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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140화 (140/200)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140화

“뭐야? 뭐야?”

세라스가 비명을 질렀다.

하늘에서 이곳을 향해 내리꽂히는 함선.

그것은 그녀가 영상물에서나 보던 우주선 같은 모양새였다.

순식간에 들이닥친 함선이 선두를 틀며 배를 보이더니, 그 아래에 박힌 분사구가 불을 뿜었다.

콰콰콰콰!!

어마어마한 역풍이 몰아닥치며 허름하게 지어진 수련실이 뒤흔들렸다. 세라스는 휘날리는 머리를 붙잡으며 뛰쳐나갔다.

그사이, 함선은 어지간한 빌딩 크기의 덩치로 주변 나무들을 깔아뭉개며 화려하게 착지했다.

측면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더니, 그 안에서 한서리가 걸어 나왔다.

한서리는 세라스를 발견하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여의주의 힘을 받아들이는 건 잘돼 가?”

“아니, 아직 잘 안 돼…… 가 아니라, 그건 뭐야?”

헝클어진 머리칼을 붙잡은 채 말하던 세라스가 함선을 가리키며 묻는다. 한서리는 가볍게 고개를 까딱였다.

“이거? 이제부터 우리가 타고다닐 함선이야.”

누가 들으면 그냥 새 차 한 대 뽑은 것 정도로밖에 안 들릴 어조였다.

세라스는 기가 막힌 얼굴로 한서리를 쳐다보다가, 다시 한번 함선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함선의 머리 부분에 툭 튀어나와 있는 부분이 그녀의 눈을 사로잡았다.

“…….”

함선에, 달려 있어서는 안 될 게 달려 있었다.

세라스는 조금 당황해서 물었다.

“근데, 저거 함선, 아니, 기계 맞아?”

처음에는 그냥 평범한 기계인 줄로만 말았다.

그런데 자세히 뜯어보니, 유선형으로 뻗어 있는 몸체 중간중간에, 손가락과 발가락 같은 것이 부자연스럽게 달라붙어 있었다.

거기에 동체의 몇몇 부위는 마치 잘 조각된 근육의 형태처럼도 보인다.

마치 금속 인간을 기계와 융합시켜 놓은 듯한 기괴한 생김새였다.

“저기 튀어나와 있는 손가락 같은 건 뭐야?”

“흠, 마감이 아직 덜 되었나 보네.”

세라스가 그것을 가리켜 묻자 한서리는 태연하게 답했다.

“저건 기가스가 모습을 변형시킨 거거든.”

“기가스?”

기가스라면 몇 번 본 적이 있다.

수 미터에 달하는 금속의 거인들. 하지만 그녀가 아는 기가스들은 사람처럼 생겼고 저렇게 크지도 않았다.

한서리는 혼란스러워하는 세라스를 위해 가볍게 설명을 해 주었다.

“기가스는 진화 과정에서 너무 강한 육체를 갖게 되어서 오히려 세대를 거듭할수록 지능이 퇴화되어 갔다고해. 그중에서도 그 현상이 심한 개체는 압도적으로 강한 육체를 갖고 태어나지만 때로는 완전히 이성을 잊어 버린다고 하더라고. 기가스는 그런 것들을 말로(末路)라고 부르지.”

그녀는 뒤편의 함선을 가리켜보였다.

“저건 그렇게 퇴화해 버린 말로 중 하나야.”

“……그럼 살아 있는 사람인거 아니야?”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어. 살아만 있을 뿐, 아무런 의식도 없으니까. 그냥 금속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아메바라고 생각해.”

“그럼 왜 모습이 저렇게 되는데?”

“원래 저렇게 생긴 게 아니라 저렇게 만든 거야. 전기신호를 줘서 실험쥐를 조종하듯…… 일정한 자극을 반복해서 형태를 바꾼 거야. 말로가 된 기가스는 오히려 생체 구조가 단순해져서 몸을 원하는 형태로 재구성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

“…….”

“기가스의 사제들이 많이 도와줬지. 아무리 말로라 하더라도…… 그들에게는 소중한 동족이거든. 그들이 내게 지은 죄, 그리고 내가 그들의 화신이 되지 못했더라면 이렇게 동족을 물건처럼 사용하도록 돕지는 않았을 거야.”

그렇게 말한 한서리는 아직도 잔열을 뿜어내고 있는 함선의 표면을 만졌다.

“간단하게 시험해 봤는데 중력권을 벗어나거나 대기권을 돌파하는 것 정도는 문제없네. 이 정도면 우주 여행도 여유롭게 가능하겠어.”

신기하다는 듯이 함선을 뜯어보고 있는 세라스를 발견하곤 말한다.

“시험 운전도 해 볼 겸 널 데리러 온건데, 바로 타 볼래?”

“응? 어, 어, 잠깐만!”

세라스는 잔뜩 흥분해서는 수련장으로 뛰어가 짐을 싸 들고 나왔다.

그녀는 한서리의 뒤를 따라 조심스럽게 함선에 올라탔다.

그럴싸한 함선의 내부가 눈앞에 펼쳐졌다.

널찍한 공간, 반듯하게 각이 져서 구분되어 있는 구역들.

‘이게 살아 있는 생물을 개조해서 만든 거라고?’

세라스는 감탄했다.

그녀는 벽면에 붙어 있는 익숙한 기계 패널들을 보고 말했다.

“이런 건 다 어떻게 만든 거야?”

“우리가 가진 기계의 정보를 강제로 이식시켜서 자체적으로 내장 컴퓨터를 조합할 수 있도록 했어. 제어 프로그램도 만들어졌으니까, 우리는 직접 컨트롤할 필요 없이 컴퓨터로 명령만 내리면 돼. 살아 있다고는 하지만 기계랑 별다를 건 없어.”

“저건 또 뭐야?”

이번에 세라스가 가리킨 것은, 함선의 중앙에 박혀 있는 기둥이었다.

하지만, 평범한 기둥이 아니었다. 투명한 유리창 안쪽으로 보이는 기둥의 안쪽에는, 온갖 기계 장치로 둘러싸인 다섯 개의 여의주가 있었다.

“동력원 대신 박은거야. 기가스가 가진 자체 동력만으로는 이만한 덩치를 유지하기 힘드니까.”

“여의주를 동력원으로 쓸 수가 있어?”

“제대로는 못 써. 그 안에 있는 정보나 계약은 전혀 사용할 수 없고, 그냥 마력공급장치로밖에 작동 안 해. 그래도 강제로 마력을 뽑아내니까, 다섯 개 합쳐서 화신 한 개분의 출력은 나오더라.”

그 말인즉, 지금 두 사람이 올라타 있는 함선은 화신급의 출력을 지닌 전함이라는 것이다.

입이 가벼워 화신, 화신, 쉽게 말하지만 화신은 정말이지 드물고 강력한 존재다.

오히려 많은 화신을 접했던 세라스였기 때문에 그녀는 그 강대함을 잘 알았다.

세라스는 휘파람을 한번 불고는 말했다.

“너무 거창한 거 아니야?”

“전혀.”

한서리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차원 간 이동에 어쩌면 항성 간 이동까지 해야 할지도 모르는데 이 정도가 아니면 오히려 곤란해. 앞으로 우리가 갈 선계의 환경이 어떨지는 아무도 몰라. 문제없이 항행을 하려면 이 정도 스펙은 갖춰야 해.”

“항성 간 이동? 그럼 이걸 타고 우주로 나갈지도 모른다는 거야? 다른 선계까지 가서?”

“필요하다면.”

세라스는 헛웃음을 토했다.

“아…… 그렇게 들으니까 확실히 스케일이 다른 게 느껴지네…….”

“다른 선계를 오가는 게 어설픈 우주 여행보다 훨씬 대단한 건데, 그걸 이제 느껴?”

한서리가 핀잔을 주자 세라스는 입술을 뾰족하게 세웠다.

“아니, 그런 거야 게이트를 타고 넘어오는 놈들을 워낙 많이 접했으니까 익숙하단 말이지. 그래도 지금까지 우주에서 날아온 외계인을 접한 적은 없잖아.”

그렇게 변명을 하던 그녀의 눈에 띈 게 있었다.

벽면 귀퉁이에서, 무언가 조그마한 것이 꼼지락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귀퉁이를 돌아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세라스는 펄쩍 뛰었다.

“야! 야! 저거!”

얼마나 놀랐는지 반사적으로 오라까지 뿜어내는 세라스.

그녀가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눈치챈 한서리가 손을 들어 그녀를 제지했다.

“잠깐! 공격하지 마! 몬스터가 아니니까!”

“저게 몬스터가 아니면 뭔데?”

그렇게 반박하며 세라스가 가리킨 곳에는, 푸른빛을 뿌리는 기이한 생명체가 있었다.

일견, 문어를 닮은 외견.

하지만 보통의 것이 아니다. 반투명한 몸체를 가진 그것은, 바닥에 들러붙어 꿈지럭거리는 게 아니라, 마치 수중을 유영하는 해파리처럼 둥실둥실 날아서 두 사람을 향해 다가왔다.

한서리가 말했다.

“크투그아의 특수 개체야. 차원을 넘어서까지 텔레파시를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서, 크투그아의 전령 노릇을 하고 있던 걸 데려왔어.”

꼬물거리면서 다가온 녀석은 제 주인을 알아보는 건지 한서리의 다리에 찰싹 달라붙었다.

세라스는 유심히 놈의 모습을 관찰했다.

“…….”

처음에는 놀라서 몰랐는데, 자세히 보니 꽤 귀여운 외견을 하고 있었다.

문어라고는 하지만 머리가 공처럼 둥글고 다리가 토실토실해서, 진짜 문어가 아니라 문어 모양을 한 인형에 가까웠다.

무릎을 굽혀 녀석을 지켜보던 세라스가 문득 손을 뻗었다.

그녀는 녀석의 머리를 만져 보려 했지만 그녀의 손가락은 아무렇지도 않게 반투명한 머리를 그냥 지나쳐 빠져나갔다.

의아해진 세라스가 손을 휘저었지만, 크투그아는 마치 유령이라도 된 것마냥 그녀의 손가락을 흘려보냈다.

한서리가 말했다.

“그냥은 만질 수 없어. 무슨 짓을 한 건지, 시공간의 틈새에 끼어서 그런 건지, 존재 확률이 불확실해졌어. 접촉하고 싶으면 중력을 다룰 수 있어야 할 거야.”

그것뿐만 아니라, 함선 내에는 신기한 것들이 정말 많았다.

한서리는 함선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세라스에게 선내 구조와 편의 시설들을 설명해 주었다.

함내는 꽤 그럴싸하게 구성되어 있었다. 화장실은 물론이요, 사워실, 각자가 사용할 방, 부엌, 그리고 함교와 연결되어 있는 회의실까지. 어지간한 시설들은 모두 갖추고 있었다.

한서리는 마지막으로 아직은 텅 비어 있는 창고를 소개해 주었다.

“필요한 게 있으면 여기에 실어 두면 돼.”

그렇게 안내를 하는 와중, 왠지 모르게 흥분된 기색을 보이는 세라스의 얼굴을 발견했다.

“뭐야?”

그녀가 묻자 세라스는 실실 웃었다.

“아니, 이렇게 듣고 있으니까 진짜로 같이 여행이라도 가는 것 같아서.”

“……놀러 가는 거 아니야. 바보야.”

뾰족한 말투로 말을 정정해 주었지만 세라스는 여전히 기분이 들떠 있는지, 가볍게 달아오른 얼굴로 말했다.

“그래도 조금은 기대돼. 바깥세상에는, 다른 선계에는 또 얼마나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을지 볼 수 있잖아?”

“…….”

“언젠가는 김건이랑, 네 아이까지 해서 같이 이렇게 여행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한서리는 한참이나 입을 다물고 있다가 갑자기 말했다.

“그럼 그때까지 계속 혼자서 살려고?”

“글쎄.”

세라스는 씨익 웃어 보였다.

“그러고 보니, 다른 선계의 남자들은 좀 쓸 만한 놈들이 있으려나?”

빙글거리는 얼굴로 그렇게 말한다.

한서리는 피식 웃었다.

“있을 거야. 어쩌면 몸 어딘가에 촉수 같은 게 붙어 있을지도 모르지만.”

“자기는 짝이 있다고 쉽게도 말하네. 혼자 사는 사람은 아주 서러워서 죽겠어. 그냥.”

세라스가 삐죽이자 한서리는 그저 비웃는 모양새로 흥…… 하고 웃어 보였다.

그 모습은, 정말 평온한 시절의 한서리가 보이던 모습과 똑 닮아 있어서, 세라스는 안도하며 그녀에게 마주 웃어 줄 수 있었다.

* * *

그렇게 몇 주가 더 지나자, 떠날 준비가 완료되었다.

한서리는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사실상 인적 사항이 완전히 말소되었고, 나머지 두 사람은 그렇게 발이 넓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을 배웅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잘 다녀와라.”

미소를 지으며 주먹을 내밀어 보이는 티리온.

세라스는 그와 주먹을 맞대며 옆을 바라보았다.

또 무언가 실수를 했는지 이 와중에도 엘리와 아크룩스에게 구박을 받고 있는 알리시아가 있었다.

그 옆에 산더미같이 쌓여 있는 서적들을 보니 아무래도 책을 가져가겠다고 떼를 쓰다가 혼이 나는 것 같았다.

가끔 한심해 보이기는 하지만, 분위기에 휘둘리지 않는 일관된 만큼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조금 더 고개를 돌리자, 홀로 나온 메리안과 이야기를 나누는 한서리의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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