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106화
“맛있어!”
자잘한 사건 사고가 있었지만, 오랜만의 데이트는 즐거웠다.
안 그래도 한껏 텐션이 오른 상태인데 거기에 주문한 음식까지 맛있으니 웃지 않을 수가 없다.
무표정, 혹은 냉랭한 얼굴이 기본인 얼음 여왕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피었다.
김건과 한서리. 두 사람은 테마파크 제일의 명소라 불리는 음식점에서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주방장은 용족 중에서도 괴짜로 손꼽히는 사람이었다. 천 년이 넘는 세월을 요리 공부에 투자한 고수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 성질이 어찌나 괴팍하고 자존심이 강한지, 한서리는 그를 고용하기 위해 알리시아가 몇 번이나 찾아가 무릎을 꿇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한서리는 그것이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했다.
바보의 무릎 값으로 이 정도의 요리를 즐길 수 있다니. 이렇게 남는 장사가.
그녀는 다음에 알리시아를 만나면 잘했다고 칭찬을 해 주겠다 마음먹었다.
“이것도 맛있네.”
“이것도!”
익숙지 않은 용족의 요리.
하지만 인간의 입맛에 맞게 개량이 되어 있어, 오히려 그것은 특색이 되었다.
한서리는 용족의 전통 음식들을 아주 맛나게 즐겼다. 그녀는 체통도 잊고 쉴 새 없이 포크와 나이프를 놀리며 식탁 위에 차려진 음식을 해치웠다.
“천천히 먹어.”
김건은 그저 쓴웃음을 지었다.
여전히 소식파인 그는 일찍이 식사를 마치고 아내의 시중을 들어 주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커다란 고깃덩어리를 죽죽 잘라 먹기 좋은 크기로 아내의 앞에 놓아 준다.
그러곤 기분 좋은 콧소리를 흘리며 먹을 것을 탐하는 아내를 지켜보았다.
‘확실히 요즘 식욕이 늘었어.’
김건만큼은 아니지만 한서리 역시 입이 짧았다.
굳이 좋아한다고 하면 간식이지, 식자 자체를 즐기지는 않았다.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김건은 아내가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푸는 것이 아닌가 조심스럽게 추측해 볼 뿐이었다.
‘아니지. 어쩌면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기는 김건.
잠시 고민을 하던 그는 왠지 모르게 손을 멈추고 조심스럽게 이쪽을 훔쳐보는 아내를 발견했다.
“왜 그래?”
한서리는 우물쭈물 하다가 겨우 말했다.
“그게…… 나…… 너무 많이 먹는 것 같지?”
김건은 피식 웃었다.
“식욕이 있다는 건 좋은 거야. 몸을 만들 때도, 살찐 사람보다 마른 사람이 더 힘들어. 충분히 몸에 영양소가 있어야 운동도 하고 근육도 만드는데, 마른 사람들은 그게 없거든. 걱정하지 마. 내가 도와줄 테니까. 그러니까 오늘은 마음껏 먹어.”
남편의 말을 듣자 무겁던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한서리는 부끄럽다는 듯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요즘 괜히 이래. 자꾸 뭐가 먹고 싶고, 안 먹으면 오히려 속이 더부룩하고.”
“어디 아픈 데가 있는 건 아니지?”
“그런 건 아니야. 컨디션은 좋아.”
“정 걱정되면 병원이라도 가 볼래?”
“괜찮아. 바쁘기도 하고…… 좀 더 심해지면 그때 가 보지 뭐.”
다시 포크를 식사로 가져가던 한서리는 뭔가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김건을 발견했다.
“왜 그래?”
“음…… 사실 당신 몸 상태에 관해서 생각나는 게 하나 있긴 한데…….”
“뭔데?”
김건은 말을 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뭔가 싶어서 의아한 표정을 짓는 한서리.
“…….”
남편 앞이라 꽤 헤이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평소의 눈치가 없어진 건 아니다.
그녀는 금방 남편이 하고 싶어 하는 말을 깨달았다.
‘설마…….’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포기하고 있었던 걸까.
그녀는 멍청한 스스로를 책망하며 바로 마력을 움직여 자신의 몸, 특히 아랫배 부분을 탐색했다.
그 안에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고는 너무나 놀라 바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크게 뜬 눈으로 남편과 눈을 마주쳤다. 그 얼굴을 본 김건의 입술이 떨렸다.
“당신…….”
“나…….”
두 사람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제대로 된 문장은 아니었지만, 지금의 상황을 알아채는 데에는 충분했다.
또르르, 한서리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입을 틀어막는다. 숙인 고개 너머로 머리칼이 쏟아졌다.
작은 등이 들썩이고, 억눌린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김건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아내의 옆에 앉았다.
흐느끼는 그녀를 안아 주며 부드럽게 말했다.
“왜 울어? 기쁜 일인데.”
“나…… 나…… 나 때문에 안 생기는 줄 알고…… 당신한테 미안해서…….”
“괜찮아. 봐, 아무 문제없잖아?”
김건은 토닥토닥 아내의 등을 두들겨 주었다.
말은 필요 없었다. 한서리는 한참이나 울었고, 김건은 내내 방울방울 흘러나오는 아내의 눈물을 닦아 주며 그녀를 달랬다.
울음소리가 잦아들고, 훌쩍이는 콧소리만이 남았다.
다시 고개를 든 한서리는 소심하게 몸을 웅크린 채 벌게진 코를 문질렀다.
한바탕 감정을 쏟아 내고나니 금세 배가 고파졌다.
하지만 울다 말고 갑자기 밥 생각부터 한다는 것이 너무 부끄러워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김건은 붉어진 아내의 시선이 식탁과 바닥 사이를 오가는 모습을 보고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바로 식탁에 놓인 접시를 앞으로 끌어왔다.
“자, 아이도 생겼으니까 더 잘 먹어야지.”
그러면서 미지근하게 식은 스튜를 떠서 한서리의 입가에 가져가 주었다.
“…….”
다른 사람이 그랬다면 죽어도 안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곁에 있는 것은 남편이었고, 그녀에게 남편은 얼마든지 약하고 못난 모습을 보여도 되는 존재였다.
그녀는 작게 입을 벌려서 스푼을 입에 넣었다. 혹시나 남들이 볼까 봐, 얼른 내용물을 입에 넣고 수저를 뱉었다. 작게 입술을 오물거리면서 주변의 눈치를 본다.
“완전히 열 살배기 꼬마가 돼 버렸네.”
남편의 농에 이번에는 다른 의미로 얼굴이 붉어지는 한서리.
그녀의 입에서 쥐꼬리만 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놀리지 마…… 진짜로 부끄러우니까.”
소매를 잡아당기며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말한다.
아내처럼 못된 장난을 하는 취미가 없는 김건은 그저 껄껄 웃었다.
그러고는 계속해서 뜬 스푼을 아내의 입에 넣어 주었다.
어딘가에서 커다란 진동이 일어나기 전까진 말이다.
지진이 일었다.
콰르릉! 소리가 나며 식탁이 떨리고 식기들이 부딪치며 불길한 소리를 냈다.
“뭐야?”
“지진?”
의아해진 사람들이 주변을 둘러본다.
그리고 한서리와 김건은, 그 순간 이미 식당을 뛰쳐나가고 있었다.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게이트다!”
“모두들 도망……!”
말을 하던 사람의 머리가 조각나 흩어졌다.
상공 10미터 위에 열린 공간의 틈. 그것을 비집고 괴물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
놈들이 울부짖었다. 인간의 것과 흡사한 근육질의 몸.
하지만 그 표피는 매끈한 피부가 아니라 털이 무성하고 머리에는 늑대의 대가리가 달려 있었다.
게이트로부터 빠져나온 늑대인간들이 사람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아악!”
“크아악!”
눈 깜짝할 사이에 평화롭던 테마파크가 피로 물들었다.
늑대인간들은 온갖 금속 무구로 무장을 갖추고 있었다.
놈들이 던진 도끼가 도망치는 사람들의 등을 향해 날아갔다.
“막아!”
한서리가 외쳤다.
그녀가 내뿜은 손에서 마력이 방사. 한순간에 일어난 십여 기의 아이스 골렘이 사람들을 지켰다.
“…….”
쓰러진 사람들. 그리고 그 밑으로 흐르는 피를 발견한 여왕의 눈에 푸른 불빛이 번득였다.
차가운 한기가 사방으로 번졌다. 쩍쩍 소리를 내며 얼어붙은 지면이 갈라지고,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온 버프가 모든 골렘에게 부여.
S급 영웅에 달하는 신체 능력을 얻은 골렘들이 달려드는 늑대인간들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콰아아앙!
폭음이 터졌다. 늑대인간들의 전열이 한순간에 붕괴. 부서진 갑주와 무기의 파편이 공중을 날았다.
현역 영웅의 자리를 내려놓은 지 수 년이 지났지만, 완전히 성장을 마치고, 한 기업의 고위층으로서 수많은 호신용 아티팩트를 걸친 한서리다.
굳이 화신의 힘을 꺼내 정체를 의심받는 짓을 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까지 세상에 내보인 ‘한서리’라는 이름의 힘으로도 어지간한 괴물들의 무리 따윈 혼자서 박살 낼 수 있었다.
“크륵?!”
한서리가 꺼낸 골렘들이 전선을 형성하자, 늑대인간의 무리 뒤편에 있던 한 놈이 반응했다.
다른 놈들과 달리 붉은 깃을 단 투구를 쓴 늑대인간이었다.
아우우우우우!
놈이 소리 높여 울자 마구잡이로 날뛰던 늑대인간들의 움직임이 급격하게 변했다.
방패를 쥔 놈들이 전열에 섰다. 그리고 창, 도끼 등 장병기를 갖춘 자들이 후열을 갖추며 한순간에 진형을 형성해 아이스 골렘의 무리와 부딪혀 갔다.
콰콰쾅!
아이스 골렘과 늑대인간의 진형이 충돌하며 폭음이 터졌다.
늑대인간은 하나하나가 감마급 판정을 받는 강대한 몬스터다.
기린의 권속이긴 하나, 거의 티아마트의 권속에 준하는 육체 능력과 재생력을 가졌다.
그런 놈들이 진형을 갖추어 덤비자 한 번의 충돌에 몇 기나 되는 아이스 골렘이 박살 나 얼음 덩어리가 되어스러졌다.
“……!”
그 모습을 발견한 한서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녀의 시선이 후방에 위치해 괴물들을 지휘하고 있는 빨간 깃의 투구에게 꽂혔다.
지휘관이 있고, 그의 통제에 따라 진형을 갖춰 전투를 벌이는 늑대인간들이라니.
지금까지 겪어 왔던 게이트의 침략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카아아앗!”
무너진 아이스 골렘의 전선 틈바구니로 몇몇의 늑대인간들이 빠져나왔다.
놈들은 새파랗게 빛나는 무기를 꼬나쥔 채, 짐승마냥 네 발로 내달려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쐐애애액!
홀로 서 있는 한서리를 향해 내질러지는 수 개의 칼날.
하지만 한서리는 그것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저 인상을 쓰며 앞을 막고 있는 골렘들을 통제해 다른 늑대인간들이 빠져나오지 못하게 막았을 뿐이다.
그리고 다음 순간,
콰앙!
폭음과 함께, 한서리를 향해 무기를 내지르던 늑대인간들이 사방으로 튕겨져 날아갔다.
온 천지에 늑대인간의 피가 난무하고, 시체가 되어 버린 괴물들이 공중을 날아 건물의 벽에 몸을 들이받거나 힘없이 바닥을 굴렀다.
그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은 한 사람. 검은색의 그림자와 흰색의 아우라로 온몸을 감싸고 있는 전사, 김건이었다.
그 뒤에 선 한서리가 말했다.
“깊숙하게 들어가. 빈틈은 내가 만들어 줄 테니까.”
고저가 없는 냉랭한 목소리.
하지만 김건은 그 안에 숨어 있는 분노를 읽었다. 왜냐하면 지금 그도 똑같은 이유로 분노하고 있었으니까.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이어지던 행복한 일상.
그것을 깨트려 버린 괴물들을 어찌 용서할 수 있겠는가.
마력을 모으던 한서리가 양손을 내뻗었다.
콰아아아앗!
그녀의 손으로부터 발출된 극대소멸공격, 절대영도의 광선이 늑대인간들의 무리 위에 꽂혔다.
한순간에 십여 마리의 수인(獸人)들이 하얀 먼지가 되어 사라지며 진형이 붕괴. 그 사이로 갑주를 걸친 김건이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