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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121화 (121/200)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121화

별장 밖에는 다섯 사람이 앉아 있었다.

티리온, 세라스, 엘리, 그리고 나머지 두 화신이었다.

‘저놈들이……!’

세라스는 적의를 불태우며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두 화신을 바라보았다.

늑대왕이 그 모습을 보곤 킬킬 웃으며 파이몬에게 말했다.

“이봐, 저 인간 암컷이 우릴 죽이고 싶은가 본데.”

“내버려 둬라. 어차피 아무것도 못할 테니.”

파이몬은 세라스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녀는 그저 팔짱을 끼고 가만히 아그니스를 기다렸다.

하지만 늑대왕은 얌전히 있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는 긴 혀를 내밀어 코끝을 핥으면서 살짝 기세를 내뿜었다.

늑대왕이 어깨를 내린다.

그러자 세라스가 고개를 틀었다.

“…….”

대응하는 타이밍, 그리고 자세가 거슬린다.

늑대왕이 코끝을 찡긋거리곤 바로 다음 행동을 이어 갔다.

손톱을 까딱이고, 발끝에 힘을 싣고, 중심을 앞으로 기울였다.

보이지 않는, 상상 속의 공격이 세라스에게 가해졌다.

일직선으로 찌르기, 이어 휘두르고, 어깨로 들이받아 중심을 흔든다.

세라스가 대응했다.

찌르기를 흘리고, 앞으로 바짝 붙어 휘둘러 오는 공격을 어깨로 받아 낸다.

그러고는 상대의 체중 이동을 이용해 장타로 카운터를 먹였다.

서로의 기척과 자세로만 이루어진 격돌에서 우위를 점한 것은 세라스였다.

늑대왕의 얼굴이 찌푸려짐과 동시에 선점을 취한 세라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의기양양한 기색으로 화신들을 쳐다보자 늑대왕의 입에서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는 사납게 웃었다.

“재미있는데.”

애초에 장난으로 시작한 기 싸움이다. 그저 가볍게 반응을 살필 뿐인 견제.

거기서 한 번 졌다고 진짜로 승부에서 진 것은 아니지만, 기분이 상했다.

늑대왕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봐.”

그 모습을 한심하다는 듯이 지켜보던 파이몬이 차갑게 말했다. 늑대왕이 돌아보자 노란빛으로 가득한 악마의 눈이 매섭게 늑대왕을 쏘아보았다.

텔레파시가 쏘아졌다.

<<무례한 짓은 하지 말라는 아그니스 님의 말을 기억하지 못하나?>>

그렇게 말한 파이몬의 손이 허리춤의 칼로 향했다.

철갑으로 둘러진 그녀의 날개가 파르르 떨고, 그렇게 뻗어 나온 살기가 늑대왕의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늑대왕은 오히려 웃으며 세라스를 가리켰다.

“저 여자, 그 김건이라는 놈과 아는 사이 같더군. 궁금하지 않나? 저 여자를 망가트리면 놈이 어떻게 반응할지.”

파이몬의 얼굴이 신경질적으로 일그러졌다.

“네놈, 무슨 말을 하는 거냐?”

“만약 놈이 정말로 아그니스의 말에 어울리는 남자라면,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걸. 정 따위는 나약한 자들의 것이라는 게 아그니스의 지론이니까. 하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놈은 애초에 그 정도 인물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게 되는 거지.”

“…….”

그 말에 파이몬의 눈빛이 바뀌었다.

‘단순하긴.’

늑대왕은 속으로 웃었다.

그는 눈앞의 악마가 아그니스를 경애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경애 때문에, 아그니스가 집착하는 김건이라는 남자에게 강한 질투심을 품고 있다는 사실까지.

악마의 눈에서 빛이 꺼진다. 살기가 누그러들고, 바짝 날을 세우던 날개가 잠잠해진다.

파이몬은 후, 한숨을 내쉬며 허리춤의 손잡이에서 손을 떼었다.

<<……죽이지는 마라. 별다른 감정이 없더라도, 남의 물건을 함부로 부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니까.>>

<<알았어. 알았어. 걱정하지 마. 조금만 가지고 놀다가, 원상 복귀 해 놓을 테니까.>>

가볍게 대답한 늑대왕이 고개를 돌렸다. 그와 동시에, 세라스가 고개를 틀었다.

콰악!

소리는 한참이나 늦게 들렸다.

눈을 부릅뜬 세라스가 시선을 늑대왕으로 향했다.

킥킥 웃고 있는 늑대인간이 보였다. 놈의 손끝으로부터 길게 뻗어 나온 손톱이 총알처럼 날아와 뒤편의 벽에 박힌 것이다.

“무슨……!”

옆에 있던 티리온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는 그 공격에 반응하지 못했다.

단순히 그것이 빨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어차피 싸움이 일어나면 대부분의 공격이 반응 속도보다 빠르다.

공격이라는 것은 보고 피하는 것이 아니라, 날아오기 전의 전조와 기척을 파악해 대응하는 것.

그는 방금 늑대인간의 기척을 읽지 못했다. 아마 공격의 대상이 세라스가 아니라 그였다면 지금쯤 잘 꿰뚫린 꼬챙이가 되어 벽면에 매달려 있었을 것이다.

그 말은 즉, 눈앞의 화신은 한때 당대 최강이라 불렸던 티리온보다도 높은 기량을 지닌 고수라는 것이다.

늑대왕이 말했다.

“확실히 반응이 좋은걸. 네가 이 행성에서 가장 강한 전사냐?”

그의 눈은 정확히 세라스를 향하고 있었다.

“…….”

이글거리는 눈빛을 한 세라스가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었다.

그것을 본 티리온이 이를 악물었다.

“세라스! 그만둬! 이 상황에서 화신과 싸움을 벌여서 좋을 건 아무것도 없어!”

하지만 말을 꺼낸 그도 이제는 세라스를 말릴 방도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원래도 한번 화가 나면 성질을 주체하지 못하는 세라스다.

그러나 특무대 일을 하며 많은 범죄를 지켜본 이후, 그녀는 더욱 불같은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에디나 스칼렛처럼 기본적으로 성질머리가 더러운 느낌은 아니다. 그저 시비가 걸려 오거나, 불의를 보면 조금도 참지 못하게 된 것에 가까웠다.

티리온이 엘리를 보호하며 뒤로 물러났다.

세라스가 완전히 몸을 일으켰다.

프레이저 가문의 상징인 금안이 별빛처럼 반짝였다.

세라스는 웃었다. 풋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성숙한 여전사의 도발적인 미소였다.

“아니, 최강은 이 안에 계신 분이고, 나는 잘해 봐야 두 번째밖에 안 되는데?”

뒤편의 별장을 가리키며 말한다. 그러자 늑대인간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아까 그놈이 그 정도로 강하다고? 언뜻 봐서는 마력도 거의 없고, 별다른 기세를 가진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는데.”

“그건 네가 그만큼 좆밥이라는 거지.”

세라스는 깔깔 소리 높여 웃었다.

하지만 그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다. 그녀의 친구인 한서리마냥 차갑고 오만한 얼굴.

그것이 가소롭다는 듯이 늑대인간을 쳐다보았다.

“만약 녀석이 방금 전 같은 일을 당했으면, 넌 이미 머리가 터져서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을걸.”

그런 그녀를 향해 늑대왕은 마주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 그럼 언젠가 녀석의 실력도 한번 봐야겠군.”

짐승의 발이 앞으로 내디뎌졌다. 그의 이빨 사이로 흘러나온 침이 진득하게 늘어져 바닥에 떨어졌다.

“널 충분히 씹어서 맛본 뒤에 말이야.”

살기가 작렬했다.

그와 동시에 늑대왕의 손에서 손톱이 분출.

십 미터도 넘는 길이로 뿜어져 나온 손톱은 칼날이 되어 공간을 절단했다.

카가각!

초속으로 발검한 세라스가 황금색 오라로 공격을 막았다.

훌쩍 뛰어오른 그녀는 별장으로부터 멀어지며 검을 들지 않은 나머지 손을 늑대왕을 향해 휘둘렀다.

언젠가, 서큐버스를 조각냈었던 것처럼 금빛이 번득였다.

늑대왕이 방어. 단순히 팔을 들어 막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수많은 방어 마법이 중첩되어 있는 팔이었다.

공격이 닿는 순간, 늑대왕의 눈매가 움찔거렸다.

“음?!”

쾅 소리와 함께 절단된 손목이 허공을 난다. 그 단면으로부터 뿌려진 피가 늑대왕의 상체를 적셨다.

‘기회!’

공격을 성공시킨 세라스가 발을 박차며 체중을 앞으로 향했다.

전방으로 돌격. 칼을 허공으로 던지며 자유로워진 양손을 번개처럼 휘둘러 전방을 베었다.

쏴사사사사사!

그녀의 손끝에서 태어난 빛살이 늑대왕의 전신을 노리고 쏘아졌다.

파산검, 순(瞬).

그것은 요 몇 년간 세라스가 혼신의 힘을 다해 빚어낸 기술이었다.

엄청난 위력을 지녔지만 너무 큰 전조 때문에 명중률이 떨어지는 파산검.

전조는 줄었지만 여전히 막대한 마력을 소비하는 파산검 신속.

파산검 순은 그러한 단점을 없앤 기술이었다.

정말 일순, 잠깐의 시간 동안만 파산검을 생성해 적을 베어 내는 것.

원리는 간단하지만 그것을 실제로 펼치기 위해 요구되는 집중력과 제어력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했다.

그러나 오랜 노력 끝에, 세라스는 그 이론을 실제로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전사로서 타고난 재능, 프레이저가의 SS급 마력적성에 몇 번이나 화신을 상대하며 쌓은 전투 경험. 그리고 아직도 성장 가능성이 있는 젊은 나이.

그녀에게는 약점이 없었다.

티리온이나 김건처럼 적과 상황을 가리지 않고, 모든 상황에서 최적의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붙여진 칭호가 ‘완전무결.’

세라스는 그 칭호에 부끄럽지 않은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파산검 순, 10연타.

지금까지 이 공격을 받고 살아남은 존재는 없다.

빗살같이 쏟아지는 열 개의 초거대 칼날을 마주한 늑대왕이 감탄을 토했다.

“하, 제법인데.”

동시에 사라지는 수인의 모습, 그리고 그것은 순식간에 세라스의 앞에 나타났다.

빗나간 파산검이 지면에 격돌하며 어마어마한 토사가 솟구쳐 올랐다.

한순간에 기술이 파훼당한 세라스의 동공이 커졌다.

“……!”

움직임의 과정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주변에 흩뿌려지는 금빛 비늘의 광채로 세라스는 바로 상황을 이해했다.

순간이동.

기린의 주특기인 시공간 제어 마법.

‘곧 죽어도 기린의 화신이라 이건가!’

이를 악물며 세라스가 공격에 대비했다.

아직까지 멀쩡한 늑대인간의 한쪽 손이 질주했다.

번개처럼 내뻗은 손이 복부를 타격. 어마어마한 충격이 세라스의 몸을 뒤흔들었다.

“크윽!”

가까스로 오라의 방벽을 펼쳐 방어에 성공했다. 세라스는 신음을 삼키며 충격으로 날아가는 몸을 다잡았다.

다시 시선을 앞으로 향하자 늑대인간의 비어 버린 손목 위로 뼈와 살점이 한순간에 돋아나더니, 손의 형태를 이루는 것이 보였다.

말도 안 되는 위력의 세포 재생 마법.

하지만 놀라고 있을 틈은 없었다.

다시금 빛이 번쩍이고, 늑대왕이 사라졌다.

하지만 그다음 모습이 안 보인다.

세라스는 본능적으로 반응해 사각인 등 뒤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후우웅!

아무렇지도 않게 허공을 가르는 일격.

그리고 기척이 느껴진 것은, 후방이 아니라 전방이었다.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멍청하긴. 보이지 않게 되면 무조건 순간이동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

순간이동이 아니라, 환영과 투명 마법을 이용한 눈속임이었던 것이다.

허를 찔렸다.

늑대왕의 일격이 날아왔지만, 대응이 늦어 오라를 형성할 틈이 없었다.

그렇게 늑대왕의 손톱이 세라스의 복부를 관통하려는 찰나, 중간에 끼어든 칼날이 손을 튕겨 냈다.

세라스가 외쳤다.

“삼촌!”

타이밍 좋게 끼어든 티리온이 늑대왕의 공격을 막아 낸 것이다.

티리온은 공격을 막아 내자마자 곧바로 검극을 꺾어 양손에 든 쌍검으로 늑대왕을 베어 갔다.

늑대왕은 웃으며 양팔을 들어 칼날을 방어했다.

카가가강!

오라로 제련한 단분자 칼날이 아무렇지도 않게 팔뚝에 막혀 튕겨져 날아갔다.

티리온은 늑대인간이 척력을 이용한 마법으로 공격을 막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늑대왕이 양손을 떨쳤다. 길게 뻗어 나온 손톱이 티리온과 세라스를 동시에 휩쓸고, 그 거력을 견디지 못한 두 사람이 폭음과 함께 튕겨져 날아갔다.

“제기랄!”

“큭…… “

세라스와 티리온이 각각 욕설과 신음 소리를 내뱉으며 공중제비를 돌아 지면에 착지했다.

두 사람은 질린다는 표정으로 그들의 앞에 선 늑대인간을 바라보았다.

전위에 버금가는 신체 능력과 고제련 오라에 맞먹는 손톱.

거기에 후위들만이 가질 수 있는 유용한 마법들까지 갖췄다.

과거에 싸웠던 벨제불의 화신이나 아수라보다도 질이 안 좋다.

벨제불은 능력은 있었으나 기술이 없었고, 아수라는 기술은 있었으나 능력이 모자랐다.

하지만 눈앞의 늑대인간은 기술과 능력, 두 가지를 모두 갖고 있었다.

역시나 화신, 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괴물.

늑대왕의 눈이 티리온에게로 향했다.

“네놈도 꽤 하는군.”

만족스러운 미소가 짐승의 얼굴에 감돌았다.

그가 양손을 아래로 내리자, 폭발적으로 끓어오른 마력이 그의 몸을 덮었다.

급격하게 증대하기 시작하는 신체.

어마어마한 버프가 늑대인간의 전신을 감쌌다.

이제부터가 진짜다.

침을 삼킨 세라스가 칼날을 치켜들었다.

그 모습을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보며, 늑대왕이 웃었다.

“놀아 보자고.”

소닉붐으로 인한 폭음이 터지며, 음속으로 가속한 늑대인간이 프레이저 가문의 두 사람을 향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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