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146화
한서리와 세라스가 돌아간 곳에는 커다란 금속 재질의 건물이 세워져 있었다.
네모난 큐브형의 건물, 형태 자유자재인 마기아를 변형시켜 일종의 연구실로 만든 것이다.
한쪽에 마련된 창고에서 알리시아와 똑 닮은 인형들이 부지런히 자재를 옮기고 설비를 점검하고 있었다.
세라스는 묵묵히 작업을 수행하는 인형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진짜 저런 건 어떻게 하나 몰라. 술식이 어마어마하게 복잡하던데.”
김건을 앉힌 휠체어를 끌며 한서리가 미소를 지었다.
“넌 골렘도 잘 못 다루니까…… 그것보다 상위 기술인 인형술은 더 어렵겠지.”
세라스의 입술이 뾰족하게 튀어나왔다.
“……너도 인형은 잘 못 다루잖아.”
“흉내 정도가 한계긴 해. 알리시아처럼 일꾼처럼 써먹기는 힘들지. 확실히 인형술에는 알리시아가 재능이 있어. 그냥 귀찮은 걸 대신 시키려고 키운 재능 같기는 하지만.”
그렇게 두 사람이 연구소에 들어가자 바로 꾀죄죄한 모습의 알리시아가 튀어나왔다.
그녀는 한서리를 보자마자 반색을 하며 소리쳤다.
“팀장님! 성공했습니다! 이거 보세요!”
그러면서 알리시아는 두 사람을 연구소의 중앙으로 이끌었다. 그 중심에는 널따란 빈공간이 있고 그것을 투명한 유리벽이 원통의 형태로 가로막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누렇게 변색된 뼛조각이 쌓여 있었다.
돈을 지불하고 무덤에서 캐온 원주민의 해골이었다.
“잘 보십쇼.”
알리시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지팡이를 꺼냈다.
그러면서 바로 마법을 시전하자, 지팡이를 중심으로 펼쳐진 조성식 끝자락에서 끈적끈적한 진흙 같은 것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알리시아가 지팡이를 휘저어 그것을 이끈다. 줄줄 흘러내리는 검은 기운이 바닥에 파여 있는 구멍으로 들어가더니 원통의 안쪽을 채우며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뼈 무덤을 감쌌다.
그리고 다음 순간.
조금씩 뼈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더기로 쌓여 있던 뼛조각이 사방으로 나뉘어 점차 사람의 형태를 갖추더니, 이내 바닥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스스로의 힘으로 선 해골을 본 세라스가 박수를 쳤다.
“진짜로 작동하네? 이 정도로 형태를 갖춘 건 처음 아니야?”
“이게 끝이 아니다.”
미소를 지은 알리시아가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검은 기운을 두르고 일어선 해골의 움직임에 점차 활기가 돈다.
들썩들썩, 어깨를 흔들더니 이내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딱! 딱!
턱을 부딪치며 뼈만 남은 손으로 손뼉을 치는 모습은 꽤 익살스러워 보였다.
세라스가 킬킬거리며 웃고, 한서리마저 헛웃음을 짓는 가운데 신이 난 해골은 제자리에서 공중제비까지 넘어 보이며 스스로의 운동 능력을 뽐냈다.
그 춤은 잠시 후, 집중력이 다한 알리시아가 숨을 토할 때까지 계속 되었다.
“컥.”
거세게 호흡을 내뱉은 알리시아가 땀을 훔치며 지팡이를 놓자, 그 끝에서 흘러나오던 검은 기운이 순식간에 끊어지며 원통 안에서 펄펄 뛰던 해골이 와르르 무너져 바닥에 흩어졌다.
알리시아가 풀썩 주저앉는다. 그녀는 혀를 내밀고 헥헥 거리며 겨우 말했다.
“일단 제어에는 성공했는데, 확실히 마기를 강제로 짜내는 건 변환식이 너무 어려워요. 그걸 마음대로 다루는 건 더 어렵고.”
아쉽다는 듯이 식은 땀을 훔치는 알리시아.
한서리는 고개를 저으며 그녀를 격려해 주었다.
“아니야. 잘했어. 방금 보니까 변환식은 이렇게 조정하면 될 것 같네.”
그러면서 한서리는 연구실 한쪽에 놓인 칠판으로 다가가 거기에 쓰여 있는 복잡한 수식들을 쓱쓱 지워 냈다.
그러곤 마치 그림 퍼즐이라도 맞추는 것처럼 산발적으로 쓰여 있는 공식을 재조립했다.
“으웩~.”
세라스는 그걸 보자마자 질색을 하며 토하는 시늉을 했다. 머리가 아픈지 그냥 외면해 버린다.
반면 알리시아는 한서리가 고친 공식을 자세히 들여다보다가 깜짝 놀라서 말했다.
“그렇게 고치면 당장의 부하는 낮아지겠지만 지속력이 떨어질 텐데요?”
“상관없어. 어차피 잠깐만 제대로 움직일 수 있으면 되니까.”
그 말에 알리시아는 이번 연구의 목적을 다시금 떠올리곤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거야 그러네요.”
그렇게 말하며 허공에 손을 뻗는 알리시아.
세라스는 금세 그 행동의 의미를 눈치채곤 흐느적거리는 알리시아를 일으켜 부축해 주었다.
킁킁, 코를 찡긋거리던 세라스의 이마가 찌푸려진다.
“윽, 냄새. 대체 얼마나 안 씻은 거야?”
“몰라. 한 삼 일쯤 됐나?”
“거짓말하지 마. 고작 삼일 안 씻은 걸로 냄새가 이렇게 난다고?”
“시끄러워! 네가 밤새면서 일해 봐! 냄새가 나나 안 나나!”
또다시 아옹다옹 다투는 두 사람에게 한서리가 말했다.
“알리시아. 고생했어. 뒷정리는 내가 할 테니까 가서 샤워도 하고 쉬어. 세라스는 알리시아 좀 챙겨 주고.”
“알았어.”
그렇게 두 사람이 사라지고 나자 한서리는 인형들의 도움을 받아 알리시아가 어질러놓은 연구실을 정리했다.
정리를 마친 뒤, 한서리는 청소를 지켜보던 남편의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 주며 다시금 정리한 칠판의 공식을 쳐다보았다.
그녀가 직접 고친 술식을 머릿속으로 재점검해 본다.
그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좋아. 조금만 더 조정하면 충분히 떡밥으로 사용할 수 있겠어.”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외쳤다.
“크툰!”
그러자 유령처럼 반투명한 모습의 크투그아가 연구소의 벽면을 뚫고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었다.
한서리가 손짓하자 녀석은 곧바로 허공을 날아 한서리의 팔에 찰싹 달라붙었다.
중력을 담아 만진 녀석의 머리는 솜처럼 몽실몽실했다. 한서리는 잠시 크툰을 쓰다듬다가 녀석에게 작게 뭐라고 속삭였다.
그 말을 들은 크툰이 동그란 머리를 풍선처럼 부풀렸다 쪼그라들었다를 반복했다.
그리고 잠시 후, 연구소 옆의 공간이 갈라지며 게이트가 형성되었다.
한서리가 연 것이 아니다. 어딘가에서 만든 차원문이 이쪽 세계로 연결된 것이다.
후드득!
게이트 너머로 찐득한 액체가 새어 나와 떨어졌다.
이윽고 그 안쪽에서 점액질로 가득한 거대한 촉수가 삐져나왔다.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빨판이 가득하고 어마어마한 두께의 근육이 맥동한다.
게이트 안에서 빠져나온 것은 거대한 크투그아의 다리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배배 꼬인 크투그아의 다리는 무언가를 붙들고 있었다.
좌르르륵!
쇠사슬에 묶인 상자가 마치 엮인 굴비마냥 촉수가 당기는 대로 빠져나왔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쇠사슬과 함께 상자가 땅에 떨어졌다.
그것을 확인한 한서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됐어. 돌아가.”
긍정을 표하듯 빨판을 꿈틀거린 촉수. 그것은 그대로 게이트 너머로 사라졌다.
그렇게 남은 한서리는 조용히 크투그아가 건네주고 사라진 물건을 확인했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검은 관짝.
그 수는 총 여섯 개.
모두 각양각색의 크기를 가졌지만 그중 하나는 유난히 커다랬다.
한서리는 말없이 다가가 관짝 중 하나를 열었다.
끼익─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열린 관의 안쪽으로 눈에 보인 것.
그것은 눈에 익은 늑대의 대가리였다.
* * *
세라스는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사막 위를 날고 있었다.
콰아아아아!!
그녀의 등에는 황금색으로 반짝이는 오라의 날개가 있었다. 그리고 등에 붙은 사출구에서 불꽃처럼 뻗어 나온 압력이 그녀를 앞으로 밀어냈다.
오라 기술을 마스터한 그녀는 이제 마법조차 사용하지 않고 하늘을 날 수 있는 능력을 얻은 것이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주변 풍경과 얼굴에 닿는 바람. 그리고 고속이동에서 오는 짜릿한 스릴이 쾌감을 주었지만, 정작 하늘을 날고 있는 세라스의 얼굴은 참혹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공포가 담긴 황금색 눈이 뒤를 돌아본다.
무엇 하나 두려울 것이 없는 화신에게마저 공포를 심어 줄 수 있는 것이 어디 있을까 싶지만 그것을 보고 나면 누구라도 그 심정을 이해할 것이다.
카각, 카각 뾰족한 앞니가 부딪치고 붉은빛이 나는 갑각 옆으로 수십 개의 다리가 달려 있다.
선계의 차원 이동자들에게 흔히 샌드웜이라고도 불리는 절지동물.
그것 수천 마리가 검은 파도처럼 서로의 몸을 뒤틀며 돌격해 오고 있었다.
키르르르르르르!!
그로테스크하게 꿈틀거리는 벌레의 무리가 보이는 끔찍함에 세라스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가속해 도망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이 끔찍한 괴물들을 불러 모은 것은 세라스 자신이었으니까.
하늘을 날고 있는 그녀의 양손에는 커다란 분무기가 붙들려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샌드웜을 자극하는 호르몬제가 빛을 반사해 무지개를 피워 내며 뿌려지고 있다.
더 이상은 못 버티겠다!
세라스가 외쳤다.
“테스트 상대로 이 정도면 충분하잖아!!”
그러자 바로 대답이 왔다.
“그 정도면 됐어! 이쪽으로 유인해!”
멀찍이 서 있던 한서리가 마법으로 증폭시킨 소리를 내지르자, 세라스가 바로 방향을 틀었다. 그대로 분무기를 든채 가속해 한서리를 향해 날아갔다.
그러는 동안 마법진을 가동시킨 알리시아가 소리쳤다.
“이쪽도 준비 됐습니다!”
준비가 완료됐다.
앞으로 나서는 한서리. 그녀의 손에는 지팡이가 쥐어져 있었다.
그동안 연구해 온 마법이 작동하며 사방에서 일어난 검은 기운이 지팡이로 집중. 한서리는 검은 안개가 흘러넘치는 지팡이를 앞으로 향하며 차갑게 명령을 내렸다.
“가라.”
그러자 그녀의 등 뒤에 서 있던 두 개의 그림자가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늑대의 머리를 한 수인.
그리고 붉은 피부와 날개에 갑주를 걸친 악마.
온몸이 구겨진 종잇조각처럼 갈라져 그 틈으로 검은 마기를 흩뿌리고 있는 그들은, 과거 한서리의 세계를 침략했던 여섯 화신 중 둘.
늑대왕과 파이몬이었다.
“죽여라. 너희들이 가진 모든 것을 사용해서.”
“…….”
한서리의 명령이 떨어지자 늑대왕과 파이몬이 각자 발을 박차며 새까맣게 몰려오는 샌드웜의 무리 안쪽으로 뛰어들었다.
쫘아아악─!!
늑대왕의 손에서 길쭉하게 뽑혀져 나온 손톱이 전방을 훑자, 빗자루에 쓸린 가랑잎처럼 벌레의 무리가 쓸려 날아갔다.
쏴솨솨솨솨!!
그 옆에서 날뛰는 것은 검을 뽑아 든 악마.
날개와 검이 화려하게 춤추니, 폭풍우와 같은 검기가 영역 내의 공간을 모조리 분해하고 파편으로 만들었다.
화신으로서의 힘은 없다.
하지만 복원한 그 육체와 한서리가 더해 준 약간의 버프만으로, 두 전사가 수천 마리의 샌드웜을 단백질 조각으로 분해하는 데에는 채 삼십 분도 걸리지 않았다.
상공에서 그 모습을 지켜본 세라스는 그저 감탄을 토할 수밖에 없었다.
실험에 성공했다.
몇 년에 걸쳐 벨제불의 힘을 연구한 결과, 한서리 일행은 직접 데스나이트 제조법을 만들어 냈다.
죽은 신체를 되살려 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있던 생전의 기술마저 복원해 내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한서리는 그 결과를 잠시 지켜보다가 후우 한숨을 내쉬며 지팡이를 내려놓았다.
“돌아가.”
그녀가 명령하자 충실한 노예가 된 과거의 두 화신이 샌드웜의 체액을 뚝뚝 흘리며 줄줄이 늘어져 있던 관짝으로 돌아가 몸을 뉘였다.
실험이 끝나고 난 뒤에 남은 것은 정리정돈의 시간이었다.
연구를 위해 여러 선계를 돌며 물건을 사거나 전문가에게 조언을 듣다 보니 은근히 많은 자금이 들었다. 덕분에 한서리 일행은 모두 자린고비처럼 변한 지가 오래였다.
알리시아가 펼쳐 두었던 마법진을 접고, 우르르 쏟아져 나온 인형들이 널브러져 있는 샌드웜의 시체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죽은 괴물들로부터 마정석을 회수하는 것이다.
한서리 역시 수십 기의 골렘을 소환해 알리시아의 인형들을 도왔다.
한서리와 알리시아가 주변을 정리하는 동안, 세라스는 근처에 살던 원주민들로부터 샌드웜 토벌에 대한 보상금을 받아 왔다.
그들에게서 받은 현물은 위그드라실을 오가는 상인들에게 팔아 마정석으로 환원하는 것도 나름 쏠쏠한 벌이가 되었다.
그렇게 모든 정리를 마친 그들은 평소처럼 차원문을 열었다.
이제는 당연하다는 듯이 튀어나온 천사상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건넸다.
“차원 항구로.”
한서리는 그렇게 지시하며 벌레들의 체액이 묻은 마정석을 고스란히 주머니에 넣어 주었다.
평소 같았다면 바로 기계적인 답변을 하며 차원 좌표를 설정해 줬을 천사상.
하지만 왠지 오늘은 달랐다.
“…….”
위그드라실의 천사상은, 평소와 다르게 시체로 가득한 주변과 한서리의 등 뒤에 나란히 서 있는 여섯 개의 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