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110화
천 년을 넘게 살아 성체로의 변신이 가능한 자로만 구성된 용왕의 친위대, 용기사.
총 열 명 용기사 중 다섯 명이 지구방위군의 비공정 20대와 함께 태평양으로 출격했다.
동시에 태평양에 인접한 곳의 해안 지대에는 위험 경보가 발령. 혹시나 바다를 통해 흘러 나가 상륙을 시도할지도 모르는 몬스터를 주의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그리고 출격한 병력은 용족의 장군, 아크룩스의 지휘에 따라 게이트 발생지 위의 해수면에 자리를 잡고 게이트 파괴 작전을 시작했다.
문제는 그 게이트가 수심 10km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온갖 마법을 사용해 접근은 할 수 있지만 그저 가는 것과 가서 대규모의 전투를 벌여야 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다.
현재 제일 유력한 공략 방법으로는 역시나 핵폭탄의 사용이었다.
3년전, 티아마트의 투기를 상쇄하느라 대부분의 핵무기가 소모되었지만, 그동안 개발자들이 놀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용족의 지식을 받아들여 마법의 힘과 연계한 새로운 핵폭탄이 준비되어 있었다.
문제는 그 핵탄두를 해구로 어떻게 운반하느냐였다.
당연히 단순 투하나 로켓에 실어 나르는 형태의 투입은 불가능.
제일 좋은 건 공간이동 마법을 이용해 던져 넣는 것이지만,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용왕이 그 존재를 발견했던 게이트 발생 초기 때뿐이었다.
게이트가 발생한지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게이트를 중심으로 막대한 중력 이상 현상이 발견되었다.
순간이동을 통한 기습 따위를 막기 위함인지 중력 방벽을 통해 공간 좌표를 모조리 틀어 놓은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결론은, 직접 들고 내려가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마지막의 마지막에나 선택할 최악의 선택지였다.
그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폭탄을 운반할 사람은 물론이요, 그러한 운송로를 뚫기 위한 병력까지 모조리 목숨을 바쳐야 할 특공을 걸어야 했기 때문이다.
게이트의 크기가 점점 더 커지는 것도, 빠져나온 괴물의 숫자가 감방 불가능해진 것도 아니다. 그러니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할 필요가 없었다.
일단 아크룩스는 다섯 명의 용기사를 적극적으로 이용해 외각에서부터 해저 괴물들의 전력을 깎아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후에 있을 심해에서의 싸움을 대비해 마력과 공기, 잠수정 등의 보급을 지원할 전진 기지의 설치를 진행했다.
그렇게 심해에서의 싸움이 장기화되어 가는 동안, 지상이라고 조용했던 것은 아니었다.
지상에서는 급격하게 수를 불리고 있는 게이트를 통해 계속해서 소수로 침투해 오는 수인들과의 전쟁이 한창이었다.
여기서는 군대보다 경찰이 주권을 잡고 행동했다.
뿔뿔이 흩어져 몸을 숨긴 채 마력장 발생기를 설치하고 다니는 수인들의 행동은 범죄자들의 그것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암투는 생각보다 좋은 느낌으로 진행되었다.
그 이유에는 티리온과 세라스 프레이저를 위시한 과거 발할라의 정예들이 특무대로서 복무하고 있었던 것이 주효했다.
하나하나가 일당백인 특무대의 전사들은 계속해서 발생하는 게이트에도 굴하지 않고 쥐새끼처럼 숨어 다니는 짐승 인간들을 찾아내 때려잡았다.
두 개 세계에서의 동시 침략.
상정한 적도 없는 사건이 진행 중이었지만 아직까지는 상황이 나쁘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말이다.
그래서 용왕, 한서리는 이런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
“비밀리에 별동대를 파견해서 설치해 뒀던 마계화 가속 장치를 모두 치워.”
“……예?”
알리시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한서리를 바라보았다.
며칠이나 지속된 대응 회의와 작전 지휘.
그에 지친 사람들이 나가떨어지자 잠시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한서리와 알리시아는 그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보내기 위해 용왕의 집무실로 돌아왔다.
워낙 바빠 마른 음식으로만 식사를 해 온 탓에 스트레스가 쌓였다.
간만에 그렇게나 좋아하는 기름진 고기를 붙들고 뜯어먹던 알리시아는 갑자기 내려진 한서리의 명령에 움직임을 멈췄다.
하지만 그녀는 금방 그 뜻을 알아차렸다.
마계화 가속 장치는 언뜻 수인들이 설치하는 마력장 발생기와 비슷한 작동 원리를 가지고 있었다.
마계화가 진행되면 억지력은 당연하다는 듯이 약해지니까.
계속해서 권속화를 위해 이 세상을 마계화시키는 일을 추진해 온 한서리가 스스로 그것을 물릴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인간들을 경계해서입니까?”
한서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벌써부터 용족을 향한 여론이 안 좋아지고 있어. 그들 역시 지금의 침략자들과 마찬가지인 상황이 아니냐고. 오히려 대놓고 침략을 한 지금 놈들보다 더 무서운 녀석들이 아니냐고 말이야. 지금 시점에서 인간들에게 그게 발견되면 위험해져.”
이미 대규모의 인원들이 선계의 침략에 대응하여 움직이고 있었다.
언제까지고 그 사실을 숨길 수는 없었기에 다른 세상의 침략 자체는 매스컴을 통해 아주 조심스럽게 대중들에게 전달되었다.
하나 그 사실이 공표된 것은 아직 이틀도 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벌써부터 같은 편인 아군을 탓하다니.
짧은 인생을 사는 종족이라고는 하나, 이건 너무 빠른 게 아닌가.
그녀의 주인, 그리고 새로이 사귄 친구가 인간만 아니었다면 욕이라도 한마디 했을 것이다.
알리시아는 유감을 표시하는 대신 혀를 찼다.
“……쯧.”
한서리는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자신이 실례를 저질렀다는 것을 깨달은 알리시아가 당장 사과하려는 찰나였다.
한서리가 입을 열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겠는데, 단순히 인간만의 문제가 아니야.”
“……인간만의 문제가 아니라고요?”
한서리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론상 문제가 생길 거라는 건 알고 있었어. 그러니까 당연히 정보 유포와 동시에 통제와 조작에도 들어갔지. 쓸데없는 분란을 줄이기 위해서 말이야. 그런데도 이 정도로 빠르게 논란이 불거진다는 건 무슨 수작이 있었다는 거야.”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인위적인 것이라는 말인가요?”
“그래.”
누군가의 조작에 의한 여론 악화.
그렇다면 그 주체는 과연 누구인가.
알리시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녀의 고민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소름이 끼친다.
무언가를 떠올린 알리시아가 크게 뜬 눈을 한서리에게 향했다.
“설마…… 훨씬 이전부터……!”
한서리의 파란 눈에 빛이 번득였다.
“그럴지도 몰라. 바로 네가 그랬던 것처럼.”
여론 조작 등의 정보 공작은 하루아침에 벌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한서리는 지금의 침략 상황이, 훨씬 오래전부터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었다.
알리시아가 반론했다.
“하지만 수인이나, 심해에 터를 잡은 크투그아들이 그런 짓을 할 수 있을까요? 변신 마법에 능통하다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종족의 성향상 그런 복잡한 짓을 할 것 같지는 않은데요.”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어. 그놈들 외에, 다른 종족이 그들을 돕고 있을 수도 있잖아?”
그 말에 컥- 하고 숨통이 막혀 왔다.
알리시아는 질린다는 표정으로 겨우 내뱉었다.
“그, 그럼 총 세 개의 선계가 이곳을 노리고 있다는 겁니까?”
한서리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못해도 세 개 이상이라는 거지.”
“……!”
알리시아는 이제 말을 잊은 듯했다.
망연자실해하는 그녀를 달래듯, 한서리는 조금 부드러워진 어조로 이야기했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는 소리야. 그러니까 지금 일이 당장 잘 풀려 가는 것 같더라도 긴장 늦추지 마.”
“……알겠습니다.”
알리시아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후, 의외로 상황은 순조롭게 풀려 갔다.
멸망의 위기를 앞두고 티아마트와 싸워 이겨 냈던 인류의 경험.
수백 년간 수많은 세상을 떠돌며 살아갈 곳을 찾아 헤맸던 용족의 경험.
그러한 경험을 겪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강인하고,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수인들 특유의 마력과 냄새 등의 흔적을 추적하는 전용 마법의 프로토타입이 배포되었고, 태평양 게이트를 파괴하기 위한 핵폭탄과, 그것을 운반하기 위해 빠른 기간 내에 개발된 특수 어뢰, 그리고 그것을 적의 한가운데에 꽂아 넣기 위한 작전 역시 차근차근 준비되어 갔다.
하나둘, 희망적인 관측이 보도되기 시작한다.
긴장감이 감돌던 대응 본부 내부의 분위기도 조금씩 풀어지기 시작했다.
모두들 이번 위기도 저번과 같이 해결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한서리는, 인간과 용족 연합의 수뇌부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다른 선계와의 전면 충돌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세상을 벗어나, 다른 세상과 연합을 하고, 심지어는 침공을 걸어올 정도로 대담한 놈들이다.
그런 놈들이 변변찮은 저항 한 번 해 보지 못하고 당해 줄 리가 없었다.
한서리는 놈들이 포석을 쌓고 있다고 판단했다.
전투를 시작하기에 앞서 진지를 쌓고 진형을 갖추는 단계.
그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놈들이 무언가 수를 쓰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주변이 조용할 리가 없었다.
이미 모습을 드러낸 수인과 크투그아로 명명된 심해 괴물들.
그들을 제외한 제3의 세력이 있다.
발견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한서리는 그들의 존재를 확신했다.
문제는 저쪽의 정보가 너무 없다는 것이다.
그 규모도, 정체도, 어떤 종류의 수작을 부려 올지도 전혀 알 수가 없다.
용족의 지혜와 기록을 뒤져 다른 선계에 관련된 내용을 탐색 중이었지만 장장 수백만 년에 달하는 용족의 역사에도 이런 다차원에서의 침공을 당했다는 내용은 없었다.
한서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나마 그들이 파악하고 있는 여러 선계의 정보를 토대로 미리 대응 시나리오를 만들어 두는 것 정도였다.
하지만 그 수가 너무나 많았기에 하나하나에 완벽한 준비를 갖춰 둘 수는 없었다.
상대의 수를 모른다.
때문에 할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었다.
눈과 귀를 열고, 모든 감각기를 총동원해 벌어질 사태에 대비하는 것이다.
한서리는 용왕의 이름으로 별도의 팀을 꾸려 세계 각지에서 발생하는 이상 현상들을 모조리 긁어모았다. 그리고 그것을 분석해 그중에 숨어 있을 이세계 침공의 전조를 추적했다.
곤륜산에서 관측되고 있는 지진.
특정 도시에서 발생하고 있는 실혼인 현상.
도심 한복판에 출현했다가 지하 수로로 도망쳤다고 하는 도시 괴수.
어느 시골 마을에서 들렸다고 하는 알 수 없는 괴성.
전조도 없이 나타나 주변 작물과 가축을 모조리 쓸어버렸다고 하는 괴물 메뚜기 떼의 발견 등.
마계화가 진행 중인 지구였다.
온갖 생물이 변이를 일으키고 하루가 멀다 하고 생태계가 변화하는 이 행성에서는 하루에도 그런 소문과 사건이 수십 건도 넘게 발생하고 있었다.
아무리 한서리에게 주어진 권한이 크고 많은 사람이 달라붙어도 실시간으로 모든 사건의 원인을 밝혀낼 수는 없었다.
설령 밝혀냈다 하더라도 대부분이 사실과 전혀 무관한 뜬소문이거나 과장되어 부풀려진 쓰레기 정보였다.
“용왕님, 아무리 봐도 제3의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성과가 전혀 없어서 팀원들이 회의감을 갖는 중입니다. 일손이 부족한 선계침략 대응본부의 다른 팀에서도 불만이 나오고 있어요.”
모든 사람들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적을 찾는 건 포기하고 눈앞에 보이는 수인과 크투그아에게 집중하자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한서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용왕으로서의 그녀는 딱 잘라 말했다.
“적은 분명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수인과 크투그아가 당해 주고만 있는 건 그들이 바보라서가 아니에요.”
한서리는 참았다. 그 누가 뭐라 해도 참았다.
사랑하는 남편과,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는 이 세상이었다. 그것을 지키기 위한 일인데 어설픈 희망론으로 판단을 그르칠 리가 없었다.
불리한 건 이쪽이다.
이기기 위해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지루하고 힘겨운 시간이 하루하루 흘러갔다.
그리고 침략이 시작된 지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사건이 발생했다.
도망치던 수인들이 한데 모여, 지구방위군의 주축이 된 주요 국가들의 대통령 관저 등 중요시설을 습격했다는 정보가 입수되었다.
“당장 경찰의 특무팀을 파견해!”
“비밀 작전이 진행 중이라 인원이 부족해? 좆 까는 소리 하지 말고 은퇴한 발할라 생도라도 호출해!”
“빨리! 빨리! 움직여!”
깜짝 놀란 선계침략 대응본부가 정보를 배포하고 그들의 습격에 움직이려는 찰나였다.
또 다른 급보가 접수되었다.
“태평양 게이트의 크투그아군이 돌격을 개시했다고 합니다! 크투그아의 선봉과 용기사 5인이 교전 중! 지구방위군 본대에게도 전투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
또다시 떨어진 벼락같은 소식에 충격.
경악한 대응본부의 모두가 일순 동작을 멈췄다.
“……움직여! 뭐라도 해!”
놀라고 있을 시간 따윈 없다. 모두가 각자의 업무를 위해 다시금 뛰어들었다.
그때였다.
콰아아아앙-!
대응 본부가 설치되어 있는 지구방위군 기지의 정문에 폭발이 일었다.
그리고 그 틈으로 검은 인영이 우르르 쏟아져 들어왔다.
기지를 지키던 군인들이 고함을 질렀다.
“습격이다!”
습격자들의 정체를 눈으로 확인한 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야, 이 자식들! 몬스터가 아니야!”
“테러리스트? 지금 이 시기에?”
정체되어 있던 상황이 급격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