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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136화 (136/200)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136화

“헉!”

정신을 차린 알리시아는 기겁을 하며 숨을 토했다.

분명히 김건을 보내 줄 때까지는 의식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엔가 정신이 날아가 버렸다.

‘설마, 그대로 죽어 버렸나?’

영혼의 존재따윈 안 믿는다. 하지만 지금은 워낙 경황이 없었다.

자신이 귀신이라도 된게 아닌가 싶어서 저도 모르게 목으로 손을 가져갔다.

갑주를 입고 있어 초감으로 상처를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목울대가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그다음에 시선을 향한 것은 배.

사정 보지 않고 찢어 버렸기 때문에 치명상이라고 할 만한 상처가 났었다.

붕대로 둘둘 말려 있는 복부가 보였다. 일반적인 천쪼가리는 아닌지, 상당히 강한 마력이 느껴졌고, 그 옆에는 배갑이 찢어진 갑주가 놓여 있었다.

“정신이 들었나?”

텔레파시가 뒤섞인 말소리가 들렸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상대에게 사용되는 기술.

고개를 들어 보니 육중한 갑옷덩어리가 바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있었다.

김건을 안내했었던 그린스킨이다. 알리시아는 마찬가지로 텔레파시를 섞어서 말했다.

“그래…… 그쪽이 치료해 준건가?”

그린스킨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린의 주박에 잘도 버티더군. 계약으로 내려진 명령에 그 정도까지 저항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아.”

침착한 말소리.

그린스킨은 개체간 지능의 편차가 심한 종족이다.

평균적인 지능은 낮다고 한다. 하지만 뛰어난 몇몇은 때로는 용족에도 비견될 만한 지혜를 가지고 있다고 적힌 기록을 본 적이 있었다.

알리시아는 눈앞의 그린스킨이 그중에서도 꽤 높은 직위를 가진 인물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그들은 서로 적이지만, 그건 전장에서의 이야기일 뿐이다.

명령만 아니라면, 서로를 적대해야 할 이유도 없다.

상대가 먼저 베푼 호의에 알리시아는 경계심이 많이 누그러졌다. 그녀는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내가 정신을 잃은지 얼마나 지났지?”

“십 분쯤 지났다. 치명상이었는데, 마법의 도움이 있었다해도 벌써 일어나다니. 용족은 그 상태에서도 체력이 좋은가 보군.”

“회복력은 그렇지. 오히려 본체일때 얻은 상처는 잘 안 나아. 회복하는 데 많은 힘이 필요하거든.”

“…….”

물끄러미 알리시아를 바라보는 그린스킨.

그 반응에 알리시아는 자신이 실수를 했다는 걸 깨달았다.

적에게 동족의 정보를 알려 주다니, 싸움터에 끼는 전사가 할 짓이 아니다.

그녀는 그간의 나른한 생활로 자신이 녹슬었다는 걸 깨달았다.

‘멍청이!’

알리시아는 스스로의 뺨을 거세게 치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때, 그린스킨이 먼저 입을 열었다.

“주변에서 병력을 물리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알리시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병력을 물려? 왜?”

“정확히는 모른다. 나도 제대로 들은 건 없으니까. 하지만 추측컨대…… 아마도 그 김건이라는 자의 능력을 경계하는 것이겠지.”

경계할 김건의 능력. 아마도 ‘그 기술‘에 대한 것일 터였다.

상대의 철저한 대처에 알리시아는 이를 악물었다.

그린스킨이 말을 이었다.

“아마도, 이 전쟁은 곧 끝나게 될 거다. 이 세계의 화신, 그리고 왠지는 모르겠지만 특별히 관리하라고 명령이 내려진 인간 한 명. 이번 전쟁의 목적으로 보이는 그 둘이 모두 갔으니, 어떻게든 결판이 나겠지.”

전쟁이 끝난다. 그 말은 즉, 이제 그들은 적이 아니라는 의미.

그러니까 방금 전의 실수는 아무것도 아니다.

알리시아는 눈앞의 그린스킨이 상당한 배려심을 발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마음이 편해지지는 않았다.

그가 한 말에 바로, 화신들에게 향한 김건과 한서리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 두 사람은 과연, 운명을 바꿨을까.

아니면, 그것에 잡아먹혔을까.

가슴속이 울렁거린다. 두 사람이 걱정되어서 참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그녀가 도울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마음이 심란해진 알리시아가 속으로 발을 구르고 있을 때였다.

문득, 바람이 불었다.

그리고 그린스킨의 투구 가운데에 붙어 있던 날개깃이, 톡 소리를 내며 부러져 버렸다.

그 순간, 바위처럼 앉아 있던 그린스킨이 번쩍 몸을 일으켰다.

그는 김건이 날아간 분지 방향을 쳐다보았다.

“뭐야? 갑자기?”

의아해진 알리시아가 묻는다. 그린스킨의 입에서 신음과도 같은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부족장이 죽었다.”

“부족장?”

“우리 종족을 권속으로 다루는 화신 말이다.”

“뭐? 그걸 어떻게 아는데?”

그린스킨은 손가락을 들어 투구에 붙어 있는 부러진 깃을 가리켰다.

“이건 부족장이 내게 하사한 깃털이지. 단순한 장식이 아니야. 주술의 힘이 깃들어 있어 내가 더욱 강한 힘을 낼 수 있게 해 준다. 그런데 이게 스스로 부러졌다는 건…….”

침착을 유지하던 그린스킨이 침을 삼킨다. 그는 이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주술을 건 대상자가 죽었다는 거지.”

“…….”

침묵이 흐른다. 알리시아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설마 김건이?’

화신들에게로 향한 김건이 무언가를 할 거라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막연한 기대였을 뿐, 구체적으로 그가 할 행동을 상상한 건 아니다.

알리시아가 고민에 빠져 있을 때, 그린스킨이 움직였다.

“보통 일이 아니군. 가서 확인을 해 봐야겠어.”

그러면서 그는 주변의 그린스킨들이 모두 철수한 가운데, 그가 탈 용도로 남겨 놓은 와이번을 향해 걸어갔다. 단숨에 그 등위에 올라타고 고삐를 잡는다.

그런 와이번의 옆에 알리시아가 다가왔다. 그녀는 반용의 형태로 변신해 날개를 뽑아냈다.

그린스킨이 묻는다.

“같이 갈 생각인가?”

반쯤 비늘로 뒤덮인 알리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위험하다. 화신끼리의 전투가 벌어진 것일 수도 있어. 나야 내 부족장의 일이니 어쩔 수 없지만, 어쩌면 가서 죽을지도 모른다.”

“너만 그런 게 아니야. 내 주인도 그곳에 있어. 죽으러 들어간 거나 마찬가지지만…… 어쩌면 뭔가 상황이 바뀌어서 내 도움을 필요로하고 있을지도 몰라. 그러니 가야 해.”

“좋다. 그러면 따라와라.”

와이번이 날았다. 알리시아 역시 날개를 펼쳐 그 뒤를 쫓아갔다.

비행을 했을 때의 기준이긴 하나, 그들이 목표로 하는 화신들의 회의실이자 알현실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와이번을 조종하던 그린스킨이 손가락을 뻗어 아래쪽에 내려다보이는 산맥의 분지를 가리켰다.

“저쪽이다. 일단 화신끼리 전투가 일어난 것처럼 보이진 않는군.”

화신끼리 전투가 일어났다면, 굳이 가리킬 필요도 없이 주변이 초토화되어 있었을 터.

하지만 상공에서 본 분지는 조용했다. 다만, 정체를 알 수 없는 붉은 안개 같은 것이 빛을 반사하며 반짝이고 있을 뿐이다.

두 사람이 하강을 시작하려 할 때였다.

“카르륵!?”

“음!?”

갑자기 와이번이 괴성을 토해 내더니, 크게 동체가 흔들렸다. 그 위에 올라탄 그린스킨이 신음성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건 옆에서 같이 날던 알리시아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갑자기 무거워진 날개를 퍼덕이며 외쳤다.

“뭐야? 갑자기 몸이 무거운데!?”

반사적으로 마력을 끌어올리는 두 사람.

하지만 웬걸, 마력이 움직이질 않았다. 두 비행체가 공중에서 중심을 못잡고 흔들렸다.

와이번이든, 용인이든, 그들이 자유롭게 하늘을 날 수 있는 것은 마력의 힘으로 무게를 경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날개의 양력만 가지고 날기에는 둘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다.

그린스킨이 소리쳤다.

“마력을 사용할 수 없다! 날개를 펼쳐서 활강해!”

그 말이 끝나기 전에, 이미 알리시아는 그렇게 하고 있었다. 그녀는 날개를 한계까지 펼친 뒤, 공중을 크게 선회하며 천천히 지면으로 내려앉았다.

반면 그린스킨은 꽤 고생을 했다. 당황한 와이번이 발버둥을 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침착하게 고삐를 쥐고 와이번을 달래, 어떻게든 지면에 착지하는 데에 성공했다.

그렇게 분지에 내려앉은 두 사람.

그런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바닥에 아무렇게 널브러져 있는 여섯 구의 시체였다.

그것을 본 그린스킨이 숨 막히는 소리를 냈다. 그 반응으로 시체들의 정체를 파악한 알리시아가 물었다.

“이봐, 설마…… 여기 죽어 있는 게…… 전부 화신은 아니지?”

“아니, 이들 모두가 화신이 맞아.”

“……!!”

분지에 펼쳐져 있는 붉은 기운.

반마력이라고 했던가, 마력을 없앨 수 있는 그 힘이 있다면 그 강대한 화신이라해도 별다른 힘을 쓰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고, 알리시아가 아는 한 그 힘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다.

그녀는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김건, 이 미친놈이……! 정말……!”

설마하니 여섯 명의 화신을 혼자서 다 죽여 버렸을 줄이야.

그녀 자신은, 아니, 화신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상상조차 하지 못할 결과였다.

그야말로 기적.

아니, 그 자체를 신화로 삼아도 될 만한 위업이다.

‘그런데…… 김건은 어디 있지? 팀장님은?’

알리시아가 김건과 한서리의 흔적을 찾는 동안, 그린스킨은 화신들의 시체를 확인했다.

먼저 그가 따르는 부족장의 시체를 확인.

깨끗하게 목이 잘린 것을 보고는 아그니스, 파이몬, 타타리고를 거쳐 시체에 남은 흔적들을 확인한다.

그러고는 대부분의 상흔이 한 가지 무기, 그리고 한 사람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주변을 훑던 그린스킨의 눈이 멈춘 것은 아그니스의 왕좌 근처에 주저앉아 있는 한 강철덩어리였다.

“…….”

가까이 다가가 살펴본다.

검은 금속으로 이루어진 갑옷.

그는 인간들의 기술에 대해서는 자세히 할지 못했지만 지금까지 있어 왔던 많은 차원의 정벌 경험으로 그것이 착용에게 힘을 부여해 주는 일종의 기계라는 것을 깨달았다.

기계의 내부는 비어 있었다.

그리고, 주변에 많은 핏방울이 떨어져 있었다.

“이쪽으로 핏자국이 이어지고 있군.”

마침 김건과 한서리의 행방을 찾던 알리시아가 그것을 발견했다. 그린스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 핏자국을 쫓으려 했다.

문득 알리시아가 손을 뻗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잠깐, 이 앞으로는 나 혼자 가지. 넌 쫓아오지 마라.”

여차하면 싸울 기세인지 허리춤의 검을 붙잡는 알리시아.

그린스킨은 단번에 그녀의 의도를 깨닫고 말했다.

“……복수를 할 생각으로 따라가는 건 아니다. 침략을 한 건 이쪽이니, 죽임을 당하더라도 딱히 억울할 것은 없지. 죽은 부족장도 딱히 복수 같은 걸 원하지는 않을 거다.”

“그렇다 하더라도 따라갈 이유는 없지 않나?”

“아니, 있다. 어쩌면…… 부족장이 가지고 있던 기린의 계약을, 다른 화신이 가져갔을 수도 있으니까.”

“…….”

침착한 그린스킨의 눈을 본 알리시아는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지는 않다고 판단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린스킨과 같이 핏방울의 흔적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핏방울은 분지를 벗어나 산을 타고 숲 속 깊숙한 곳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분지를 벗어나기 전, 알리시아가 말했다.

“저건 저대로 내버려 둬도 괜찮은 건가?”

화신들의 시체와 함께 널브러져 있는 여의주를 가리키며 묻는다. 그린스킨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을 거다. 어차피 화신이 아니고는 여의주를 다루지도 못해.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파괴도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들었으니, 별문제 없을 거라고 본다.”

“좋아. 그럼 일단 가자고.”

마력을 사용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달려서 쫓아갈 수밖에 없다.

계속해서 떨어져 있는 핏방울.

그것은 상당히 길게 이어졌다. 중간중간 멈춰 서서 그것과 나란히 놓여 있는 발자국을 살피며 그린스킨이 말했다.

“보폭도, 발자국도 작군. 이동하고 있는 건 아무래도 네 주인인 인간여자인 것 같다. 간간이 뭔가를 끈 자국이 남아 있는 걸로 봐서는 그 여자가 김건이라는 자를 둘러업고 움직이는 것 같군.”

그러면서 그린스킨이 혀를 내두른다.

“다리가 부러진 상태에서 움직이고 있어. 그런데도 속도가 줄지 않아.”

알리시아의 이마가 찌푸려졌다.

“다리가 부러졌다고?”

“그래, 보폭도 일정하지 않고, 드문드문 찍혀 있는 걸로 봐서는 한쪽 다리로 절뚝거리면서 움직이고 있어. 부러졌거나, 혹은 그에 상응하는 부상을 입었다고 보는 게 좋겠지.”

“…….”

“그렇게 안보였는데, 인간들의 체력은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것 같군.”

그린스킨은 그렇게 감탄했지만 알리시아는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다.

그녀는 한서리를 안다.

체구가 작고, 선이 가느다란 여성.

게다가 영웅에서 은퇴한 후 사무만 하며 살았기 때문에 체력도 변변한 것이 못된다.

그런 사람이, 성인 남성을 둘러업은 채, 부러진 다리로 이동을 거듭하고 있다.

그것도 거의 달리는 것에 가까운 속도로.

대체 얼마나 강력한 의지가 있어야 그런 것이 가능한가.

대체 얼마나, 다급한 상황이기에 그 정도 힘을 짜낼 수 있나.

마음이 초조해진다. 알리시아는 이를 악물었다.

“……가지. 시간이 없다.”

그녀는 바로 발을 박차고 달려 나갔다. 그린스킨 역시 그녀의 마음을 눈치챈듯, 군말하지 않고 철컥거리는 소리를 내며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의 추적은 몇 킬로미터에 걸쳐서 이어졌다.

지속 시간이 떨어진건지, 아니면 거리가 벌어져서인지.

점차 주변의 반마력이 사라져 가고, 슬슬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마력이 회복되어 간다고 생각이 될 즈음, 갑자기 멀찍이서 강력한 신력이 그들의 피부를 찔렀다.

“……!!”

놀란 둘은 곧장 신격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그들은 곧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한 여자의 뒷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은빛 머리카락이 신격에 의해 휘날리고 있었다.

“팀장님!!”

한서리를 발견한 알리시아가 달려 나갔다. 그녀는 순식간에 그린스킨을 앞질러, 한서리의 앞에 도달했다.

한서리의 꼴은 엉망이었다.

머리칼은 봉두난발이고, 온몸이 피와 땀, 그리고 흙에 문드러져 해져 있었다. 부러진 다리가 볼품없이 옆으로 비어져 나와 있고, 얼마나 이를 악물었는지 부어오른 잇몸에서 흐른 피가 입가를 적시고 있었으며, 부러진 이빨조각이 주변에 흩어져 있었다.

“괜찮…….”

한서리의 안부를 물으려 하는 알리시아.

하지만 그녀는 말을 멈췄다.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한서리의 시선 끝. 그곳에 쓰러져 있는 김건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힘없이 늘어져 있는 남자의 몸.

‘죽은…… 건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감각을 끌어올려다 본다.

그런 용인의 귀에, 옅은 심장 박동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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