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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117화 (117/200)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117화

김건은 경찰 및 특무대와 상당히 돈독한 친목을 다지고 있었다.

그의 도장에 다니는 제자들 중 대다수가 특무대에 들어가고 싶어 하기도 했고, 실제로 그렇게 된 아이도 있으며, 때로는 특무대의 초청으로 신입들을 대상으로 한 무술 수업을 진행한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특무대가 극도의 인력난으로 시달리는 이때, 그들이 김건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간 김건은 특무대와 함께 사방에 숨어 다니며 날뛰는 수인과 악마종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간의 노고에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꼭 그에 합당한 포상을 준비하겠다 말하는 특무대의 대장과 악수를 나눈 것이 불과 몇 주 전이다.

그러던 그가, 지금은 죄인의 신분으로 특무대의 취조실에 앉아 있었다.

그의 앞에 앉아 있는 것은 특무대의 쌍두마차라 불리는 세라스와 티리온이었다.

만약의 사태가 생겼을 경우, 김건과 싸워 볼 만한 사람이 그 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티리온이 말했다.

“여기까지 와 줘서 고마워. 네가 저항했다면 정말로 문제가 심각해졌을 테니까.”

“적이 아니니까 싸우지 않았을 뿐입니다.”

김건은 딱딱한 표정으로 말했다.

선생 노릇을 하며 쌓아 온 온화함이 지금은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는다.

티리온은 낮게 한숨을 쉬었다.

그 옆에 앉은 세라스 역시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녀는 한참 동안이나 묵묵히 앉아 있는 김건을 지켜보다가 겨우 말했다.

“……넌 알고 있었어? 서리가 기린의 화신이었다는 걸.”

김건은 세라스를 바라보았다. 언제나 히죽히죽 웃고 있던 황금색 눈이, 지금은 진지한 빛을 띠고 있었다.

그는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고 있었어.”

“언제부터?”

“처음부터.”

“그 처음이 언젠데? 날 때부터 기린의 화신이었던 건 아닐 거 아니야.”

“…….”

김건이 입을 다물자 세라스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하, 그래. 아직도 숨기는 게 있다 이거지.”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투덜거리곤 어깨를 으쓱였다.

“하여튼 사정을 모르는 이상, 난 못 도와줘. 그쪽에서 날 믿지 않는데, 난 어떻게 너희를 믿어 주겠어?”

아무래도 그녀는 한서리가 기린의 화신이었다는 사실보다, 김건과 한서리 두 사람이 지금까지 자신에게 그것을 숨긴 것에 화가 난 듯했다.

그녀는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벌컥벌컥 비우더니 팔짱을 끼며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티리온은 안타깝다는 눈으로 그 모습을 쳐다보다가 김건에게 고개를 돌렸다.

“지나간 일은 됐고,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 것 같아? 저쪽은 서리를 원하는 모양이던데.”

“모릅니다. 이쪽 세상을 원하는 자들의 정체도, 그들이 아내를 원하는 이유도.”

“지금까지 우리에게 서리가 기린의 화신이라는 걸 숨기고 있었잖아. 그걸 감안하고 지금까지의 너희들의 행보를 되짚어 보면 의심스러운 게 한두 개가 아니야. 그런데도 아는 게 없다고?”

어쩌다 보니 심문하는 듯한 분위기가 되어 버렸다.

티리온도 이제 김건과 쌓아 온 시간이 많다. 그도 지금 이럴 때에 그를 몰아붙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전 세계가 위험에 처해 있었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더 단서가 필요했다.

김건이라고 그걸 모르는 건 아니었다.

“무슨 의도로 묻는 건지는 압니다. 하지만 정말 저도 몰라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저는 적이 아닙니다. 알고 있는 걸 모두 말했다고는 못하겠지만, 최소한 이 상황에서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숨기고 있지는 않아요.”

“…….”

그 말에 티리온도, 세라스도 할 말이 없어졌다.

두 사람은 김건을 알았다.

청렴결백하기로 따지면 더 이상이 없을 만한 남자다. 말을 안 했으면 안 했지 저런 말을 지어 낼 사람은 아니었다.

‘대체 일이 어떻게 되려고 하는 건지.’

티리온은 앓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지금 상황을 전달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취조실은 방음 시설이 되어 있어 조용했다.

하지만 그 안에 있는 세라스, 김건. 두 사람은 모두 감각을 극한으로 가다듬은 사람들이었다.

밖에서 티리온이 누군가와 말다툼을 벌이는 소리가 다 들렸다. 그리고 이내, 쾅 소리가 울리며 누군가가 취조실 안으로 들어왔다.

지구방위군의 사령관으로부터 직접 김건을 취조하라는 임무를 받은 군인이었다.

“이봐요, 중장님! 여기는 지구방위군이 아니라 특무대입니다! 그렇게 당신이 마음대로 행동해도 될 곳이 아니란 말입니다!”

“시끄럽소!”

군인은 어깨를 붙잡아 오는 티리온의 손을 거칠게 쳐 내며 쿵쾅거리는 발걸음으로 김건의 맞은편에 앉았다.

상대의 마구잡이식 행동에 뒤따라오던 티리온이 한탄을 토했다.

세라스 역시 눈썹을 찌푸렸지만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는 않았다.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그들이 김건을 고문하거나, 자백제를 먹이는 등 과도한 조치를 못하게 하는 것뿐이었다.

그 이상을 하기에는 그들 역시 김건을 보호할 명분이 부족했다.

아무리 두 사람이 특무대의 실권자라 해도, 단순한 심문까지 차단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군인은 한참이나 목소리를 높여 가며 김건을 달달 볶았지만, 별다른 정보를 끌어내지 못했다. 그러자 그는 제 성질을 이기지 못했는지, 탁상을 거세게 내려치며 욕설을 퍼부었다.

“답답하기 짝이 없군! 온 세상이 위험한데! 넌 제 자신을 위해 정보를 숨길 셈인가! 쓰레기 같은 놈! 사기꾼 년과 붙어먹은 놈이니, 당연히 제대로 된 놈일 리가 없지!”

그 말을 들은 세라스의 눈이 뒤집혔다. 뒤에 서 있던 티리온의 얼굴 역시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이봐요!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 “

화가 난 세라스가 목소리를 높이려는 찰나였다.

묵묵히 있던 김건이 문득 내뱉었다.

“답답한 건 오히려 제 쪽입니다.”

조용한 어조.

단번에 공기가 바뀌었다.

“……!”

갑자기 장내 온도가 수십 도는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흥분해 목덜미에 핏대까지 세우던 군인마저도 말을 잃었다.

차갑게 얼어붙어 가는 공기 속에서 김건이 중얼거렸다.

“아내가 위험에 처해 있어요. 정체를 알 수 없는 적들은 계속해서 숨통을 조여 오고 있고요.”

언제나 온화하던 목소리에 신경질이 섞인다. 이를 악문 김건이 끓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저는 이곳에 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말을 하면 할수록 스스로의 처지를 깨닫는 모양이다. 억눌려 있던 감정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그에 호응한 육체가 온몸에서 핏대를 세웠다.

“제가 왜 여기 있어야 하죠? 서리의 남편이면서, 서리의 무기이면서.”

급격하게 주변의 기압이 올라갔다.

“야! 야!”

세라스가 소리를 쳤지만 소용없었다.

김건이 손을 올리고 있던 탁상이 기이한 소리를 내며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무시무시한 살기가 뻗어 나가기 시작한다.

김건과 눈을 마주친 군인이 히익 비명을 지르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세라스와 티리온이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켜 세웠다.

“야……! 진정해!”

“김건……!”

김건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 모습은 언뜻, 그저 빈틈투성이로만 보였다. 하지만 세라스와 티리온은 움직이지 못했다.

그들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다.

이토록 흥분한 김건을, 이토록 분노한 그를.

방금 전만 해도 위세 좋게 떠들던 군인은 몇 번이나 실전을 치른 베테랑이었다. 그런 그의 바지가 축축하게 젖었다.

단순히 싸움 실력의 문제가 아니다.

티리온은 등 뒤에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그 온화해 보이던 얼굴 속에 이 정도의 살기를 숨기고 있었을 줄이야.

특무대 노릇을 하며 수많은 범죄자를 상대해 왔지만 그 어떤 살육자도 김건만큼의 살기를 뿜지는 못했다.

저런 것을 안에 품고 지금까지 어떻게 조용히 지내 왔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다.

차갑게 굳은 얼굴의 김건이 선포했다.

“나가야겠습니다. 막지 마세요.”

티리온이 외쳤다.

“멍청한 소리 하지 마. 이건 세계 단위의 사건이야! 네 실력이 아무리 뛰어난들, 너 하나 움직인다고 바뀔 건 없어!”

“진정해! 우리끼리 싸울 일이 아니야!”

세라스의 간절한 외침도 소용없었다. 김건이 걸음을 옮겼다. 사거리를 좁혀 오기 시작한다.

영역을 침범당하고 있다.

그것을 깨달은 세라스와 티리온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김건의 미극공진동, 그것이 지면이나 벽 등을 통해 어느 정도 원거리에서의 공격이 가능하다는 것을 두 사람은 알고 있었다.

거리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그 위력은 떨어지지만, 김건과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그의 진동은 더욱 은밀하게, 더욱 정교하게 두 사람을 노려 올 것이었다.

이 이상은 들여보내 줄 수 없다.

위협을 느낀 두 사람이 각자의 무기를 뽑았다. 세라스가 울 것 같은 얼굴로 부르짖었다.

“김건, 제발! 부탁이니까, 그 이상 다가오지 마!”

김건은 그 말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발을 내디뎠다.

그렇게, 세 사람의 영역이 교집합을 이루고, 서로의 호흡이 빠져나가며 근육이 율동하려는 순간.

똑똑-

메마른 노크 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졌다.

모두가 움직임을 멈췄다.

“실례합니다.”

사무적인 인삿말과 함께 한 여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

나타난 것은 차가운 표정이 어울리는 용족의 여자였다.

그녀는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하며 말했다.

“용왕님의 비서인 엘리 비칸테르입니다. 당분간 김건 님의 시중을 들기 위해 왔습니다.”

그리고 뒤이어 또 다른 사람이 들어왔다.

단정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남자는 난장판이 된 취조실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이건 뭐야? 무슨 일 있습니까?”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던 긴장감이 그제야 사그라졌다.

아는 얼굴인지, 김건은 용왕의 비서라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검을 내린 세라스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티리온은 그 틈에 대화를 시도했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군인을 일으켜 세우며 양복의 남자에게 물었다.

“사소한 다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누구십니까?”

“아,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남자가 명함을 내밀었다.

사무총장 직속의 외교관. 꽤 직위가 높은 사람이었다.

외교관이 말했다.

“지금 시간부로 김건 씨에 대한 심문은 금지합니다. 김건 씨는 저희가 운영하는 별장으로 이동하여 그쪽에서 지내실 겁니다.”

“그게 무슨…… 어떻게 된 일이죠?”

“용왕과 사무총장님이 합의하신 내용입니다. 용왕이 우리에게 김건 씨의 보호를 요청했고, 저희는 그것을 받아들였을 뿐이죠. 그리고 티리온 프레이저와 세라스 프레이저 님, 특무대의 두 분은 당분간 별장에서 김건 씨의 호위를 맡아 주셔야 합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특무대장의 직인이 찍힌 공문을 들어 보였다.

이미 윗선에서 많은 이야기가 오간 모양이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된 것 같자 티리온은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용왕의 비서, 엘리가 김건의 앞에 섰다.

그녀는 잠시 헛기침을 한 뒤, “용왕님의 전언입니다.”라고 한 후에 말했다.

“잠깐 기다리고 있어, 금방 데리러 갈게.”

김건은 무표정한 얼굴로 엘리를 바라보았다.

엘리는 침을 삼켰다.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눈.

어떻게 한 건지, 그에게서는 호흡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살아 있는 사람을 마주하고 있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마치 금속질의 칼날이 이쪽을 겨냥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저 순한 사람인 줄만 알았는데.’

그런 엘리가 속으로 혀를 내두르고 있을 때, 김건이 입을 열었다.

“……기다리기 싫다고 한다면 어떻게 됩니까?”

“인간과 용족의 전쟁이죠. 최소한 지금의 사태를 해결하는데 인간 측의 도움은 받을 수 없게 될 겁니다. 볼모를 잡고 있다는 구실마저 사라지면, 온건파들의 입김이 약해지고 용왕님을 잡아서 바치자는 급진주의자들이 주권을 잡을 겁니다.”

“…….”

그 말을 들은 김건이 고개를 숙였다.

그 입으로부터 긴 한숨이 흘러나와 가슴을 적셨다.

그들을 지켜보던 외교관이 손짓한다. 엘리가 말했다.

“가시죠. 부군님.”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자연스럽게 김건의 길을 터 주었다.

하지만 김건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고개를 끄덕인 건 그로부터 한참이나 지나서였다.

“……알겠습니다.”

입술을 깨물며 엘리와 외교관을 따라간다.

더 이상 웅크릴 수 없을 정도로 꽉 쥐어진 그의 주먹 사이로 흘러나온 피.

그것이 점점이 떨어지며 씁쓸하게 그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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