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114화 (114/200)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114화

“다 끝났어!”

“이건 못 막아. 못 막는다고!”

“부모님한테 전화해야겠어.”

여섯 세계의 침공이라는 상상을 초월한 전력의 차이는 순식간에 대응본부의 사기를 꺾어 버렸다.

순식간에 지휘 체계가 무너지며 모두가 선불 맞은 짐승마냥 날뛰었다.

그 혼란 속에서 한서리는 무너져 내리는 몸을 붙잡았다. 자기도 모르게 배에 손을 가져갔다.

정신 차려.

그 아래로 느껴지는 온기에, 화악 하고 정신이 돌아왔다.

그녀는 훅훅 심호흡을 한 뒤, 커다란 목소리로 외쳤다.

“모두 주목-!!”

터져 나온 용왕의 신격이 혼란을 잠재웠다.

모두의 말이 멈췄다. 모두의 눈이 용왕을 향했다.

용왕이 말했다.

“지구방위군 전 병력을 호출해 히말라야 산맥을 중심으로 방어선을 펼칩니다. 나머지 인원들은 병력의 호송을 돕거나, 최대한 정보를 수집해 적의 전력을 파악하세요.”

그 말을 들은 모두가 깨달았다.

아직, 포기하기에는 이르다고.

이성이 돌아왔다. 그들은 가까스로 무너지려 하는 체계를 회복했다.

대응본부의 기능이 다시 가동했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자, 얼추 상황이 정리되었다.

히말라야 산맥에 펼쳐진 거대 마법진.

그곳으로부터 총 여섯 개의 초거대 게이트가 발현했으며, 그곳을 통해 다른 선계의 종족들이 대군을 이끌고 출현했다.

지금까지 발견되었던 수인, 크투그아, 악마, 그린스킨을 제외한 두 종족이 상당히 특이했다.

한쪽은 전신이 금속으로 이루어진 거인들이었다.

짧은 분석 결과, 그 정체는 초고온, 초고압의 환경에서 살아가는 규소 생명체로 판명.

갑작스러운 히말라야 산맥의 붕괴와 거대마 법진의 출현은 맨틀 아래에 생성된 게이트로 넘어온 그들이 지각을 건드려 일으킨 것으로 추측되었다.

용족의 기록에도 존재하지 않는 그 금속 거인들에게는 ‘기가스’라는 명칭이 붙었다.

그리고 또 하나.

그쪽에게는 종족이라는 단어를 붙이기에도 애매했다. 오로지 하나, 단일 개체만이 게이트를 통해 넘어왔기 때문이다.

그것은 ‘불’이었다.

활활 타오르는 화염이, 보석으로 만들어진 갑옷과 대검을 걸치고 있었다.

기존의 물리 법칙을 완전히 무시하는 듯한 생명체.

그것을 인간들은 정령이라 부르기로 했다.

수인.

크투그아.

악마.

그린스킨.

기가스.

정령.

기가스와 정령은 그 숫자가 극도로 적었지만 나머지는 달랐다. 어마어마한 숫자의 괴물들이 게이트를 통해 쏟아져 나왔다.

각양각색의 종족으로 이루어진 대군이 산맥을 가득 채웠다. 위성을 통해 보이는 산맥의 풍경은 마치 지옥을 방불케 했다.

하지만 그것을 지켜보는 것도 잠깐이었다.

지상으로부터 쏘아진 무언가의 투사체가 궤도를 떠돌던 주변 위성들을 모조리 격추시켰기 때문이다.

동시에 펼쳐진 대규모의 중력장과 자기장까지 더해지니, 그곳은 곧 아무것도 파악할 수 없는 마경이 되었다.

때문에 현재는 정보를 산맥을 기준으로 방어선을 전개하고 있는 군인들의 눈에만 의지하고 있었다.

선계침략 대응본부 회의실.

그곳에서는 현재 사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회의가 한창이었다.

누군가가 말했다.

“게이트가 발생한 지 이제 여섯 시간이나 지났는데 저쪽에서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무슨 생각일까요?”

“글쎄…… 우리 방어선을 단번에 뚫기 위해 병력을 모으고 있는 거 아닐까요?”

“마력 따위 사용하지 않아도 하나하나가 평범한 인간은 얼마든지 도륙할 수 있는 괴물들이 저렇게 떼로 있는데도요?”

“인간이 아니라 용족을 경계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 용족의 힘은 그들도 잘 알 테니까.”

서로 이런저런 의견이 오가고 있을 때였다.

문득, 뭔가를 고민하고 있던 용왕이 입을 열었다.

“그럼…… 대화를 시도해 보는 게 좋겠군요.”

“……대화요?”

용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악마종의 첩보 활동이 있었으니 우리 전력은 이미 파악하고 있을 겁니다. 자기들이 압도적 우위에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을 거예요. 만약, 이곳을 칠 생각이 있었다면 이미 대군을 전개해 밀고 들어왔겠죠.”

모두들 그 의견에 동의했다.

용왕은 계속해서 말했다.

“저들은 이미 승세를 잡았어요. 그런데도 계속 가만히 있다는 건, 뭔가 다른 것을 꾸미고 있거나, 아니면 군대로 이곳을 정복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는 거죠.”

“…….”

“뭔가 원하는 게 있을지도 모릅니다. 잘하면 그들의 의도나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 일단 접촉을 시도해 보는 게 좋겠습니다.”

의견이 개진되었다.

반론은 없었고, 별다른 대안도 없었다.

전투를 제외하고, 이곳을 침공한 여섯 세계를 상대로 한 첫 번째 접촉이 결정되었다.

* * *

아크룩스는 히말라야 산맥에 도착해 전선을 갖추는 일을 하고 있었다.

“…….”

이것저것 준비는 하고 있지만 큰 의미가 있어 보이진 않는다.

전력의 차이가 너무 컸다. 병사의 질도, 양도, 사기도 이쪽이 절대적 열세를 가지고 있었다.

결국은 용왕이 내린 지시처럼 저쪽과 대화를 시도해 보는 것. 그것하나만이 유일하게 무의미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는 용족의 학자 몇 명을 불러다 여러 방법을 통해 상대 측과 교신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도록 지시했다.

학자들은 자신만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에게 바깥세계는 별다른 의미가 없었으며, 중요한 것은 오로지 스스로 품고 있는 진리에 대한 탐구심뿐이었다.

부름을 받은 그들은 이 와중에도 신이 나서 처음으로 보는 선계의 생물체들을 향해 온갖 방식으로 교신을 시도했다.

주변의 분위기 때문에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행동 하나하나에서 즐거움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이 아크룩스에게 불쾌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확실히 나도 늙었군.’

그에게는 오히려 그 철없음이 도리어 귀엽게 느껴졌다.

어차피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인생사,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살다가 가는 것이 좋은 것이다.

‘걱정인 건 오히려 그 아이지.’

홀몸으로 두 세계를 잇고, 두 세계를 지탱하고 있는 아이.

책임감이 강한 그 아이가 지금쯤 겪고 있을 고뇌에, 아크룩스는 문득 가슴이 시큰거렸다.

그 아이보다 수백 배를 더 살아온 주제에,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었다는 것에 울화통이 터졌다.

하지만 그는 금세 마음을 다스렸다.

그는 아직 살아 있었다. 아직 썩어 문드러지지 않았다. 그러니 그때까지 뭐라도 도움이 되고야 말겠다.

그렇게 결의를 다지는 아크룩스의 귓가를 울리는 목소리가 있었다.

“반응이 있습니다!”

히말라야 산맥 방어선 상공.

비공정의 선두로 나가 온갖 방법으로 교신을 시도하던 한 학자의 말소리였다.

아크룩스가 바라보자 학자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이야기했다.

“텔레파시가 성공했어요. 이곳으로 오겠다는 답변이 왔습니다!”

“이곳으로 오겠다고?”

아크룩스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그렇게 돌린 시선 끝에, 산맥 위를 비행해 이쪽으로 날아오는 물체가 있었다.

갑작스럽게 발견된 그것의 존재에 비공정의 모든 센서가 반응해 포구를 돌렸다.

아크룩스는 깜짝 놀라 대공 방어 기능을 제어하며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그들을 부른 젊은 학자를 한 대 쥐어박았다.

아직 교신조차 불가해 제대로 장소도 정해 두지 않았다.

혹시나 필요할 통역을 위해 그는 투덜거리는 학자 놈의 목덜미를 붙들고 아무것도 없는 선미로 걸어 나갔다.

아크룩스와 같은 곳에 있던 지구방위군의 사령관이 뒤에 따라붙으며 말했다.

“그래도 이야기를 해 볼 생각은 있나 보군요.”

“이야기야 누구라도 해 볼 수 있지. 문제는 놈들이 뭘 원하는가요.”

이런저런 의견을 몇 마디 주고받고 나니 이쪽으로 날아오던 존재가 비공정의 코앞에 도달해 있었다.

놈은 혼자였다.

정령.

보고에 있었던, 홀로 차원문을 통과했다하는 단일 개체였다.

온몸이 화염으로 이루어진 생명체가 검은 보석을 깎아 만든 갑주를 걸치고 있었다.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인상적인 외견.

등에 걸치고 있는 대검도 신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온갖 종류의 보석을 거인의 손으로 압착시켜 검의 형태로 빚어 낸 것 같은 보석검.

그것이 빛을 받아 오만 가지 색으로 반짝였다.

거기에 그 정체는 불명이지만, 진주 같은 빛깔을 뿜어내는 커다란 구슬 네 개가 놈의 등 뒤에서 그를 보호하듯 떠돌고 있었다.

“흡…….”

놈이 가까이 오자 무시무시한 신격이 두 용족과 인간을 압박해 왔다.

신격에 익숙지 않은 사령관과 학자가 호흡을 삼켰다.

그리고 마침내, 중력을 무시하는 것처럼 날아오던 정령이 비공정의 위에 내려앉았다.

그렇게 놈을 눈앞에서 마주하는 순간, 아크룩스는 경악했다.

그가 놀란 것은 그의 앞에 선 불덩어리가 화신이어서도, 처음으로 마주한 새로운 생명체여서도 아니었다.

수천 년을 전사이자 무인으로서 쌓아 온 감각이 미친 듯이 경종을 울렸다.

본능적인 공포가 고개를 쳐들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물러나려 하지 않았던 다리가 저도 모르게 뒤로 움직였다.

마치 무(武) 그 자체를 형상화해 놓은 것만 같은 자였다.

신격 자체는 그저 평범한 화신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것보다 그가 가진 무인으로서의 위압감이 더 대단했다.

놈의 몸이 움직일 때마다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용암이 신경을 지지는 것 같았다.

행동 하나하나에서 흘러나오는 살기에 오금이 저리고, 토할 것만 같은 구역질이 올라왔다.

얼마나 많은 생명을 삼킨 건지, 놈의 등에 매달린 칼날에서는 검은 원령마저 느껴졌다.

뒤에 떠도는 구슬에게서 느껴지는 업(業)의 무게도 어마어마했다.

수천수만의 생명을 삼키고 성장한 패왕으로서의 기세.

그야말로 전신.

기린이 아니라 차라리 티아마트의 화신, 아니, 티아마트 그 자신이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난다면 이렇지 않을까 싶어지는 남자였다.

말이 안 나온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 압도당했다.

아크룩스는 신음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입을 틀어막았다.

비공정 위에 올라앉은 화염의 정령은 무심히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전력의 차이를 깨닫자마자 대화를 시도하나. 여기까지 선발대를 막아 낸 것도 그렇고, 이곳의 화신은 유능하군.”

그것은 단순한 언어의 조합이 아니었다.

텔레파시와 말소리가 조합되어 머릿속에 직접 의사를 때려 박는, 다른 형태의 의사소통 방식이었다.

“하지만 필요한 건 그게 아니지.”

알지 못할 소리를 하며 고개를 젓는 정령.

그리고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내가 원하는 건, 용족을 권속으로 삼은 기린의 화신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