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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142화 (142/200)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142화

눈앞에 떠오른 것은 거북이 모양을 한 섬, 혹은 섬만 한 크기를 가진 거북이였다.

그것을 본 세라스는 당황한 목소리를 토해 냈다.

“뭐야? 이거? 그냥 섬…… 아니야?”

알리시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마력의 질이 달라. 더할 나위 없는 생명체다.”

우우우우우우우!!

놈이 입을 벌리자 굉음이 터져 나왔다.

포효도 아니고, 가볍게 콧소리를 낸 것뿐인데도 폭발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공기가 떨렸다.

수면 위로 떠오른 거대 괴수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섬만한 덩치가 순식간에 앞에 닥쳐왔다.

암석으로 만들어진 듯한 몸에 부딪힌 마기아가 정신없이 뒤흔들렸다.

공격이 아니다.

그냥 그들의 존재가 있는지도 모르고 지나가고 있을 뿐이다.

“큭…… 날아올라!”

알리시아가 이를 악물며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급류에 휘말린 나뭇잎마냥 휘청이던 마기아가 추진력을 내뿜으며 공중으로 떠올랐다.

한서리는 바로 신격을 해방했다. 그녀는 은빛 머리칼을 휘날리며 비행 마법을 이용해 거북이의 뒤를 쫓았다.

그녀는 빌딩만 한 거북이의 머리 옆으로 붙으며 텔레파시를 던졌다.

<<이봐, 멈춰!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왔다!>>

그동안 몇 번이고 화신을 만나 보았기 때문에 안다. 이런 동물형 화신은 직설적으로 말을 하는 것이 이야기가 빨랐다.

그래서 바로 본론을 꺼냈지만 거북이는 말을 무시하고 계속 전진했다.

한서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 거북이는 상당히 중요한 정보원이었다.

그녀가 알아낸 정보로, 이 화신은 수만 년을 넘게 살아온 존재라 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심해에 존재하는 자신의 결계 속에서만 머무르며, 십 년에 한 번씩만 기분 전환을 위해 지상에 올라온다고 한다.

수만 년을 넘게 산 자라면 다른 이들보다 기린과 화신의 힘에 깊은 이해도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십 년간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중요한 기회를 놓칠지도 모른다.

초조해진 한서리는 계속해서 텔레파시를 던졌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없었다.

“대답을 하지 않는군요.”

알리시아가 한서리의 뒤를 따라붙어 날아왔다.

마찬가지로 신격을 꺼낸 그녀에게서는 평소보다 화려한 백금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알리시아는 다른 화신들을 마치 날아다니는 파리만큼도 신경 쓰지 않는 거북의 머리를 바라보았다.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이는데, 가볍게 공격이라도 해 볼까요?”

“하지 마!”

어느새 따라왔는지, 세라스가 그렇게 소리쳤다.

마법에 능숙하지 않은 그녀는 오라로 만들어 낸 날개와 임시 질량의 분사를 이용한 로켓 추진으로 두 사람의 뒤를 쫓아갔다.

그녀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공격 하지 마, 어쩌면…… 우리가 다 죽어.”

“…….”

덩치가 다소 크다 해도, 상대는 고작 하나의 화신일 뿐이다.

이쪽은 화신 셋, 거기에 한서리는 여의주까지 다루고 있으니 전력 차이는 압도적이라고 봐도 좋았지만…… 적의 강함을 탐지하는 능력은 이들 중 세라스가 가장 뛰어났다.

알리시아는 세라스의 말을 믿었다.

“그럼 어떻게 이 녀석을 멈추지?”

알리시아는 한서리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당장은 한서리도 뾰족한 수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였다.

<<소용없을 겁니다. 이분은 너무 오래 살아서, 외부의 자극에 너무 둔해졌거든요.>>

갑자기 뇌리에 꽂히는 텔레파시.

“누구…….”

알리시아가 그 목소리에 대답하기도 전에, 세라스가 먼저 움직였다.

순식간에 뿜어져 나온 황금색 오라의 대검이 번개처럼 날아가, 어느새 옆에 나타나 있는 상대의 목앞에 칼날을 드리웠다.

그 무시무시한 반응 속도에 알리시아가 혀를 내두르는 동안, 시선을 돌린 한서리는 갑자기 나타난 텔레파시의 상대를 확인했다.

그들의 앞에 나타난 것은 새였다.

외견상으로는 갈매기를 닮았다. 하지만 크기가 어지간한 독수리보다도 컸고, 무엇보다도 녀석은 날개 한 번 퍼덕이지 않고 하늘을 날고 있었다.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것이다.

세라스는 차가운 눈으로 녀석을 쳐다보았다.

“누구지?”

서슬 퍼런 날을 목덜미에 들이대며 묻는다.

기본적으로는 온화하고 타인에게 친절한 세라스다. 종족이 다르다 해도, 잘 알지도 못하는 타인에게 함부로 칼을 들이대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가까이 와 말을 걸기 전까지 기척을 못 느꼈다.

적의가 없었기에 그랬을 수도 있지만, 만약 놈이 나쁜 마음을 먹었다면 이쪽이 위험했을지도 몰랐다.

세라스는 경계심을 곧추세우며 고개를 까닥거리는 갈매기를 노려보았다.

하나 갈매기는 세라스의 행동에 딱히 위협을 느끼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녀석은 여상한 태도로 텔레파시를 던졌다.

<<누구냐고요? 답할 이름이 없어 아쉽군요. 그저 이 세계의 수호자이자 기린의 화신, 테라핀 님의 뒷바라지를 하는 하인일 뿐입니다.>>

녀석은 세 명의 화신에게 둘러싸인 상태에서도 태연했다.

화신은 아니다. 신격이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녀석에게서 느껴지는 강대한 마력은, 가히 용족에 버금가는 대단한 것이었다.

“그만둬. 딱히 적의는 없어 보이니까.”

한서리가 말했다. 세라스는 의뭉스러운 눈으로 갈매기를 쳐다보며 검을 물렸다.

그러자 녀석은 <<잠시 실례.>> 라고 말하더니 고개를 들어 높은 울음소리를 냈다.

────!!

어디선가 수천 마리의 새 때가 하늘에 검은 물결을 만들며 날아왔다.

그들은 시끄럽게 지저귀며 움직이는 섬 위에 내려앉더니, 그 위에 걸려 있는 해초 따위를 쪼아 먹기 시작했다.

언뜻 그저 먹이를 먹기 위해 몰려온 것으로 보이지만, 그들의 행위를 유심히 들여다본 한서리는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뾰족한 부리를 이용해 암석처럼 우둘투둘한 거북이의 등딱지에 끼인 해초를 제거해 나간다.

그것은 배를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치우는 행위에 가까웠다.

그들은 거북이의 등 위를 청소하고 있었다.

“…….”

그것을 보고 나니 왜 스스로를 하인이라 칭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한서리는 조용히 눈앞에 날고 있는 갈매기를 바라보았다.

“테라핀이라는 건, 이자의 이름인가?”

말없이 대양을 누비고 있는 거대 거북이를 가리키며 묻는다.

<<맞습니다.>>

갈매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대화가 통할 것 같자 한서리가 계속 말을 이었다.

“테라핀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 말을 걸어도 무시하기만 하는데, 어떻게 하면 되지?”

인간형의 상대와 대화를 나눈 경험이 많은 모양인지, 녀석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능숙하게 감정 표현을 했다.

<<글쎄요. 그냥 만사에 관심을 두지 않을 뿐이라서요. 자극에 둔해진 거지 감각이 둔해진 건 아니니까, 뭐라도 해서 흥미를 끌어 보세요. 말을 하든, 도발을 하든, 앞에서 춤이라도 추든…… 아, 그렇다고 공격은 하지 마시고요. 위험하니까요.>>

그 말은 즉,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특별한 방법 따위는 없다는 것이다.

“음…….”

알리시아가 침음을 삼켰고, 세라스가 머리를 감쌌다.

“거북이의 관심을 끌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상상해 본 적도 없는데.”

그런 두 사람을 본 갈매기가 말했다.

<<뭐, 저도 그렇게 말은 했지만 실제로 성공하는 걸 본적은 없습니다. 테라핀 님은 은근히 타 선계에도 존재가 알려져 있는 편이라서요, 지금까지 많은 분들이 정보를 끌어내거나 그 힘을 이용하기 위해 찾아오곤 했죠. 모두 실패했지만요.>>

그러던 녀석의 눈이 문득, 한서리를 향했다.

<<하지만 어쩐지 당신은…… 그의 관심을 끄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 말을 들은 한서리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무심히 헤엄만 치고 있는 테라핀을 바라보았다.

이쪽에게는 관심도 없다는 듯, 무감정한 거북이의 눈을 마주하고, 이내 입을 열었다.

“난 미래에서 왔다. 다시 한번 시간 역행의 힘을 이용하고 싶어. 그 방법을 알려 줘.”

그 순간, 거대한 섬의 진격이 멎었다.

거짓말처럼 멈춰 서는 거대한 몸.

그것이 속도를 줄이는 것만으로 퍼져 나온 파도가 주변의 모든 것을 쓸고 지나가며 물보라를 튀겼다.

청소를 하던 새들이 놀라서 날아올랐다.

초점이 맞지 않던 눈에 활기가 돌며 테라핀이라는 이름의 거북이가 한서리를 바라보았다. 막강한 텔레파시가 터져 나왔다.

<<시간 역행?>>

그냥 가볍게 던진 한 마디뿐인데도 어마어마한 압력이 느껴졌다.

짜릿한 두통에 세라스와 알리시아가 눈썹을 찌푸렸다.

한서리는 그 텔레파시를 정면으로 받으면서도 의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기린이 그걸 숨겨서 어딘가에 봉인해 뒀어. 그게 어디 있는지, 있다면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 혹시 알고 있는 게 있나?”

<<…….>>

크르르릉.

천둥소리가 울리며 한숨 같은 숨소리가 거북이의 코에서 빠져나왔다.

한서리가 이어 말했다.

“당신은 제일 오래 산 화신 중 하나라고 하더군. 수만 년을 넘게 살았으면 지금같이 특정한 마법이 봉인되는 일도 몇 번은 겪었겠지. 시간 역행이 아니라도 좋아. 그때 있었던 일이라도 알려 줘.”

테라핀은 말이 없었다.

표정도, 사념도 읽을 수 없다.

한서리는 속으로 침을 삼켰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테라핀이 이쪽을 공격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정보를 대가로 뭔가를 요구해 올지도 모른다. 낌새가 좋지 않았다.

그때, 테라핀이 툭, 말을 던졌다.

<<시간 역행은 섭리를 거스르는 힘이다. 사용할 수 없는 게 당연한 거야.>>

그 말을 들은 한서리가 눈가를 일그러트렸다. 그녀는 테라핀의 어조에서 무언가를 느꼈다.

마치 원래부터, 시간 역행이라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라는 뉘앙스가 풍긴다.

그녀는 의아한 얼굴로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기억의 전송일 뿐이지만, 바로 내가 시간 역행을 통해 미래에서 돌아왔는데.”

<<알고 있다. 최근에 세 존재가 억지력의 폭풍을 불러 왔지. 넌 그중 하나고.>>

세 존재라 함은 아마도 한서리, 김건, 그리고 아그니스를 말하는 것일 터다. 한서리가 계속 질문을 던졌다.

“억지력의 폭풍? 시간 역행의 부작용을 말하는 건가?”

<<그래, 무너진 섭리를 보고 분노한 억지력이 미쳐 날뛰었다. 그러고는 기린의 주인격이 존재하던 한 선계를 통째로 지워 버렸지.>>

“주인격을 지워 버렸다고?”

<<그래. 동시에 한 선계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

“…….”

그저 막연히 커다란 후폭풍이 몰려왔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듣고 보니 일어난 일의 스케일이 차원이 달랐다. 한서리는 자신이 한 일이 얼마나 위험한 짓이었는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덕분에 나도 오랜만에 밖으로 나가서 그 후폭풍을 막는 데에 애를 썼지. 벨제불과 티아마트를 막을 결계도 재구성했고, 가까스로 선계의 붕괴는 막을 수 있었다. 최근에 많은 화신이 갑자기 죽어 버린 탓에 그것도 다시 보수를 해야 할 참이지만.>>

어쩌면 그 후폭풍 때문에 선계 전체가 무너져 내렸을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거기에 아그니스를 포함한 여섯 화신이 죽은 일도 알고 있다.

그 말을 들은 세라스가 궁금증이 생겼는지 뭐라 입을 열려 했다.

<<조용히 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저러다가 갑자기 흥미를 잃을 수도 있거든요.>>

잠자코 있던 갈매기가 작게 텔레파시를 발하여 그것을 멈췄다.

알리시아와 세라스가 입을 다물고, 갈매기가 그들을 지켜보는 가운데, 테라핀과 독대를 하게 된 한서리는 상당히 큰 혼란에 빠져 있었다.

테라핀이 던지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그녀가 갖고 있던 선계의 상식과는 어긋나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머릿속의 단서들을 정리하며 물었다.

“넌 이 어떻게 그렇게 선계의 상황에 대해 잘 알지? 단순한 화신이 아닌 건가?”

복잡한 상황을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는 하나의 질문.

그리고 되돌아온 답변에, 한서리는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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