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157화
콰콰콰쾅!
세라스의 일격이 커다란 절벽을 위아래로 가르고, 상단부가 통째로 떨어져 허공을 갈랐다.
거대한 바윗덩어리가 공중에서 스스로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파열되어 산산조각으로 흩어지며 사방에 돌덩어리의 폭우를 쏟아 냈다.
남아 있는 하단부도 멀쩡하진 않았다. 상단부를 소실하며 받은 충격으로 중심을 잃어버린 그것은 스스로 붕괴를 시작해 굉음을 토하며 주저앉아 버렸다.
“훅──!”
일격에 절벽을 먼지로 만들어 버린 세라스가 마력을 회수하며 숨을 내쉬었다.
방금 일격으로 유운이 죽었을 거라 생각하진 않는다. 재생 마법이라는 편리한 힘이 있으니까.
하지만 유운은 화신이 아니었다. 그저 그에 준하는 힘과 강력한 무기를 가졌을 뿐, 전신을 마력으로 변환시킨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니 분명히, 상당한 타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세라스가 줄어든 대검을 고쳐 쥘 때였다. 목소리가 들려왔다.
“놀랐어. 몸으로 가속력을 받아 내며 발로 칼을 휘두를 줄이야. 센스가 확실히 좋은걸.”
머리 위에서 들려온 목소리.
고개를 들자 멀쩡한 모습으로 하늘을 날고 있는 유운이 보였다.
세라스는 유운 주변 공간이 묘하게 휘어 있는 것을 보고 그가 아까 영린이 도망칠 때 사용한 기술을 사용해 공격을 피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가신 기술이야. 효과는 비슷한데, 순간이동보다 발동이 빨라.’
저만한 회피 기술이 있어서야, 아무래도 결정타를 먹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수 싸움으로 승부한다.
함정을 파 두고 예상치 못한 수단으로 일격을 먹이면 될 뿐이다.
그렇게 판단을 마친 세라스가 달려들었다.
“이것도 피해 봐!”
그녀가 날린 대검이 초고속으로 질주.
날아가던 대검이 일순 부챗살처럼 펼쳐져 공간을 한가득 메우며 날아갔다.
오라의 형 변환을 이용한 변칙 기술. 면 형태의 공격이기에, 어설프게 막거나 피하려 했다가는 몸이 갈려 나간다.
그렇게 나뉜 칼날이 몸에 닿으려는 순간, 유운이 입술을 달싹였다.
이미 두 사람은 초음속의 세계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세라스는 입술의 모양으로 그의 말을 알아챘다.
‘하지만 나를 쓰러트리기엔 부족해.’
푸른빛이 번득인다. 그리고 세라스의 공격이 유운의 전신을 휩쓸고 지나갔다.
분명히 칼날이 몸을 통과했는데 손에 걸리는 느낌이 없다. 경악한 세라스가 눈을 부릅뜨고, 온몸을 푸른빛의 번개로 바꾼 유운이 돌진했다.
콰르르릉!
천둥이 세라스를 꿰뚫었다.
“큭!!”
온몸을 번개로 바꿔 공격을 흘려보내고 그대로 달려 들어왔다.
어지간한 극대소멸공격을 뛰어넘는 위력.
반사적으로 온몸에 오라를 둘러 막았지만, 광속의 공격이었기에 반응이 온전히 따라가지 못했다.
방어를 위해 치켜든 팔과 다리가 한순간에 타 버렸다. 신경이 짜르르 울리고 격통이 치솟는다. 세라스는 부러져라 이를 악물며 곧바로 재생을 시도했다.
하나 유운은 그럴 틈도 없이 세라스의 등 뒤에 나타나 담로를 휘두르고 있었다.
“제길!”
욕설을 내뱉으며 세라스는 오라를 이용해 억지로 팔을 움직여 방어했다.
하지만 팔을 완전히 대체하기에는 아무래도 움직임이 무디다. 민활한 미꾸라미처럼 틈새를 파고든 담로가 요동치며 순식간에 어깨를 절단했다.
싸악!
떨어져 나가는 팔, 솟구치는 핏줄기.
서둘러 반대쪽 팔로 역공을 가하지만 이번에도 유운이 빨랐다.
그가 날린 일장이 전격을 휘날리며 세라스의 가슴에 처박혔다.
콰르릉!
다시금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고, 오라의 갑옷이 바스라지며 세라스의 흉곽이 깊숙이 파였다.
터져 나오는 충격파. 어마어마한 힘에 직격당한 세라스가 미사일처럼 쏘아져 날아간다.
수백 미터를 튕겨져 나간 그녀가 내리꽂힌 곳은 공교롭게도 유운과의 전투가 시작되었던 낡은 도당이었다.
이미 반쯤 부서져 있는 도당의 담벽을 몸으로 모조리 갈아 버리며 세라스가 땅을 뒹굴었다.
유운이 도당의 상공에 내려앉고, 온전히 세라스를 마무리 짓기 위해 내민 담로의 끝에 번개를 충전할 때였다.
콰아아앗!
어디선가 날아온 하얀 광선이 그가 있던 곳을 휩쓸었다.
“지원이 너무 늦어.”
그 주변에 날리는 냉기와 눈싸라기로 그 근원을 파악한 유운이 곧장 담로를 되돌려 세라스가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번개를 내쏘았다.
하나, 유운의 예상과 달리 공격을 막아 낸 것은 한서리가 아니었다.
촤아아아앙!
금속성의 울림과 함께 튕겨져 나가는 번개.
무형의 에너지를 칼로 틀어막았다.
유운이 익힌 천산의 무공에 맞먹을 정도의 고차원에 도달한 검법. 그것을 시전한 것은 붉은 피부를 가진 악마였다.
“음?”
파이몬이라는 이름이 유운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확실하다. 몇 번이고 아내로 삼기 위해 말을 걸었기 때문에 알고 있다.
그 모습을 알아본 유운이 눈을 치켜뜰 때, 그의 측면에서 검광이 번득였다.
곧장 담로를 들어 방어, 그대로 팔을 펼쳐 튕겨 내려 했지만 마주친 칼날이 마치 블랙홀마냥 담로를 빨아들이며 오히려 안쪽으로 밀고 들어왔다.
“뭔……!”
깜짝 놀란 유운이 고개를 틀었다.
가까스로 날아온 칼날을 회피하나, 뾰족한 강철의 끝이 귓볼을 스쳤다.
싸움을 벌인 이후로 처음으로, 유운의 피가 튀었다.
축지까지 사용해서야 겨우 뒤이어 날아오는 검을 피한 유운이 거리를 벌리며 숨을 토했다.
순간적이기는 하나, 단순한 검 놀림만으로 그를 압도한 자의 정체를 확인했다.
화르르륵!
불타오르는 보석의 육체.
그리고 그것을 감싼 갑옷이 보였다.
죽었다고 알려진 선계의 패자.
정령 아그니스가 유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운은 아그니스의 눈 안쪽에서 펄펄 끓고 있는 검은 기운을 발견하고 고개를 돌려 도당의 한편에서 그를 올려다보고 있는 한서리를 찾았다.
그녀의 손에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지팡이가 들려 있고, 그 끝에서 사악한 기운이 줄기줄기 뻗어 나오는 것을 발견하곤 말했다.
“……쓸데없는 걸 만들었군.”
유운은 그렇게 말하며 도당의 폐허 위에 내려앉았다. 한서리가 벨제불의 힘으로 되살려 낸 전사들이 따라와 그를 포위했다.
아그니스, 파이몬, 그리고 그린스킨의 족장인 발러까지.
“…….”
마력효율이 좋은 자들로만 골라 뽑았는데도 숨이 벅찼다.
한서리는 막대한 마력 소모에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그들의 몸에 최대한의 버프를 중첩해서 걸었다.
그리고 지팡이를 휘두르며 명령을 내렸다.
“가라!”
달려드는 세 명의 데스나이트.
화신으로서의 능력은 잃었으나, 그래도 각 세계에서 최고라 일컬어지던 자들이 동시에 유운을 향해 짓쳐 들어갔다.
유운은 낮게 한숨을 쉬었다.
“소용없어. 이따위 장난감으로는.”
그러면서 발을 박차는 유운.
세라스를 침몰시킨 기술로 번개가 되어 돌격하자 일순간에 그린스킨의 족장이 잿더미가 되어 사라졌다.
이어서 뿜어낸 담로로 칼과 날개를 휘둘러 오는 파이몬과 충돌. 사방에서 날아드는 양 날개와 검을 모조리 쳐 내고,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마법적인 효과까지 번갯불로 찢어 버리며 이내 그녀의 몸을 수십 조각으로 분할해 버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전사가 당했다.
한서리는 이것은 그렇게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하며 아그니스를 움직였지만, 유운은 너무나도 간단하게 온전하지 못한 아그니스의 빈틈을 파고들었다.
무시무시한 검술로 가볍게 담로를 돌파하고 날아든 검을 몸으로 받아 내며, 그대로 손날을 날려 방어를 위해 치켜든 팔과 목을 일수에 절단.
그러고는 잘린 목을 붙잡고 전격을 내뿜어 보석으로 이루어진 육체를 일순간에 증발시켜 버렸다.
치이이이익!
기화된 보석이 엄청난 연기를 피워 올리고, 사방에 녹아내린 용암이 흩뿌려졌다.
그리고 유운은 반쯤 갈라진 육체를 재생시키며 푸른빛이 이글거리는 눈을 한서리에게로 향했다.
그런 그가 다음 발걸음을 내딛자.
다시 한번, 그의 몸이 번개가 되어 한서리를 향해 쏘아져 들어갔다.
“……!”
몇 번이고 그 공격을 본 한서리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공간 왜곡의 방벽으로 방어했지만, 유운이 노린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방벽을 피해 옆으로 되돌아가는 번개.
순간적으로 다시 몸을 구축해 한서리에게 접근한 유운이 그대로 검을 내질렀다.
푸욱─
“커……!”
담로가 몸을 관통하자 한서리의 입에서 피가 튀었다.
하지만 그녀는 죽지 않았다. 무한재생을 실현하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그녀는 화신이었다. 재생 등 수많은 생명 유지 마법이 작동하며 한서리의 의식이 날아가지 않도록 붙잡았다.
그녀는 발악하듯이 가슴의 칼날을 붙잡으며 마법을 펼쳤지만, 유운이 검에 힘을 불어넣자 술식이 단박에 깨져 나갔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넌 봐줄 수가 없어. 네가 이 일의 주동자니까.”
그는 그렇게 말하며 몸에서 뿜어낸 전격을 검에 주입했다.
그렇게, 담로로부터 뻗어 나온 번개가 한서리의 전신을 태워 없애 버리려는 찰나.
어디선가 뻗어진 손이 전격이 흐르는 칼날을 붙잡았다.
파지지직!
자기장을 조절하는 마법으로 유도된 전기가 칼날을 쥔 금속질의 손아귀를 타고 빠져나간다.
스스로의 힘으로 몸을 수복해 낸 기가스, 마기아.
함선으로서의 모습은 떠올릴 수도 없을 만큼 작아졌지만 여전히 커다란 거인은 한서리 대신 유운의 전격을 받아 내고 온몸에서 검은 연기를 피우며 다시금 주저앉았다.
그리고 유운이 그 모습에 뭐라 입을 열 틈도 없이 살기가 그가 있던 자리를 관통.
유운은 담로에서 손을 떼고 곧바로 뛰어올랐다.
폭발적으로 뻗어 나온 불기둥이 그가 있었던 자리를 지나갔다. 그리고 공중으로 떠오른 유운을, 위에서 떨어진 황금색 대검이 내리쳤다.
남아 있던 검인 순구를 들어 막아 보려 했지만, 갑작스러운 기습에 힘을 제대로 흘리지 못했다.
충격을 받은 유운이 공처럼 튕겨져 나가 지면에 처박혔다.
“끈질기군.”
흙먼지를 헤치며 몸을 일으킨 유운이 짜증이 났는지 혀를 찼다.
그런 그의 앞에는 세 여자와 한 거인이 있었다.
“헉, 헉!”
거친 숨을 몰아쉬며 아직도 부서진 상체와 타 버린 팔다리를 재생하고 있는 세라스, 그리고 승사의 저주에 온몸이 묶인 채 몸을 일으키고 있는 드래곤, 알리시아.
검은 연기를 뿜어내며 주저앉았던 마기아가 다시금 가동을 시작하고, 한서리는 심장에 칼이 꽂힌 채로도 마법을 발휘해 혹시라도 전투의 여파에 다칠까, 김건의 위에 보호막을 씌워 주었다.
“…….”
유운은 김건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시체나 마찬가지인 병자일 뿐이지만, 무려 그 아그니스를 쓰러트린 남자다.
솔직히, 존경하는 마음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유운은 아그니스가 얼마나 강한지 잘 알았고, 그를 눈앞에 두면 싸움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아그니스와 마주치지 않도록 도망쳐왔던 비겁자니까.
눈앞에 선 자들이 왜 그토록 그를 원래대로 되돌리려고 하는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있다고, 모든 것을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안 그래도 시간 역행의 후폭풍과 아그니스의 죽음 등으로 선계 전체의 힘이 극도로 약해진 상황이다.
잘못 시간 역행을 사용하다 문제가 생기면 정말 영린이 하는 말들이 호들갑이 아니게 될지도 몰랐다.
“어쩔 수 없군.”
더 이상 손속에 자비를 두는 것은 오히려 저들의 각오를 모욕하는 짓이다.
그렇게 판단한 유운이 전력을 끌어냈다.
하얗던 피부에 초록빛의 비늘이 돋고, 작은 장식 같던 뿔이 거대하게 자라났다.
휘날리는 장포 아래로 꼬리가 뻗어 나온다. 하얗게 물든 머리칼이 갈기처럼 일어나며 세로로 찢어진 두 눈에 황금빛이 감돌았다.
기압이 증대한다.
숨겨져 있던 마력이 개방되며 엄청난 힘의 폭풍우가 사방을 휩쓸었다.
<<무슨 괴물 같은……! 아직도 이만한 힘이!>>
“…….”
알리시아가 혀를 찼고, 세라스가 이를 악물었다.
청룡으로서의 모습을 드러낸 유운의 위압감이 네 사람을 찍어 눌렀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잠깐의 휴식으로 어느 정도 회복을 취한 영린이 유운의 등 뒤에 섰다.
검게 물든 그녀의 눈동자가 번득이자 주변의 지맥에서 끓어오른 혼돈의 에너지가 터져 나왔다.
순식간에 주변의 지대를 까맣게 물들이더니, 그 아래에서 하나둘 혼돈의 개들이 태어나기 시작했다.
앞에는 현재 선계 제일이라 칭해지는 전사. 주변에는 셀 수도 없이 빽빽하게 일어난 혼돈의 괴물들.
누가 보더라도, 한서리 일행의 열세는 명백했다.
유운이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러자 한서리의 가슴팍에 박혀 있던 칼날이 요동치더니, 핏방울을 흘리며 빠져나가 그의 손아귀에 잡혔다.
“윽…….”
핏줄기를 흘리며 가슴을 움켜쥐는 한서리.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며 유운이 말했다.
“이만 끝내자.”
그러면서 유운이 번개가 되는 것과 동시에, 검은 개들이 파도처럼 일어나 한서리 일행을 덮쳤다.
콰르르릉!
<<커억!>>
번개처럼 날아간 유운이 내지른 담로에 급소를 맞은 알리시아가 멀리서 쏘아져 날아온 검함, 거궐을 얻어맞고 순식간에 침몰했다.
이내 재생을 마친 세라스가 그의 앞을 막고, 온몸에서 요동치는 황금색 오라로 유운의 칼을 막았다.
콰콰콰콰콰쾅!
엄청난 격돌이 있기를 몇 초.
세라스가 온몸에서 피를 뿌리며 쓰러지고, 자유가 된 유운이 미친 듯이 몰려드는 혼돈의 괴물들에게 화력을 난사하고 있는 한서리와 마기아의 사이로 뛰어 들어갔다.
“김건을 먼저 죽여! 어쩌면 벨제불의 힘으로 놈을 움직일지도 몰라!”
찢어지는 목소리로 영린이 외쳤다.
자기 자신도 아그니스처럼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유운은 그 말이 타당하다고 판단. 곧바로 보호막에 둘러싸인 김건을 향해 달려 들어갔다.
가볍게 휘두른 담로의 일격에 보호막이 찢겨 날아가고, 다음 공격으로 김건의 숨통을 끊으려는 찰나, 전사로서의 본능이 경종을 울렸다.
엄청난 위협을 느낀 유운이 순간적으로 멈칫하며 돌아본 그곳에는 온몸이 피에 젖어 있는 한서리가 있었다.
“되도록 이 방법은 쓰고 싶지 않았는데…….”
그렇게 읊조리며 떠올린 미소에 소름이 다 돋는다.
유운은 순식간에 기세를 정비하며 미리 준비해 두었던 공격을 내뻗었다.
우선은 김건을 먼저 처리하고, 그다음에 바로 한서리를 끝장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한서리에게 잠깐 시간이 팔린 사이에 다가온 마기아가 휠체어를 탄 김건을 밀쳐 내며 공격이 엇나갔다.
“크워어!”
“쳇!”
휠체어에서 떨어진 김건이 지면을 굴렀다.
혀를 차며 마기아를 베어 낸 유운이 혹시나 싶어 김건을 확인했다.
다행스럽게도, 벨제불의 마력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마기로 되살려낸 것도 아니라면 그저 숨만 쉬는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다.
일단은 김건을 무시. 유운이 뭔가를 하려 하는 한서리에게 달려들려고 할 때였다.
무시무시한 살기가 유운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는 유운.
그의 눈에 쓰러지키는커녕 낙법을 치며 균형을 잡는 김건의 모습이 비쳤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김건은 순식간에 몸을 일으키더니, 양손을 앞으로 내밀며 아주 정교한 기수식을 취했다.
같은 전사의 입장에서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깔끔한 자세다. 유운이 저도 모르게 탄성을 토했다.
“무슨……!”
영린 역시 깜짝 놀랐다.
“설마 의식이 돌아왔나?”
두 사람의 시선이 김건을 향했다.
무력한 인간. 그에게서는 이 공간을 까맣게 메우고 있는 혼돈의 개 한 마리만큼의 마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늘을 가르고 땅을 가르는 화신들의 입장에서는 그저 벌레나 마찬가지인 존재.
하지만 그들은 눈을 떼지 못했다.
그 벌레 같은 존재가, 이 모든 사건의 원흉인 시간 역행의 원인이 되었으며, 두 자릿수에 가까운 화신을 죽였고, 선계를 넘어 삼계를 통일시키겠다 논하던 패자, 아그니스를 쓰러트렸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저 남자라면, 뭔가 할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영린과 유운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렇기에 그들은, 지면을 뚫고 솟아난 두꺼운 촉수가 한서리의 앞에 뽑혀져 나간 마기아의 동력원, 얼기설기 얽혀 있는 다섯 개의 여의주를 가져다 놓는 것을 미처 보지 못했다.
영린과 유운이 그것을 눈치챘을 때, 한서리는 이미 여의주를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유운에게 패해 가까스로 명줄만 잇고 있던 세라스 역시 그것을 발견했다.
“안 돼!”
“안 돼!”
서로 다른 의미의 말소리가 교차했다.
“제기랄!”
유운이 번개가 되어 쏘아져 나갔지만 늦었다. 이미 한서리의 손은 여의주에게 닿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화신 다섯 명 분의 힘이 한서리의 안쪽으로 빨려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