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150화
갑자기 등장해 김건을 보호한 금속 덩어리. 김건을 노리던 습격자는 거기서 느껴지는 마력으로 단숨에 그 정체를 깨달았다.
“가까이 두겠다고 하더니…… 평범한 함선이 아니었던건가.”
하지만 상관없다.
그깟 강철로는 막아 낼 수 없는 공격으로 뚫어 버리면 되니까.
습격자는 바로 다음 마법을 짜 올렸다.
순식간에 만들어진 술식의 형상은 모든 것을 태워 없애는 불꽃.
그 끝에서 터져 나온 극대소멸공격, 플레어가 금속 기둥 너머의 김건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그것을, 어디선가 뿜어져 나온 새하얀 기둥이 맞받아쳤다.
엡솔루트 제로.
절대영도의 한기가 초열의 화염과 충돌.
서로가 상극인 기운이 뒤섞이며 격렬한 상쇄반응을 일으키더니 이내, 폭발이 일었다.
퍼어어엉!!
적막하던 도당이 폭음과 함께 한순간에 조각조각 흩어졌다.
그 속에서 뛰쳐나온 두 사람이 공중으로 떠올라 서로를 마주했다.
앱솔루트 제로를 발사해 플레어를 받아친 것은 한서리였다.
신격을 드러낸 그녀는 밤하늘에 푸르스름한 은발을 휘날리며 정면에서 날고 있는 사람에게 말했다.
“오랫동안 산골에만 처박혀 있긴 했나 봐. 꽤 고전적인 수단을 쓰던걸.”
“…….”
그러면서 싸늘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것을 본 상대는 잘게 입술을 씹었다.
“……역시, 기다리고 있었군.”
“그래. 처음 봤을 때부터 네가 순순히 우리에게 협력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거든.”
이럴 줄 알았다면 들킬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저주 계열의 술법을 썼을 거다.
미리 대비만 하고 있다면, 화학 작용을 이용한 약물 따윈 화신에게 아무런 효과도 미치지 못하니까.
미리 대비만 하고 있다면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영린은 손톱을 깨물었다.
‘선계의 피해를 줄인다는 어중간한 판단 때문에 일을 그르쳤어.’
그녀는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한서리를 노려보며 본심을 토해 냈다.
“비켜. 쓸데없이 화신을 죽여서 문제를 키우고 싶지는 않으니까. 내 목표는 네 뒤에 있는 놈뿐이야.”
영린이 턱짓을 한 곳에는 전함의 모습을 한 채, 그 일부만 변형하여 팔을 뻗어 낸 마기아와 그의 비호를 받고 있는 김건이 있었다.
영린의 눈은 정확히 강철덩어리 너머의 김건을 향하고 있었다.
한서리가 말했다.
“내 남편의 시간을 되돌려 주겠다는 계약은 어떻게 하려고?”
“계약? 난 계약 수행 시기를 명명하지 않았어. 언젠가는 수행해야겠지만, 그전에 계약 대상이 죽어 버리면 무효화되겠지.”
거짓말이다.
한서리는 한순간에 그것을 깨달았다.
기린의 계약은 그렇게 쉽게 피해갈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미, 그녀는 영린이 무슨 수단으로 계약을 이용한 속임수를 펼쳤는지 파악하고 있었다.
한서리는 그 사실을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며 물었다.
“어이가 없군. 그런 어린애 장난 같은 억지까지 부리면서 이이를 노리는 이유가 뭐지?”
“……지금 그걸 나한테 묻는 건가?”
“그럼 이 자리에 너 말고 누가 있지?”
영린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이 되어 말했다.
“시치미를 떼는군. 선계, 아니 삼계 전체를 통틀어도 손에 꼽을 만한 무기를 부활시키려 하는 주제에.”
최초의 선계라 불리는 세계를 지키는 여자가 김건을 가리켰다.
마치 끔찍한 괴물이라도 본 것마냥,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저놈은 위험한 존재야. 지금까지 선계의 관리자로 살아오며 수많은 위험물을 처리해 왔지만 눈앞의 저것 정도로 거대한 불확정성의 덩어리는 본 적이 없어. 관리자들마저 두려워하던 또 다른 시간 역행자, 아그니스조차도 그걸 감당하지 못하고 죽었지.”
“…….”
“거기에 마력 자체를 분해해 버리는 그 힘은 시간 역행보다도 더 위험해. 삼계의 근본을 무너트리는 힘이야. 제아무리 강한 마신이라도, 그걸 맞으면 죽어 버릴 수밖에 없어. 나약한 피조물의 손에 있었기에 드러나지 않았을 뿐, 제대로 다룰 수만 있다면 삼계 전체를 위협할 수도 있어. 당장 죽여 없애야 해. 더 이상의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영린은 그렇게 제멋대로 지껄이더니 적의 가득한 표정으로 한서리를 바라보았다.
한서리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
“난 그저 이이에게 평범한 일상을 돌려주고 싶을 뿐이야. 그것마저 바라서는 안 되는 건가?”
“웃기지마. 너처럼 혼돈으로 가득한 종자들은 언제나 그렇게 말하며 파멸을 부르지.”
경멸어린 시선이 한서리를 위아래를 훑었다.
“너희들은 그 존재 자체가 이 위협이야. 그냥 이 세상에서 사라져 주는 게 옳은 길이라는 걸 몰라.”
도대체가 말이 통하지를 않는다.
한서리는 나직하게 한숨을 쉬었다.
“완전히 제 생각에 빠져 사는군. 그러니까 우화등선은커녕 제대로 된 수행자조차 되지 못하는 거야.”
이곳에 와서 관찰했던 영린이 모습을 떠올린다. 기린족의 족장이라고는 했으나 마을을 지나다니는 그 누구도 영린을 향해 고개를 숙이기는커녕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용을 마주쳤을 때, 영린은 그것을 속세에 찌든 눈으로 쳐다봐서는 안 될 존재라고 했었다.
그녀 자신조차 그것에게서 시선을 피하면서 말이다.
“하긴, 고작 그 꼴이니 족장이라는 이름뿐인 뒤처리꾼이나 하고 있는 거겠지.”
칼날처럼 던져진 말이 가슴을 후벼 판다. 영린의 얼굴이 단숨에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입 닥쳐. 너까지 죽여 버리기 전에.”
“할 수 있다면 해 보시지.”
그렇게 말하는 한서리의 등 뒤로 날아오르는 두 사람이 있었다.
각각의 신격을 드러낸 알리시아와 세라스였다.
“말하는 걸 들어 보니 그냥 쓰레기네. 잘난 척은 있는 대로 하더니, 지금까지 만나 봤던 범죄자 놈들이랑 별다를 바도 없잖아.”
세라스가 투덜거린다.
“방심하지 마라. 인격의 숭고함이 능력의 크기와 일치할 거라고 생각하지 마.”
그렇게 말하며 긴장감을 다지는 알리시아.
두 사람은 자신들이 언제 곯아 떨어졌었냐는 듯 형형하게 눈을 치켜뜨며 영린을 노려보았다.
그렇게 세 화신을 마주한 영린은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좋아, 더러운 역행자와 그 꼭두각시들. 이렇게까지 말 했는데도 못 알아듣는다면 선계의 관리자로서, 이 자리에서 모두 깨끗하게 치워 주마.”
‘정말, 예상 그대로의 인물이네.’
그 말을 들은 세라스는 지금으로부터 일 년 전, 테라핀과 메타트론을 만난 직후에 한서리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갑자기 왜 벨제불의 힘을 찾으러 가자고 하느냐는 세라스의 질문에, 한서리는 이렇게 대답했었다.
“시간 역행의 능력을 힘을 가진 화신은 극도로 보수적인 성향을 가졌을 가능성이 높아. 변화를 싫어하고, 기존의 체제를 뒤흔들 요인에 대해서 아주 강한 거부 반응을 보이겠지.”
“테라핀의 말로 추측한 거야? 시간 역행의 힘을 사용하지 않고 남들로부터 지켜야 하니까.”
“그래, 시간 역행처럼 그 사용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물건은 없거든. 상정 외의 리스크. 보수적인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말이지.”
그 말을 들은 알리시아가 물었다.
“근데 시간 역행 보유자와 벨제불의 힘이 무슨 연관 관계가 있기에 그걸 찾으려 하시는 겁니까?”
“왜냐하면 벨제불의 힘이 시간 역행 보유자가 제일 싫어할 만한 사람을 되살릴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으니까.”
“시간 역행 보유자가 싫어할 만한 사람?”
“내 남편 말이야.”
한서리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곤 옆에 앉아 있는 김건을 바라보며 말했다.
“시간 역행 보유자 입장에서 이이가 가진 힘, 반마력의 능력은 그 무엇보다도 경계해야 할 대상일 거야. 왜냐하면 회귀라는 최초의 시간 역행을 포함해 지금까지의 사건은 모두 그 능력으로부터 시작되었고, 그 능력으로 마무리가 되었거든. 잘만 사용하면 그만큼 위험한 힘이기도하고.”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김건의 손을 붙잡았다.
“아그니스가 우리 세계에 쳐들어오기 전에야, 우리가 선계로 나설 일이 없다고 판단했을 테니 가만히 있었을 테지만 지금은 달라. 우리 모두가 화신이 되었고, 나는 이이를 되돌리겠다고 온 선계를 들쑤시고 있으니까. 거기에 그 힘으로 아그니스를 날려 버리기도 했으니 예상위험도는 더욱 올라갔겠지.”
한서리의 의도를 이해한 알리시아가 말했다.
“그 말인즉, 벨제불의 힘으로 김건을 부활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면 어딘가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시간 역행 보유자가 반응할 거라는 겁니까?”
“그래.”
“그런데 그게 가능한 거야? 벨제불의 힘을 이용해 김건을 되살려 내는 게.”
그냥 움직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타인에게 위협을 주려면 최소한 어느 정도 미극공진동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기술과 의식도 갖춰야 했다.
아무리 마기가 강력한 힘이라고는 하지만, 스스로도 기억하지 못하는 기술을 복원해 내는 것이 정말로 가능할지는 미지수라고 할 수 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세라스가 묻자 한서리는 미소를 지었다.
“가능한지 어떤지는 상관없어. 중요한 건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거지. 조금 연구를 하면, 그 정도 성과를 내보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거야.”
“우리 움직임에 반응할 관리자가 꼭 시간 역행의 힘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지. 원래 낚시라는 건 실패할 수도 있는 거야. 한 번 미끼를 던져서 낚이지 않으면 다시, 그리고 또다시, 걸릴 때까지 떡밥을 던지면 돼. 그리고 또 하나.”
“또 하나?”
“지금 우리의 상대가 될 관리자라는 놈들은, 기본적으로 수동적인 녀석들이 대부분일 거야. 그들의 목적은 유지 보수지, 개발이나 발전이 아니거든. 우리가 다소 사고를 치고 다닌다 해도, 실제로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는 별다른 제재를 가해 오지 않을 거야.”
음산한 미소가 한서리의 얼굴에 드리운다. 그녀는 비웃듯이 말했다.
“하지만 그건 대부분의 일이 남 일이니까 그렇게 넘어갈 수 있는 거지. 일어날 사고가 자기 자신과 관계가 있다면, 아무리 수동적인 놈이라도 움직이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걸.”
그녀는 자신을 가리켰다.
“나.”
자연스럽게 움직인 손가락은 이내 김건을 향한다.
“그리고 남편은 둘 다 시간 역행자들이지. 게다가 정황상 나는 시간역행 마법을 찾다가 못해 벨제불의 힘에 손을 대개 됐어. 그런 우리가 사고를 쳤을 때, 제일 큰 책임감을 느낄 사람은 누구지?”
그 사람은 시간 역행 보유자이거나, 최소한 그것과 어느 정도 관계가 있을 자라고 그때의 한서리는 말했다.
그리고 지금, 한서리 일행은 그들을 죽여 없애려 하는 시간 역행 보유자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먹잇감을 낚기 위해 미끼를 던졌더니 단번에 월척이 걸린 셈.
지금의 문제만 해결하면, 김건을 되돌리고 모든 사건을 마무리 지을 수가 있었다.
그것을 직감한 세라스는 긴장을 다스리며 마른입술을 혀끝으로 핥았다.
영린은 전의를 불태우는 세 사람을 보고 웃었다.
“흥, 그깟 머릿수만 가지고 나를 제압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고작 관리 대상 주제에?”
그녀는 그러면서 폭발적으로 마력을 끌어올렸다.
위험을 감지한 세라스가 곧장 반응했으나 영린이 사용한 능력은 피하거나 막는 것이 가능한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영역권 내에 들어 있기만 하면 마음을 먹는 즉시 발동하는 저주와 비슷한 물건.
쿠우웅!
무시무시한 압력이 한서리 일행의 어깨를 짓눌렀다.
“큭!”
“이게 무슨!”
저항하려 했지만 그 힘은 아무렇지도 않게 마력적인 효과를 무시하고 세 사람을 찍어 눌렀다.
순식간에 추락하는 세 사람.
그들이 도당의 잔해 속에 처박히며 폭음이 울려 퍼졌다.
영린은 충격으로 흩어진 잔해 사이로 무릎을 꿇고 있는 세 화신을 굽어보며 말했다.
“특수한 권한이 필요하긴 하지만 관리자의 일 중에는 너희처럼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화신들을 조용하게 만드는 것도 포함되어 있지. 아무리 강하다 한들, 이 선계의 시스템 내에 속하는 화신인 이상 내게는 그저 치워야 할 쓰레기에 불과해.”
“……!!”
그건 허세가 아니었다. 화신이 되며 받아들인 여의주의 힘이 미친 듯이 몸을 휘젓고 있었다.
아무리 선계를 관리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하더라도, 이 정도의 힘을 쥐어 주다니!
“이런, 사기 같은……!”
“빌어먹을!”
세라스와 알리시아는 온 힘을 다해 발버둥 쳤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마치 장식장에 못 박힌 벌레 표본이라도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니, 느낌이 아니라 정말로 이러다 벌레처럼 죽겠어!’
마력을 사용하기는커녕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이쪽을 죽일 생각으로 가득한 정신병자를 눈앞에 두고 있으니, 남은 결과는 하나밖에 없었다.
“이익……!”
“제기랄, 팀장님. 괜찮으십니까?”
심각한 위기를 직면한 세라스와 알리시아가 미친 듯이 이 상황을 타개할 대책을 쥐어짜고 있을 때였다.
두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몸을 일으키고 있는 한서리를 발견했다.
“겁먹지 마. 화신 한 명 통제하지 못해서 중요 거점인 위그드라실까지 날려 먹은 바보들이야. 그런 놈들이 그 정도로 완벽한 능력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잖아?”
여느 때처럼 시린 미소를 짓는 한서리.
그런 그녀가 손가락을 튕기자, 세라스와 알리시아를 짓누르던 힘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
그것을 본 영린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그리고 다시금 깨달았다.
어느새 한서리의 등 뒤에 떠올라 있는 여의주.
그것이 바로 아그니스의 유산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