시선이 노바에게로 향했다.
안내역을 넘겨받은 노바가 이어서 말했다.
“지금은 가동 테스트 중이니까 일단 외부의 전력을 끌어다 쓰고 있는 거야. 이 갑옷의 기초 동력은 그게 아니고.”
김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죠. 제가 그렇게 주문했으니까요.”
김건이 말한 물건을 제작하기 위해 얼마나 밤을 지새웠는가, 노바는 한숨을 쉬었다.
“일단은 네가 요청한대로 노심을 달아 놓긴 했어.”
갑주의 덩치가 불어난 것은 모두 그것 때문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 노심이야말로, 이 갑옷이 가진 진정한 힘이라고 할 수 있었다.
노바는 조금 자신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네가 화신을 날려 버렸을 때, 그리고 저번에 직접 보여 줬을 때 수집한 데이터로 최대한 만들어 보긴 했는데…… 문제는…….”
“테스트를 못해 봤죠.”
“그래, 테스트를 못해 봤지. 몇백 번이고 시뮬레이션을 돌려 가며 사고 실험은 완벽하게 했어. 직접 가동시켜 보지를 못했을 뿐이지. 지금 이론이 완벽한 건 아니니까…… 사실 저게 가동률이 얼마나 나올지는 잘 모르겠어. 저게 가동했을 때 어떤 현상이 일어날지도 미지수인 부분이 많고.”
김건은 어깨를 으쓱였다.
“별수 없잖아요? 그렇다고 테스트를 한 번 더 했다간 아내가 절 죽일지도 몰라요.”
김건은 농담처럼 말했지만 노바는 웃을 수 없었다.
그녀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농담으로 넘어갈 문제가 아니야. 저번에 경험해 봤듯이, 연쇄 반응 없이 마력을 분해하는 것만으로도 위험해. 알맞는 주파수를 찾는 것부터 뇌와 신경계에 가해지는 부담이 크단 말이야. 방금 들었지? 이 갑옷을 조종하는 것만으로도 부담이 간다고. 네 기술의 후폭풍에 갑옷 제어의 부담까지 더해지면 자칫 제대로 움직여 보기도 전에 뇌사 상태에 빠질지도 몰라.”
그 말에는 옆에서 듣고 있던 아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의견에는 나도 동의야. 재미있는 주제라 요구한 대로 만들기는 했는데…… 되도록이면 쓰지 않았으면 좋겠어.”
“……저도 쓸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김건은 씁쓸하게 웃으며 갑옷의 팔을 만졌다.
맨들맨들한 표면을 쓰다음으며 중얼거렸다.
“이걸 쓸 정도라면 정말 심각할 상황일 테니까요.”
“…….”
“…….”
그 말에 담긴 무게에 기술자 두 사람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입맛을 다시는 아서, 그리고 노바는 안타까운 듯이 혀를 찼다.
분위기가 무겁다.
티리온에게 들었듯, 불안이라는 건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파되기 마련이다.
김건은 짐짓 미소를 지으며 갑옷의 어깨를 팡 두들겼다.
“설명은 이 정도면 됐고, 나중에 매뉴얼만 따로 보내 주세요. 어쨌든 이건 이제 완성됐으니까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그래.”
두 사람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김건은 분위기도 전환할 겸 물었다.
“고생들하셨으니까 저녁이라도 대접할까 하는데, 오늘 시간들은 괜찮으세요?”
그 말에 아서가 흥미를 보였다.
“오, 네가 요리하는 거야? 네 실력이 그렇게 좋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김건은 어깨를 으쓱였다.
“소문은 모르겠지만…… 원하신다면야 직접 요리해 드릴 수는 있죠.”
“그럼 일단 정리하고 씻어야겠군. 잠깐 기다려. 씻고 나서 압축 마법으로 갑옷을 포장해 줄 테니까.”
무거운 분위기가 불편했던 모양이다.
아서는 후다닥 작업실을 나갔다. 노바 역시 후줄근한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나도 좀 씻어야겠네.”
얼굴에 들러붙은 머리칼을 떼어 내던 노바는 문득 김건을 돌아보았다.
“그전에,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뭔데요?”
“최근 선계의 동황에 대해 기린의 화신에게 물어봐 줄 수 있어?”
김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기린의 화신이요?”
“서리가 그쪽이랑은 접촉이 많잖아. 혹시나 가능할까 싶어서.”
필요하다면 못할 것도 없다. 그의 아내가 기린의 화신이었으니까.
김건은 어깨를 으쓱였다.
“뭐 때문에 그런데요?”
김건이 거절하지 않자 노바는 반색하며 말했다.
“내가 요즘 따로 연구하고 있는 과제가 있거든? 혹시 들은 적 있어?”
“네, 이 세계가 언제쯤 마계화가 완료되는지 예측하는 알고리즘을 만든다고 들었는데요.”
마계화.
단순히 게이트 근처의 생태가 변화하는 걸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최초의 게이트가 열린 그 순간, 마력이라는 힘과 접촉하면서 이 세상은 점점 마계와 비슷한 환경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그렇게 100년이 넘은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력이라는 힘을 다루고 마공학이라는 신기술이 새로운 시대의 주류가 되었다.
마력의 힘으로 진화를 이루어 몬스터라 칭해도 될 생물체가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마계화, 그것은 이미 해가 가고 달이 뜨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다만 그것이 완료되면 마신들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있는 억지력이 극도로 저하될 것이기에 모두들 눈에 불을 켜고 그것에 주의를 더할 뿐이다.
노바가 말했다.
“최근, 마계화 속도가 가속화되려는 징조가 보여.”
“마계화가 빨라지는 것 정도는 예측된 상황 아닙니까? 3년 전에 용족들을 받아들이는 것부터…….”
노바는 고개를 저었다.
“그 정도가 아니야. 예상했던 수치를 훨씬 뛰어넘었어. 내 독자적인 산식으로 계산한 거라 표준 공식이랑은 안맞을 수 있는데…… 만약 내가 세운 공식이 맞다면 앞으로 10년이면 마계화가 완료돼.”
“10년이요?”
너무 빠르다.
기존 공식을 통한 계산으로는 차후 80년에서 100년 정도의 시기를 예측하고 있었다.
절반도 아니고 10배나 빠른 변화라니.
“그게 갑자기 줄어든다고요? 어떻게요?”
“그건 나도 정확히 몰라. 아직 증명이 완료된 공식이 아니야. 내가 틀렸을 수도 있어.”
“…….”
“하여튼 최근 들어 갑자기 산식에 들어가는 수치가 이상해서 그래. 제대로 분석하려면 정보가 더 필요해. 용족들이 사는 선계의 정보가 있다면 비교 대조해서 원인을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아. 그래서 우선 너한테 물어보는 거야. 그쪽의 협력을 받을 수 있는지.”
권속화를 시도할 거야.
김건은 얼마 전에 아내가 한 말을 떠올렸다.
‘혹시 그게 연관이 있는 건가?’
그는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이야기해 볼게요.”
“고마워. 그럼 나도 좀 씻고 올테니까, 아무데나 앉아서 쉬고 있어!”
그렇게 노바마저 작업실을 빠져나갔다.
홀로 남은 김건은 한숨을 쉬며 의자에 앉았다.
왠지 머리가 복잡했다.
박사의 마지막 말.
아내의 계획.
노바의 질문.
그것들이 뒤얽혀서 계속해서 무언가를 자극하고 있었다.
김건은 그것이 뭔지를 몰랐다.
그는 미시적인 영역에 특화되어 있지, 거시적인 안목으로 모든 것을 내려다보지 못했다.
지금까지 나열된 상황이 좋은 방향으로 흐르는지, 나쁜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무언가 본능이 경고음을 울렸다.
계속해서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마계화의 가속화라.
김건은 지금 이 상황에 대해서 조사를 해 보는 게 좋겠다고 마음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