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151화
한서리가 관리자의 능력에 대해 눈치를 챈 것은 메타트론과의 처음 만났을 때였다.
그날, 한서리 일행은 총 두 명의 관리자를 만났다.
테라핀, 그리고 메타트론.
그렇게 만난 두 화신에게 그들은 아주 강력한 위협을 느꼈다.
한서리 일행은 무려 화신이 넷에, 전투에 있어서는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세라스까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세에서 밀렸다.
정면으로 싸웠을 때 전혀 이길 수 있을 거라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한서리는 거기에 의문을 가졌다.
대체 어떻게, 관리자는 그토록 강할 수 있는 건가.
관리자가 그렇게 강하다면, 아그니스는 어떻게 위그드라실을 박살 내고 마음대로 선계를 휘젓고 다닐 수 있었던 건가.
그 답은, 아그니스가 가지고 있던 여의주에 있었다.
시간 역행과 관련된 단서를 찾기 위해 몇 번이고 여의주의 정보를 읽었지만 그런 한서리도 그 안에 있는 내용을 모두 파악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관리자라는 존재를 알고 다시 들여다 보니, 별 의미 없는 것이라 생각하고 지나쳤던 것들 중 다르게 보이는 것이 있었다.
그렇게 하나둘,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 그 정보를 모아 조합하자 완성된 것은 하나의 술식.
그것은, 온 선계에 퍼져 있는 기린의 힘. 그것이 모여 이루어진 시스템에 간섭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그렇게 이루어진 결론은 간단했다.
관리자인 영린은 시스템의 힘으로 화신들을 제압하려 했고, 한서리는 아그니스의 술식을 이용해 시스템의 통제를 무효화했을 뿐이다.
‘빌어먹을 정령 놈. 죽어서까지 골칫덩어리군.’
영린은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기운을 차리기 시작한 한서리 일행을 바라보았다.
그 뒤에 떠 있는 함선까지 포함해서 총 네 명의 화신이 뿜어내는 마력이 숨 막힐 정도의 압력을 가해 왔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왜냐하면 이곳은 천산.
어디까지나 그녀의 영역이었으니까.
영린이 손을 모아 수인을 맺었다.
그러자 급격하게 기압이 상승. 지면에서 솟구쳐 올라온 마력이 순식간에 주변을 휘감았다.
도당을 중심으로 퍼져 나온 결계가 빛을 뿌리며 공간을 술식으로 메워 갔다.
“음!?”
그에 반응한 알리시아와 한서리가 반사적으로 방어 마법을 펼쳐 주변을 둘러쌌지만 소용없었다.
영린은 그저 일대에 깔려 있는 결계식을 발동시켰을 뿐이고, 그것은 주변의 공간을 모두 대상으로 삼고 있었으니까.
콰아아앗!
폭음이 울리며 주변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
점멸하는 시야. 요동치는 중력.
그러자 반고리관이 순간적으로 혼선을 일으키고, 그로 인해 생긴 어지럼증 때문에 헛숨을 토하며 다시금 균형을 잡았을 때, 그들은 방금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주변 풍경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풀 한 포기 없이 시커먼 암석만으로 가득한 삭막한 석산의 가운데. 주변에 있는 화산에서는 용암이 흐르고, 자주색 하늘에는 오오라가 떠돌고 있었다.
그것으로 상황을 파악한 한서리가 중얼거렸다.
“최초의 선계라더니, 상당히 고급스러운 시공간 결계가 걸려 있었네. 이만한 범위의 공간을 순식간에 이동시킬 줄이야.”
“쓰레기를 치운답시고 수행 중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 되니까.”
영린이 말한 것처럼, 그것은 마을을 지키기 위한 결계였다.
결계를 이용해 굴절시켜두었던 공간을 순식간에 되돌림으로서 일정 범위 내에 있는 존재를 모조리 다른 곳으로 튕겨 낸 것이다.
“적을 요격하기 위해 준비해 둔 장소인 모양입니다. 행성과 위성 사이의 인력을 이용한 건지 방벽도 없는데 중력이 이상해요. 순간이동이나 기타 시공간 기술은 사용하기 어렵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며 알리시아가 말하자 세라스가 앞으로 나섰다.
“상관없어. 어차피 여기서 도망칠 생각 따윈 없으니까.”
그러면서 오라를 끌어올리자 전신에서 솟구친 황금색 마력이 갑옷처럼 전신을 감쌌다.
그 모습을 본 알리시아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토록 찾아 헤매던 목표가 코앞에 있는데, 여기서 끝을 봐야지.”
알리시아가 모습을 바꿨다. 빛으로 휘감은 몸이 폭발적으로 부풀어 오르고, 이내 새빨간 비늘로 몸을 감싼 드래곤이 모습을 드러냈다.
크아아아────!!
알리시아가 포효했다. 그 육체 성능과 타고난 마력만으로도 대부분의 종족을 압도하는 용족에 화신의 힘까지 더해졌으니, 지금의 알리시아는 그야말로 괴물이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힘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영린은 웃었다.
“드래곤? 저급한 도마뱀 주제에 기세는 좋네.”
세라스는 확언했다. 영린은 아그니스와 같은 전사가 아니라고.
지금까지의 모습으로 보아, 마법 실력으로도 다른 화신들보다 크게 나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여유를 부린다.
그렇다는 함은, 어딘가 믿는 구석이 있다는 것.
그 믿음을 증명하듯 어디선가 울음소리가 들렸다.
크허어어어엉!
우렁찬 포효가 산맥을 쩌렁쩌렁 울렸다.
저편에 선 봉우리 하나가 무너졌다. 쾅, 쾅 소리가 들리며 무언가가 봉우리 사이를 연속으로 박차고 움직이더니 크게 도약해 폭음을 뿜어내며 영린의 앞에 착지했다.
고양잇과의 탄력적인 사족 보행체를 새하얀 털이 감싸고 있다. 검은 줄무늬가 선명하게 몸을 가로지르고, 위협적으로 드러낸 주둥이 사이로 누런 송곳니가 반짝이고 있다.
그것은 호랑이었다.
하얀 호랑이, 그것도 무려 알리시아와 비슷한 크기를 가진.
갑작스레 지진이 일더니 굉음과 함께 지면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암석지대의 바로 밑에 흐르던 용암이 분수처럼 솟구쳐 오르며 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뿌오오오오-!
둔중한 머리와 암석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는 등딱지. 그리고 그 뒤꽁무니에는 뱀의 머리가 혀를 날름대고 있었다.
놈이 지면에 발을 디디자마자 퍼져 나온 하얀 한기가 주변에 들끓던 용암을 모조리 암석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저 덩어리로 밖에 보이지 않는 두터운 육체가 네 발로 서니, 마치 눈앞에 까마득한 성벽이 선 것 같은 압박감이 주변에 깔렸다.
그게 끝이 아니다.
삐이이익!
높은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태양이 떠오른 것처럼 밤하늘이 하얗게 물들었다.
구름이 찢어지고, 달이 가려지며 하늘에서 불싸라기가 비처럼 쏟아진다.
온몸에 불길을 피워 올리는 새가 부챗살처럼 펼쳐지는 화려한 화염의 꼬리를 휘날리며 영린의 머리 위에 자리했다.
서쪽을 다스리는 백호.
북쪽을 다스리는 현무.
그리고, 남쪽을 다스리는 주작.
사라졌다는 청룡을 제외한 사신(四神)들이 모두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하나의 크기가 본체를 꺼낸 알리시아와 비슷한 괴수들이 서로의 울음소리를 내며 한서리 일행을 노려본다.
그 위용을 마주한 세라스가 기막힌 소리를 토해 냈다.
“여기서는…… 전설상의 동물이 아니네.”
사신의 힘을 재본 알리시아가 긴장감 어린 목소리로 텔레파시를 쏘았다.
<<조심해라. 덩치만 큰 게 아니야. 마력의 크기 역시 화신인 우리와 비슷하다.>>
“비슷하다고? 우화등선을 포기하고, 천산을 지키기 위해 영혼을 바친 선인들이 그렇게 우스워 보여?”
영린은 그렇게 다시 한번 알리시아를 비웃었다.
“헛된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으니 알려 주지. 너희에게 남겨진 미래는 없어. 어차피 여기서 모두 죽을 테니까.”
사신의 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
영린에게는 그것이 있었다.
그렇게 의기양양해하는 그녀를 본 한서리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자부심이 대단하군. 너희 기린족이 그토록 혐오하는, 혼돈의 힘에 의지하고 있는 주제에.”
“뭐!?”
한서리의 말을 들은 영린이 헛숨을 토했다.
정말로 깜짝 놀란 듯, 두눈을 크게 치뜨는 그녀.
그 순간, 한서리는 순간이동을 사용했다.
“……!!”
영린이 그 접근을 허용한 건, 말로 일으킨 혼란과 정확히 이상 중력을 역산하여 재배치한 후 순간이동을 사용한 한서리의 실력을 우습게 본 탓이었다.
한순간에 영린의 앞에 다다른 한서리가 손을 뻗었다.
영린은 반사적으로 방어 마법을 펼쳤으나 한서리의 손끝에 떠도는 마력의 형태를 보고서는 그것이 공격이 아니라는 것을 간파. 그것을 깨닫자마자 곧바로 술식을 바꾸어 대응했다.
배를 향해 나아가는 한서리의 손을 양손을 눌러 막는다.
서로의 손이 직접 맞닿지는 않았지만 두 사람의 손에서 퍼져 나온 마력이 길항하며 팽팽하게 서로의 술식을 겨뤘다.
“이놈……!”
지금은 정말로 놀랐다. 피가 빨려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영린은 식은땀을 흘리며 한서리를 노려보았다.
“너…… 혼돈옥의 존재를 아는구나!”
혼돈옥, 그것은 이 천산 내에서만 통하는 오래된 비밀이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기린족에 대한 건 잘 몰랐을 텐데 어떻게……!”
영린은 그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한서리 일행은 영린을 만나자마자 이곳에 왔다. 그리고 천산은 선계 내에서도 손꼽히게 접근이 어려운 곳 중 하나다.
차원 내의 좌표가 계속해서 바뀌는 곳이기 때문에 천산으로 이동하려 해도, 전혀 다른 곳으로 튕겨져 나가기가 일쑤였다.
이곳에 사는 기린족들마저도 귀소 본능을 이용해 감각적으로 좌표를 잡을 뿐, 정확한 계산을 통한 이동은 하지 못한다.
한마디로, 한서리 일행은 천산에 도착한 순간부터 외부의 정보로부터 고립된 상태라는 것이다.
수행자들로만 가득한 이곳에서 정보가 새어 나갔을 리도 없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혼돈옥에 대한 정보를 알아냈는가.
한서리는 웃으며, 그 답을 알려 주었다.
“이쪽에는 차원을 넘어서까지 텔레파시를 주고받을 수 있는 존재가 있거든.”
“……!!”
한서리는 차원을 넘어서까지 텔레파시를 전달할 수 있는 크투그아의 특수 개체, 크툰을 이용해 혼돈옥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이곳에 머무르는 동안 그녀는 크툰을 통해 바깥에 존재하는 선계의 정보꾼 역할을 하는 요적들에게 접근했다.
그리고 위그드라실에 맡겨 놓은 재산을 팔아 그들에게서 정보를 샀다.
천산에 대한 정보는 의외로 많았다.
선계 전체로 보았을 때 상당히 폐쇄적인 곳이기는 했으나, 최초의 선계라는 상징성 때문에 은근히 관심을 가진 차원 이동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 대부분의 정보가 파편화되어 그것을 쓸 만한 정보로 조합하는 데 제법 고생을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얻은 정보에는 혼돈옥에 대한 것도 있었다.
우화등선을 한 기린족이 기린의 일부로 선계에 흡수가 되듯, 그 반대급부로 만들어지는 물건.
등선하지 못한 선인들의 원한이 천산의 땅에 모여 응집한 것이라 하는 그것에는 특이한 능력이 있어, 그것을 몸에 품은 자는 기린의 계약으로 만들어지는 금제를 혼돈옥에 전이시켜 계약 불이행의 저주를 피해 갈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상당히 불안정한 힘이었다.
한서리가 눈을 빛냈다.
“이대로 혼돈옥을 몸 안에 융합시켜 주지. 그러면 꼼짝없이 계약을 수행해야 될 거다.”
혼돈옥을 숨긴 곳은 알고 있다.
마을에서 용을 만났을 때, 마력까지 사용해 두 손으로 배를 감싸고 있었으니까. 그 기이한 모습의 절은, 용의 눈에서 혼돈의 힘을 숨기기 위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술식을 이용해 영린의 뱃속에 숨어 있는 혼돈옥을 자극하려는 한서리.
그리고 그것을 막으려는 영린.
두 사람의 마력이 뒤얽히며 어마어마한 술식 대결이 이루어졌다.
영린이 침을 삼켰다.
여기서 조금만 실수해도 끝장이다.
관리자라는 직함을 달고 삼계를 무너트릴 수 있는 병기를 되살려 줄 수는 없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남은 집중력을 짜내어 소리쳤다.
“다 죽여!”
그러자 사신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저 무심하게 서 있던 괴수들의 시선이 눈앞의 한서리에게 집중된다.
<<팀장님!>>
그것을 보고만 있을 리 없었다. 알리시아가 바로 공격을 시작했다. 화신의 힘으로 더욱 강하고 더욱 빠르게 짜 올린 플레어가 사신들을 향해 쏟아졌다.
주작이 입을 벌렸다. 그가 쏟아 낸 불꽃이 플레어를 상쇄해 냈다. 고열의 충격파가 충돌한 탓에 터져 나온 폭음과 염열이 하늘로 솟구친다.
“하아앗!”
그 폭발을 꿰뚫고 돌격한 세라스가 한서리를 향해 날아가던 뱀, 현무의 꼬리이자 두 번째 머리의 공격을 막았다.
현무의 두 번째 머리가 세라스의 대검을 꽉 물었다. 첫 번째 머리인 거북의 주둥이가 벌어지며 뿜어낸 한기를 세라스가 반대쪽 손으로 뻗어 낸 오라의 방패로 방어.
하지만 그 탓에 완전히 행동이 봉쇄되었다.
홀로 자유를 얻은 백호가 우렁찬 외침을 토했다.
튀어나오는 발톱. 금강석이라도 조각낼 듯한 무시무시한 호랑이의 앞발이 한서리를 산산조각 내려 했다.
하지만, 한서리를 포함한 그 누구도 그것에 위협을 느끼지 않았다.
콰아앙!
거대한 무언가가 백호의 옆구리를 들이받았다.
수십 미터에 이르는 거대 괴수가 비명을 지르며 튕겨져 날아갔다. 그리고 그것을 뒤쫓는 비행체가 있다.
탐사를 시작한 내내 한서리 일행의 거처이자, 이동 수단이었던 함선, 마기아가 무시무시한 기세로 백호에게 달려들었다.
후방부의 로켓을 분사하여 가속.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공중에서 변형을 시도한다.
길쭉하게 뻗은 비행체의 모습 위에 반듯한 균열이 번지며 금속이 접혔다.
금속과 기계 관절이 내는 특유의 소리를 뿌리면서 한순간에 팔이 뽑히고 다리가 뻗어 나왔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두꺼운 금속의 신체.
너무나 비대해 그저 덩어리로밖에 보이지 않는 어깨 위에 얹어진 거인의 머리에 번득이는 것은 길게 찢어진 광물의 눈이었다.
함선이 괴수에도 지지 않을 크기의 강철 거인의 모습으로 변모하는 것은 그야말로 순간이었다.
“크워어어어!!”
과도한 육체의 진화로, 오히려 지능이 퇴화했다고 하는 기가스의 말로.
마기아가 금속성의 괴성을 토하며 강철의 주먹으로 괴수의 머리를 후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