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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104화 (104/200)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104화

며칠 뒤, 고민하던 김건은 결국 한서리에게 말했다.

“자기야, 할 말이 있는데.”

“응? 할 말?”

한서리는 파란 눈을 크게 뜨며 의아해했다.

지금까지 남편이 이런 요청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저녁 식사를 한 뒤 상을 앞두고 마주 앉았다.

거기서 김건은 모든 것을 말했다.

노바에게 들은 이야기. 그리고 3년 전에 박사와 나눈 마지막 대화의 내용까지.

심사숙고해서 결정한 행동이었다.

아내는 커다란 계획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불안 요소가 있다면 설령 걱정을 시키더라도 내용을 공유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김건의 말을 다 들은 한서리는 흐으음 하고 콧소리를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당신이 계속 수련을 하고 그랬구나. 난 그냥 습관이 돼서 그런 줄 알았지.”

“음…… 그 일이 없었어도 수련 자체는 계속했을 것 같은데.”

진지하게 말하는 남편을 보며 한서리는 헛웃음을 흘렸다.

“하여튼, 수련에 미쳤다니까. 당신은.”

그러다 문득, 눈을 희번덕거리며 말했다.

“그래도 저번처럼 멍청한 짓을 하는 건 용서 못해. 또, 또 그런 말도 안 돼는 짓을 하는 게 보이면 정신 차릴 때까지 진짜 꽁꽁 묶어서 방안에 가둬 버릴 거야.”

갑옷에 탑재할 노심을 만들기 위해 시행했었던 실험을 가리켜 말하는 것이다.

그 건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김건은 입맛을 다셨다.

아무리 젊은 몸으로 돌아왔어도 첫 번째 기술의 사용, 계속된 전투, 그리고 마기의 전신 침식으로 인한 상흔까지, 몸에 많은 무리를 주다 보니 신경계와 뇌의 손상이 심했다.

그는 이제 예전처럼 쉽게 ‘그 기술’을 사용할 수 없었다.

최근에 기술을 사용했을 때, 그때는 그저 마력 분열 현상을 관측하기 위한 실험이었던지라 연쇄 반응을 통한 후폭풍을 두들겨 맞지도 않았다.

그저 실험실에서 조용히 행해진 시연이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건은 일주일 동안 식물인간에 가까운 상태로 누워 있었으며, 몇 달에 걸쳐 나타난 수전증 등의 후유증을 앓았다.

이제는 후폭풍뿐만이 아니라 기술 발동의 리스크까지 고려해야 한다.

마력을 분해하는 진동을 만드는 것은 그만큼 커다란 집중력과 정밀함을 요구하는 기술인 것이다.

“미안해.”

“…….”

김건은 사과했다.

한서리도 더 이상 그 이야기로 남편을 괴롭힐 생각은 없었다.

그녀는 바로 말을 돌렸다.

“그나저나 박사의 이론은 꽤 그럴듯하네. 생각해 볼 가치가 있는 정보야. 사실, 그가 말한 것처럼 나도 알리시아가 사는 곳 외의 선계에 대해서는 잘 모르거든. 탐지도 잘 안 되고, 내가 갖고 있는 기린의 지식으로도 박사와 똑같은 예상에 도달해서 굳이 그쪽으로는 넘어가지 않았어.”

생각에 잠기는 한서리.

그녀는 톡톡, 식탁을 두들기며 말을 이어 나갔다.

“확실히…… 대다수의 힘을 통솔하는 기린의 주 인격이 시간 역행의 후유증으로 파괴되었고, 그가 가지고 있던 여러 인격이 선계 곳곳으로 흩어져 나갔다면…… 나처럼 개인의 의지를 유지한 채 기린의 힘을 다루는 화신이 여럿 생기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야.”

알 수 없는 세계의 일이다.

가정은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만약 그들이 정복 욕구를 갖고 있다면…… 선계의 다른 세상을 침공하는 것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 기린의 계약이 막아 주는 것은 티아마트와 벨제불이지, 자기 자신이 아니니까.”

씨익, 한서리의 입에 미소가 번졌다.

“뭐, 괜찮아. 다른 선계의 침략 자체는 예상 범위 안의 일이거든.”

김건은 조금 놀랐다.

“예상하고 있었다고?”

한서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알리시아랑 용족의 원로들 몇몇에게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고 들었거든. 용족들이 그걸 시도하기도 했고, 당장 그들의 세계가 멸망하기 직전이었으니까.”

“…….”

“하지만 그들은 실패했고, 몰락했어. 이곳처럼 나약한 종족이 지배하는 세계에 빌붙는 걸 택할 정도로 말이야.”

한서리는 물끄러미 김건을 바라보았다.

“알리시아와 이야기를 했다면…… 들었지? 이미 반신 정도는 격퇴할 수 있는 전력을 갖췄다고.”

“응.”

“그건 꽤 겸손하게 말한 거야. 지금 전력이면 반신 둘이 나타나도 대응할 수 있을 정도의 여력이 있어.”

김건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반신 둘을 동시에?”

한서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가 알던 미래의 인류와도 비교할 수 없는 힘이지. 이건 용족의 힘을 더한 게 커. 회귀 전에는 없었던 상황이야. 은퇴한 베이커 교수님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들과 인류 기술을 접목한 군대를 양성하고 있어. 프레데리카 교수, 아니 이제는 사무총장이지. 그분과 지구방위군의 동의도 있었고.”

이미 물밑에서는 엄청난 일들이 진행되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내가 입에 담는 이름의 규모에 김건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지금은 억지력이 시야를 흐리고 있어서 다른 선계의 눈에도 거의 띄지 않아. 일종의 지리적 이점도 있는 거지.”

한서리는 미소를 지으며 계속 설명했다.

“지금의 전력으로도 충분히 다른 세계의 침공을 막아 낼 수 있어. 거기에 십 년이라는 시간을 더하면…….”

선계 편입으로 마신의 침투를 막고, 용족과 힘을 합친 군대를 양성해 다른 선계의 공격을 차단한다.

한서리는 그것이 낳을 결과를 입에 담았다.

“그걸로 이 불안한 시대의 끝을 고할 수 있어. 이전과 다르게 말이야.”

그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있었다.

처음 돌아왔을 때, 모험으로부터 몸을 피하며 어떻게든 현상을 유지만 해 보려는 소심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강해지셨다. 내가 계속해서 그분을 따를 정도로.’

알리시아의 말이 떠올랐다.

김건은 어쩐지 가슴이 먹먹해졌다.

뭐라고 해야 할까.

칭찬을 해 주면 좋아할까?

아니면 말없이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좋을까.

김건이 망설이는 사이, 한서리는 탁자 위에 올라와 있는 남편의 손을 잡았다.

“당신 덕분이야. 내가 힘들 때, 당신이 나를 지탱해 줬어. 내가 위험할 때, 당신이 나를 지켜 줬어. 이제는 내가 갚아야지.”

“…….”

“당신은 내 최후의 보루야. 듣기는 좋을지 모르지만…… 사실 매번 최후의 보루에 몸을 기대는 건 내 무능력함을 증명할 뿐이지.”

파란 눈동자가 김건의 눈을 직시했다. 한서리는 힘을 담아 말했다.

“노력할게. 당신이 나설 일이 없도록 말이야.”

“……고생했네.”

어설픈 격려.

그것이 요령 없는 남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언제나 단어 그 자체가 아니라, 누가, 누구에게 어떤 의미가 담긴 말을 듣느냐이다.

한서리는 행복한 듯이 웃었다.

그리고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고생했으니까 상을 줘.”

“무슨 상? 원하는 물건이 있다면야 뭐든지…….”

한서리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야. 요즘 여유가 생겨서 겨우 휴일을 냈거든. 일 년만의 휴일이야.”

배시시 웃어 보이는 한서리.

달콤한 목소리가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데이트하자. 오랜만에.”

* * *

데이트 장소는 최근에 용족들이 심혈을 기울여 구성하고 있는 관광 지구의 테마파크였다.

최대한 선계와 비슷하게 만들어 놓은 환경에, 몬스터 동물원, 그리고 용족의 마법으로 만들어 놓은 괴이한 놀이 기구들이 즐비했다.

아직 시범 운영 중이었기에 입장할 수 있는 인원은 제한되어 있어 공원은 비교적 한산한 편이었다.

한서리와 김건. 두 사람은 프리패스로 테마파크에 입장했다.

들어가자마자 보인 것은 풀밭 위에 앉은 거대한 드래곤의 모습이었다.

알리시아와는 다른 푸른 비늘의 드래곤.

이제 막 성년이 된 것인지, 눈에 익은 붉은 드래곤 보다는 작다. 그래도 체고가 20미터는 넘었다.

헌터와 영웅들에게는 절망과도 같은 엡실론급 몬스터.

하지만 눈앞의 용에게, 그와 같은 위압감은 없었다.

“와아아! 출렁거려!”

“엄마~ 이거 비늘? 비늘? 한 장만 떼 가면 안 돼?”

수많은 인간 아이들이 용의 등에 매달려 난장을 벌이고 있었다.

용의 등에는 커다란 철제 구조물이 매달려 있었다. 그 안에 가득한 아이들은 난간 사이로 손을 뻗어 직접 용의 몸을 만져 보려 했지만 안전상의 이유로 직접 손을 댈 수는 없게 되어 있었다.

잠시 후, 안내 방송이 흘러나오며 구조물 안쪽에 위치한 직원들이 구호를 부르짖으며 하나둘, 아이들을 구조물 안쪽에 설치된 좌석에 앉혔다.

안전 장치의 확인이 끝나고, 직원들이 탑승교를 통해 밖으로 빠져나왔다.

문이 닫힌다. 그리고 다시 한번, 크게 안내 방송이 나왔다.

“자, 그럼! 친구들, 날아갑시다! 라프라스 씨! 출발해 주세요!”

라프라스라는 이름을 가진 드래곤이 몸을 일으켰다.

수평으로 서 있던 구조물이 수직으로 기울어지며 꺄아-! 아이들이 비명을 질렀다.

“크허어어엉!”

드래곤이 울부짖고, 접혀 있던 날개가 펼쳐졌다.

아래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폭풍처럼 몰아치는 바람에 감탄을 토하고, 그 거대한 거체가 가볍게 날아오르자 우와아! 소리를 지르며 창공으로 솟아오르는 푸른 거체를 눈으로 쫓았다.

새처럼 공중을 누비는 드래곤.

번개처럼 지그재그를 그리고 머리와 꼬리를 중심으로 회오리처럼 휘몰아친다.

모두를 공포에 떨게 하던 그 비행 능력이, 지금은 놀이기구로서 사용되고 있었다.

아이들의 신나는 비명 소리가 드래곤의 등에서 울려 퍼졌다.

드래곤은 그렇게 3분가량을 날다가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와 안착했다.

언제 그렇게 가볍게 움직였냐는 듯, 육중한 몸을 웅크려 등에 있던 아이들이 내릴 수 있게 했다.

잠깐의 휴식 후, 길게 늘어져 있던 줄에 서 있던 사람들이 다시 입장하며 반복되는 업무가 시작된다.

알리시아의 본체와 자주 마주친 덕분에 김건은 용족의 표정을 구분할 줄 알았다.

그가 본 라프라스라는 드래곤은 꽤 처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고생하네.’

힘든 것이 아니라 아이들 장난감처럼 사용되는 자기 신세가 꽤 서글픈 모양이다.

쯧쯧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차는 김건과 달리 한서리는 팔짱을 끼며 날카롭게 눈썹을 치켜세웠다.

“표정이 왜 저래? 혹시나 인간들이 알아보면 어떻게 하려고. 서비스 정신이 부족하네. 직원 교육 똑바로 하라고 알리시아한테 한소리 해야겠어.”

엄한 말을 쏟아 내는 아내의 반응에 김건은 어깨를 떨었다.

“……당신도 이곳 운영에 관여하지 않았어?”

한서리는 고개를 저었다.

“일부러 안 했어. 알리시아랑 다른 용족한테 모두 맡겼지. 언제까지고 내가 도와줄 수는 없으니까.”

……어쩌면 데이트가 아니라 숙제 검사를 나온 선생님의 행차에 따라 나온 것일지도 모른다.

김건은 꼼꼼하게 직원들의 서비스와 설비 상태를 확인하기 시작하는 아내의 시선에 혀를 내둘렀다.

살아 있는 드래곤의 등 위에 타는, 일명 드래곤 코스터라는 이름의 놀이 기구가 이 테마파크에서 제일 인기 있는 코스인 듯했으나 한서리와 김건은 알리시아를 비롯해 여러 용족의 등 뒤에 올라타 본 적이 있었다.

굳이 그 경험을 다시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다음 코스로 넘어갔다.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보던 한서리의 시선을 끈 것은 오히려 몬스터 동물원 방향에 있었다.

동물원의 입구 앞에 가판대가 늘어서 있고, 그 위로 각양각색의 몬스터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한서리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투명한 몸을 가진 기이한 생물이었다.

반대편이 비쳐 보이는 투명한 육체, 안쪽으로는 커다란 검은 눈동자 두개와 별가루처럼 반짝거리는 무언가 밖에 보이지 않았다.

동글동글한 몸체엔 장식으로 붙은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작은 날개가 붙어 있다.

한서리가 관심을 보이자 직원이 다가왔다.

반듯하게 유니폼을 차려입은 용족이었다. 한서리가 물었다.

“이 생물은 뭔가요?”

“거짓말을 판별하는 새입니다.”

“거짓말을 판별하는 새? 그런 종류의 새도 있나요?”

“선계에는 저희 용족도 모르는 생명체들이 널려 있죠. 게이트를 통해 넘어오는 다른 선계의 생명체들도 쉽게 볼 수 있으니까요. 이 녀석은 종이 없는 단일 개체입니다. 저보다도 오래 살았어요. 제 할아버지가 잡아 온 녀석이죠.”

“할아버지라고요? 그러면 엄청 오래 살았겠군요.”

“못해도 3천 년은 넘게 살았을 겁니다.”

인간으로서는 전혀 실감할 수 없는 긴 세월을 살아온 생명체가 물끄러미 한서리를 바라보았다.

동그란 눈이 꿈뻑꿈뻑 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치 그 안쪽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직원이 설명했다.

“이 새한테는 특이한 능력이 있어서, 사람의 거짓말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걸 구별하죠?”

“몸에 손을 대고 말을 하면 됩니다. 거짓말을 하면 검은색, 사실을 말하면 흰색 빛을 냅니다.”

“한번 시험해 봐도 될까요?”

“물론이죠.”

한서리는 흥미로운 듯 투명한 새에게 손을 가져갔다.

털 하나 없는 몰캉몰캉한 몸 위에 손을 올리고 이것저것 말을 던졌다.

직원이 말한 대로, 새가 참과 거짓을 구별해 색을 바꾸자 신기한 듯이 감탄을 토했다.

새에게서 손을 때고는 옆에 있는 김건을 돌아봤다.

“당신도 해 봐.”

“음…… 나는 딱히 확인해 볼 게 없는데…….”

“얼른!”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새에게 손을 갖다 대는 김건.

어차피 스스로 하는 말이 거짓인지 참인지 자기가 아는데 이런 행위에 무슨 의미가 있나…… 생각하는 찰나에 옆에서 장난기 넘치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김건 군은 아내 한서리 양을 사랑합니까?”

고개를 돌려보니 생글생글 웃고 있는 아내가 보였다.

“…….”

김건은 자신이 함정에 걸렸다는 걸 깨달았다.

꽤 곤란한 상황에 처한 것 같지만 오랜만에 원하는 대로 어울려 주기로 한 참이다.

그는 반항하지 않고 순순히 질문에 답변을 해 주었다.

“……예.”

새가 하얀색으로 물들었다.

그것을 본 한서리는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오! 진짜인가!? 대단해. 대단해.”

김건은 조금 얼굴이 붉어져서 말했다.

“굳이 이런 걸 해야 할 필요가 있어? 무슨 벌칙 게임도 아니고.”

“왜, 재미있잖아.”

킬킬 웃으며 다시 질문을 하는 한서리.

“당신은 지금까지 바람을 핀 적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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