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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122화 (122/200)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122화

“내 선택에 따라 바뀔 수 있다고?”

김건이 묻자 아그니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여의주를 가리켜 보이며 말했다.

“물체화시켜 보다 쉽고 안전하게 기린의 힘을 다룰 수 있게 되었지만 능력 상승으로 인한 의식 침범의 위험은 여전해. 자아가 약한 자는 화신이 되는 것만으로도 위험하고, 강한 자라도 화신인 채 여의주 두 개 이상의 힘을 제어하려 하면 기린에게 의식을 빼앗긴다. 나조차도 안전하게 다룰 수 있는 건 네 개가 한계야.”

어깨를 으쓱이는 아그니스.

“하지만 앞으로 모아야 할 여의주의 개수는 앞으로 수천 개, 어쩌면 수만 개가 될지도 모른다. 그걸 혼자서 다 다룰 수는 없어. 그래서 결론을 내렸지. 혼자가 안 된다면, 숫자를 늘리자고.”

“…….”

“그래서 부하를 들이고 있다. 완전하다 할 순 없지만 기린에게는 계약이라는 편리한 힘이 있지. 그것으로 충성을 맹세받고, 그들에게 여의주를 넘겨 기린의 힘을 다루게 했다. 나를 따라온 다섯의 화신은 모두 그렇게 화신이 된 자들이다.”

아까 건물 밖에서 두 명은 봤다.

딱 봐도 엄청난 실력자들.

‘그런 놈들이 셋이나 더 있다고.’

김건은 침을 삼켰다. 아그니스가 말했다.

“강력한 자아와 화신의 힘을 다룰 기술을 갖춘 자들. 그들 모두가 자신의 세상에서 최강이라고 불렸던 전사들이다. 덕분에 여기까지 도달하기 전에 들렸던 선계에서도 손쉽게 여의주를 수집할 수 있었지.”

그다음에 나올 말은 뻔하다.

김건이 말했다.

“……그래서, 나보고 네 부하가 되라고 하는 건가?”

“부하라니, 단신으로 기린의 주인격을 쓰러트리고, 벨제불의 화신을 소멸시켰으며 그 티아마트와도 맞서 싸운 인물을 장기말로 쓸 수는 없어. 또한 너는 어떤 의미에서는 내 은인이기도 하다. 네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없었을 테니까.”

아그니스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넌, 내 신하가 되어 주었으면 한다.”

“신하?”

“그래, 나를 섬기며 나와 함께 나아갈 자.”

“부하와 신하에 무슨 차이가 있지?”

“큰 차이가 있지. 부하는 그저 소모품에 불과하지만 신하는 그렇지 않으니까. 신하와는 계약에 따른 제약이 없을 거다. 공을 세운다면 상도 내려 줄 수 있고.”

아그니스는 김건을 가리키며 말했다.

“넌 지금까지 내가 받아들인 놈들과는 달라. 세계 제일의 전사들이라고는 하나, 다섯 놈 모두 자신감과 실력만 있을 뿐인 무뢰한에 불과해. 하지만 네게는 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저력과 운이라고 부르는 세계의 흐름이. 그건 한낮 싸움 실력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인 우위야. 그런 자를 아래로 둬야 비로소, 삼계를 탐할 만한 자라 할 수 있지.”

김건의 얼굴이 굳어 갔다.

아그니스는 그런 그에게 계속 말했다.

“네가 내 신하가 된다면, 네 아내를 놓아주마. 인간들도 그대로 놔두지.”

“용족은 어떻게 할 거지? 내 아내가 가진 화신의 힘은?”

“그건 안 돼. 용족과 화신의 힘은 앞으로 있을 선계 정벌을 위해 필요한 전력이다.”

거기까지 들은 김건은 아그니스의 말에 코웃음을 칠 수밖에 없었다.

“웃기는군. 거창한 말로 포장하고 있을 뿐이지, 너는 너 스스로가 무뢰한이라는 자각이 없어. 인질을 죽이기 싫으면, 내 말을 들어라? 그게 삼류 범죄자가 하는 말과 뭐가 다르지? 내가 진심으로 그런 자를 따를 거라 생각하나?”

아그니스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네가 힘이라는 것의 본질을 모르기 때문이다. 힘이라는 건 방향성이야. 온갖 만물을 내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것. 나약한 인간으로 태어나, 나약한 몸으로 자라 온 너는 그게 가진 진짜 의미를 모르겠지. 걱정하지 마라. 나와 함께 패도의 길을 걷다 보면 나약한 생각 따윈 잊고 내가 한 말이 옳았다고 말하게 될 거다.”

그 말을 들은 김건은 확신했다.

설령 김건이 아그니스의 말대로 그의 신하가 된다 해도, 만약 아내와 이 세상이, 무언가에 필요한 일이 생기면 아그니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을 땔감 쓰듯이 불길에 던져 넣을 것이라는 것을.

세상 만물이 제 것이며, 제 생각대로 움직여야만 직성이 풀리는 자다.

김건은, 진심으로 그런 사고방식을 경멸했다.

“웃기지 마. 내가 지금까지 실력을 갈고닦은 건 너 같은 쓰레기를 없애기 위함이지, 떠받들어 주려고 한 게 아니야.”

김건의 얼굴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지금의 그에게 평소와 같은 온화함과 겸손함은 없다. 그저 냉소적으로 적을 비웃는 자신감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리고, 좋은 생각이 떠올랐거든.”

“그게 뭐지?”

아그니스가 묻자 김건이 답했다.

“들어 보니, 네가 만든 조직은 구심점이 너 하나뿐인 것 같군. 나머지는 아무렇게나 모인 오합지졸일 뿐이고.”

사나운 미소가 떠오른다.

이번에는 김건이 손을 들어 아그니스를 가리켰다.

“그 말인즉, 여기서 널 죽이면 나머지 놈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지.”

“…….”

“굳이 우리가 나서지 않아도, 아마 저들끼리 싸우다가 무너져 내릴 거다.”

아그니스는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옳은 판단이다. 하지만 불가능해.”

“그건 지금부터 해 보면 알겠지.”

그 말이 끝났을 때, 이미 김건이 쏘아 낸 진동은 지면을 타고 아그니스의 발치를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김건이 잠자코 있었던 것만은 아니다.

그는 그동안 충분히 시간을 들여 눈앞에 나타난 새로운 생물체에 대해 분석했다.

그의 판단에, 맞은편에 앉아 있는 정령은 그저 마력으로만 이루어진 생물체는 아니었다.

겉보기에는 그저 불덩어리지만, 그 안에 보석과 같은 광물로 이루어진 육체가 있었다.

처음 마주쳤을 때 피부에 닿은 공기의 흐름이 일정한 것으로 보아, 일정한 체온을 유지하고 있고, 계속해서 눈을 깜빡이니 체액의 존재도 쉽게 예측해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아그니스에게서는 심장 소리가 들렸다.

쿵쿵 뛰어오르는 그 미세한 맥동을, 김건은 가까스로 잡아낼 수 있었다.

기린의 화신이니 심장을 파괴해도 죽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종합적인 육감으로, 김건은 아그니스가 자신의 아내와 비슷한 상태라고 느꼈다.

화신이긴 하되, 육체를 모두 마력으로 변환하지 않고, 실체를 갖고 있는 상태.

아마도 기린에게 의식을 잡아먹히지 않기 위한 조치겠지만, 그것은 김건에게 기회가 되었다.

실체가 있다면, 죽일 수 있다.

어떠한 재생 능력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펼치기 전에 의식을 날려 버리면 될 일이다.

그렇게 날아간 진동이 아그니스의 발에 닿았다.

평범한 인간은 인지할 수도 없는 영역에서 다리를 타고 심장으로 향해 가는 진동.

그것이 몸 가운데에서 쿵쿵 뛰는 심장을 공격하려는 찰나, 아그니스의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

웅───

울려 퍼지는 잔향.

그것으로 김건은 깨달았다. 그의 공격이 실패했다는 것을.

“진동권이라. 재미있는 기술이지.”

진동을 마주 내쏘아 심장을 공격하는 진동을 상쇄한 아그니스가 말했다.

과거, 화신이 되기 전의 제이미가 했던 것과는 다르다.

그때의 제이미가 뭣도 모르고 일으킨 진폭을 이용해 물량으로 이쪽의 진동을 삼켜 버리는 방식을 썼다면, 아그니스는 정확하게 계산된 진동으로 김건의 진동을 상쇄했다.

그에게는 진동권에 대한 이해와 기술이 있었다.

하지만 김건은 기죽지 않았다.

오히려 웃었다.

“그래, 재미있지. 하지만 어려워. 네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다시금 김건이 진동을 쏘았다.

아그니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가 자아낸 진동이 김건을 향해 나아갔다.

탁자를 마주하고 앉아 있는 두 사람.

그냥 서로를 노려보고 있는 것으로만 보이지만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엄청나게 격렬한 공방이 일어났다.

사물을 타고 사방으로 진동이 뻗어 나갔다.

엇나간 파형이 다른 사물에서 그 끝을 맞이하며 폭발이 터졌다.

탁자 위의 찻잔이 바스러지고, 천장의 형광등이 조각나 파편을 뿌렸으며, 벽면에 붙어 있던 액자가 폭발해 안의 그림이 내장처럼 비어져 나왔다.

그렇게 화려한 파괴가 일어나고 있지만, 그 힘의 대부분은 아그니스의 것이었다.

애초에 김건은 목표로하지 않은 물건을 파괴할 정도로 강한 진동을 쏘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파형을 자유자재로 조작하고, 진동 간의 공명과 중화를 통해 오히려 아그니스의 진동을 역이용하고, 사방으로 흘려보냈다.

“음.”

힘을 쓰면 쓸수록 오히려 밀리는 느낌에 아그니스가 침음을 흘렸다.

김건이 그 모습을 비웃었다.

“느려, 그리고 난잡해. 그깟 흉내 내기로 누구한테 덤비는 거야?”

그 말이 맺어졌을 때, 이미 김건의 진동은 아그니스의 심장을 움켜쥐고 있었다.

점점 커지는 진폭이 공진 주파수를 찾아가며 보석으로 이루어진 아그니스의 내장을 부서트리려 했다.

“……!!”

대체 언제 여기까지 진폭이 파고든 것인가.

아그니스는 아까처럼 진동을 자아내 방어하려 했지만 늦었다. 이미 심장 부위를 감싸는 진동이 정확한 주파수로 맞춰졌다.

그리고 그것이, 심장을 파괴하려는 순간.

화악 하고 아그니스의 몸을 감싸고 있는 화염이 번졌다.

급격하게 열기와 압력이 치솟으며 별장 내부의 압력이 상승했다.

콰앙!

공기가 터져 나가고, 주변 사물이 모조리 불타올랐다.

김건은 재빨리 발동시킨 그림자 갑옷과 설화기사의 버프로 열기를 견뎠다. 그리고 바라보았다.

순수한 화염으로 번해, 마치 진짜 정령처럼 이글거리고 있는 아그니스의 동체를.

순간적으로 전신을 형체가 없는 불로 바꿔, 진동의 물리력을 흘려 버린 것이다.

퍼져 나갔던 불꽃이 다시 수축한다.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아그니스가 숨을 토하며 무릎을 꿇었다.

“하마터면, 다시 기린에게 먹힐 뻔했다. 정말 간담 서늘하게 만드는군.”

전신을 화염으로 바꾸는 기술은 아무래도 많은 위험요소를 가지는 듯했다.

안타깝게 기회를 놓친 김건이 혀를 찼다. 여유를 되찾은 아그니스가 웃었다.

“역시 내 신하가 될 자격이 있는 남자다. 놀이로는 이길 수 없겠군. 하지만 네가 나를 앞서는 건 오로지 그것뿐. 네 실력과 힘으로 나를 죽이는 건 불가능해. 설령, ‘그 기술’을 쓴다 하더라도.”

이전의 화신들과는 달리 제대로 된 실체를 갖고 있으니 마력을 분해할 뿐인 그 기술을 적중시켜도 죽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면서 아그니스는 온몸에 진동파로 이루어진 마력울 둘렀다.

접근하는 온갖 파동을 중화하고 흐트러트리는 파동의 갑옷이 있다면 아무리 김건이라도 원거리에서 쏘아 낸 진동으로 그것을 돌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직접 몸통에 접촉해 진동을 때려 박으면 될 일이다.

“죽을 뻔한 주제에 입만 살았군.”

차갑게 말하며 김건이 손을 까딱이자, 압축마법으로 등에 납작하게 붙어 있던 가방이 튀어나왔다.

거기서 튀어나온 창을 꼬나쥐며, 김건이 호흡을 내뱉었다.

아그니스는 땅에 박아 놓은 대검을 내버려 두고, 맨손 인채 가만히 서 있을 뿐인 자연체로 김건의 공격에 대비했다.

두 사람의 시선과 기세가 충돌했다.

“쉭─!”

김건은 기다리지 않았다.

전력을 다해 첫 수를 질러 낸다. 디딤 발이 꽂히며 전신에서 근육이 분출했다.

사량발천근을 통해 가속한 찌르기가 섬전이 되었다.

────!!

날아간 창끝이 대기의 벽을 돌파하며 부채꼴로 퍼져 나가는 하얀 수증기와 함께 날아갔다.

콰앙!!

날아간 건 창인데, 터져 나온 건 폭발음이었다.

움직임의 여파만으로도 터져 나온 충격파가 주변에 널려 있던 사물을 모조리 깨부수며 굉음을 울렸다.

“……!!”

원래는 일격에 이은 이격, 그리고 삼격의 콤비네이션으로 승부를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김건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그가 질러 낸 초음속의 창날이 정령의 두 손가락 사이에 끼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그니스가 웃었다.

“빠르군. 정확하고. 하지만 너무 정직해.”

그러면서 손가락에 힘을 주자, 단박에 부러진 창날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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