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113화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모든 사건을 제압하는 데에 성공한 후 한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 선계침략 대응본부에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현황 모니터링실의 중앙에 자리해 있는 면사포의 여인 때문이었다.
“…….”
그녀는 말이 없었다. 그저 묵묵히 모니터링실에 펼쳐진 수백 개의 모니터를 지켜보고, 각자의 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보고를 받을 뿐이었다.
“유럽 동부, 특이 사항 없습니다.”
“사천성 인근, 특이 사항 없습니다.”
“오스트렐리아 대륙, 특이 사항 없습니다.”
각지에서 문제가 없다는 보고가 속속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아무것도 없다.
이미 요 며칠 동안 활발했던 침략 세력들의 움직임 때문에 어제오늘 잠도 자지 못했다.
모두가 극도로 지쳐 있었다.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되어 긴장도 풀린 참이다.
체력도, 정신력도 한계였다.
계속된 무의미한 정보 조회에 지친 모니터링 팀의 팀장이 용왕에게 말했다.
“용왕님. 마리아나 해구 게이트에서도 추가 병력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소식이 있고, 세라스 프레이저의 보고가 올라가 경찰 측에서도 하나둘 숨어 있는 악마종을 찾아내고 있다고 합니다. 남아 있는 뒤처리의 지원도 필요하니, 슬슬 경계 태세는 해제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뇨, 아직입니다. 아직 침략의 목적도, 놈들을 통솔하는 자의 존재도 너무 불분명해요. 상황이 종료되었다고 보기에는 이릅니다.”
용왕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경계 태세 계속 유지하세요. 모니터링 팀은 삼교대로 24시간 운영합니다. 곧 교대 인원이 올 겁니다. 그때까지만 참아요.”
“……알겠습니다.”
팀장은 매우 힘겨운 기색이었으나 용왕의 말에 담긴 위기감을 읽었다. 그는 아랫사람들을 독려하며 다시금 작업에 착수했다.
그렇게 재개한 지 십분쯤 지났을 때, 뚫어져라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던 한 사람이 말했다.
“어? 이거 좀 이상한데?”
“뭐가 이상한데?”
옆의 직원이 묻자 모니터의 한 부분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까지는 그냥 이쪽으로 들어오는 정보들만 파악하고 있어서 몰랐거든? 듣다 보니 뭔가 이상해서 확인해 봤더니, 아예 아무런 정보도 송신하지 않고 있는 곳이 있는데? 대도시라 통신 신호가 없을 리가 없는데 말이야.”
“거기가 어디죠?”
어느새 등 뒤에 용왕이 있었다.
모니터링실에 있는 직원만 기백 명인데, 말을 꺼낸 지 5초도 안 되어서 반응했다.
뒤에서 그냥 폼만 잡고 있는줄 알았더니 한 명 한 명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직원은 침을 삼키며 대답했다.
“……런던입니다.”
그는 모니터를 가리켜 보였다.
그가 바라보고 있던 화면에는 커다란 세계 지도가 표시되어 있었다.
각지에서 발신하는 신호를 시각화해서 표기한 것으로보이는 원형이 전 세계에서 깜빡이고 있다.
하지만 정말 그의 말대로, 그가 가리킨 부분만 아무런 표기없이 그저 검게 보였다.
그것을 본 순간 용왕은 등골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그녀는 다급하게 외쳤다.
“위성 사진 띄워 봐요. 당장!”
“아, 알겠습니다!”
직원은 당장 프로그램을 조작해 런던을 상공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위성 사진을 화면에 출력했다.
그리고 이내, 말을 잃고 말았다.
거대한 마법진이 도시 전역에 걸쳐 그려져 있었다.
“뭐야! 이건!”
깜짝 놀란 직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건 또 뭔……!”
“빨리! 빨리! 원인을 찾아!”
그것을 발견한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정보를 수집. 한순간에 나른한 분위기가 흐르던 모니터링실은 전쟁터로 변했다.
“위성 사진 관측 결과, 지금까지 본 적 없던 몬스터가 도시를 장악했습니다! 녹색 피부를 가진 인간형 몬스터입니다. 정확한 숫자는 파악 불가!”
“마력 폭풍의 수치는 낮아! 자주 발생하는 소규모 게이트 정도인데, 저 대군이 어떻게 튀어나왔지?”
“용족의 기록에 존재하는 몬스터입니다. 초록색 피부, 그린스킨이라고 부르는 듯한데, 저들은 가진 마력 자체가 작아서 억지력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소규모 게이트를 생성해서 조금씩 조금씩, 장시간 동안 이동을 거듭해 수를 불린 것으로 추측됩니다!”
“통신은? 왜 저 지경이 될 때까지 연락이 없었지?”
“런던을 중심으로 강력한 전파 재밍이 걸려 있습니다. 주변의 관측 및 통신 거점들도 연락이 안 됩니다. 위성으로 습격의 잔해를 발견. 위장한 악마종들의 짓으로 보입니다.”
그 모든 정보들을 머릿속에 넣으면서, 용왕은 위성 사진에 찍힌 도시 위의 마법진을 바라보았다.
인간은 모르는 방식의 마법진.
하지만 기린이라면 알 것이다.
그녀는 기린이 남기고 간 지식을 머릿속에서 뒤져, 도시 위에 그려진 마법이 차원의 벽을 허무는 수준의 초거대 게이트 생성 마법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저 마법진이 완성되면, 지금까지 나타났던 선계의 모든 병력이 이곳으로 넘어올 수 있게 돼.’
수인, 크투그아, 악마종, 그린스킨.
아무리 준비를 철저히 했어도, 네 세계의 전력과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건 불가능하다.
저 마법진이 가동된다면 모든 것이 끝난다.
용왕은 그제야 확신했다.
이거다. 이게 놈들의 진짜 목표다.
나머지 사건들은 모두 런던을 침공한 새로운 종족과 마법진의 건설을 숨기고 시간을 벌기 위한 연막이었을 뿐이다.
‘이것만 막아 내면, 이번 사태를 일단락 지을 수 있어.’
그녀는 바로 통신 마법을 사용해 아크룩스에게 말했다.
<<아시아 대륙에 있던 함대를 이끌고 최대한 빠르게 런던으로 출격하세요. 나머지 절반, 아메리카 대륙의 함대는 천천히 선발대의 뒤를 따르면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합니다.>>
<<알겠습니다.>>
아크룩스와 연락 후에는 지구방위군의 책임자와 사무총장에게 이 이야기를 전달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은 친위대인 용기사들을 이끌고 직접 출격.
마법진의 건설을 조금이라도 방해하기 위해 이 세상에 처음으로 나타난 존재들인 그린스킨들과 전초전을 벌였다.
온 세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방에 퍼져 있던 지구방위군의 주 병력이 런던 인근의 게이트 시설을 이용해 빠르게 집결을 시작했다.
태평양을 떠나 절반으로 갈라져 각각 아시아와 아메리카 상공에 떠 있던 비공정들 역시 활동을 개시, 초음속의 속도로 런던을 향해 날아갔다.
그 이후로 벌어진 그린스킨과의 전쟁은 약 10시간 동안 이어졌다.
녹색 피부를 가진 근육질의 인간형 몬스터들은 가진 마력 자체는 대단치 않았지만 강력한 육체 능력과 아주 뛰어난 무구를 가지고 있었다.
용족의 기록에 따르면, 그들은 마법이 아니라 주술이라고 명시된 기술을 사용한다고 했다.
존경하는 조상 혹은 강대한 원령의 영혼을 몸에, 혹은 무구에 깃들게 해 일반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힘을 손에 얻는 것이다.
그 힘을 증명하듯, 그들의 칼과 도끼는 쉽게 전차를 도륙했다.
영혼이 깃든 갑옷은 총알은 물론이요, 심한 것은 대포까지 막아 내는 방어력을 가지고 있었다.
당연히 소규모의 마법 역시 튕겨 내 버린다. 그러니 화력을 통한 압살이 불가능했다.
첫 번째로 벌인 시가전에서 처음으로 그것을 깨달은 인간 측은 상당한 피해를 입고 일시 후퇴.
하지만 그들에게 다른 계책을 짜 올리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마법진의 완성이 코앞이었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는 놈들이 마법진의 건설에 착수하지 못하도록 계속해서 전투를 벌여야 했다.
시가전으로는 승부하기 힘들다고 판단한 상부는 즉각적으로 도심에 남아 있는 시민들의 안전을 포기.
곧바로 공군을 호출한 폭격으로 도시를 통째 날려 버리려 했으나, 그것 역시 만만치 않았다.
그린스킨들은 상당한 제공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와이번이라 불리는 생명체를 타고 날아다녔으며, 주술의 힘이 깃든 그들의 투창술은 초음속으로 날아다니는 전투기마저 격추시킬 정도의 위력을 보였다.
몇몇 특수한 개체는, 공기가 희박한 초고도 위에까지 날아올라 폭격기를 공격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놈들이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으니, 초고도에서 투하된 폭탄도 모조리 격추되어 별 효용을 보이지 못했다.
지상에서 격추가 어려운 포격 따위로 섬멸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생각 외로 강력한 제공권 및 대공 방어 능력에 의해 미사일도 막힌다.
핵무기를 통한 섬멸을 노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남은 것은, 총력전뿐이었다.
가지고 있는 모든 병력을 쏟아부어, 물량으로 밀어 버리는 것이다.
용왕이 참전, 그리고 하나하나가 엡실론급 몬스터인 용기사 열 명, 비공정 열 대, 그 외 각종 마공학 전차 백여 대를 포함해 3만 명의 군인이 런던을 향해 밀고 들어갔다.
3만 명 모두가 일반 병사가 아니라 오랫동안 헌터 및 영웅 생활을 해 온 마력 사용자들이었다.
그리고 런던을 점거하고 있는 약 2만의 그린스킨들과 충돌했다.
그렇게 전투가 벌어지고 2시간 후.
그린스킨은 전멸했다.
인류 측의 손실은 약 20퍼센트. 엄폐물 대신 쓰인 전차들은 절반 이상이 파괴되었으며, 용기사 중 셋이 중상, 비공정 두 대가 완파, 세 대가 중파의 피해를 입었다.
경미한 피해라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심대한 피해를 입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와 맞서 싸운 그린스킨은 심문을 위해 잡은 포로 몇을 제외하고 모두 죽었다.
“끝났다!”
연이어 올라간 승전보에 모두가 환호했다.
전투를 마친 후에도 바로 대응본부 기지로 돌아와 상황을 체크하던 용왕마저 이번에는 한숨을 쉬며 지친 몸을 의자에 묻었다.
그렇게 인류와 용족은 다시 한번 스스로의 힘을 증명한 것처럼 보였다.
그때까지는 말이다.
와르르릉!
대응본부 청사가 갑자기 무너질 듯이 뒤흔들렸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뭐야! 지진?”
“지진이라 해도 너무 큰데?”
와르릉! 와르릉!
조명이 껌뻑인다. 유리창에 쩍쩍 금이 가고, 선반이 무너지며 와르르 짐이 쓰러졌다.
청사 건물은 지질이 안정된 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지진과는 거리가 먼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다.
대체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그때였다.
지진이 계속되는 와중에도 정보를 확인한 모니터링실의 누군가가 외쳤다.
“히말라야 산맥에서 막대한 지진파가 발생했습니다!! 지, 진도…… 시, 십이 이상!!”
“12이상!?”
진도 12이상.
사실상 계측 불능.
표기 가능한 진도의 수치를 넘어섰다는 말이다.
“사, 산맥이 통째로 무너지고 있다는 보고가 올라오고 있습니다!”
“이쪽도 마찬가지입니다! 에, 에베레스트 산이 가라앉으며 어마어마한 산사태가……!”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위험 신호, 그리고 실시간으로 연결된 위성의 영상으로 해당 지진의 근원지를 파악한 사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이걸 보세요! 산맥을 중심으로 마법진이……!”
“잘 안 보여! 제일 큰 모니터에 띄워 봐!”
그렇게 떠오른 위성 영상의 모습을 본 모두는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런던의 상공에서 본 것과 똑같은 모양의 것이, 히말라야 산맥 전체를 중심으로 하여 행성 자체에 새겨져 있었다.
동시에 영상 속의 마법진이 빛을 뿌려 내자 다른 관측기가 울부짖기 시작했다.
“막대한 마력 폭풍이 발생했습니다! 차원 균열이 발생! 3년 전에 티아마트가 나타났던 것과 동일한 규모지만 바로 틈이 벌어지고 있어요! 계측 수치를 초과합니다! 균열이 너무 많은…… 세상에, 여섯 개! 차원 균열 여섯 개가 동시 발생!!”
“여섯 개라고? 거짓말이지?”
“거짓말이 아니에요! 이걸 보세요!”
아수라장이 되어 가는 대응본부의 내부.
그 안에서, 용왕, 한서리는 멍하니 사방의 모니터 위로 날뛰고 있는 계측기의 표기 그래프와, 위성 영상을 통해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여섯 개의 검은 구멍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애초에, 이건 막을 수 있는 규모의 공격이 아니었구나.
얼기설기 지어진 토성을 상대로 하늘에서 폭격을 가하고, 파 내린 땅굴로 성벽을 허물어 대는 놈들이 있구나.
“……!”
기린의 화신이 가진 특유의 마력 감지 능력으로, 한서리는 지금 이곳에 여섯 개의 신격이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섯 세계의 합공.
이제 막 벨제불과 티아마트의 방해를 벗어던지고, 성장을 시작해 보려 하는 이 세계가 상대하기에는 너무나도 버거운 숫자였다.
세상 모든 것에는 한계가 있다.
그중에서도 인간은 그 한계치가 작은 동물이다.
아무리 지혜를 짜내도, 아무리 최선의 수를 끊임없이 선택해도, 실패할 수밖에 없을 때가 있다.
그리고 지금,
한서리는 자신이 실패했음을 깨달았다.
살아온 인생을 전부 부정당한 느낌이었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순간적으로 남편의 얼굴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대체, 뭘 어떻게 해야 옳았던 건가.
대체, 뭘 어떻게 하라는 건가.
누구라도 좋아. 대답해 봐.
내가 뭘 잘못한 건데?
마음속 깊이 부르짖어 답을 갈구해 본다.
하지만 평범하게 길을 가던 사람이 갑자기 벼락에 맞아 죽더라도 이유 따윈 없듯, 그 질문에 주어진 해답은 없었다.
한서리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신을 저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