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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116화 (116/200)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116화

설령 승산이 없더라도, 그저 엎드려서 죽여 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구방위군은 곤륜산 일대에 계속해서 수를 늘리는 다양각색의 적을 막아 내기 위해 방어선을 구축하는 중이었다.

필요하다면 특공이라도 할 예정으로 핵탄두를 수급하고, 수르트급의 화력을 가진 함포를 준비한다.

그러다 보니 엄청난 물자의 이동이 이루어졌는데, 이를 위해 지구방위군은 각 유통망을 손에 쥐고 있는 국가 및 기업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그 협력 기업에는 한서리가 이끄는 스노우플레이크도 끼어 있었다.

그녀는 과거 영웅으로서 일했던 경력으로 임시로 지구방위군의 직함까지 받아 그들을 지원했다.

잠시 용왕의 업무를 알리시아에게 맡겨 둔 그녀는 지금은 한서리의 신분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선계침략 대응본부의 회의실에서 노제를 포함한 행정관들과 물류이동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 중이던 그때, 문득 회의실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뭐야?”

“무슨 일 있나?”

몇몇 사람들이 회의실 바깥의 창으로 무슨 일이 있나 고개를 내민다.

그 순간, 갑자기 몸이 부웅 떠오르며 중력이 가라앉았다.

“중력 방벽……!?”

전투 경험이 있는 몇몇은 그 감각이 일대의 공간 이동을 차단하려 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걸 단박에 깨달았다.

순식간에 회의실 내부가 긴장에 휩싸였다.

“습격인가?”

노제가 인상을 찌푸리며 몸을 일으켰다. 뭔가를 감지했는지, 한서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시끄러운 군홧발 소리가 울리더니, 쾅하고 회의실 문이 열렸다. 그 선두에 선 군인의 얼굴을 본 노제가 말했다.

“알렉스 대령, 이게 무슨…… “

“죄송합니다. 총장님, 워낙 급박한 사안인지라,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알렉스는 노제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포위해. 절대 놓쳐선 안 된다.”

그러자 군인들이 우르르 뒤따라 들어왔다.

하나하나가 S급 상위에 속하는 전위. 티아마트와의 반신과 싸워 살아남은 역전의 전사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포위한 것은, 조용히 앉아 있던 한서리였다.

모두들 아는 얼굴이다.

과거, 발할라의 선배였던 그 얼굴들은 모두 차갑게 굳어 있었다.

한서리는 그들을 바라보며 인상을 썼다. 그리고 알렉스를 바라보았다.

“이게 대체 무슨 짓이죠?”

알렉스는 코웃음을 쳤다.

“이제 와서 시치미 떼 봐야 소용없다. 한서리, 이미 네 정체는 다 까발려졌으니까.”

“정체?”

“그래, 기린의 화신. 아니, 용왕이라고 말하는 게 더 나으려나?”

용왕.

알렉스의 말에 장내가 충격에 휩싸였다. 그 노제마저도 당황스러운 목소리를 쏟아 냈다.

“갑자기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건가?”

그런 그녀에게 누군가가 재빠르게 다가갔다.

항상 옆에서 노제를 보좌하는 비서이자 심복이었다. 그가 조용히 노제의 귀에 무슨 말을 속삭였다.

그것을 들은 노제의 얼굴이 파랗게 물들었다.#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시선으로 한서리를 돌아보았다.

알렉스가 말했다.

“선계의 침략자들이 네 신병을 요구하고 있다. 너를 내놓지 않는다면 인간들을 다 죽이겠다 하더군.”

그 순간, 한서리는 무서운 속도로 사고를 거듭했다.

대체 어디서 얻은 정보인 건가.

악마종들이 잠입해 있었다고는 하나, 그들의 행동 범위는 인간 세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인간들이 모르는 걸 그들이 알 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녀의 정체를 아는 용족들은 모두 계약을 통해 확실하게 단속이 되어 있다.

확실하다. 정보의 유출은 없었다.

‘아니면, 기린의 화신은 서로를 알아볼 수 있기라도 한 건가?’

그것이 궁금했지만 그녀는 지금까지 다른 기린의 화신을 접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다.

협상 조건으로 내걸린 것이 기린의 화신이라는 것이다.

놈들의 목적이 자기 자신이라면, 여기서 시치미를 떼 봐야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판단했기에, 한서리는 굳이 아무것도 모르는 척 연기를 하지 않았다.

차가운 얼굴의 그녀를, 알렉스는 경멸이 담긴 눈으로 쳐다보았다.

“솔직히 말해 소름이 끼쳐. 발할라의 영웅으로서, 뛰어난 기업가로서 존경받던 인물이 사실은 몬스터였다니. 이 세계에 용족이라는 괴물들을 끼워 넣고, 지금까지 양쪽을 조율하며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커다란 이득을 챙겨 왔지. 그걸로 대체 뭘 하려고 했던 거지? 용족의 힘으로 이 세계를 지배하기라도 할 셈이었나?”

얼음장 같은 눈동자가 알렉스를 노려보았다.

“그 입 조심해. 지금까지 내 사리사욕을 채우려고 움직였던 적은 한 번도 없으니까. 티아마트와 벨제불이 날뛸 때 별 도움도 되지 못했던 찌꺼기한테 그런 말 듣고 싶지 않아.”

신격이 모습을 드러냈다.

파란 머리가 은색으로 물들고 금빛 비늘이 한서리의 몸을 휘감았다.

“……!!”

위험을 감지한 주변 군인들이 바로 오라를 뿜어냈다. 반사적으로 날아온 공격이 그 끝을 한서리에게로 향했다.

한서리를 중심으로, 공간이 기괴하게 비틀렸다. 아무렇지도 않게 빠져나가는 칼날, 그리고 뒤틀린 공간이 회복되며 폭발이 터졌다.

콰앙!!

퍼져 나간 충격파가 전위들을 휩쓸었다. 총알처럼 쏘아져나간 몸이 벽과 창틀을 부수고 바깥으로 튀어 나갔다.

한순간에 군인들을 제압한 한서리의 앞에는 여전히 알렉스가 있었다.

한서리는 신격의 위압감에 짓눌리면서도 허리를 세우는 그에게 말했다.

“날 적대하는 건 용족 전체를 적대하는 것과 마찬가지야. 그걸 고려해서 행동하고 있는 건가?”

“……고려고 뭐고,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 따윈 없다. 무려 여섯 개나 되는 세계의 침략이야. 그걸 막아 낼 힘이 없는 이상,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어.”

‘완전히 저항을 포기했군.’

한서리는 한숨을 쉬었다. 그런 그녀의 옆에는 지금의 상황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의 노제 프레데리카가 있었다.

“서리야, 이게 대체 무슨…… “

티아마트 공략전 이후로도, 한서리와 노제는 계속해서 친분을 쌓아 왔다.

노제는 지금 이곳이 공석이라는 것도 잊을 정도로 충격에 휩싸여 있었다.

노제에게는 그저 미안한 마음뿐이다. 오랫동안 그녀를 속여 왔으니까.

하지만 여기서 약한 모습을 보이면 모든 것을 그르친다.

한서리는 신경질적인 어조로 알렉스에게 말했다.

“확실히 말하는데, 이건 놈들의 교란책이야. 날 데려오라고 했다고? 내 정체를 밝혀 낸 것도 그쪽이겠지. 만약 너희들이 날 놈들에게 데려갔다고 치자. 그러면 놈들이 인간들을 가만히 내버려 둔다는 보장이 있나?”

알렉스는 이를 악물었다.

“……그럼 그들을 믿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뭐가 바뀌나?”

“뒷일은 나도 모른다? 대책이 없군. 그런 식으로 행동할 거면 입 닥치고 가만히 있어.”

쓸데없이 자존심만 센 놈이다. 말이 안 통하는 상대.

한서리는 노제를 돌아보았다.

“혼란한 것 같으니 잠시 상황을 정리하고 대담을 갖죠. 저도 적의 저의를 파악할 시간이 필요해요.”

노제는 대답이 없었다. 그토록 강인하고 무너질 일 없을 것 같던 여자의 얼굴이 질려 있었다.

“…….”

생각 같아서는 미안하다고 한마디라도 해 주고 싶다.

하지만 그 말은 곧 족쇄가 되어 한서리에게 돌아올 것이다. 여기서 그 말을 꺼내면, 지금까지 그녀가 잘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해 버리게 되니까.

“진정이 되면 연락 주세요. 한서리에게든, 용왕에게든.”

그렇기에 한서리는 그렇게 냉정한 통보를 마친 뒤 회의실을 빠져나가려 했다.

그런 그녀를 다른 군인들이 막았지만 그뿐이었다.

한서리가 이죽거렸다.

“그 정도로 화신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중력 방벽을 깨는데 들어갈 힘이 아까워서 걸어 나가는 거니까, 비켜. 막지 않아도 도망 따위 치지 않아.”

“……웃기지 마라. 온 세상을 상대로 사기를 친 여자의 말 따위를 믿을 것 같나?”

맨앞에 선 군인이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한서리는 코웃음을 치며 다시금 화신의 힘을 사용해 방해꾼들을 날려 버렸다.

또다시 폭음이 울리고, 사람들이 나가떨어진다. 대응본부 내부는 난장판이 되었다.

한서리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차분한 걸음걸이로 정문을 향해 나아갔다.

그런 그녀를 따라 나온 알렉스 대령은 식은땀을 흘리며 그 등을 쳐다보았다.

주변을 둘러본다. 데려온 전력들이 모두 어딘가에 처박혀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곤, “쓸모없는 것들…….” 이라고 중얼거린 뒤, 자신이 갖고 있던 마지막 패를 꺼내 들었다.

“머, 멈춰! 이쪽에서는 이미 네 남편을 구속했다! 잠자코 우리 말을 듣는 게 좋을걸!”

그 순간.

시간이 멈췄다.

신격이 증대. 한순간에 건물 전체를 하얀 서리가 감싸며 갑자기 생겨난 온도와 기압 차로 폭발이 터졌다.

모든 창문이 과자 조각처럼 부서져 흩어지고, 주변에 있던 일반인들은 모두 신격의 존재감과 갑작스레 몰아친 냉기 때문에 쇼크를 받아 기절했다.

무시무시한 눈이 뒤를 돌아보았다.

“뭘…… 했다고?”

공간이 비틀리며 온몸으로 노기를 뿜어내는 화신이 알렉스의 앞에 나타났다.

무시무시한 신격의 압력에 알렉스의 얼굴에 공포가 떠올랐다.

덜덜 떨리는 턱이 윗니와 아랫니를 부딪혔다.

“그이에게 손끝 하나만 대 봐. 너희들은 그 새끼들이 아니라 내 손에 먼저 죽어.”

“……! ……!!”

알렉스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저 그의 숨통을 조여 오는 막강한 힘 앞에 무릎을 꿇었을 뿐이다.

그때였다.

침착한 목소리가 한서리의 귓가를 울렸다.

“건이는 우리가 데리고 있겠다.”

사무총장, 노제 프레데리카의 목소리였다.

잠깐 새에 침착함을 되찾은 모양이다. 고개를 돌리자 이미 사무적인 표정으로 돌아온 노제가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녀의 침착함이 달갑지 않았다.

한서리는 신경질적으로 되물었다.

“뭐라고요?”

노제는 차가운 눈으로 한서리를 마주 보았다. 그러고는 담담하게 말했다.

“만약 네가 우리와 이야기를 하는 걸 원한다면, 그렇게 하는 게 맞아. 건이까지 놓아주면 우리 측에서는 너를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 모든 선택권과 권리를 그쪽이 가져가 놓고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자는 거지? 그건 그냥 모든 걸 네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 밖에 안 돼. 그러면 남은 건? 전쟁뿐이지.”

“…….”

노제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과거, 각 나라의 외교 관계를 증명하기 위해 친인척을 볼모로 보냈듯, 그녀는 일종의 강제적인 신뢰 관계로서 김건을 인질로 잡겠다 하고 있었다.

노제가 말했다.

“마냥 억지라고 하지는 않겠지? 너도 지금까지 우리를 속여 왔으니까.”

합리성이 있는 의견을 말한 뒤에는 이쪽의 양심까지 건드려 온다.

한서리는 이를 악물었다.

겉으로 표현하지 않을 뿐이지, 그녀도 지금 이 상황이 힘들었다.

한서리는 저도 모르게 배를 쓰다듬으며 심호흡을 했다.

남편, 세라스, 알리시아, 메리안, 그녀를 따르는 용족들.

그리고, 내 아이.

참아.

감정을 죽여.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해.

그녀는 용암처럼 끓어오르는 분노를 씹어 삼키며 억눌린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요. 하지만 만약, 그이에게 뭔가 하나라도 문제가 생기면…… 그때는 제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라요. 그건 확실히 알고 있는 게 좋을 겁니다.”

“걱정하지 마. 이쪽에서 먼저 협상 카드를 찢어 버리는 짓 따윈 안 해.”

그 말이라면 믿을 수 있다. 한서리가 아는 노제는 결코 멍청한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그 사실이 조금이나마 마음을 가라앉혔다.

한서리와 노제, 두 사람은 지친 기색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럼 3시간 뒤에 이야기를 하죠.”

“6시간 뒤로 하지. 아무래도 다들 병원에 보내야 할 것 같아. 진정할 시간도 필요하고.”

“알겠습니다.”

회담 일정이 잡혔다.

서로 할 말은 많았지만, 그것을 나누기에 지금의 두 사람은 너무나 지쳐 있었다.

한서리가 대응본부 건물을 빠져나갔다. 그 등을 바라보며, 노제는 차마 서 있을 수가 없어서 옆에 있는 의자에 몸을 묻었다.

그리고 팔을 들어 두 눈을 가렸다.

“이러다 미치겠군. 아니, 그냥 미쳐 버리는 게 낫겠어.”

그냥 이대로 잠들어 버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그때만큼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있을 텐데.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그녀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다.

바람 빠진 풍선같이, 힘없는 한숨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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