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135화
검이 다시금 엮이는 순간, 아그니스는 손잡이를 쥔 김건의 그립이 불안정하다는 것을 감지했다.
곧장 손목을 튕기자, 김건의 손에서 대검이 튕겨져 날아갔다.
“……!!”
완벽한 무방비 상태가 된 김건의 몸을 향해 쇄도하는 보석의 칼날.
아그니스의 일격이, 김건의 어깨 위로 처박혔다.
쾅!
터져 나오는 불꽃, 보석검이 갑주를 찌그러트리고, 슈츠의 안쪽으로부터 충격으로 빠져나온 전선과 파열된 금속의 조각이 불싸라기처럼 튀었다.
아그니스의 눈이 꿈틀거렸다.
“……음!”
성공적으로 적중한 일격.
하지만 그의 검은 김건의 상체를 가르지는 못했다.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며 충격을 흡수한 김건이, 슈츠의 방어력으로 공격을 받아 낸 것이다.
공격이 들어오는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행동이 아니다.
미리 준비해서 성공시킨 묘기.
아그니스는 김건이 일부러 공격을 몸으로 받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무엇을 하겠다는 건가.
의도를 알 수가 없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
김건이 삐그덕거리는 슈츠의 한쪽 팔을 움직여 대검을 붙들었다. 슈츠에 박힌 대검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려는 모양이다만, 소용없었다.
빠져나가는 게 아니라, 뚫고 지나가면 되니까.
아그니스는 김건의 돌발 행동에 휘둘리지 않았다.
실수든, 따로 노리는 수가 있든 상관없다.
그가 느끼기에, 김건은 이미 외통수에 걸렸다.
아그니스가 알고 있는 그 어떤 수로도, 김건이 이 상황에서 몸이 두 조각 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남은 것은 그저 결정된 미래를 현재에 펼쳐 내보이기만 하면 된다.
아그니스의 양손에 힘이 들어갔다.
앞으로 내딛는 발. 체중을 기울이며, 칼날을 미끄러트려 그대로 김건의 동체를 가르려는 찰나.
따아앙!
김건의 주먹이 몸에 박힌 보석검의 옆면을 때렸다.
종처럼 선명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칼날을 밀어붙이던 아그니스의 머리에 일순 떠오르는 생각.
‘바보 같으니, 그런 체중도 실리지 않은 공격으로 이 검을 부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그리고 또 하나.
‘아니, 그런 무의미한 짓을 할까? 이 남자가?’
행동에 제동을 거는 미묘한 판단의 비틀림.
그것이 아그니스의 손끝을 둔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쩌어어엉!
검이 비명을 질렀다. 갑작스럽게 균열이 번지더니, 지금까지의 결투에도 흠집 하나 없던 보석검이 와사사삭 소리를 내며 허공에서 무너졌다.
“……!!”
경악한 아그니스가 눈을 치켜떴다.
그는 단번에 깨달았다.
김건이 검신을 때려 만들어 낸 충격으로 진동을 생성. 그리고 그것을 이용한 공진 주파수로 그의 검을 부숴 버렸다는 것을.
말도 안 되는 기술이다.
오라로 통제한 것도 아니고, 주먹으로 만들어 낸 충격을 이 정도까지 컨트롤하다니!
수많은 차원을 거치고, 회귀까지 한 아그니스마저 그 순간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철벽같던 아그니스의 기세가 흐트러진다.
그것을 노린 김건의 눈이 불타올랐다.
슈츠의 모든 기능을 해제.
카아아아아!!
노심이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고,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 순간적으로 급격하게 출력을 끌어올리는 오버 부스트가 터져 나왔다.
그는 오늘,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최속의 속도로, 아그니스의 안쪽을 향해 파고들었다.
검은 섬광이 되어 날아가는 김건.
마지막까지 온존해 두었던 팔뚝의 역수검으로 광물로 만들어진 아그니스의 심장을 노린다.
그야말로 모든 것을 내건 일수.
그것을 직면한 정령의 눈이 번뜩였다.
“카앗!”
처음으로 토해진 기합.
화염이 넘실거리는 팔이 번개처럼 움직이고, 불똥이 튀었다.
카강!
토해지는 금속성. 부러진 역수검이 허공으로 날아오르고, 그저 평범한 팔꿈치 치기가 된 김건의 몸이 가로막혔다.
양팔을 교차시켜 질러 들어오는 칼날을 캐치. 그대로 힘을 줘 손상된 날을 박살 내 버렸다.
날아오는 칼날을, 손으로 붙잡아 부러트리는 신기.
아그니스는, 그 와중에도 기지를 발휘해 공격을 막아 낸 것이다.
거세게 부딪힌 아그니스와 김건이 서로 튕겨져 나갔다.
아그니스는 순식간에 중심을 다시 잡고 주먹을 쥐었다.
정령의 입에서 한숨처럼 흘러나오는 불꽃.
방금 김건이 보인 한 수에 아그니스는 눈앞이 아찔해지는 경험을 했다.
이게 대체 얼마만의 일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오래전에 굳어 버린 줄 알았던 심장이 쾅쾅 뛰고, 온몸에서 흘러나온 체액이 그의 몸에 붙은 불에 기화되어 수증기를 피워 올렸다.
‘정말 대단한 자다.’
지금까지 수천 년에 가까운 세월을 살고 수십 수백 개의 차원을 건너 수많은 전사들을 만나 왔다.
하지만 아그니스에게 경외심을 품게 만든 자는 오로지 김건 한 명뿐이었다.
김건은 잘 싸웠다.
그의 패인은 오로지 하나.
그와 맞붙은 상대가 아그니스였다는 것뿐이다.
아그니스는 김건에게 감사했다.
그가 있었기에 다시 한번 기회를 쥘 수 있었고, 그가 있었기에 부하들의 무능함을 깨달았으며, 그가 있었기에 더 강해진 자신을 인지할 수 있었다.
그러니, 마지막은 고통 없이 보내 주겠다.
장전되는 아그니스의 주먹. 그의 몸을 태우던 화염이 증폭하며 후방으로 압력을 생성.
한순간에 아그니스의 몸이 가속하며 번개와도 같은 스트레이트가 김건의 머리를 향해 쏘아졌다.
그리고 김건은,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았다.
눈앞에 펼쳐진 인터페이스 전부가 새빨갛게 물들고, 슈츠가 경고음을 띄우며 앞에서는 아그니스의 주먹이 날아오고 있는데도 흐려진 눈을 끔뻑이는 것이 전부다.
절망에 빠진 것도, 자신의 일격을 막아 낸 아그니스의 실력에 아연해진 것도 아니다.
머리가 잘 작동하지 않았다. 방금 전에 짜낸 집중력이 마지막이었던 건지, 계속된 뇌의 부하로 생긴 후유증이 계속해서 덮쳐 오고 있었다.
1초에도 몇 번씩 의식이 끊어졌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하고, 눈앞이 흐려져 사물을 분간할 수 없었다.
귀에 들리는 것은 그저 이명뿐이고, 촉감은 극도로 둔하며 균형 감각조차 희미해 지금 자신이 서 있는지, 바닥에 누워 있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그가 깨달은 것은 딱 하나.
지금 날아오고 있는 아그니스의 주먹. 그것을 맞으면 자신을 죽으리라는 것뿐이다.
어둠이 내려앉았다.
어느새 펼쳐진 검은 늪이 그의 전신을 감싸고 있었다.
팔도, 다리도 움직이지 않는다. 아니, 그 이전에 뭘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걸로 끝인가.
이걸로 쉴 수 있는 건가.
막연히 떠오르는 생각. 그리고 그것에 매몰되어 모든 것을 잊어버리기 직전에,
한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눈앞을 어른거리는 푸른빛.
아아, 보지 않아도 보인다.
울고 있겠지.
꼴사나운 얼굴로 발버둥 치며 소리치고 있을 거다.
이런 때에는 약한 사람이니까.
그러나 알고 있다.
아무리 추하고, 아무리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도, 결국에는 일어나는 불굴의 의지를 지닌 사람이라는 것을.
그러니까 지켜 줄게.
걱정하지 마.
나는 아직 부러지지 않았으니까.
“……!”
벼락 치듯이 김건의 의식이 돌아왔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아그니스의 주먹은 이미 투구를 짓뭉개고 그의 머리를 파괴하기 위해 다가오고 있었다.
지금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은 하나뿐이었다.
아그니스의 일격이 얼굴에 처박혔다.
하지만 그 충격을, 끌어들인다.
머리를 파괴할 일격을 몸으로 흘린다.
그렇게 흘린 위력을 온몸의 근육, 그리고 슈츠의 강도와 연성을 모조리 사용해 흡수하고, 붙잡는다.
그리고 그것이 몸을 파괴하기 전에, 든다. 들어 올린다. 그리고 옮긴다!
건곤대나이(乾坤大挪移).
하늘과 땅을 들어 올린다는 의미의 기술이 펼쳐지며 아그니스가 내지른 일격의 위력을 모조리 흡수한 김건이 주먹을 쥐었다.
“아아아아아아!!”
비명 같은 기합소리와 함께 내질러지는 주먹.
김건의 힘까지 얹어져, 더욱 강해진 위력이 아그니스에게로 돌아갔다.
그리고 아그니스는, 반대쪽 팔을 들어 올려 그 주먹을 튕겨 냈다.
파앙!
공기가 터져 나가며 두 사람이 떨어진다.
김건은 힘이 다했다. 아니, 오히려 지금까지 서 있는 것이 기적이다.
건곤대나이를 이용해 아그니스의 공격을 흘렸지만, 아무리 고도의 기술이라도 공격을 완벽하게 무효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부서진 슈츠의 투구가 후드득 떨어지고, 그 안쪽으로 보이는 얼굴은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양 눈과 귀에서 피가 흐르고, 부러진 이빨의 조각이 입안에 고인 침과 피를 타고 흘러나왔다.
반면 아그니스는 아직도 멀쩡했다.
기세를 타 인생에 다시는 없을 기량을 뽐내도, 영혼을 불태워 순간적인 기지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기술을 성공시켰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었다.
그 정도로 아그니스와 김건 사이에 놓인 벽은 높았다.
공격을 막아 낸 팔이 떨려 온다. 아그니스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그저 경탄을 토했다.
“소름이 끼치는군. 그 와중에도 반격을 하…….”
문득 멎는 말.
뭔가 이상을 느낀 아그니스가 자신의 가슴을 바라보았다.
퍽.
난데없이 안쪽으로 파이는 갑옷. 그리고 아그니스가 토해 낸 체액은, 수은과도 비슷한 은빛이었다.
아그니스는 깨달았다.
지금 이 순간, 그의 심장이 파괴되었음을.
김건이 날린 것은 그저 평범한 주먹이 아니었다.
그 끝에 담긴 미극공진동의 묘리가, 아그니스의 팔을 뚫고, 어깨를 넘어 가슴으로 타고 들어가, 그의 심장을 파괴한 것이다.
살짝만 만져도 치명적인 기능 저하를 일으키는 인간의 심장도 아니다.
보석으로 이루어진 규소 생명체의 강도 높은 심장이다.
그럼 그것을 손가락 하나 대지 않고 파괴하려면 무슨 짓을 해야 하는 것인가.
김건은 건곤대나이로 받아 낸 힘을, 충파권의 원리로 찔러 넣고 공명권의 공진 주파수를 이용해 심장을 부서트린 것이다.
아무런 마력의 도움도 받지 않고.
아그니스의 동공이 확장한다.
김건과 마주했던 첫 번째 전투에서 벌였던 진동 대결 때문에 김건이 아그니스의 심장을 파괴할 주파수를 익혔다는 건 안다.
김건의 기술이 기본적으로는 마력이라는 것이 없을 시절부터 개발된 것이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것을 안다고 해서 이런 일이 가능할 것이라 그 누가 예상할 수 있단 말인가.
인리를 넘어선 일이다.
확률상 불가능은 아니나, 사실상 불가능인 영역.
그러나 김건은 그것을 현실에 구현해 보였다.
“이, 무슨…….”
믿을 수 없다.
삼계를 통일할 자신이, 모든 것의 위에 군림할 자신이 이렇게 스러진다니.
이건 신의 장난이다.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다.
제멋대로 운명을 조작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필멸자의 모든 것을 무(無)로 바꿔 버리는 신의 심술이다.
차원의 제일가는 전사.
모든 것을 자신의 아래로 알며, 언젠가는 신의 자리까지 노리겠다고 호언장담하던 학살자도, 죽을 때 보이는 모습은 일개 범부와 다를 바가 없었다.
“개 같은…….”
마음속 깊숙이 신을 저주하며, 아그니스가 지면에 몸을 뉘었다.
그가 쓰러지며 난 소리가 드넓은 분지에 울려 퍼졌다.
결국 모든 화신을 죽이는 데에 성공했다.
그것을 감지한 김건은 거친 숨을 내뱉으며 몸을 가다듬었다.
고개를 돌려 보지만 아무것도 안 보인다. 아그니스의 일격을 흘리면서 남은 충격이 시신경을 파괴한 듯했다.
새카만 어둠을 헤매며, 김건이 부르짖었다.
“한서리!!”
철그럭, 철그럭, 슈츠에서 에너지가 빠져나가며 다리가 무거워졌다.
평소 같았더라면, 눈이 보이지 않아도 다른 감각으로 쉬이 그녀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을 테지만 누적된 피해 와 뇌의 부하가 심했다. 점차 눈을 제외한 다른 오감도 지워져 가고 있었다.
장님이 된 김건이 손을 휘저으며 비틀비틀 움직인다.
“한서리! 어디 있어!!”
한서리가 비명을 질렀다.
“……!!”
있는 힘껏 악을 써 보지만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는다.
그녀를 구속한 금속덩어리는 주변의 모든 마력이 녹아내린 지금에도 기능을 유지하며 팔다리를 휘감고, 입을 막고 있었다.
미친 듯이 한서리가 몸부림쳤다.
그이가 나를 찾는데.
저렇게나, 안타까운 모습으로 내 이름을 부르짖는데.
달려갈 수가 없다. 그 부름에 대답해 줄 수도 없다.
할 수만 있다면 팔다리를 잘라 내 버리고 싶었다. 지금 그이에게 갈수만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 수 있을 것 같았다.
주변에 뿜어진 반마력이 구속의 힘을 어느 정도는 약하게 만든 모양이다.
한쪽 팔이 부러지고 발목의 관절이 빠질 정도로 격하게 발버둥을 치자 한서리를 세우고 있던 기둥이 부러지며 그녀가 지면에 쓰러졌다.
고개가 땅에 닿자 한서리는 턱을 내리쳤다. 입을 막고 있는 금속을 벗겨 내기 위해, 정신이 나갈 정도로 입가를 바닥에 내리꽂았다. 순식간에 입안이 피로 가득 차고, 그것이 역류해 코로 흘러나왔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고통 따윈 없었다.
아니, 지금 남편에게 달려 나가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고통이다.
온몸이 불태워져도 이것보다 고통스럽진 않을 것 같았다.
콰드득!
이내, 입가를 가로막던 금속의 구속구가 부러져 나갔다. 입으로 밀고 들어온 금속의 파편과, 뭉친 핏덩이를 내뱉으며 마침내, 한서리가 외쳤다.
“나 여기 있어!!”
김건은 그렇게 한서리가 몇 번이나 부르짖어서야, 겨우 그녀의 위치를 찾았다.
어떻게 걸을 수 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비틀거리며 다가와서는, 손을 더듬어 한서리의 팔다리를 묶고 있던 구속을 부숴 버렸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슈츠의 가동 시간이 종료.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슈츠를 입은 김건이 무릎을 꿇고 늘어졌다.
“아아, 이렇게나 다쳐서는……!”
한서리는 곧바로 몸을 일으켜 부서진 투구 사이로 드러난 김건의 상태를 확인했다.
슈츠의 상태로 보아 다른 외상은 괜찮다. 치명상이 될 부분은 보이지 않았다.
문제는, 뇌의 상해.
머리가 하얗게 셌고, 얼굴의 모든 구멍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다.
지속적인 경련, 입을 뻐끔거리며 말도 제대로 못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뇌출혈이 있을지도 몰랐다.
혹 그렇다면, 이대로 시간이 지날 경우, 다른 곳이 멀쩡해도 뇌가 기능을 멈춰 사망한다.
김건에게는 지금 당장 치료가 필요했다.
조치만 취하면, 살 수 있는 상태다.
주변을 둘러보는 한서리.
하지만 주변에는 그 어떤 의료 시설도, 도구도 없었다.
마력만 사용할 수 있다면, 치료 마법을 사용하든, 순간 이동으로 의료 시설로 데려가든, 뭐라도 할 텐데.
김건이 뿜어낸 반마력은 슈츠의 노심이 꺼진 지금도 옅은 안개처럼 남아 마력을 지워 내고 있었다.
사실상, 방법이 없었다.
빠드드득!
한서리가 이를 악물었다. 혀를 깨물며 부르짖었다.
“포기하지 마! 한서리!”
이이가 지켜 줬잖아!
네년 대신 혼자서 모든 것을 처리해 줬잖아!
그렇다면 뒤처리라도 똑바로 해!
사람이라면, 네가 양심이라는 게 있다면, 받은 만큼 값을 해!
그녀는 곧장 슈츠의 해제를 시도했다.
구조는 바랄 수 없다. 그러니 김건을 둘러업고 반마력의 범위를 벗어난다.
그러면 회복 마법으로 부서진 몸을 수복할 수 있다, 후유증이야 남겠지만, 그렇게 다친 머리만 고쳐 주면 어떻게든…….
그런 아내를, 김건은 조용히 바라보았다.
시야가 없어, 그 모습이 정확히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내가 그를 살리기 위해 애를 쓰고 있을 거라는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김건은 입을 열었다.
“아, 아.”
하지만 말이 이어져 나오지를 않았다. 혀가, 그리고 턱이 마음대로 움직이질 않는다.
몸이 점점 통제를 벗어나고 있었다. 감각은 이미 없어졌다. 그저 진득한 둔통만이 그의 전신을 사로잡고 있었다.
김건은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그가 앞으로 내뱉을 수 있는 건 오직 한마디뿐이라는 것을.
사랑해, 미안해, 고마워.
수많은 말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이것이었다.
“봤지?”
내가 얼마나 강한지. 그런 나를 만들어 준 당신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러니까 울지 마.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살아가.
그 말을 들은 한서리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봤어, 봤으니까! 더 이상 말하지 마! 조금이라도 힘을 아껴…….”
미친 듯이 소리치는 한서리. 그런 그녀의 시선에,
툭, 하고, 남편의 고개가 꺾이는 것이 보였다.
오한이 전신을 달렸다.
공포에 잠긴 목소리로, 한서리가 물었다.
“자기야……?”
되돌아오는 답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