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108화
“……역시.”
아크룩스가 침음을 삼켰다.
동시에 발생한 게이트 여섯 개에서 동일한 몬스터가 동일한 행동 양식으로 움직였다?
그것은 이번의 이상 현상이 천계의 침략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확신으로 바꾸기에 충분한 사실이었다.
알렉스가 말을 이었다.
“그게 다가 아닙니다. 대부분의 게이트는 각 지역의 전투 부대가 투입되어 제압에 성공했지만, 두 군데 포위를 뚫어 낸 수인들이 있다고 합니다. 후속 부대가 바로 뒤를 쫓았지만 놈들 모두가 뿔뿔이 흩어져 도망가 버렸기에 추적에 난항을 겪고 있다 합니다.”
점차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다.
잠자코 있던 아크룩스가 문득 질문을 던졌다.
“혹시 그 수인들이 뭔가를 짊어지고 있다는 보고는 없었소?”
알렉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는 패드를 조작하던 걸 멈추고 아크룩스를 바라보았다.
“……있습니다. 모두들 등에 뭘 메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전투 현장에서 회수한 물건을 분석팀에게 넘겼다고는 하는데…… 그게 뭔지 알아내려면 시간이 좀 걸릴 듯합니다.”
말을 마친 알렉스는 잠시 손가락을 놀리더니 패드에 사진 한 장을 띄워 용왕과 아크룩스에게 보여 주었다.
“이 물건입니다. 혹시, 뭔가 알아보시겠습까?”
그것은 금속질로 이루어진 막대였다.
비교적 평평한 한쪽 끝과 달리, 반대편은 뾰족하게 다듬어져 있어 전체적으로 못이나 말뚝을 연상시켰다.
그 모습을 본 아크룩스가 신음 소리를 흘렸다.
그 외에 새겨져 있는 문장이나 기타 부속 물품들은 아무래도 좋다.
어딘가에 박아 넣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으로 보인다는 것이 중요하다. 아크룩스는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마도 저건…… 마력장 발생기일 거요.”
“마력장 발생기? 그게 뭡니까?”
“사방에 마력의 잔해를 뿌려서 마계가 아닌 주변 지역을 마계와 비슷하도록 느끼게 만드는 거요. 건물이든 땅이든, 아무데나 박아 넣고 다니려고 저렇게 만든 거지.”
알렉스는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마력의 잔해를 뿌리는 게 무슨 소용이 있죠? 마력은 이미 온갖 물질에 섞여 주변에 널려 있는데, 그걸 진하게 만드는 것일 뿐이지 않습니까? 그걸로 별다른 일이 일어날 것 같진 않은데요.”
아크룩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주변의 마력 농도를 조금 높일 뿐이지, 그것 자체로는 아무런 영향도 일어나지 않아. 딱히 위험할 것도 없고. 하지만 그걸로 아주 중요한 것의 눈을 속일 수 있지.”
“중요한 것?”
“억지력이오. 마계와 그 외의 세계를 구분 짓는 경계선. 그것이 있기에 마계에서 쉽게 이쪽 세상에 관여하지 못하는 거지.”
억지력의 눈을 속인다.
그 말의 의미를 깨달은 알렉스의 표정에 심각한 빛이 떠돌았다.
“그 말은 즉…….”
“억지력이 약화되면 보다 쉽게, 더 큰 힘이 외부 세계에서 넘어올 수 있게 되지. 아주 뻔한 수법이야.”
지금까지의 말을 정리하자면 이랬다.
억지력이라는 이름의 성문으로 보호되고 있는 이 세상.
이번에 나타난 수인들은 그 성문을 열기 위해 잠입해 온 공작 요원들이란 말이었다.
“……!”
지금까지 수많은 게이트의 침략을 막아 왔지만 이토록 조직적이고 체계화된 공격이 있었던 적은 없었다.
알렉스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갑자기 무시무시한 모습을 드러낸 현실에 전율하던 그는 문득 생각난 것을 물었다.
“장군님은…… 그걸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십니까?”
“…….”
아크룩스는 한때 용족들도 그런 방법으로 이 세상을 침략하려 계획했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대신 용왕이 말했다.
“고대 용족의 기록에 남아 있는 정보입니다. 마나가 풍족했던 시절, 용족은 여러 선계를 오가며 많은 일을 했다고 전해지죠. 어쩌면 이번 사태에 대응하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 그쪽의 자료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건 참고 자료일 뿐이고…… 중요한 건 그게 뭐든, 그들이 하려는 것을 막는 겁니다.”
용왕은 물 흐르듯이 이야기를 넘겼다.
“만약 정말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마력장 발생기라면, 이미 세계 곳곳에 그것을 설치하고 있겠죠. 그러면 억지력이 옅어지고, 그걸 이용해 계속해서 게이트를 통해 계속해서 더 강한 전력을 이쪽으로 불러 올 겁니다.”
“이미 각지의 경찰과 연계해 대응 중입니다. 도심으로 흘러 들어간 놈들도 있다 하니까요.”
밖에서 쿵쾅쿵쾅 발을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쾅-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더니, 범지구사회연합의 총장, 노제 프레데리카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아…… 하아…….”
어찌나 급하게 왔는지, 그녀는 엉망진창인 모습이었다. 땀으로 젖은 머리칼이 옆얼굴에 붙어 있고 옷차림도 모두 흐트러져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 눈은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총장님……!”
전 세계적 위협을 성공적으로 제거한 위업, 장기간 발할라라는 전투 조직의 내실을 이끌어온 데다 새로이 개편된 특무대의 설립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 노제다.
근래에는 행정에만 힘을 쏟고 있지만 그녀는 지구방위군에게도 막강한 실권을 갖고 있었다.
벌떡 일어난 알렉스가 경례를 했다.
하지만 노제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기린의 맞은편에 앉았다.
잠시 숨을 고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보는 눈도 없으니, 조금 편하게 말하겠습니다.”
아직 선계의 침략에 대해 공표된 사실은 없다.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비밀회의. 기자의 눈이나 카메라에 노출되지 않은 상황이다.
용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노제가 말했다.
“정말로 다른 선계의 침략이 시작된 겁니까?”
“네. 정황상 확실합니다.”
노제의 시선이 옆에 앉아 있는 알렉스에게로 향했다.
알렉스마저 고개를 끄덕이자 노제는 이를 깨물었다.
“제기랄.”
으르렁거리는 듯한 한탄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예상 시나리오 중의 하나라고는 하지만 정말로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한참동안 씩씩 거리며 숨을 고른 노제는 양해를 구한 뒤 알렉스에게 상황 보고를 받았다.
현재 상황을 이해한 그녀는 아크룩스를 바라보았다.
“아크룩스 장군님은 다른 선계의 침략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이 있으신 것 같은데…… 혹시 놈들의 본대가 등장하거나 했을 경우, 그 공격 규모가 얼마나 될지 예상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아크룩스는 알렉스를 살짝 눈짓하며 확인을 했다.
“지금까지 발견된 놈들이 모두 수인이 맞소?”
“그렇습니다.”
“그러면 아마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로까지 번지진 않을 거요. 선계에 퍼져 있는 모든 생물을 다 아는 건 아니지만…… 수인들과는 몇 번인가 교류가 있었어. 인간들보다야 압도적으로 강하지만…… 그건 마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인간을 상정했을 때의 이야기고. 지금의 전력이면 충분히 막아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오. 그래, 이전에 등장했던 티아마트의 반신 수준 정도라고 보면 되겠군.”
아크룩스는 용족의 장군으로서 수천 년을 살아온 자였다.
인간은 실감할 수 없는 까마득한 세월. 수천 년의 역사가 하는 말에 노제는 조금 안도했다.
“그러면 대규모 군대가 넘어오지 못하도록 놈들이 부리는 공작만 잘 막으면 되겠군요. 설령 넘어온다고 해도 대응할 전력은 있으니까…….”
“그렇소. 필요하다면 열린 게이트 너머로 섬멸 부대를 투입해서 피해를 입히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할 거요. 하지만 전력이 충분하다고 방심하지는 마시오. 티아마트나 벨제불의 권속들처럼 알기 쉬운 놈들이 아니오.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일을 벌일지 모르니까.”
노제는 그 의견에 동의한다는 듯 말했다.
“이미 대응 본부를 세우는 중입니다. 몇 시간 내로 자리와 인력이 마련될 거예요. 일단은 도망친 수인들의 추적, 그리고 새로 발생할 게이트의 방어에 집중하죠. 역습계획은 신중하게 결정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순조롭게 회의가 진행되어 가는 그때, 갑자기 기린의 화신이 반응했다.
“……잠깐, 조용히 해 보세요.”
“……용왕님?”
회의실의 모든 사람들이 흰색 면사포를 바라보았다. 사위가 조용해지자 용왕은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그녀의 머리 부분 위로 둥그런 마법진이 떠오르더니 뱅글뱅글 돌기 시작했다.
정보 수집 마법이다.
알리시아는 용왕이 사용하는 마법의 정체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녀의 주인인 기린의 화신은 화신의 능력으로 이 세계 곳곳 사람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 중계기를 심어 두어,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즉시 그녀에게 신호를 주도록 했다.
그런 용왕이 중계기로부터 신호를 받고 있다는 것은 즉 인적이 없는 곳,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용왕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자리를 비워야겠습니다.”
노제가 놀라 물었다.
“갑자기요?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확실하진 않아요. 지금 그걸 확인하러 가는 겁니다.”
그러면서 흰색 드레스의 표면 위로 황금색 비늘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공간이동 마법에 알리시아가 외쳤다.
“잠깐, 용왕님! 어딜 가시는지 정도는 말씀해 주셔야……!”
“태평양. 거기로 갈 거야.”
황금빛이 번쩍였다.
용왕은 그렇게 회의실에서 모습을 감췄다.
* * *
용왕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태평양의 한 섬에 세워져 있는 마력 폭풍 감지 센터였다.
센터는 온통 난리였다.
“이봐! 지금 검사 수치가 측정 한계를 넘어서 솟구치고 있어!”
“미친…… 기계 오류 아니야? 마법 술식이 잘못됐다던가?”
“아니야, 벌써 열 번 넘게 확인했어! 관측기 상태는 정상이야!”
센터의 직원들은 모두 당황한 목소리로 검사 결과를 확인하는 장비 앞에 몰려들어 있었다.
센터의 가운데에 기린의 화신이 나타났는데도 눈치 못 챌 정도다.
용왕은 바로 텔레파시를 사용했다. 그러자 센터에 들여 놓았던 용족의 연구원이 뛰어왔다.
“아, 용왕님…… 그러니까…… 어…… 그게…….”
어찌나 정신이 없는지 연구원은 말을 잇지 못했다.
용왕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연구원이 윽! 소리를 내며서 펄쩍 뛰었다.
갑자기 등골에서 한기가 솟구치며 온몸의 땀이 날아갔기 때문이다.
갑자기 얼음이 떠다니는 냉탕에 던져진 것 같다.
심장이 놀라 펄떡거렸지만 덕분에 정신은 들었다. 연구원은 가슴을 누르며 천천히 호흡을 골랐다.
그런 그를 향해 용왕이 바로 물었다.
“마력 폭풍이 발생했나?”
“네, 헉, 십 분쯤 전에, 돌연히 나타났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돌연히 발견했지요.”
“그 크기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다면 화신이 드나들 수 있을 정도입니다.”
화신이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크게 찢어진 차원의 균열.
그것은 그 너머로 대군이 넘어올 수도 있다는 말과 동일했다.
용왕, 면사포를 둘러쓴 한서리는 이를 악물었다.
“……왜 이렇게 탐지가 늦었지?”
“위치 때문입니다. 지금까지의 기록으로는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던 곳에서 나타났어요. 정확한 게이트의 좌표는 계산 중…….”
“정확하지 않아도 좋아. 대강의 위치는?”
연구원은 용왕을 바라보았다.
제대로 시선을 맞추지 못하고 자꾸 입맛을 다신다.
그 모습은 자기가 할 말을 해도 되나 망설이는 것처럼 보였다. 용왕이 말했다.
“대강의 위치.”
얼음처럼 정신을 들게 만드는 차가운 목소리.
그 목소리가 주는 압력에, 연구원은 잠시 말을 고르다가…… 겨우 장소를 말했다.
“마리아나 해구 밑바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