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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115화 (115/200)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115화

그게 무슨 소리인가.

중의적인 의미를 포함한 말에 지구방위군의 사령관이 침을 삼키고 물었다.

“……원한다는 건 기린의 화신과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건가?”

타오르는 투구가 사령관을 향했다. 틈새 사이로 보석처럼 빛나는 눈이 보였다.

다시 보니, 놈의 몸을 이루고 있는 것은 불뿐만이 아니었다.

활활 타오르는 화염의 안쪽으로, 보석으로 이루어진 신체가 뼈대처럼 그것을 지탱하고 있었다.

살기가 사령관의 가슴을 관통했다.

“헉!”

순간적으로 심장이 정말로 꿰뚫린 줄 알았다. 사령관은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가, 아크룩스가 거세게 등을 쳐 주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순식간에 돌아온 호흡이 괴로웠다. 눈물이 나왔다. 그는 컥컥 숨을 고르면서 정령을 올려다보았다.

정령은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멍청한 소리를 하는군. 그딴 걸 원해서 이런 수고를 들였겠나? 내가 말하는 기린의 화신은 물건으로서의 의미다. 그것이 가진 힘, 신력, 그리고 계약까지 전부. 바로 이것처럼 말이다.”

그러면서 그는 등 뒤에 떠돌던 구슬 하나를 앞으로 내밀어 보았다.

그것이 가지고 있는 괴이한 분위기와 독특한 빛깔로 대단한 물건이라는 건 알겠지만, 그게 다였다.

그것과 기린의 화신이 무슨 연관이 있나 싶어 쳐다보자 정령이 말했다.

“직접 만져 봐라. 그럼 이게 뭔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바로 이해할 수 있을 거다.”

그저 불길한 느낌밖에 들지 않는다.

사령관은 물론이요, 옆에 있던 학자마저도 호기심보다 생존 본능이 앞섰다.

눈앞에 들이밀어진 구슬에서는 매우 위험한 기운이 풍겼다.

아무 생각 없이 만졌다가는 절대로 몸이 성하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내가 하지.”

아크룩스가 앞으로 나섰다. 형형한 눈으로 정령을 쏘아보던 그는, 이내 입술을 꽉 깨물면서 구슬 위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동시에.

“컥!”

벼락이라도 얻어맞은 것처럼 몸을 떨며 손을 떼어 내고 말았다.

* * *

식은땀이 흐른다. 지독한 두통이 뇌리를 달렸다.

아크룩스는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정령이 내민 구슬을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그저 물건으로만 보였던 그것이, 이제는 전혀 다르게 보였다.

욕지기가 치솟았다.

이것을 만들어 낸 발상과, 실제로 눈앞에 있는 그것의 존재에 소름이 다 끼쳤다.

“미친…….”

아크룩스는 수천 년을 살았다. 차갑게 얼어붙어 가는 세계의 끝과 함께 하며 온갖 꼴을 다 보고 지내 왔다.

하지만 그런 그도, 이 정도로 끔찍한 괴이를 본 적은 없었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그는 경악한 얼굴로 정령을 돌아보았다.

“네놈, 설마 우리 용왕님을……!”

정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렇게 만들 거다. 그 힘을 더욱 유용하게 사용하기 위해서.”

“……!!”

정체불명의 구슬.

그것은 기린의 화신이었다.

화신이라는 존재가 갖고 있는 인격을 부수고 짓이겨 흔적도 남지 않게 날려 버린 뒤, 남아 있는 힘과 육체만을 압축하며 물건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런 것이 무려 네 개나 정령의 등 뒤에 떠돌고 있었다.

기린의 화신은 선계에서 그리 쉽게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하지만 있다고 하면, 대부분은 그 선계의 지배자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도 저렇게나 많다.

대체, 저것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세계를 부수고 다닌 건가.

아크룩스는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그는 자신의 주인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한서리.

나약한 인간.

하지만 어쩌다 화신이 되어 용족을 권속으로 삼는 기린의 계약을 물려받았고, 용족들의 힘을 이용해 자신의 세상을 위협하던 티아마트를 물리쳤다.

하지만 그 후에도 그녀는 그들을 버리지 않았다.

한서리에게는 신의가 있었다.

도움을 받았으니 당연하다는 듯이 손을 내민다.

한 번 맺은 약속은 결코 어기지 않고 행한다.

아크룩스는 알았다. 그것은 단순히 계약 따위를 지키기 위해 한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그렇지 않았다면 자신이, 제자인 알리시아가, 그리고 다른 수많은 용족들이 진심으로 그녀를 따르지 않았을 테니까.

갸륵한 아이라고 생각했다.

용족으로 치면 갓난아기나 마찬가지인 나이인데도, 용족을, 인간을, 자신이 사는 세상을 지키기 위해 열심인 아이였다.

눈앞의 괴물은 그런 아이의 희망과 영혼을 산산조각 내 없애 버리고, 오로지 그 힘만을 취해 도구로 삼겠다 말하고 있었다.

노호성이 터져 나왔다.

“웃기지 마라!!”

아크룩스의 몸이 증폭했다. 본체를 꺼낸 골드 드래곤이 모습을 드러낸다.

폭발하듯 터져 나오는 질량에 거대한 항모의 형태를 한 비공정이 순식간에 기울었다.

인간들이 비명을 지르고, 근처에 있던 비행선이 그저 본체 등장의 충격으로 두 조각 나 허공에 흩어졌다.

카아아아앗───!!

폭풍과도 같은 포효와 함께 드래곤의 전력을 담은 손톱이 불타는 정령을 짓이기기 위해 날아갔다.

그것을 바라보며, 검은 갑주를 걸친 불꽃의 화신은 짧게 내뱉었다.

“충직하군. 마음에 들어.”

진각이 터져 나왔다.

발끝으로부터 허리, 어깨, 그리고 팔이 회전.

더 이상 깔끔할 수 없는 스트레이트가 드래곤의 일격과 충돌했다.

꽈아아아앙!

터져 나온 충격파가 비공정을 쪼개 버릴 듯이 흔들었다.

정령이 내디딘 발밑의 아래로 퍼져 나온 마법진이 반발력을 흡수하며 바깥쪽의 공기가 폭음의 형태로 바스라졌다.

산산조각 난 발톱이 사방으로 날아갔다.

앞다리가 어깨까지 종잇장처럼 구겨진 드래곤이 하늘로 튕겨져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곧이어 추락, 수백 톤에 달하는 거체가 아래에 있던 호수에 떨어지자 어마어마한 물보라가 비공정이 떠올라 있는 상공까지 퍼졌다.

순간적으로 기울었던 비공정이 평행을 회복했다.

비처럼 쏟아지는 물방울을 맞으며, 아크룩스의 옆에 있던 지구방위군 사령관은 넋을 잃었다.

주먹질 한 번으로 엡실론급에 해당하는 몬스터를 쓰러트렸다.

그건 진심을 다한 일격도 아니었다. 반동으로 비공정을 부수지 않도록, 그리고 옆에 있는 그와 용족의 학자가 휩쓸리지 않도록 충격파의 각도까지 신경 써서 날린 주먹이었다.

상상을 초월한 괴물.

떠올릴 수 있는 건 오로지 그 말뿐이었다.

정령은 폭발의 잔향으로 김이 피어오르는 주먹을 거두며 말했다.

“죽이지는 않았다. 곧 내 심복이 될 자니까.”

돌아간 고개가 다시금 사령관을 향한다.

“하지만 인간들은 다르지. 너희들은 내게 전혀 쓸모가 없어. 하지만 나는 자비를 아니, 너희들에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주마.”

“…….”

“일주일 주지. 그 안에 너희들이 용왕이라 부르는 자, 기린의 화신을 잡아 와 내게 바쳐라. 만약 그렇지 못할 경우, 너희들은 다 죽는다.”

문답무용으로 전해진 조건에 당황한 사령관이 입을 열었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입니까?”

혀를 차는 소리가 났다.

정령의 목소리에 짜증이 섞였다.

“똑같은 말을 여러 번 하게 하지 마라. 난 시간 낭비를 싫어해. 잘 생각하고 이야기하도록.”

그러면서 정령은 어디 다시 한번 말해 보라는 듯 팔짱을 꼈다.

사령관은 가슴을 움켜쥐었다. 지구방위군의 사령관까지 올라간 것은 결코 폼이 아니다.

갑작스러운 충격에 놀라 기절한 용족의 학자처럼 심약하지 않다. 그는 심호흡을 했다.

훅, 훅, 호흡을 내뱉을 때마다 빠르게 냉정을 되찾아간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 사령관이 말문을 텄다.

“……그쪽은 이미 얼마든지 용왕을 강제적으로 데려갈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저희의 손을 빌린다는 건…… 무슨 이유입니까?”

“아무리 강대한 힘을 가지고 있어도 유한한 존재인 이상, 자원은 언제나 소중한 법이지. 용왕이 내 것이 되면, 남은 용족들은 자연스레 나를 따르게 될 거다. 용족은 개체 수가 적고 성장에 긴 시간이 필요해. 굳이 싸움을 벌여서 귀중한 전력을 깎고 싶지 않아.”

“…….”

그 대답에, 사령관은 정령이 한 말에 무언가 중요한 사실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용족과 싸우기는 싫다.

하지만 그가 용왕의 확보를 명령한 인간 측 역시,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용족과 싸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 것을 충분히 알 텐데도 인간에게 용왕을 데려오라고 한다?

현재, 용왕의 정체는 불명인 상태다.

“윽!?”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무시무시한 가정이 떠올랐다.

사령관은 자기도 모르게 머리털을 쥐어뜯었다. 방금 자신이 떠올린 생각이 진짜라고 믿고 싶지 않았다.

정말 그게 제대로 된 추론이 맞나 싶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정령의 요구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그 가정이 사실이어야만 했다.

사령관은 슬쩍 눈을 돌려 정령을 바라보았다.

정령은 그저 무심히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정령의 모습은 그가 고민하는 모습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사령관은 한참 동안이나 심사숙고를 거듭한 뒤, 침을 삼키며 아주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혹시…… 용왕은, 인간입니까?”

정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생각은 할 줄 아는군. 쓸모가 없진 않겠어.”

그러면서 곧 떠날 것처럼 뒤로 돌았다.

그 행동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지만, 그 순간 사령관은 깨달았다.

만약, 답을 내놓지 못했다면 그는 이 자리에서 죽었다.

눈앞의 괴물은, 자신이 지시한 명령을 사령관이 제대로 이해하고 수행할 능력이 있는지 테스트하고 있었던 것이다.

“……!”

오금이 저려 왔다.

단지 죽는 게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는 전율했다.

화염으로 이루어진 보석의 기사가 가진 강함과 냉철함.

그리고 오만함에.

등을 보인 정령이 슬쩍 고개를 돌려 사령관을 쳐다보았다.

“원하는 답을 했으니 상을 내리도록 하지. 기린의 화신은 이 인간이다.”

그러면서 엄청난 텔레파시가 사령관의 머리를 때렸다.

감전된 것처럼 등골이 일어섰다. 사령관은 신음 소리를 내며 무릎을 꿇었다.

텔레파시를 이용해 강제적으로 머릿속에 정보를 주입당한 것이다. 지독한 두통이 사령관의 뇌를 흔들었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아픔에 신경 쓰고 있지 않았다.

왜냐하면, 정령이 뇌리에 새긴 한 사람의 모습에 머릿속이 하얗게 탈색되었기 때문이다.

할 일을 마친 정령이 그대로 날아올라 먼 곳으로 사라져 갔지만, 그것에는 신경조차 쓸 수 없을 정도로 그는 충격에 젖어 있었다.

대담 중에 끼어들지 말라는 지시 때문에 계속해서 후방에서 대기 중이던 부하 몇몇이 그제야 달려와 그를 부축했다.

“사령관님! 괜찮으십니까?”

“…….”

“사령관님!”

그 외침에, 사령관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의 손과 입은 더 이상 뭐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그는 거세게 스스로의 뺨을 때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억지로 말을 자아냈다.

“총장님! 총장님에게 연락해! 지금 당장! 이럴 수가…… 미친…… 지독한 것, 이때까지 그걸 숨기고 있었다니!”

“사령관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착란을 일으키는 것 같이 말하는 사령관의 말에 부하들이 당황했다. 사령관은 그것을 답답해 미치겠다는 듯이 쳐다보고는, 비명처럼 소리쳤다.

“한서리, 한서리가 기린의 화신이다! 그 여자가 우리 모두를 속이고 있었던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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