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141화
메리안은 한서리의 양손을 꼭 쥐며 서글프게 웃었다.
“겨우 끝났다 싶었는데, 결국은 이렇게 가 버리네.”
“…….”
한서리는 말없이 메리안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체구가 작은 메리안. 보송보송 아기 같던 그 손도, 아이를 낳고 살림을 하며 많이 꺼슬꺼슬해졌다.
메리안은 그렁그렁한 눈을 훔치며 말했다.
“이럴 때는 내가 참 싫어. 네게 뭐 하나 해 줄 수 없는 게…… 너무 바보 같아.”
“그렇지 않아. 메리안, 너는…….”
문득 목이 메여, 한서리는 말을 멈췄다.
메리안은 이 시간대로 돌아와서 처음으로 한서리의 손을 잡아 준 사람이었다.
일상의 소중함을, 타인의 따뜻함을 처음으로 느끼게 해 준 사람이다.
그녀는 꾹 이를 물며 말했다.
“넌 내게 소중한 사람이야. 네가 그냥 행복하게 살아가 주는 것만으로도, 난 좋아. 그러니까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메리안은 한서리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무언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지만, 감정이 북받쳐 말을 제대로 안 나오는 것 같았다.
메리안은 크게 한숨을 쉬곤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 고마워. 앞으로도 살아갈게, 네가 지켜 준 이 세상에서.”
그녀는 한서리를 꼭 안아 주었다.
잠시 후, 몸을 떨어트리며 조금은 가벼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다녀와. 기다릴게. 네가 언제 오더라도…… 맛있는 밥 정도는 해 줄 수 있으니까.”
“응…….”
“그리고 이건 선물이야. 원래는 우리 가족이 쓰려고 만들던 건데…… 너희 인원도 딱 세 명이니까 괜찮을 것 같아서 가져왔어.”
메리안이 꺼낸 것은 목도리였다.
손끝이 야무진 그녀답게 디자인도, 마감도 잘 되어 있는 고급스러운 것이었으나 그녀는 별로 자신이 없는 듯했다.
“별 도움은 안 되겠지만…….”
“아니야, 고마워. 잘 쓸게.”
한서리는 그러지 말라는 듯 고개를 저으며 목소리를 건네받았다.
두 사람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포옹을 나눈 뒤에 작별 인사를 마쳤다.
“메리안.”
뒤이어 다가온 세라스가 메리안을 꽉 끌어안았다.
그리고 두 사람이 손을 맞잡고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한서리는 기다리고 있던 노제 프레데리카와 마주했다.
한서리가 절대 권력을 틀어쥐자마자 인간들에게 뻗쳤던 영향력은 노제의 직위와 실권을 복원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 덕에 다시금 권력을 되찾은 노제는 전후의 뒤처리로 아주 바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노제는 피곤해 보였지만 표정은 밝았다. 며칠 전에 한서리와 같이 마지막으로 술자리를 가졌을 때도 기분이 나쁘지 않아 보였다.
그녀가 말했다.
“가는 거냐.”
“네.”
한서리가 고개를 끄덕인다. 노제는 옅게 한숨을 내뱉었다.
“……고생했다. 대신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인간을 대표해 너와, 건이에게 감사를 표하마.”
“감사합니다.”
두 사람은 악수를 나누었다.
때로는 업무상으로 쌓은 관계가 개인적으로 쌓은 관계보다 더욱 깊어질 때가 있다.
지금의 두 사람이 그러했다.
인류를 위해서, 라는 목적으로 때로는 부딪치고, 때로는 협력하며 쌓아 온 신뢰는 마치 생사고락을 같이한 전우애와 비슷한 것이 있었다.
노제는 악수에서 그치지 않고 한서리를 안아 주었다.
“돌아와라. 내가 죽기 전에는.”
“알겠습니다.”
메리안과 인사를 마치고 다가온 세라스는 가볍게 노제와 악수를 나눴다.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한 사람이 보이지 않는 걸 깨닫고 물었다.
“노바 선배는?”
“그 사람은 안 불렀어. 불렀다간 같이 가자고 떼를 쓸게 뻔하니까.”
한서리는 그렇게 대답했다.
언뜻, 차가워 보이는 답변이지만 그것이 노바를 배려해서라는 걸 세라스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오히려 짓궂게 웃으며 말했다.
“뭐 어때? 그냥 같이 가면 되잖아?”
한서리는 고개를 저었다.
“너무 위험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데, 그렇게 쉽게 같이 가 달라고 할 순 없어. 편지는 남겨 놨으니까, 나중에 보겠지.”
“그런 것치고는, 나한테는 같이 가자고 꽤 쉽게 이야기한 것 같은데?”
“…….”
히죽히죽 웃으며 장난을 걸어오는 세라스.
한서리는 고개를 홱 돌리고는 앞으로의 여행을 도와줄 그들의 함선이자 그것의 원본인 기가스의 이름, ‘마기아’에 올라탈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모두가 각자의 인사를 마치고 마기아에 탑승했다.
한서리가 방에 눕혀 둔 김건의 상태를 확인하고, 알리시아가 제어 패널을 이용해 준비를 하는 동안 세라스는 창밖의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알리시아는 아직도 조작이 익숙지 않아 매뉴얼을 번갈아 보며 함선의 기능을 세팅했다.
그리고, 이내 목표 지점의 차원 좌표를 입력하는 창이 뜨자 함교에 돌아와 옆자리에 앉은 한서리를 돌아보았다.
“그래서…… 어디로 갈까요?”
한서리가 여의주와 각 종족에게서 수집한 정보를 토대로 계획을 세워 두었기에 이미 몇 개의 선계가 탐색 대상에 들어 있었다.
하지만 아직 어디부터 시작할 것인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어차피 정보가 너무 부족했기에, 어디부터 시작해도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그래도 누군가는 목표를 정해야 했기에, 한서리가 그것을 위해 잠깐 생각을 하는 순간이었다.
제자리에 앉아 특수 개체라는 크투그아에게 장난을 치던 세라스가 한 지점을 찍었다.
“그러면 여기! 여기부터 가 보죠?”
목소리가 들떠 있다.
딱 봐도 아무 생각 없이 흥미 위주로 선택한 것이 보여서, 알리시아가 눈을 흘겼다.
“세라스. 몇 번이고 말하지만 이건 놀러 가는 게 아니…….”
탐사를 시작하기에 앞서 따끔하게 주의를 주려는 찰나, 한서리가 입을 열었다.
“……아니, 어차피 오랜 여행이 될 테니까, 처음에는 흥밋거리가 있어 보이는 곳부터 시작하는 것도 좋겠지.”
그녀는 그러면서 직접 패널을 조작해 세라스가 가리킨 곳의 좌표를 함선에 입력했다.
거 보라는 듯 알리시아를 쳐다보는 세라스.
알리시아는 입술이 뾰족하게 튀어나와서는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 사이에 앉은 한서리가 입을 열었다.
“가자.”
명령을 받은 알리시아가 마기아의 동력을 끌어올리고, 세라스가 얼른 허리띠를 맸다.
그리고 그들의 뒤에서 울부짖기 시작하는 다섯 개의 여의주들.
한순간에 뻗어 나온 마력이 마기아를 감싸며 거대한 함선이 공중에 떠올랐다.
전방에 발생한 이상 중력이 공간을 일그러트린다. 이내 마력에 의해 찢겨 빈틈을 보이는 순간, 폭발적으로 가속한 마기아가 공간의 틈새를 꿰뚫고 사라졌다.
남은 것은 기린의 마력이 흩뿌린 황금빛의 잔해와, 사람들뿐.
중력 이상으로 발생한 광풍에 휘날리는 머리칼을 붙잡으며, 메리안은 이제는 비어 버린 공간을 향해 외쳤다.
“꼭 돌아와…… 건강해진 건이랑 같이……!”
* * *
그렇게 시작된 선계 탐색.
한서리와 세라스, 그리고 알리시아 세 사람은 차원이동을 거듭하며 선계의 곳곳을 누볐다.
그들의 목표는 기린이 봉인한 시간 역행의 마법을 찾는 것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탐사에는 화신으로서의 힘이 동원되었다.
일단은 한 선계로 이동한 뒤, 각자 화신의 힘을 발휘해 해당 선계에 있는 기린의 흔적, 혹은 다른 화신의 흔적을 찾는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해당 선계에 존재하는 선주 종족에게 접촉해 그들에게 기린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
다소 허술한 탐색이라고 할 수도 있었으나, 기린의 봉인에 대한 정보가 너무 부족했고, 선계가 얼마나 넓은지도 잘 몰랐기에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일단은 탐색의 목표는 크게 둘.
첫 번째, 기린의 봉인을 찾는다.
두 번째, 기린과 선계에 대해 이해할 정보를 얻는다.
그렇게 얻은 정보를 토대로 조금씩 탐색의 정밀도를 늘려 나가 종국적으로는 기린의 봉인을 찾아낸다.
그것이 그들이 지닌 방향성이었다.
처음에는 가슴 뛰는 모험이었던 선계 탐색.
하지만 그것이 그저 평범한 일상이자 업무로 변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2년, 그들은 그날도 평소와 같이 무료한 표정으로 일상을 시작했다.
거대한 바다.
그 위에 표류하고 있는 함선, 마기아의 윗부분에 세라스가 햇살을 맞으며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그녀의 몸 위에 흐르는 황금빛이 불꽃처럼 피어올랐다.
오라를 제어하는 수련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호통 소리가 들렸다.
“바보처럼 고집피우지 말고 이제 마법 수련이나 해! 오라 기술은 확장성이 너무 떨어져. 한계가 정해져 있는 기술이란 말이다!”
세라스가 감았던 눈을 떴다. 고개를 돌리자 마치 피서라도 온 양 파라솔까지 깔고 앉아 책을 들고 있는 알리시아가 보였다.
세라스는 새초롬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법 수련은 충분히 하고 있어. 이제 어지간한 건 다 가능하다고. 극대소멸공격도 쏠 수 있고.”
알리시아는 코웃음을 쳤다.
“간단한 보조 마법 정도로 뭘 하려고? 너도 화신이라면 이제 순간이동 정도는 스스로 해. 매번 나나 팀장님한테 부탁하지 말고.”
“그게 하루아침에 되면 누가 고생을 해? 그리고, 이제 거의 다 왔어. 조금만 더 하면 뭔가가 보일 것 같단 말이야. 김건의 미극공진동까지는 아니겠지만, 나만의 기술, 나만의 전법을 완성시킬 수 있어.”
알리시아는 혀를 차며 말했다.
“그러다가 바보처럼 실수해서 우주에서 표류하지는 마. 다음에는 안 구해 줄 테니까.”
“됐거든? 오라로도 우주선 정도의 추진력을 내는 건 쉬워. 호흡이나 온도 조절이야 마법의 도움을 받아야겠지만…… 혼자서도 대기권 탈출이나 항성간 이동은 할 수 있다고.”
세라스는 끝까지 고집을 피웠다.
‘하여튼 저놈의 고집은 변함이 없군.’
알리시아는 한숨을 쉬었다.
“그래, 날아가다가 몇 년, 아니 몇십 년이 걸릴지도 모르지만 말이지.”
잔소리에 흥미를 잃은 그녀는 다시 읽던 책으로 눈을 돌렸다.
세라스 역시 다시금 수련에 집중했다.
지금 그들이 도착한 선계는 온 천지가 바다인 세상이었다.
육지는 극도로 적고, 있다 하더라도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토양이 아니었기에 모든 생명체가 바다 위에서 살아갔다.
잠깐만 고개를 돌리면 수십 미터를 넘는 해양생명체가 수면을 타고 오르며 거대한 물보라를 피워 올리고, 은빛 비늘을 가진 물고기 떼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계였다.
익숙한 세계가 반가운지, 선내에 있던 크투그아까지 기어 나와 주변을 떠다니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잠시 시간이 지나자, 표류하고 있는 마기아의 주변에 수십 마리의 생명체가 달라붙었다.
딱딱한 등딱지에 짧은 머리와 사지.
일견 거북이를 연상시키는 생김새지만 거북이가 아니다.
그들이 알던 거북이는 낄낄거리며 웃는 소리를 내거나, 갑자기 이족보행 생명체처럼 일어나서 뒤뚱거리며 걸어 다니지는 않았으니까.
녀석들은 끼르륵, 끼르륵 소리를 내며 은빛을 발하는 함선의 옆에 달라붙어 뾰족한 부리로 금속을 찍어 댔다.
많은 선계를 거치며 많은 종족들을 만난 알리시아와 세라스는 이제 텔레파시를 이용해 말이 통하지 않더라도, 그들의 사념을 읽어 의사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얻었다.
그녀들은 저 거북이들이 상당히 어린 개체이며, 단순히 처음 보는 물건이 신기해 놀고 있을 뿐이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서로의 반응은 달랐다.
“와! 귀여워!”
반색하며 녀석들 중 한 마리를 붙잡는 세라스.
반면 알리시아는 벌떡 책을 덮고 일어서서 호통을 쳤다.
“이 녀석들! 저리 가지 못해!”
그녀는 텔레파시를 담아 소리치며 마력으로 발생시킨 염동 능력으로 함체에 붙은 거북이들을 떼어 내 바다로 던져 버렸다.
하지만 녀석들은 그걸 장난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오히려 까르륵 소리를 내며 다시금 함선에 달라붙어 왔다.
개중에는 흥분한 것인지 함선 위에 똥을 싸 놓은 녀석도 있었다.
알리시아는 앓는 소리를 내며 마법을 이용해 그것을 닦았다.
“어차피 물에 들어가면 다 씻길 텐데, 뭘 그렇게 열심히 치워?”
세라스는 그렇게 핀잔을 주며 그녀가 붙잡은 거북이를 쓰다듬었다.
작지만 보통의 거북이가 아니다.
엄청난 마력이 거북이의 체내에 흐르고 있었다. 그녀의 고향인 지구였다면 영물, 혹은 신수라고 불렀을 법한 동물이다.
녀석은 세라스의 호의를 느꼈는지 저항하지 않고 가만히 그녀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오히려 그녀의 손에 머리를 비비기까지 했다.
그 모습을 본 알리시아가 말했다.
“그만 하고 놔줘라. 혹시나 어미가 싫어하면 어떻게 하려고.”
“흥, 그놈의 잔소리 좀 그만할 수 없어?”
“잔소리가 아니라 진심이 담긴 충고다. 바보야.”
“바보? 언니한테 그런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좀 나쁜데?”
“기분이 왜 나빠? 설마 지금까지 내가 너보다 멍청하다고 생각했냐?”
“응.”
“이 녀석이……!!”
그렇게 다시 시작된 두 사람의 다툼은 함내에 있던 한서리가 위로 올라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한서리는 올라오자마자 머리끄덩이를 붙잡을 기세로 말다툼을 벌이고 있는 두 여자를 발견했지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항상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대신, 그녀는 담담히 지금의 상황을 말함으로써, 단숨에 싸움을 종식시켰다.
“준비해. 이제 곧 이 세계의 화신이 나타날 테니까.”
그 말이 끝나자마자 쿵, 소리와 함께 주변의 중력이 급격하게 상승했다.
콰르르르릉!
해수면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주변의 생물들이 모두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세라스와 알리시아는, 그제야 아래에서부터 올라오기 시작하는 막대한 마력의 존재를 깨달았다.
무언가가, 그들의 앞에서 떠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바다 위에 솟아 있는 뾰족한 암초 같아 보였다.
하지만 계속해서 솟아오른다, 암초가 솟구쳐 바위가 되고, 바위가 솟구쳐 절벽이 되었다.
그래도 솟아오른다. 계속해서 무언가가 솟아오른다.
콰콰콰콰콰!!
솟구친 물체에서 떨어진 물줄기가 폭포수를 이루고 막대한 질량이 움직인 탓에 일어난 파도가 충격파처럼 퍼져 나갔다.
거체가 떠오르며 일으킨 물보라는 마치 마른하늘에서 몰아치는 폭풍우 같았다. 그 속에서 세라스와 알리시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두 사람은 눈앞에 떠오른 동체가 과거에 상대했던 티아마트의 반신보다도 더 커다랗다는 것을 단숨에 깨달았다.
망망대해 위에 갑자기 떠오른 것은 거대한 섬.
하지만 그 섬은 왠지, 거북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