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107화
그의 등에는 과거의 티리온 프레이저가 사용하던 금속가방이 매달려 있었다.
공간 압축 기술을 통해 그 안에 수많은 무구를 담고 있는 무구다.
손을 뻗자 배낭에서 빠져나온 창대가 손에 잡혔다.
스르르릉!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압축된 공간에서 뿜어져 나오는 월도의 칼날.
그리고 그것이 번개가 되어 질주했다.
쫘아아악!
찢어지는 공기. 그 뒤를 따라 핏방울이 휘날리고, 상하로 분단된 늑대인간의 시체가 날아갔다.
“크왁!”
측면을 노리고 도끼날이 번뜩였다. 창대를 옆으로 세워 방어. 안쪽으로 파고드는 충격을 회전력으로 변환해 창끝으로 공격을 가해 온 수인의 머리를 후려쳤다.
쩡!
무시무시한 울림이 나며 괴물이 걸친 금속 투구가 단박에 파인다.
코피를 줄줄 뿌리며 쓰러지는 늑대인간.
“큭!”
하지만 아직 눈빛이 살아 있다. 반쯤 쓰러져 가던 늑대인간이 다시금 중심을 잡으며 털 달린 손에서 손톱을 뽑아내는 순간이었다.
월도를 휘둘러 반대편의 수인을 조각낸 김건이 발을 내디뎌 한순간에 지척으로 접근해 왔다.
“……!”
팔을 휘두를 거리가 없다. 다음 공격을 완벽하게 차단당했다.
그것을 깨달은 늑대인간이 자세를 바꾸려는 찰나,
통렬한 붕권이 옆구리에 꽂혔다.
한 주먹에 늑골과 갈비, 내장이 모조리 박살.
피 주머니가 되어 버린 허리가 단숨에 꺾이며 후방으로 날아간 늑대인간의 사체가 볼링공처럼 뒤이어 덤벼들던 수인들을 쓰러트렸다.
“쉭-!”
호흡을 뱉어 내고 가속을 계속하는 김건.
일자로 던진 월도가 셋이나 되는 늑대인간을 관통하며 지나가고, 그 등에서 새로이 뽑혀 나온 쌍검의 춤사위에 또다시 피바람이 몰아쳤다.
김건은 3년 동안 끊임없이 새로운 힘을 손에 넣어 왔다.
티리온 프레이저의 무기술, 에디 슐츠의 발경법, 그리고 더욱 강화된 버프에 슈퍼 리치인 아내가 공수해 준 초고가의 무구까지.
F급 마력적성 따윈 상관없다.
회피와 반격 위주의 소심한 전투 스타일도 버렸다.
김건은 이제 완성된 무인으로서 작동하고 있었다.
무기를 바꿀 때마다, 그 주먹이 내질러질 때마다 괴물들의 목숨이 덧없이 사라졌다.
완성된 무인이 순식간에 늑대인간의 진형을 돌파.
후방에서 소리를 높이며 나머지 수인들을 통솔하던 붉은 깃의 투구를 향해 양손에 든 칼을 내질렀다.
쾅!
폭음이 울리며 쌍검이 바깥쪽으로 튕겨 나갔다.
김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커다란 방패가 그의 앞을 막고 있었다.
전신을 숨길 수 있을 정도의 크기인 타워 실드. 그의 첫 번째 공격을 튕겨 낸 것으로 보아 그 강도는 가히 리빙메탈, 혹은 고제련의 오라에 맞먹는 것으로 보였다.
거기에 김건의 움직임에 반응한 붉은 깃의 실력 역시 뛰어났다. 영웅의 기준으로는 S급 상위에 속할 만한 움직임이었다.
“크르륵!”
그만한 실력자가 방패 뒤에 숨어 버리면 아무리 백병전 실력이 좋아도 뚫어 내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빨간 깃 역시 그것을 아는지 늑대의 주둥이를 일그러트리며 무리 한가운데로 뛰어 들어온 김건을 비웃는 듯한 동작을 취했다.
튼튼한 방패를 자랑하듯 지휘를 위해 빼든 검으로 전면부를 두들겨 보인다.
그것이 신호라도 된 양, 김건을 둘러싸고 있던 수인들이 동시에 그의 등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전면에는 뚫기 힘든 강대한 성벽.
후방에서는 퇴로를 막으며 짓쳐들어오는 기습 부대.
전략은 물론 전술적으로도 완벽한 불리의 형태.
하지만 전략이나 전술의 공식은 서로가 가진 힘이 엇비슷할 때나 들어맞는 법이었다.
“흠.”
김건의 입에서 무감정한 콧소리가 흘러나왔다.
웅-
낮은 울림 소리.
동시에 방패 뒤에 숨어 있던 빨간 깃의 머리가 폭발. 김건의 몸이 폭풍처럼 회전하며 평행으로 세운 쌍검이 후방의 공간을 쓸었다.
쫘악-
오랜만에 터져 나온 사량발천근의 경력이 근육을 짜내고, 그 힘을 최적의 각도로 그려 낸 칼날이 모든 것을 갈랐다.
그 범위에 걸친 무기, 갑옷, 육체가 모조리 절단.
찢어진 강철과 근육이 허공을 수놓았다.
“……!”
눈 깜짝할 사이에 지휘관이 당했다.
그리고 김건이 보인 압도적인 무위에 늑대인간들의 사기가 순식간에 꺾였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모든 마력을 퍼부어 골렘을 조종하는 한서리.
뒤이어 나타난 테마파크의 경호 병력 및 전투 가능한 용족들이 합류했다.
그 후로 1분도 지나지 않아 몬스터들은 전멸했다.
그다음 1분 뒤, 남아 있던 게이트를 봉쇄했다.
게이트가 발생한 지 5분도 되지 않아 모든 상황을 종료시키는 데에 성공.
하지만 그 것은, 수 년 만에 찾아온 행복을 부수는 데에는 5분이면 충분하다는 말과도 같았다.
그림자 갑옷을 해제한 김건이 사량발천근의 사용으로 열상을 입은 팔을 주물렀다.
간단하게 신분 증명과 경위 조사를 마친 한서리가 그의 곁에 다가왔다.
그들의 앞에는 잠깐 새에 피와 파편으로 젖어 폐허가 되어 버린 식당이 살풍경한 실내를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큭.
한서리가 이를 악물었다. 불과 10분 전만 해도, 저 안에서 행복을 나누고 있었는데.
분노가 치밀었다.
하지만 지금은 감정을 드러내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팔을 주무르던 김건이 한서리를 돌아보았다.
“방금 그놈들…… 봤지?”
“……응.”
많은 전투 경험을 겪은 그들은 이번 게이트의 습격이 지금까지와는 다르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늑대인간.
기린의 권속 중 하나다.
선계에서의 게이트는 세 마계 중에서 제일 위험도가 낮은 게이트였다.
대부분의 경우 멋모르고 들어와 날뛰는 몇몇 몬스터를 제압하면 끝나니까.
굳이 성가신 점을 찾자면 나타난 놈들이 싸움을 포기하고 도망가 버리는 것 정도일까.
어쩔 때는 게이트가 열려도 아무런 일 없이 다시 닫히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이번에 열린 게이트는 지금까지와는 명백히 달랐다.
수인들은 누군가에 의해 통제되고 있었다.
그리고 무작정 살육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소리 높여 위험을 알리는 이들과 방해물로 앞에 선 한서리와 김건을 우선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목적성을 갖고 움직였다.
그것은, 보통 군대라 불리는 집단의 행동 양식이었다.
* * *
김건과 한서리, 두 사람은 바로 복귀했다.
일단 민간인인 김건은 집에서 대기, 그리고 한서리는 바로 게이트를 타고 용왕의 집무실로 이동했다.
집무실에서는 여전히 알리시아가 초췌한 얼굴로 업무를 보고 있었다.
알리시아는 갑자기 들이닥친 한서리를 보곤 놀라서 말했다.
“팀장님? 오늘은 연차이신 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아크룩스 장군은 어디 있지?”
“스승님이요? 스승님은 아마 히말라야에서 훈련을 감독중일 겁니다.”
“지구방위군의 기지가 있는 곳이군. 좋아, 5분 줄게. 씻고 옷 갈아입어. 바로 그곳으로 간다.”
“예? 갑자기요? 무슨…….”
뜬금없는 명령에 알리시아는 당황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녀는 한서리의 얼굴을 보고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음을 직감했다.
한서리는 무거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최악의 상황이 일어났어. 어쩌면 지금, 다른 선계로부터의 침공이 시작됐을지도 몰라.”
“……!”
알리시아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잠시 말을 잃은 듯, 한서리와 눈을 마주쳤다.
“하…….”
그녀는 몇 초가 지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한탄이 흘러나오고, 상황을 이해한 머리가 회전하기 시작했다.
다른 선계로부터의 침공.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전 지구적인 일이다.
용왕이라는 가짜 신분이 아니라 용왕의 직속 부대, 용기사의 일원으로서 공식석상에 얼굴을 비춰야 할지도 몰랐다.
그런 곳에 나서는데 지저분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는 일.
알리시아는 바로 욕실을 향해 달려갔다.
* * *
한 시간 후, 히말라야 산맥에 위치한 지구방위군의 회의실.
그곳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하얀 면사포의 여인, 용왕이 말소리를 꺼냈다.
“각지에서의 보고는 올라왔습니까?”
커다란 회의용 탁자를 두고 맞은편에 앉은 인간. 지구방위군 소속, 알렉스 하퍼 대령은 각 부서에서 빗발치고 있는 메시지와 자료들을 전자 기기로 확인하며 대답했다.
“아직 정보를 수집 중입니다. 말씀해 주신 대로 오늘 18시 23분 이후로 발생한 게이트 개수는 파악되었습니다. 총 네 개의 게이트. 모두 선계에서의 것으로 확인되었고…… 기타 자세한 내용은 파악 중입니다.”
그 말을 들은 한 사람, 용왕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노인이 말했다.
“늦어.”
팔짱을 낀 상체 위로 비대한 근육질의 몸이 비쳐 보인다.
용족의 노인, 외견상 인간 기준으로는 못해도 70세는 넘어 보이는 고령이다.
하지만 주름과 함께 얼굴을 가득 메우는 흉터와, 노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근육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나이를 잊게 만들었다.
아크룩스 마르카르타.
알리시아의 스승, 용족의 마지막 3원로의 일원이자 용족 최강의 장군인 그가 묵직한 목소리로 용왕에게 말했다.
“용왕님. 인간들의 조직은 규모가 커서 정보 전달이 너무 늦는 것 같습니다. 게이트의 위치는 대강 파악된 것 같으니 그쪽으로 우리 정찰대를 보내서 별도로 정보를 파악해 볼까요?”
잠시 생각하던 용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바로 시행하세요.”
그러면서 약간 떨어져 앉아 있던 알리시아에게 눈짓을 해 보인다.
“명 받들겠습니다.”
꾸벅 인사를 한 알리시아가 인원 편성과 그들의 지휘를 위해 회의실을 뛰쳐나갔다.
그 모습을 본 알렉스 대령이 깜짝 놀라 외쳤다.
“무슨…… 군사 협력을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용족에게 그런 권한은 없습니다! 이건 명백한 월권 행위……!”
“대령.”
차가운 목소리가 대령의 말을 끊었다.
슬그머니 고개를 쳐들기 시작하는 신격에 등줄기에 오한이 달린다.
후들거리는 무릎. 알렉스는 식은땀을 흘리며 그 위압감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용왕이 말했다.
“우리 좋자고 하는 일이 아닙니다. 정말로 위험한 상황이에요. 어쩌면 이 행성 전체가 위태로워질 수도 있어요.”
담담히 말하지만 그 존재 자체의 기운 때문에 오금이 저려 온다. 하지만 알렉스는 군인이었다. 침을 한 번 꿀꺽 삼킨 그는, 이내 신경질적인 소리를 내뱉었다.
“그게 무슨…… 애초에 다른 선계의 군사적 침략이라니!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던 일입니다! 설령 그게 진짜라 해도, 그들이 이곳에 올 이유는 뭐죠? 설마 당신들이 끌어들인 건…….”
콰앙!
내리쳐진 주먹이 단박에 탁자를 때려 부쉈다.
신격과는 완전히 종류가 다른, 사나운 전사의 살기가 알렉스를 향해 쇄도했다.
용족의 장군인 아크룩스는 부리부리한 눈을 치켜뜨며 나약한 인간을 노려보았다.
“입 조심하시오. 대령. 그딴 불확실한 발언으로 또 다른 적을 만들고 싶지 않다면. 하물며 용왕님의 앞에서 그런 말을 하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야.”
알렉스는 하얗게 질린 얼굴이었지만 기죽지 않았다. 그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으며 뻣뻣하게 서서 말을 이었다.
“……협박을 한다고 해도 내 생각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당신들의 말만 믿고 모든 정보를 공유하며 움직일 수는 없어요.”
“이놈…….”
성질이 오른 아크룩스가 호통을 치려는 순간이었다.
잠자코 앉아 있던 용왕이 손을 뻗어 그를 말렸다.
“…….”
으르렁거리며 용족의 장군이 물러난다. 용왕은 한숨을 쉬며 보다 부드럽게 이야기했다.
“갑작스럽게 나타나 감 내놔라 배 내놔라 억지를 쓰는 것이 불만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그만큼 사태가 심각하고, 시급을 다투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우리에게 협력하는 걸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이미 지구방위군 사령관과 사무총장님께도 연락을 했습니다. 곧 공문이 도착할 거예요.”
침착한 말소리, 그리고 그녀가 내뱉는 말의 크기에 알렉스 대령은 점차 현실을 깨달아 가고 있었다.
농담이 아니다.
정말로 위험한 것이 이 세계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였다.
회의실의 문이 열리며 정찰대를 파견하기로 했던 알리시아가 도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들어온 군인이 빠르게 알렉스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속삭였다.
“……!”
알렉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는 입가를 문질러 굳어 버린 턱을 풀어 주며 겨우 말을 짜냈다.
“……알았어. 그럼 바로 통신을 날려서 각 나라의 군과 경찰에게도 지원 요청을 하라고 해. 긴급 경계 태세 올리고, 추가 사항이 있으면 바로 보고 올려. 뭐 하나라도 빼먹지 말고.”
알렉스에게 정보를 전달한 군인은 고개를 끄덕이고 바로 자리를 빠져나갔다.
알렉스는 부서진 탁자를 내려다보더니, 한숨을 쉬며 조금 의자를 뒤로 물려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용왕과 아크룩스 장군을 바라보았다.
“상세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
“게이트 두 개가 추가로 발생했습니다. 그걸로 게이트는 총 여섯 개. 그 안에서 나온 것들은 모두 짐승의 머리에 인간의 몸을 한 수인이었으며…… 모두 무장하고 있었고, 지휘 체계를 갖춰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였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