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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123화 (123/200)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123화

단순히 반응 속도로 막은 것이 아니다.

김건의 눈에는 보였다.

아그니스가 일부러 스스로의 능력을 제한하고 그저 예측과 정확한 힘으로 배분된 손짓만으로 초음속의 찌르기를 막아 냈다는 것이.

그저 몇 그램에 불과한 총알을 잡아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다.

김건의 체중과 사량발천근의 가속이 실린 창날은 포탄에 맞먹는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한마디로 아그니스는 보이지도 않는 속력으로 날아오는 대포알을, 손가락을 튕겨 막아 냈다는 것이다.

초격이 막혔다. 행동이 읽혔다.

그 말을 상대의 수읽기가 그만큼 뛰어나다는 증거.

하지만 아그니스는 여유를 보이느라 너무 쉽게 스스로의 실력을 드러내 보였다.

“흥.”

코웃음을 치며 창대를 내던지는 김건의 등에서 번개처럼 쌍검이 튀어나왔다.

그것을 낚아챈 두 손이 가속하며 부챗살처럼 퍼져 나가 아그니스를 향해 쇄도했다.

반응이 느린 일반인의 눈에는 잔영이 남아 마치 김건의 팔이 수십 개로 늘어나 보일 정도의 난검이었다.

손목과 팔꿈치의 회전을 이용해 수십 개의 허초를 섞어 날린 일합.

아무리 수 읽기가 뛰어나도 이만한 연타의 궤도를 모두 읽어 낼 수는 없…….

카가가가강!!

음속을 뛰어넘어가속한 아그니스의 양손이 잔상을 흩뿌리며 날아드는 칼날을 모조리 손등으로 쳐 냈다.

불꽃놀이처럼 퍼져 나가는 충격파. 그 사이로 새파란 마력을 담아 빛나고 있는 아그니스의 눈이 보였다.

김건이 이를 악물었다.

“이 자식……!”

아그니스는 여유롭게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기량 승부도 좋지만, 그건 힘이 모자랄 때나 하는 것이지.”

이번에는 초격을 막을 때와 달리 마력을 사용해 진짜로 반응 속도를 끌어올려 대응했다.

그렇게 상승한 아그니스의 감각이 대체 어디까지 대응할 수 있을지는 김건도 쉬이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

방금 전의 일합을 쳐 낸 것으로 보아, 못해도 놈의 눈에는 김건의 움직임 대부분이 슬로우 모션처럼 보일 것이라는 점이다.

“그럼 이쪽 차례인가.”

짧은 한마디를 남기며 아그니스가 발을 박찼다.

그의 몸을 태우는 화염이 꼬리를 늘이더니, 한순간에 김건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

소리를 지를 시간조차 없다.

완전히 감각의 한계를 벗어나 버렸다.

김건이 옆구리로 날아오는 주먹을 막아 낸 것은 그저 운이었다.

수백 번의 전투 경험이 만들어 낸 본능. 그것이 이끄는 대로 움직인 게 재수 좋게 맞았을 뿐이다.

주먹을 틀어막은 쌍검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며 그림자 갑옷과 버프로 둘러쳐 있는 옆구리에 파문이 퍼졌다.

날아가는 김건의 몸.

뒤늦게, 소리가 터졌다.

콰아아앙!

초고속의 움직임, 그리고 타격으로 만들어진 충격파가 굉음이 되어 주변을 모조리 찢어발겼다.

아그니스가 쳐 두었던 결계가 부서지고, 정면으로 충격파를 두들겨 맞은 저택 내부에 폭풍우가 발생.

견실하게 쌓아 올린 고급 저택의 벽면도 그 위력을 견디진 못했다.

움직임과 타격이 불러 온 잔향이 폭발이 되었다.

퍼어어엉!!

별장의 절반이 파편이 되어 비상했다.

* * *

늑대왕은 강했다.

초고수에 속하는 실력과 그가 가진 화신으로서의 능력은 상대하는 입장에서 거의 무적에 가깝다 봐도 좋았다.

하지만 세라스는, 그리고 티리온은 그런 무적에 가까운 적들과 몇 번이나 전투를 치러 왔다.

그렇기에 그들은 쉬이 무너지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버티며, 어떻게든 승기를 찾았다.

카가가가!!

티리온과 늑대왕이 맞붙었다.

쌍검과 두 팔이 교차하며 터져 나온 불똥이 휘날리는 꽃잎마냥 흐드러졌다.

‘확실히, 복잡한 마법을 사용할 때는 조금이나마 움직임이 둔해져!’

늑대왕은 티리온의 단분자 칼날을 막아 내기 위해 팔 부분에 일정 영역 내의 물체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강대한 척력을 발생시키고 있었다.

강력한 술식이긴 하지만 아직 숙련도가 떨어지는지, 기술을 사용할 때에 다른 부분에서의 집중력이 흐트러진다.

티리온은 그것을 노렸다.

그리고 마지막 힘을 다해 짜낸 단분자 칼날로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연타를 쏟아부었다.

늑대왕의 움직임을 봉하기 위해서.

티리온이 외쳤다.

“지금이야!”

세라스가 그 뜻에 호응했다.

늑대왕의 측면으로 이동. 그러고는 그녀가 가능한 최고의 속력으로 파산검 순을 쏟아 냈다.

한순간만 존재하는 황금색 거대 칼날이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늑대왕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

너무 빠르다.

늑대왕의 등줄기에 오한이 내달렸다.

장난치듯 싸우던 마음에 긴장이 감돌며 움직임이 예리해졌다.

순식간에 티리온의 공격을 튕겨 낸 뒤, 다급하게 팔을 움직여 세라스의 공격을 막았다.

쾅!

가까스로 방어에 성공.

아무리 빠르고 강력한 일격이라도, 단순 물리력만 담아서는 그의 마법 방어를 뚫을 수 없었다.

여유를 되찾은 늑대왕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뭐야? 별거 없…… “

그런 그의 뒤통수에 충격.

황금빛이 번쩍이며 그의 머리 반쪽을 훑고 지나갔다.

두 동강 난 두개골의 일부분이 허공에 떠오르고, 이내 몰려온 충격이 남은 두뇌와 머리 부분을 곤죽으로 만들며 피보라가 일었다.

“…….”

기린의 화신의 특성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늑대왕은 세포 재생 마법을 통한 부상의 회복은 가능하나 아수라나 벨제불의 화신처럼 무한에 가까운 생명력은 지니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 말인즉, 인지할 수 없는 공격으로 의식을 날려 버리면 얼마든지 죽이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머리의 반쪽을 잃은 신체가 부들부들 떨렸다.

온통 근육 덩어리인 늑대인간이 힘없이 몸을 미끄러트리며 무릎을 꿇었다.

“잡았어……!”

세라스가 숨을 토했다.

모든 힘을 소모한 티리온이 파랗게 질린 얼굴로 주저앉았다.

‘그 자식의 발상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

세라스는 덜덜 떨려 오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과거, 천변만화하는 오라를 사용해 싸웠던 마인을 떠올렸다.

경형중이라는 오라의 삼원칙 중, 형의 극의에 달했던 남자.

세라스는 오라의 형태에 치중했던 그의 발상을 그녀의 파산검에 접목했다.

파산검 자체가 시전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집중력을 소모하는 기술이었기에 아스타로트처럼 복잡한 형태 변환은 할 수 없었다.

오랜 기간 각고의 노력을 거쳐도, 생성하는 칼날의 중앙을 분할하고 연결 고리를 만들어 도리깨처럼 끝 부분이 원운동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한계였다.

늑대왕은 분명히 파산검을 막았다.

하지만 급하게 방어를 취하느라 지금까지와는 다른 파산검의 생김새에 신경 쓰지 못했고, 그 덕분에 충돌 이후, 연결 고리에 꺾여 뒤편에서 날아오는 칼날을 그대로 얻어맞고 말았다.

별것 아닌 변주.

하지만 그 별것 아닌 것을 실현하기 위한 세라스의 노력은 지금과 같은 결과로 보답을 받았다.

아니, 받은 것처럼 보였다.

무릎을 꿇었던 늑대인간이 움찔, 하고 어깨를 떨더니 반쪽만 남은 얼굴에서 눈알이 회전.

탈진해 있는 세라스와 티리온을 바라보았다.

피로 가득 찬 입에서 끔찍한 괴성이 흘러나왔다.

“……이, 벌레 같은 놈들이!”

머리의 절반이 날아갔어도 살아 있다니, 수인의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상식을 초월한 생명력이다.

새포 재생 마법이 시전되며 잘려 나간 머리의 단면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세라스와 티리온이 대응하려 했지만 그것보다 먼저 늑대왕의 등 뒤에 떠 있기만 하던 구슬이 진동했다.

우우웅!

그들과 늑대왕 사이의 공간이 휘었다.

공간 왜곡의 폭발이 두 사람을 날려 버렸다.

“크윽!”

가까스로 허공에서 자세를 잡는 두 사람.

하지만 늑대왕이 재생을 완료하는 데에는 그 잠깐의 시간으로 충분했다.

다시 한번 구슬이 몸을 떨었다.

초속으로 허공에 마법진이 짜이며, 그 안에서 거대한 불기둥이 뛰쳐나와 공중에 떠 있는 두 사람을 덮쳤다.

극대소멸공격. 플레어.

저것에 맞으면 뼈도 못 추린다.

세라스와 티리온은 다급하게 임시 질량을 분사한 추진력으로 그것을 회피. 동시에 지면에 내려앉았다.

하나 그 아래에는 이미 늑대왕이 온몸을 부풀린 채 도달해 있었다.

“뭣!”

“무슨……!”

거대 마법의 사출과 그다음 움직임 사이에 틈이 없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늑대왕의 움직임에 티리온과 세라스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카아앗!”

늑대왕이 팔을 휘둘렀다. 갑작스럽게 짜 올린 오라로는 그 손톱에 조각나지 않는 것이 한계.

제대로 충격을 흡수하지 못한 세라스와 티리온이 지면에 몸을 들이받았다.

“컥……!”

너무 제대로 맞아 버렸다. 충격을 받은 두 사람의 움직임이 일순 멈췄다.

그리고 덮쳐 온 2차 공격에 두 사람은 몸을 일으키기는커녕 방어 자세조차 취하지 못했다.

쿠우우웅-

강한 중력 영역이 발생. 수십 배의 중력이 그들을 찍어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크으으윽!”

어마어마한 중력에 압착당하며 신음을 흘리는 세라스와 티리온.

새파랗게 빛나는 두 눈이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오냐오냐해 줬더니 이 새끼들이 어딜 기어올라?”

늑대의 주둥이가 이를 벅벅 갈며 으르렁거린다.

늘어트린 양손에서 손톱이 들어갔다 나왔다 하며 신경질적인 살기가 뻗어 나왔다.

“둘 다 갈기갈기 찢어 주마. 너희들 시체를 어떻게 처리할지는 간이라도 씹어 먹으면서 생각하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늑대왕이 발을 앞으로 내디뎠을 때였다.

어느새 다가왔는지, 파이몬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갑주 차림의 여악마가 손을 휘젓자 마법이 해제되었다.

중력에 시달리던 세라스와 티리온이 헛숨을 토하며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쯧- 혀를 차는 늑대왕을 차가운 눈의 파이몬이 노려보았다.

“분명히 죽이지는 말라고 했을 텐데. 네놈도 죽이지는 않겠다고 하지 않았었나?”

“그건 아까 기분이 좋았을 때였고, 지금의 나는 기분이 매우 안 좋아. 저 새끼들이라도 찢어 죽이지 않으면 성이 안 풀리겠어.”

파이몬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그녀의 입에서 한심하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화신도 아닌 자들을 상대로 여의주까지 사용하고, 네놈한테는 자존심도 없나?”

“자존심? 그런 건 개나 주라고 해.”

파이몬의 질책에 늑대왕은 콧방귀를 뀌었다. 파이몬은 한숨을 쉬었다.

“아주 제멋대로군. 그러니까 네놈이 모두에게 무시받는 거다.”

경멸 어린 시선이 늑대왕을 향한다. 모욕을 당한 늑대왕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그 입 닥쳐.”

낮게 으르렁 거리며 경고하지만 파이몬은 더 이상 그의 말을 들어 줄 생각이 없었다.

“나약한 주제에, 명령도 들어 처먹지 않으니, 동료라고 생각할 수 없는 것도 당연하지.”

아름다운 입술이 독설을 쏟아 낸다. 빈정이 상한 늑대왕이 말했다.

“……그래, 너부터 죽고 싶다 이거지?”

세라스와 티리온을 향하던 살기가 방향을 바꿨다.

역전의 전사인 둘을 숨 막히게 하던 살기. 하지만 그것을 받은 파이몬은 그저 킥, 하고 웃었다.

“네가? 나를?”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한 얼굴. 그것 본 늑대왕이 폭발했다.

“이 건방진 년이!”

그의 온몸에서 근육이 터져 나오며 손톱이 가속했다.

중력 마법이 발을 잡아채며, 동시에 여의주가 발현한 플레어가 파이몬을 향해 뿜어졌다.

한순간에 쏟아진 초고위 공격의 동시 발생.

멀찍이서 그것을 지켜본 세라스의 얼굴이 하얗게 물들었다.

자신이 그것을 받아 냈다면, 방어는커녕 한순간에 불태워져 먼지가 되거나 손톱에 찢겨 산산조각으로 갈라졌을 것이라는 것이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이몬은 아무렇지도 않게 늑대왕의 공격을 마주했다.

몸을 찍어 누르는 중력을 무시하며 순식간에 발검. 두 날개가 펼쳐지고 악마의 몸이 휘몰아쳤다.

초열검 2식(焦熱劍 二式)

분다리가처(奔茶利迦處)

그야말로 폭풍 같은 검무(劍舞)였다.

쏘아져 나간 검이 불꽃을 베어 냈다.

채찍처럼 낭창거리는 날개의 철갑이 손톱을 부서트렸다.

길게 뻗어 나간 검과 두 날개가 회오리치며, 날아드는 공격을 모조리 찢어 버렸다.

콰아아앙!

폭음이 터지며 늑대왕이 피를 뿌리며 날아갔다.

수십 미터나 허공을 가로지른 그는 양팔이 잘리고 온몸이 난도질당해 쓰레기처럼 바닥을 굴렀다.

“기린의 힘에만 의존하는 쓰레기가. 정말 주제를 모르는군.”

차가운 말과 함께 파이몬은 검을 허리춤에 꽂아 넣었다.

그런 악마의 등을, 세라스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녀는 방금 전에 악마가 펼쳐 낸 검술의 본질을 알아보았다.

등줄기에 전율이 달렸다.

칼과 날개를 이용한 해괴한 검술.

하지만 그것은 그저 동작뿐만 아니라 온갖 마법적 운용까지 더해 불길마저 자르고 공간을 일그러트리는 위력을 보였다.

지금까지 인류가 쌓아 올린 단순 오라 기술로는 따라갈 수 없는 기술이다.

기초로 삼은 이론 자체가 차원이 달랐다.

세라스가 아는 오라 기술은 아무리 잘 다뤄 봐야 기껏해야 더 날카롭고, 강한 칼날을 더 잘 휘두르는 것이 다였다.

그것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불 같은 무형체를 자르거나 극대소멸과도 같은 효과를 낼 수는 없었다.

그녀가 아는 한, 악마가 보인 기술에 견줄 만한 격을 갖춘 것은 기존 오라 기술과는 궤를 달리하는 김건의 미극공진동 뿐이었다.

“…….”

화신 중에서도 강한 축으로 여겨지는 늑대인간.

그런 늑대인간을 일수에 깨부술 수 있는 악마.

그게 끝이 아니다.

세라스의 감각으로, 그녀가 맨 처음 마주했던 화염의 기사는 악마보다도 훨씬 더 강했다.

그녀의 얼굴에 암운이 드리웠다.

‘대체…… 어떻게…….’

이 들은 각각이 무시무시할 정도로 강할 뿐만 아니라 수천 수만의 군대까지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승산이 없다는 말은 몇 번이나 들었다. 하지만 남에게 듣는 것과 스스로가 직접 체감하는 것은 그 무게가 달랐다.

세라스는 지금에 와서야 처음으로 그것을 실감했다.

이번 일은 정말로, 이겨 낼 도리가 없다고.

그것과 동시에 얌전히 있는 줄 알았던 별장이 갑작스럽게 폭발했다.

그 안에서 뛰쳐나온 김건이 낙법을 치며 바닥을 굴렀다.

그림자 갑옷도, 버프도 없는 맨몸.

이미 심한 내상을 입었는지 입에서는 검은 피를 쏟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김건의 눈은 살아 있었다.

강철의 의지로 빛나는 눈이 앙상하게 잔해만 남은 별장을 바라보았다.

자연스레 그 끝을 따라가는 세라스의 시선.

그런 세라스의 눈에, 온몸에서 열기를 피워 올리는 화염의 기사가 걸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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