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147화
대답이 없는 천사상.
하지만 한서리는 왜 그러냐고 묻지 않았다.
잠시 후, 다시금 한서리를 바라본 천사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차원 좌표를 설정하겠습니다.>>
녀석은 그렇게 할 일을 마치고는 금세 사라져 버렸다.
그것을 지켜보던 세라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거 왜 저래? 고장났나?”
“…….”
말이 없는 걸 보니 알리시아는 상황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한서리는 그런 그녀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여 보인 뒤 말했다.
“글쎄.”
아무것도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며 발을 옮겼다. 그녀는 딱히 세라스에게 설명을 해 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필요한 내용은 이미 다 말해 줬다.
지금은 긴장이 풀려서 그렇지, 한때 수사관 노릇까지 했던 세라스다. 필요할 때가 되면 누구보다도 빠르게 상황에 대응해 줄 것이다.
“가자.”
세 사람은 그렇게 모든 일을 마치고 차원 항구로 돌아갔다.
차원 항구.
한서리 일행처럼 온갖 선계를 넘나들며 여행을 하는 자들에게 그곳은 중요한 거점이었다.
좌표 값이 단순하고, 모든 차원을 향해 열려 있으며 그 반대로 빠져나가기도 쉬운 세계.
거기에 위그드라실이라는 중개업자까지 있으니 사람이 모이지 않을 수 없는 곳이었다.
차원 항구가 존재하는 세상은 오로지 암흑만이 존재하는 곳이다. 그렇기에 위그드라실은 외부에서 들여온 자재로 그 암흑 공간 안에 거대한 구조물을 건설했다.
때문에, 차원 항구는 멀찍이서 보면 마치 우주 공간에 떠 있는 커다란 위성처럼 보였다.
세 사람은 사방을 날아다니며 일하는 천사상들의 도움을 받아 마기아를 선착장에 입선시킨 뒤 항구의 플랫폼을 거닐었다.
항구 내에는 온갖 종족들이 다 돌아다녔다. 사람만 한 벌레부터 시작해서 기계로 만들어진 거인, 수인, 그냥 동물, 기타 등등…… 그 수를 셀 수도 없다.
각 선계에서도 차원 여행자들은 손에 꼽는다 하지만, 그 선계가 수도 없이 많다 보니 이렇게나 사람들이 모인 것이다.
한서리가 먼저 의견을 냈다.
“최근 고생했고, 실험도 성공했으니까 파티 겸해서 선술집에서 한잔하자.”
“좋아! 안 그래도 항구의 900번대 요리를 먹어 보고 싶었어.”
“좋습니다.”
세라스와 알리시아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항구에는 여행객들을 반기는 선술집 거리가 있었다.
위그드라실에서 직접 운영하는 곳도, 위그드라실의 허가를 받은 차원 이동자가 운영하는 곳도 있다.
각 선술집에서 취급하는 음식의 종류가 워낙 다양하다 보니 대부분의 음식들은 별개의 이름보다는 번호로 호명하게 되었다.
세 사람은 세라스가 원하는 대로 900번대의 요리를 취급하는 선술집에 가서 앉아 요리를 시켰다.
그리고 알리시아는, 잘 알아보지도 않고 세라스의 말을 들어 준 것을 후회했다.
“…….”
꿈틀꿈틀, 미끌미끌한 단백질 덩어리들이 식탁에 가득했다.
촉수 덩어리의 심해 생물, 크투그아를 산 채로 조각내어 올려 둔 것 같다. 나름 양념을 한 것 같지만, 열로 익히지를 않아서 말단조직이 대부분 살아 움직였다. 점액질로 번들거리는 다리가 꼼지락거리는 모습을 보기만해도 기분 나쁜데, 그걸 입 안에 넣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다끼쳤다.
“왜 그래? 먹어 봐! 이거 진짜 맛있다고.”
옆에서는 바보가 신이 나서 꼬물거리는 근육 덩어리를 입안에 밀어 넣고 있었다. 입술 밖으로 튀어나온 촉수가 볼에 달라붙어 있는 모습이 끔찍하기 그지없다.
그리고 한서리는 먹을 것보다는 다른 것에 관심이 많은지 벌레 날개를 파닥이며 귓가에 조잘대는 요정들의 말에 신경을 기울이고 있었다.
보아하니 그들에게 구입한 정보를 보고받는 듯했다.
간만의 회식인데, 자리를 잘못 골랐다.
“에휴…….”
이곳에서 나가면 돌아가기 전에 노점에라도 들러서 뭐라도 사 가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알리시아가 고동으로 만들어진 술잔을 기울일 때였다.
높은 목소리가 들렸다.
“여! 아가씨들! 요즘 잘 지내나?”
한 남자가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화려한 외견의 남자였다.
푸른 머리에 푸른 장포를 걸친 그는 얼굴은 여자처럼 하얗고, 머리 위에는 사슴의 뿔이 달려 있었다.
그는 부채를 펄럭이며 다가와 그들이 앉아 있는 식탁으로 다가오더니, 후후 미소를 지으며 요염한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윽.”
그를 본 세라스의 얼굴이 단숨에 일그러졌다.
한서리의 귓가에 이야기를 속삭이던 요정들이 깜짝 놀라 도망친다. 세라스는 입속에 우물거리던 음식을 순식간에 씹어 삼키고 말했다.
“저리 꺼져. 당신 같은 난봉꾼이랑은 말 섞기 싫으니까.”
날선 경고였지만 남자는 개의치 않고 웃었다.
“모두들 그렇게 말하지. 나를 잘 모르는 여자들은 말이야.”
그러면서 그는 한쪽 눈을 찡긋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들도, 결국에는 모두 내 아내가 됐다고. 그리고 모두 행복하게 살고 있지.”
그런 장난기 어린 말에 세라스는 역겹다는 표정을 지었다.
“개소리하지 마. 인간형이기만 하면 다 치근거리는 주제에. 네가 껄떡거리는 여자만 이 항구 내에 수백 명이 넘는 건 알고 있다고.”
“좋은 여자들이지. 아직 사랑이 시작되지 않아 아쉬울 뿐이지만.”
“미친놈.”
세라스는 질렸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것을 지켜보던 알리시아가 점잖게 말했다.
“그만둬라, 유운. 몇 번이고 말했지만 우리는 네 아내가 될 생각이 없다.”
“그렇게 단정 짓지는 말라고. 앞일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그렇게 알리시아의 말을 흘려 넘긴 유운이 부채를 접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너희들 요즘 벨제불의 힘을 연구하고 있다며? 그걸로 뭘 하려는 거야?”
그제야 한서리가 반응했다.
“네가 알 바가 아니야.”
파란 눈이 매섭게 남자를 흘겨본다. 유운은 웃었다.
“알 바가 아니라니, 내 아내들 중에는 ‘관리자‘도 있다고. 그들이 얼마나 걱정을 하고 있는지 아나? 벨제불의 힘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알거 아니야?”
관리자, 라는 말에 한서리의 눈빛이 조금 변했다.
그녀는 비릿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래, 위험하지. 그러니까 쓸모가 있는 거고, 관리자같이 높으신 분들이 아무것도 아닌 나한테 관심을 보이는 거야.”
“관심을 끌어서 뭘 하려고?”
그 질문에 한서리가 답하려 할 때였다.
한 천사상이 두 사람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녀석은 한서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한서리 님, 메타트론 님께서 잠깐 보자고 하십니다.>>
위그드라실의 주인인 천사를 말하는 것이다.
갑작스러운 관리자의 면담 신청에 세라스와 알리시아의 표정이 굳었다.
올 게 왔군.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린 한서리는 식탁 위에 올라온 술잔을 단번에 비운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먹고 즐기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걸 깨달은 세라스와 알리시아 역시 바로 입가를 닦고 옷차림을 정돈했다.
“앗, 메타트론 양? 나도 간만에 얼굴 좀…… “
유운이 그 뒤를 따라가려고 하자 천사상이 가로막았다.
<<넌 따라오지 마. 난봉꾼 새끼야.>>
“오옷, 오늘도 화끈한걸.”
그렇게 천사상이 유운을 상대하는 사이에 세 사람은 바로 식당을 빠져나왔다. 메타트론이 있는 항구의 관청으로 발길을 옮기며 알리시아가 뒤를 돌아보았다.
“저런 놈이 선계 제일의 전사라고 불리다니, 믿기지 않는군.”
그러면서 그녀는 세라스를 바라보았다.
넌 어떻게 생각하냐는 듯한 눈짓에 세라스가 답했다.
“확실히 실력은 있어. 선계 제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엄청난 고수라는 건 확실해.”
알리시아도 나름 수준 높은 전사, 그녀라고 보는 눈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에 유운은 그 정도의 고수가 아니었기에 알리시아는 조금 놀라서 물었다.
“……정말이냐?”
세라스는 코웃음을 쳤다.
“그래. 하지만 그래 봐야 그 정령한테는 상대도 안 돼. 정령을 이긴 김건은 말할 필요도 없고.”
황금색 눈이 번뜩인다. 세라스는 빠드득 이를 갈았다.
“이길 수 있어. 지금의 나라면.”
더 이상 무력하게 당하기만 하지는 않아.
세라스에게는 그런 각오가 서려 있었다.
평소 같았다면 까불지 말라고 핀잔을 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알리시아도 입을 다물었다.
왜냐하면 아니까.
그동안 세라스가 강해지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한서리가 말했다.
“너무 무시하지는 마. 단순히 싸움 실력만 가지고 거기까지 올라간 남자가 아니야. 일인 군단이라는 명칭을 가졌음에도 아그니스와 맞서지 않고 피해 다닌 걸 보면 판단력이 좋아. 배짱도 있고. 실적과 교활함을 동시에 갖고 있는 거지. 싸울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단순한 싸움꾼으로만 생각하면 위험할걸.”
투지를 불태우며 열을 올리는 세라스를 진정시키기 위해 던진 말.
“알고 있어.”
그러나 차갑게 내려앉은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아하니 괜한 걱정이었던 것 같았다.
한서리는 세라스의 어깨를 툭 치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 * *
잠시 후, 항구의 관청에 도착한 그들은 천사상의 안내에 따라 메타트론의 집무실로 들어섰다.
메타트론의 집무실은 정말 으리으리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공간이었다.
눈이 부실 정도로 반짝이는 보석과 황금이 방 전체를 휘감고 있다. 차원 단위로 움직이는 사회에서도, 보석 등의 광물은 상당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각종 마법 촉매로 쓰이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야말로 돈지랄이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르는 방.
하지만 오히려 그 안에 놓여 있는 것은 수수한 책상과 어지럽게 놓여 있는 문서 더미였다.
그 때문에 방에서는 단절된 두 공간을 억지로 이어 둔 것 같은 기괴한 분위기가 풍겼다.
“왔냐?”
메타트론은 접대용으로 놓은 소파에 깊숙이 몸을 묻은 채 팔짱을 끼고 있었다.
심기가 불편한 것을 표현하는 건지, 손가락으로 까딱까딱 팔꿈치를 두들기며 신경질적인 시선을 보내 오고 있었다.
상대가 저 모양이니, 예의고 뭐고 없다.
한서리 일행은 말없이 메타트론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한서리가 자신을 바라보자, 메타트론은 대뜸 질문을 던져 왔다.
“너, 무슨 생각이야?”
“뭐가?”
나른하게 대답하는 한서리.
뻔히 알면서도 시치미를 떼는 태도에, 메타트론은 벅벅 이를 갈면서 말했다.
“왜 벨제불의 힘에 손을 대? 그걸로 뭘 하려고?”
“쓸 데가 있으니 연구하는 거지. 위험하다고는 해도 딱히 금지가 되어 있는 것도 아니잖아? 화신이 접근 가능한 기린의 데이터베이스 내에도 자료가 남아 있고 말이야.”
“그걸 누가 몰라? 그래서 왜 하냐니까!”
쾅 하고 책상을 두들기며 흥분한 메타트론이 소리쳤다. 어지간히 화가 났는지, 얼굴이 새빨갛고 목에 핏줄이 솟아 있었다.
하지만 한서리는 그것이 그저 성질 더러운 천사의 투정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여유작작한 태도로 말했다.
“그걸 이쪽에서 굳이 말해 줄 필요가 있나?”
“……그럼, 시간 역행은 이제 포기한 거냐?”
갑작스럽게 던져진 질문.
그에 한서리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차피 찾으려 해도 못 찾게 막을 거잖아?”
“…….”
언뜻 포기했다는 뉘앙스로 들리기는 하지만, 직접적으로 포기 선언을 한 것은 아닌 중의적인 말.
메타트론은 곰곰이 그 말을 되씹으며 한서리를 노려보더니, 이내 깊게 한숨을 쉬었다.
“……그래, 알았다. 그만 가 봐라.”
보기 싫다는 듯이 손을 내젓는다.
‘누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줄 아나?’
무례한 행태에 발끈한 세라스와 알리시아가 입을 열려는 순간, 한서리가 먼저 말을 꺼냈다.
“불러냈으면 그 대가를 치러야지? 그게 그쪽의 방식이잖아.”
그러자 메타트론은 쯧, 혀를 차더니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어디선가 날아온 천사상이 커다란 마정석을 가져와 한서리의 손바닥 위에 떨어트려 주었다.
사람 머리통만 한 크기의 마정석, 그것은 불만을 쏙 들어가게 할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한서리는 웃으면서 그것을 마법 주머니에 넣었다.
“고마워. 연구비로 잘 쓸게.”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이를 갈아 대는 소리로 한서리 일행은 충분한 만족감을 느끼며 집무실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허무하기 짝이 없을 정도로 짧은 면담.
하지만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느꼈다.
방금의 그 대화로, 무언가가 급격하게 진전되었다는 것을.
며칠 후, 다시 항구를 떠나 마기의 실험을 계속하고 있는 한서리 일행에게 전령 역할을 의뢰받은 요정이 나타났다.
그 요정이 가져온 소식은 놀라운 것이었으니,
바로 시간 역행의 힘을 가졌다는 한 화신의 대면 요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