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109화
마리아나 해구 밑바닥.
수심 10000미터 이상, 수압 1억 300만 파스칼, 사실상 해저의 지옥이라 칭해도 이상하지 않은 극한 환경이다.
용왕은 침음을 삼켰다.
“……제대로 관측이 된 사항인가?”
연구원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 정도의 수심을 탐색할 수 있는 장비는 센터에 없습니다. 애초에 그 정도 심해에서는 게이트도 발생하지 않으니까요. 근처에 있는 탐지기를 보내 보긴 했지만 모두 파괴되었어요. 수압은 둘째 치고…… 게이트로부터 뭔가 나온 게 분명합니다. 지금 그 위치는 실측이 아니라 주변의 마력 파장 관측을 통해 계산으로 파악한 추측값입니다.”
잠시 침묵하던 용왕. 그런 그녀가 말을 꺼냈다.
“연구소에 남아 있는 탐지 장비들이 있나? 개인이 사용할 수 있는 종류로.”
“그거야 창고에…… 설마, 용왕님?”
아무생각 없이 답변 하던 연구원이 깜짝 놀라 주인을 바라본다. 용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직접 가겠다.”
“그런……! 위험합니다! 아무리 화신이라 해도…… 게이트의 규모가 심상치 않습니다. 거기서 뭐가 나왔을지 모르…….”
용왕의 두 눈이 연구원을 향했다.
“……!”
면사포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마치 그 너머를 들여다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반론을 용서치 않는 눈빛이 연구원을 찍어 누르고 있었다.
연구원은 자신이 이 명령을 거부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아, 알겠습니다. 따라오세요!”
그는 주변에 돌아다니는 동료 몇 명을 불러 모아 센터의 기기 창고로 달려갔다.
“측정 장비들은 대부분 민감하니까 신격은 최대한 숨기셔야 합니다. 저장 장치에는 보호 처리가 되어 있으니까 정보 수집을 마친 뒤에는 괜찮아요.”
“알았다.”
이런저런 설명과 사용법 등을 가르쳐 주며 연구원들은 기린의 화신에게 장비를 달아 주었다.
최대한 서둘렀음에도 불구하고 장비 사용법, 세팅, 그리고 관측 시 사용하는 매뉴얼을 알려 주는데 20분이 소요되었다.
“…….”
드레스를 걸치고 면사포까지 눌러쓴 채 검사 장비로 몸을 두른 용왕의 모습은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얼핏 보면 커튼을 뒤집어씌운 옷걸이에 기계를 걸쳐 놓은 것 같았다.
하지만 용왕의 몸을 두른 것은 마력을 실체화시킨 것이었기에 움직임에 지장을 주지는 않았다.
테스트 삼아 장비를 만져 보던 용왕이 확인을 마쳤다. 그녀는 이쪽을 쳐다보는 연구원들에게 말했다.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전파 송신이 된다면 자료를 바로바로 전송해 주지. 즉시 분석할 수 있도록 대기해.”
“알겠습니다. 조심하십시오.”
용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바로 좌표 값을 계산해 공간이동을 시전했다.
파앗─!
이번 순간이동 위치는 마리아나 해구의 심해였다.
혹시나 있을 습격을 피해 게이트 발생 지역으로 예상되는 위치와는 제법 거리가 떨어져 있는 외각 지역으로 워프했다.
등장하자마자 펼쳐진 보호막이 용왕을 중심으로 펼쳐졌다.
무시무시한 수압이 보호막을 짓눌렀지만, 화신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을 버티며 측정 장비의 설정을 시작했다.
측정 장비를 마력으로 감싸 보호하며 탐지를 시작한다.
장비가 데이터를 수집하는 동안 다른 것을 확인했다.
우선 전파를 사용해 연구 센터에 통신을 시도해 보았지만 실패했다. 주변 게이트에서 흘러나온 마력이 자기장을 변질시켜 강력한 재밍이 걸리고 있었다.
“쳇.”
통신이 가능하다면 대화를 나누며 바로바로 정보를 교환할 수 있을 텐데, 그것은 힘들 것 같다.
용왕은 혀를 차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너무나도 깊은 심해. 빛도 제대로 들어오지 못한다. 그곳에 존재하는 것은 그저 어둠뿐이었다.
기린의 힘으로 강화한 시력이 미약한 빛을 캐치해 장비를 조작할 수는 있었지만, 그래 봐야 바로 앞의 사물만 분간할 수 있을 뿐이었다. 육안으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보다 밝은 빛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 어둠 속에서 빛을 키우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주변의 모두에게 알리는 것이기도 했다.
……우선은 게이트의 성질과 규모를 파악하기 위한 데이터 수집이 우선이다.
용왕은 기다렸다.
잠시 후, 작게 삑 소리가 울리며 장비가 필요한 최소치의 정보를 수집했음을 알려 왔다.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이 이후의 일은 모두 추가적인 작업일 뿐이다. 용왕은 충분히 대비를 한 뒤, 손가락을 튕겨 조명 마법을 시전했다.
딱, 소리와 함께 퍼져 나오는 빛.
사방이 밝아지며 주변 환경이 보였다.
그런 용왕의 시야에 보인 것은 사방에 휘날리는 시체의 파편이었다.
“……!”
참혹하게 물어뜯겨 뼈만 남은 고래와 심해어, 그리고 산산조각 난 갑각류의 조각들이 수중을 떠다니고 있었다.
그러한 끔찍한 광경을 만들어 낸 것이 무엇인지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이미 바닷속을 새까맣게 물들이며 일렁이고 있었으니까.
세모꼴의 몸체와 수개의 촉수가 흐느적거린다.
언뜻 봐서는 오징어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오징어가 아니었다.
비교적 짧은 다리에 지렁이처럼 길쭉한 몸통. 지구상 어디에도 그것과 비슷한 오징어는 없었다.
그 끔찍한 괴이의 눈동자가 일제히 회전했다.
새까만 구멍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수천 개의 눈이 화신을 노려봤다.
웅크리고 있던 촉수가 미친 듯한 속도로 짓쳐들어오기 시작했다.
“……!!”
삽시간에 용왕의 보호막이 괴물들에게 둘러싸였다.
놈들은 그녀를 짓이겨 죽일 듯이 촉수로 보호막을 조여 왔다.
그러면서 수개의 촉수 안쪽, 그 안에 존재하고 있는 입으로 그 표면을 갉아 대기 시작했다.
까득! 까득! 까득!
둥그런 원통형의 주둥이 안쪽으로 뻗어 나온 톱니 같은 칼날.
그것이 보호막을 씹자 소름 끼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큭!”
벌써 이만큼이나 나와 있을 줄이야!
용왕은 바로 공간이동의 술식을 펼쳤다.
하지만 실패. 그녀의 몸 위로 황금빛이 점멸하며 마법이 파훼되었다.
삐이이이이───!!
괴물들이 울리는 초음파, 마력이 담긴 목소리가 술식을 흩트리고 있었다.
어지간하면 무시하고 기술을 펼치겠지만 간섭이 너무 심했다.
쉽게 말해 방해 전파가 강해서 복잡한 술식을 펼칠 수가 없다.
일종의 마력 재밍이라고도 할 수 있는 공격이었다.
그렇다면.
“단순한 걸로 가 주지.”
터져 나오는 마력. 동시에 퍼진 백색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크에에에엑!
비명이 울려 퍼진다.
화신의 몸 안쪽으로부터 분출한 얼음 송곳이 괴물들을 꿰뚫었다.
용왕은 그들이 흘린 피로 검은 바다를 물들이며 얼음으로 몸을 감쌌다.
그런 그녀가 몸 주위에 그려 낸 것은 하얗게 빛나는 뾰족한 모양의 비행체였다.
콰앙!
폭발이 터지며 얼음의 송곳이 된 화신이 급격하게 상승했다.
추진제 대신 마력과 얼음을 발출하며 심해를 날아갔다.
앞을 가로막는 괴물들을 모조리 찢어 버리며 질주.
백색의 물체가 지나갈 때마다 충격파와 포말이 터지며 산산조각 난 살점과 피가 난자했다.
용왕은 계속해서 날아올랐다.
중력의 반대편을 향해 미친 듯이 폭주했다.
순식간에 괴물의 포위망이 뚫린다. 상승에 또 상승, 계속해서 빛을 향해 나아간 끝에 있는 것은 잔잔하게 흐르는 해수면 위였다.
콰아아앗!
수직으로 솟아오른 화신이 해수면을 박차고 뛰어 올라왔다.
얼음을 벗어던지며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 흰색 드레스가 바람결에 휘날렸다.
하지만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의 뒤를 따라 올라오는 물체가 있었다.
펑! 펑! 펑!
물 밖으로 몸을 꺼내는 것뿐인데 수면에 폭발이 터졌다.
빨판으로 가득한 여덟 개의 근육 덩어리. 그것은 마치 수백 년 묵은 나무줄기만큼이나 두꺼웠다.
카아아아아아─!
그 안쪽에 위치한 입이 벌어지며 고성이 쏟아져 나왔다.
크라켄.
전함을 쥐어짜 조각낼 정도로 막대한 크기와 힘, 무한에 가까운 재생력을 가진 다리, 그리고 물속에서 행동한다는 특이성으로 인해 퇴치난이도로는 화신에 맞먹는다고 알려진 엡실론급 몬스터.
놈이 다리를 뻗어 용왕을 잡아채려 들었다.
온몸을 마력으로 변환한 화신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공격이었다.
하지만 용왕은 아직 실존하는 육체를 갖고 있었다. 그동안의 노력으로 세포 재생 마법을 익혀 상처를 순식간에 낫게 할 수 있지만 일격에 치명상을 입고 죽어 버리면 도리가 없다.
일격에 배를 두쪽 내는 위력에 얻어맞으면 즉사가 확실.
거기에 크라켄 외에도 수많은 괴물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흥.”
하지만 용왕은 코웃음을 쳤다. 마력 재밍이 풀려 공간이동으로 얼마든지 도주가 가능한 상황이지만 그녀는 도망치지 않았다.
상대의 전력을 깎아 낼 수 있는 기회다.
그런 호기를 놓칠 리가 없었다.
화신이 양손을 들어 올려 마력을 집중했다.
그리고 내리치자 새하얀 광선이 폭발하듯이 터져 나왔다.
수십 미터 범위로 쏟아져 나온 절대영도의 에너지가 광역으로 수면을 때렸다.
콰지지직!
한순간에 얼어서 부스러지는 크라켄의 다리.
그 크기가 유람선에 맞먹는다 하는 괴물이 단박에 얼어붙었다가 부서져 먼지가 되었다.
하지만 화신이 뿜어낸 한기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사방으로 퍼져 일대의 바다를 모조리 얼려 버렸다.
상상을 초월하는 냉기의 폭풍에 한순간에 생겨난 얼음 지대.
얼어붙은 물이 팽창, 그리고 갑작스레 빼앗긴 열기가 동시에 뿜어져 나오며 한 공간에 중첩되었다.
콰아아아앙!
어마어마한 폭발이 터졌다.
물보라가 흰색 구체를 만들며 충격파와 함께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가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물과 얼음 조각이 사방을 비상한다.
얼어 부서진 괴물들의 시체가 흩뿌려지며 수백 평방미터에 걸쳐 수면 위로 떠올랐다.
주변에 존재하던 괴물들을 일소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심해를 장악한 적의 대군을 발견한 용왕은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허공을 유영하며 공간 마법을 조합한 통신 마법을 시전해 지구방위군과 회의를 하고 있을 용족의 장군, 아크룩스를 호출했다.
아크룩스가 텔레파시로 대답했다.
- 예, 용왕님. 분부가 있으십니까?
- 용족의 전 병력을 호출하세요. 더불어 비행정도 전부. 개발 중이든, 미완성이든 상관없습니다. 가동 가능한 비행정은 모두 다 이끌고 태평양에 있는 지구방위군 기지에 집결합니다. 저는 정보 분석을 위해 잠시 마력 폭풍 감지센터와 연구소에 들렀다 가겠습니다.
그 명령은 마치 당장이라도 있을 전면전을 준비하라는 것처럼 들렸다.
놀란 아크룩스가 물었다.
-……! 무슨 일인지 상황을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태평양 심해에 거대 게이트가 출몰했어요. 이미 대군이 쏟아져 나와 농성을 준비하는 중입니다.
-심해의 게이트라고요? 그러면 거기서 나온 건 수인이 아니라…….
무언가를 직감했는지 아크룩스의 말이 잦아들었다.
용왕은 긍정을 표해 그 말에 확신을 심어 주었다.
-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타이밍이 너무 좋아요.
용왕이 침을 삼켰다.
한서리, 인류 종말로 끝을 맺은 전쟁과 회귀, 그 이후에도 몇 번이나 신격을 접하며 말도 안 되는 사선을 넘어온 그녀마저도 긴장을 숨길 수 없을 정도로 지금의 상황은 심각했다.
-최소 두 개 이상의 선계가, 이곳을 노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