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153화
세라스의 대검이 내리꽂히는 순간 대폭발이 일었다.
잔잔한 호수 위에 바위가 떨어진 것처럼 단단한 지면이 물결치며 지표에 있던 모든 것들이 하늘로 튀어 올랐다.
일자로 퍼져 나온 충격파가 모든 것을 분쇄하고, 남은 에너지는 소리와 열로 변환되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폭음이 대기를 찢었다. 융해된 암석이 지반을 뚫고 튀어 오른 용암과 섞여 사방에 불똥을 뿌렸다.
솟구쳐 오른 토사가 하늘에서 쏟아졌고, 몰려온 후폭풍이 흙먼지를 몰고 사방으로 번져 나갔다.
초월적인 물리력의 충돌이 일으킨 성대한 파괴는 그것 자체로 장관을 연출했지만 급박한 전투 상황이었기에 감상하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잘했다!>>
발동이 빠른 오라 공격.
상대의 예측을 초월하는 갑작스러운 대규모의 일격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한 방 먹일 수 있었다.
알리시아는 세라스를 칭찬하며 바로 마법을 사용해 시야를 가리고 있는 먼지를 치웠다.
그녀의 손짓에 따라 몰아닥친 바람이 일순간에 흙먼지를 날려 버린다. 그러자 처참한 모습이 되어 있는 사신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공격에 직격당한 현무는 그대로 소멸했는지 바스라진 등껍질의 잔해만이 남아 있었고, 칼날에 스친 주작은 산산조각이 나서 신체가 사방에 흩뿌려져 있었다.
그나마 백호가 신체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그나마도 절반 정도가 박살 나서 바닥을 기고 있다.
<<마기아! 백호를 노려라!>>
한 번에 많은 힘을 소비한 세라스는 순간적으로 탈진해 쓰러졌다. 알리시아는 그 대신 마기아에게 외치며 먼저 극대소멸공격기를 사용해 재생을 시작하는 주작의 파편을 지워 버렸다.
“크워어!”
세라스에게 마력을 빨린 탓에 지치긴 했으나 마기아는 충실히 그 요청에 따랐다. 곧장 양손을 모아 만들어 낸 고열의 플라즈마를 내쏘았다.
“……!!”
백호는, 움직여 그것을 피했으나 완전하진 못했다.
남아 있던 몸통이 모조리 증발해서 흩어지고 겨우 머리와 한쪽 앞다리만이 남아서 땅을 구른다.
일반적으로는 이미 죽었다고 봐야 하는 피해.
하지만 알리시아는 그들이 전신을 육편으로 만들어도 재생이 가능한 괴물들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연속된 전투로 지친 알리시아였지만 그녀는 바로 마기아를 지원하기 위해 다음 공격을 짜냈다.
그 순간, 백호가 남은 한 발을 박차고 어딘가로 돌진했다.
“크허어엉!”
놈은 머리만 남은 채 마지막 발악을 하듯이 아직도 영린과 얽혀 있는 한서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런!>>
화들짝 놀란 알리시아가 플레어를 발사했지만 조금 늦었다. 그녀의 공격이 백호에게 적중하는 것보다 백호의 이빨이 한서리를 조각내는 것이 더 빨랐다.
“큭!”
어쩔 수 없이, 한서리가 먼저 손을 뗐다.
그녀는 곧장 뒤로 날아올라 백호의 공격을 피한 뒤, 바로 절대영도의 광선을 발사해 그 와중에도 재생을 하고 있는 백호의 몸통을 삭제해 버렸다.
파스스스!
하얀 가루만 남긴 채 소멸하는 백호를 마지막으로 사신이 전멸.
한서리가 손을 땐 탓에 자유를 되찾은 영린이 마찬가지로 날아올라 거리를 벌렸다. 그녀는 여유가 생기자마자 뱃속에 숨겨 두었던 혼돈옥을 입으로 토해 냈다.
검은색과 갈색이 뒤섞여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는 구슬.
“무슨……!”
주변을 둘러본 그녀는 그제야 모든 사신들이 한서리 일행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닫곤 연분홍빛으로 생기가 넘치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족장인 그녀의 명을 따르는, 천산의 수호신을 모두 잃어버렸다.
언젠가, 언젠가 복구는 된다.
천산을 지키려 하는 기린족들의 마음은 모두 같으니까.
누군가는 등선하지 않고 사신의 자리를 취할 것이다.
하나, 만약 그전에 아그니스처럼 다른 선계를 침략하는 등의 일이 일어나면 그때까지 수많은 선인들이 수행에 힘쓰지 못하고 고통을 받을 것이다.
바로, 그녀의 실책 때문에.
“제기랄…….”
결국, 입에서 욕설이 흘러나왔다.
영린은 수행자가 되지 못한 기린족이었다.
그녀는 날 때부터 속세에 관심이 많았다. 도를 쌓거나, 등선을 위해 고행을 하는 것 따위는 지루하며, 따분한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뛰쳐나갔다.
천산을 벗어나 여러 선계를 돌며 수많은 것을 보고 수많은 것을 겪었다.
그리고 되돌아왔다.
혼돈만이 가득한 속세, 미래 따윈 보지 않는다.
하루하루만 살아가는 근시안적인 가치관. 절제 따윈 없이 욕망과 탐욕만이 가득한 그 가벼움에 질려 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수행자가 될 수 없는 인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모두가 기피하는 족장직을 물려받았다.
천산에서 유일하게 외부 세계와 연결되는 존재.
모든 더러운 일을 홀로 처리하여 천산, 더 나아가 선계를 깨끗하게 유지하는 존재.
그런데, 그토록 소중한 천산이 더럽혀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눈앞의 쓰레기들 때문에.
“이, 개새끼들이……!! 감히……!”
영린은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한서리를 쳐다보았다.
정말이지 뻔한 그 성격에, 한서리는 비릿한 웃음을 띠었다.
“분해? 그렇지만 이게 현실이야. 이 정도 일도 처리 못할 자신감이 없었다면 이렇게 쉽게 이곳에 오지도 않았어.”
“닥쳐닥쳐닥쳐!”
미친 듯한 분노를 쏟아 내는 영린.
그녀는 완전히 이성을 잃어버린 것처럼 고개를 흔들더니, 한 손을 크게 들었다.
“다 죽여 버릴 거야!”
그러고는 그대로 나머지 손에 쥐고 있던 혼돈옥을 내리쳤다.
그러자, 검은 물길이 터져 나왔다.
“피해!”
영린의 손아귀로부터 엄청난 양의 액체가 뿜어져 나왔다. 마치 거대한 해일이 몰려오듯 한서리 일행을 덮쳐 왔다.
한서리 일행은 훌쩍 날아올라 그것을 피했다.
뒤로 물러나며 알리시아가 견제 삼아 플레어를 날렸지만, 그것은 마치 의지를 가진 듯이 솟아오른 검은 물결에 틀어막혀 가볍게 소멸해 버렸다.
세라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저건 또 뭐야…….”
그녀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본 것마냥 눈 깜짝할 사이에 호수처럼 지면을 덮어 버린 검은 액체를 바라보았다.
검은 액체가 꾸물꾸물 움직인다.
그것은 마치 벨제불의 마기처럼 보였지만, 마기는 아니었다.
벨제불의 마기가 정체불명의 공포를 근간으로 한 어둠의 결정체라면 눈앞의 흑색은 깊은 하수구 속으로 손을 찔러 넣어, 그 바닥에 누적되어 있던 오물을 긁어내어 끄집어낸 것만 같은 오염의 결정체라는 느낌이었다.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그 더러움에 소름이 다 끼친다.
악취가 사방을 물들이고, 형체를 붙잡을 수 없는 그 덩어리 속에서 솟아오르기 시작하는 것이 있었다.
“키르륵, 케에엑!”
그것은 개였다. 날개가 달린 검은 개.
하지만 그 육체는 살과 육체가 아니라 끈적한 타르 같은 검은 물질로 되어 있었다.
등선하지 못한 선인들의 원한과 절망이 이 땅의 기운과 섞여 만들어 낸 오물.
혼돈에 뒤덮인 영린이 붉게 충혈된 눈으로 하늘을 날고 있는 한서리 일행을 노려보았다.
“물어라!”
손가락을 가리키며 말하자, 검은 호수 아래에서 일어난 개들이 날기 시작했다.
“카아아아아!”
수면이 물결치며, 어마어마한 숫자의 검은 개들이 새까맣게 공간을 메우며 이쪽을 향해 날아왔다.
여기까지 예상하지는 못했는지, 한서리가 침음을 삼켰다.
“간혹 기린족 중에서도 혼돈의 기질을 타고나는 사람도 있다고 하더니 저건가 보군. 성질머리도 더러운 걸 보니까 아주 딱이야.”
예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보이는 것치고는 꽤 여유롭게 중얼거린다. 기가 찬 세라스가 외쳤다.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저거, 너무 많다고!”
그녀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미친 듯이 몰려오는 개때를 가리켰다.
수천, 수만? 아니, 수십만은 되어 보인다. 그 숫자를 파악할 수가 없다.
많다. 그저 너무 많다.
새카맣게 일어난 괴물의 무리가 살아 움직이는 파도처럼 그들을 덮쳐 왔다.
<<일단 빠져!>>
알리시아가 외치자 모두가 개의 무리를 피해 계속해서 하늘로 날아올랐다.
개들은 빠르긴 했으나 기동력으로 화신을 쫓아갈 정도로 빠른 건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가속해 몇 초간의 시간을 번 알리시아가 물었다.
그녀는 시야 끝에서 몰려오고 있는 검은 파도를 바라보았다.
<<어쩌죠? 이대로 도망칠까요?>>
거의 성층권에 가까울 정도의 높이까지 올라왔더니 중력 이상은 상당히 많이 사라진 상태였다. 지금이라면 약간의 조정만으로 순간이동을 이용한 이탈이 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한서리른 고개를 저었다.
“아니, 여기서 도망치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거야.”
“왜?”
“지금 우리가 여기까지 온건 모두 저 영린이라는 여자가 저 혼자 모든 걸 처리할 생각으로 성급하게 일을 벌였기 때문이야. 우리를 싫어하는 관리자들은 다른 곳에도 있어. 이것 이상 시간을 끌면 분명히 개입해 올 거야. 그러면 이쪽도 상황이 어려워져.”
그렇게 말한 한서리가 확언한다.
“여기서 끝을 봐야 해.”
그렇게 짧은 토론을 이어 가는 동안 영린은 혼돈옥에서 불러낸 괴물들과 함께 그들을 따라잡았다.
혼돈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그녀는 완전히 자제심을 상실하고 저열한 감정을 그대로 내보였다.
“죽어 버려! 더러운 쓰레기들, 갈기갈기 찢어서, 머리카락 한 올 남기지 말고 모조리 씹어 삼켜 주마!!”
눈을 희번덕대며 거품을 물고 그렇게 말한다. 영린이 엿보이는 광기에 질린 알리시아와 세라스가 신음 소리를 냈다.
“완전히 미쳤군.”
지평선을 한가득 메우며 몰려오는 괴물떼.
만전의 상태라면 어떻게 해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들은 이미 사신을 상대하면서 많은 힘을 소모했다.
세라스가 한서리를 쳐다보았다.
“그래서, 이대로 싸울 거야?”
싸울 생각이 있다면, 뭐 숨기고 있는 거라도 내놔 보라는 눈빛.
친구의 재촉에, 한서리는 피식 웃었다.
“말했잖아. 자신이 없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다고.”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텔레파시를 쏘았다.
그러자 그동안 김건과 함께 마기아의 몸 안쪽에 숨어 있던 크툰이 유령처럼 빠져나와 한서리의 손 위에 올라왔다.
한서리는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가볍게 크툰을 쓰다듬어 주며 짧게 말했다.
“불러.”
크툰이 붉게 부풀어 올랐다.
차원을 넘어, 어딘가로 텔레파시를 쏘아 낼 때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에 맞춰 한서리가 손을 들어 올렸다.
그녀는 곧장 차원의 문을 여는 마법을 펼쳤다.
그러자 하늘이 반쪽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천산의 상공 위로 게이트가 생성되며 어딘가가 이 세계로 연결된 것이다.
한서리는 크툰의 능력으로 외부 세계와 교류를 했듯, 유동적인 현재 차원의 좌표 값을 밖으로 송출해 이 세계와 다른 세계를 잇는 게이트를 만들었다.
길게 찢어진 차원의 문이 세로로 갈라지며 터져 나온 것은 대량의 물이었다.
콰아아아아!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물줄기.
그리고 그것을 따라 무언가 거대한 형태가 모습을 드러냈다.
꿈틀거리는 근육, 뻐끔거리는 빨판, 그리고 끈적한 윤기가 흐르는 점액질의 다리 수십 개가 허공을 짚고 게이트 너머로 빠져나왔다.
그 가운데에 박혀 있는 것은 원통형으로 파여 있는 이빨투성이의 입.
창공의 틈을 벌리고 머리를 꺼낸 초거대형 크투그아 개체, 크라켄이 무시무시한 괴성을 내질렀다.
오오오오오────!!
그 포효에 맞춰 물줄기와 함께 온갖 촉수를 매단 점액질 덩어리들이 밀려 나오기 시작했다.
꺄아아아아──!!
크투그아들이 뿜어낸 음파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촉수의 괴물들이 한 덩어리로 뭉쳐 물과 함께 쏟아지는 모습은 그야말로 그로테스크함과 동시에 압도적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상공을 향해 솟구쳐 올라오는 혼돈의 괴물들과 충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