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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164화 (164/200)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164화

외전 3화 그때 그 사건 (3)

누군가가 같이 있다는 사실이, 그 극한의 상황에서도 이성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안정을 되찾은 한서리가 필사적으로 숨을 참았다. 하지만 아무리 정신을 차리고 있어도 고통을 참기 힘든 건 마찬가지였다.

시야가 검어진다. 폐가 쥐어짜는 듯이 아프고 당장이라도 크게 숨을 들이켜고 싶었다. 저도 모르게 몸에 힘이 들어갔다.

그것을 느꼈는지 목소리가 다시 외쳤다.

<<참아! 아직 삼십 초도 안 지났어! 참아야 돼!>>

뭐?

삼십 초도 안 지났다고?

그 끔찍한 현실에 환장할 지경이었지만, 그렇다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참아. 참아. 괜찮아. 조금만 더, 참아.>>

남자는 계속해서 ‘참아.’ 와 ‘괜찮아.’를 반복했다. 한서리는 오로지 그 말에 매달려 수면 위로 올라가고 싶다고 울부짖는 몸을 붙잡았다.

그러다 결국 한계가 찾아왔고,

컥, 하고 숨을 들이켜는 순간 그녀의 의식은 까맣게 멀어져 버렸다.

* * *

한서리와 남자가 수면 아래로 사라진 지 5분여가 지났다.

강가에서 그 두 사람을 습격한 목 긴 괴물은 강물을 따라 터벅터벅 걸으며 그들을 찾았지만 이내 추적을 포기했다.

“크으으…….”

놈은 아쉽다는 듯이 고개를 내젓다가, 둥둥 떠다니고 있는 물고기의 시체 몇 개를 주둥이로 낚아채곤 어슬렁어슬렁 정글의 숲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잠시 후.

철철 흐르는 강물 속에서 불쑥 손이 튀어 올라오더니, 방금 전까지 목긴 괴물이 서 있었던 바위를 붙잡았다.

그 손의 주인은 한서리와 함께한 남자였다.

그는 한 팔로 한서리를 끌어안은 채 몸을 물 바깥으로 끄집어냈다.

“…….”

이끼에 덮여 미끌미끌한 바위를 가까스로 잡으며, 조심스럽게 강가 위로 올라온다.

우선은 호흡을 감추고 주변을 살핀다. 그는 주변에 별다른 위협 요소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강변에 대충 걸쳐져 있는 한서리를 끌어다가 평평한 곳에 눕혔다.

곧바로 상태를 확인해 본다.

역시나, 호흡을 하고 있지 않았다.

남아 있는 마력이 있다면 그의 특기인 기술로 장기를 자극해 쉽게 소생술을 시행할 수 있었겠지만, 강에서 버티는 도중에 얼마 없던 마력을 전부 써 버렸다.

물론, 그것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괴물들로부터 몸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이지만 말이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전통적인 방법의 응급처치를 시행했다.

두 손을 모아 강하게 가슴을 압박한다. 그러곤 머리를 젖혀 기도를 확보한 뒤, 벌어진 입으로 직접 숨을 불어넣어 인공 호흡을 한다.

그것을 몇 번 반복하자 이내, 한서리가 눈을 떴다.

번쩍 뜨인 두 눈이 얼굴을 맞댄 채 숨을 불어넣으며 자신을 관찰하고 있는 남자를 발견했다.

“……!!”

깜짝 놀란 한서리가 머리를 들었다. 너무 갑작스러운 움직임이었던지라 남자도 반응이 늦었다.

두 사람은 서로 이마를 부딪치며 떨어져 나갔다.

통증이고 뭐고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컥컥거리며 폐 속의 물을 토해 낸 한서리는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남자를 쳐다보았다.

“지, 지금 뭘 한 거야?”

“뭘 하긴, 인공호흡을 한 거지.”

“……!”

남자는 한 점의 흔들림도 없이 대답했다. 그 초연한 태도에 한서리 역시 빠르게 이성을 되찾고 상황을 깨달았다.

그렇다. 그녀는 물속에서 숨을 참지 못하고 기절했었다. 그걸 남자가 끌어올려 응급 처치를 해 준 것이다.

현실을 인식하자마자 찾아온 건, 불타는 듯한 고통이었다.

뜯겨 나간 귀와 물어뜯긴 다리에서부터 격통이 느껴졌다.

“윽……!”

그녀는 이를 깨물며 엉거주춤 주저앉은 채로 힘없이 늘어져 있는 다리를 잡아당겼다.

종아리는 피가 흥건했다. 하지만 입고 있는 바지 때문에 상처가 잘 보이지 않았다. 천과 살이 같이 씹혀서 온통 엉망진창이었다.

“봐봐.”

남자가 다가왔다. 스스럼없이 손을 뻗더니…… 문득 묻는다.

“좀 봐도 되겠지?”

“…….”

당연히 바로 봐야지. 아파 죽겠는데.

라고 생각했던 한서리였지만 그녀는 금세 남자가 왜 그런 질문을 던졌는지 깨달았다.

아무래도 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가 보인 반응을 보고 그러는 모양이다.

착실하기도 해라.

그러고 보면 전에 에베레스트 작전에서 말싸움을 벌였을 때도 눈앞의 인간은 앞뒤가 꽉 막힌 인간이었다.

남들에게 답답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은 한서리 자신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딱히 이상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녀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좀 봐줘.”

그제야 남자는 한서리의 다리에 손을 댔다. 그는 허리춤에서 뽑아낸 단검으로 주욱 한서리의 바지를 찢어 내고는 바로 상처를 확인해 주었다.

“다행히 힘줄은 안 다쳤군. 겉보기보다 괜찮아. 조금 아프긴 하겠지만 걸을 수는 있겠어.”

그는 그러면서 연속해서 벨트를 뒤져 물건을 꺼냈다.

소독약, 힐링 포션, 그리고 상처에 붙이는 대형 밴드까지. 온갖 물건이 다 나온다.

한서리는 남자가 입은 복장이 전신에 주머니가 주렁주렁 달린 레인저의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직접적인 전투보다는 각종 특수 임무에 특화된 능력을 지닌 영웅들을 모아 만든 조직.

그러자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꽤 특색이 있는 인물인데 왜 자신이 그의 기억을 머리에서 지워 버렸는지.

그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소독을 마친 남자가 굴러다니던 나뭇가지 하나를 내밀었다. 그 의미를 알아챈 한서리는 바로 그것을 받아 입에 물었다.

남자가 포션을 한서리의 다리에 들이부었다.

치이이이익!

마법적인 효과를 지닌 물약이 하얀 김을 피워 올리며 한서리의 상처를 복구했다. 눈에 보이는 속도로 자라난 세포가 푹 파여 있는 살점의 틈을 메웠다.

포션으로 완벽한 치료는 되지 않는다. 다만 급속 성장한 살점으로 상처를 완전히 덮어 버리기 때문에, 어설프게 꿰매거나 붕대로 감는 것보다는 훨씬 빠르고 효과적으로 부상의 진도를 막을 수 있었다.

굳이 문제를 짚자면 세포가 생장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고통이 따른다는 것 정도일까.

“으으으읍─!!”

달군 부지깽이로 상처를 쑤시는 듯한 고통에 한서리가 몸서리쳤다.

그녀는 경련을 일으키는 것처럼 다리를 떨며 눈물을 흘렸다.

잠시 후, 잇자국이 선명하게 남은 나뭇가지를 뱉어 내며 축 늘어진다.

“학, 하악─!”

그야말로 죽을 것처럼 아프다. 그녀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 소매로 크게 코를 풀었다.

하지만 상처는 하나가 아니었다.

“고개 돌려 봐.”

가까이 다가온 남자가 한서리의 머리칼을 젖히고 뜯겨 나간 귀를 확인했다.

“이것도 별거 없군.”

“이상이 없다고? 귓바퀴가 완전히 날아간 것 같은데?”

“완전히 날아간 정도는 아니야. 소리로 방향을 구분하는 게 조금 힘들겠지만…… 기능상 크게 문제는 없어. 정 신경 쓰이면 돌아가서 재생 마법으로 복구하면 돼.”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한번 한서리의 입에 나뭇가지를 물린 뒤, 귀에도 포션을 부었다.

한서리는 이번에도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

그렇게 회복을 마치고 나자 잔뜩 힘이 들어갔던 근육에서 긴장이 풀리며 온몸이 나른해졌다. 진이 풀린 한서리가 힘없이 늘어진다. 남자는 그녀가 단순히 지친 것뿐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말없이 일어서서 주변을 경계했다.

“후우…….”

조금 시간이 지난 뒤, 한서리의 입에서 낮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다리와 귀의 통증이 가라앉고 아무 생각 없이 주저앉아 있었더니 가빠 왔던 호흡도 많이 돌아왔다. 점차 눈앞이 개이며 머릿속이 청명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제야 그녀의 회복을 기다리고 있는 남자를 발견했다.

그녀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맨 처음 상처를 봐줬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남자는 단 한 번도 그녀를 채근하지 않았다.

인내심, 그리고 배려심이 상당한 사람이다.

문득, 미안한 마음이 솟구쳤다.

그러고 보면 다 죽었다고 생각했던 목숨을 구해 준 것은 눈앞에 선 남자였다. 그가 아니었으면 한서리는 강에서, 아니 그 이전에 기지에서 이미 죽었을 것이다.

그에 비해 한서리는 지금까지 그에게 어떻게 대했는가. 애처럼 징징대거나, 쓸데없는 눈치를 줘서 저쪽이 이쪽을 배려하도록 만들었다.

그녀는 인간으로서 생각했다.

지금은 일단 사과하고, 감사를 표해야 할 때라고.

고개를 들어 남자를 본다.

하지만 무뚝뚝한 그의 얼굴을 보자 갑자기 괜한 자존심이 불쑥 솟아올랐다.

한서리는 지금까지 살면서 그 누구에게도 먼저 고맙다고 말한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대부분의 인간이 그녀에게 먼저 무언가를 가져갔지, 뭔가를 먼저 준 사람은 거의 없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남자는, 왜 나를 도운 걸까?

한서리는 그 이유를 떠올릴 수 없었다.

의문이 치솟았다. 의심이 똬리를 틀었다.

온통 상처투성이가 된 그녀와 달리, 남자에게는 생채기 하나 없다는 것을 발견하자 더더욱 의심이 강해졌다.

그녀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말을 걸었다.

“그런데, 당신은 강 속에서 어떻게 나온 거야? 몬스터한테 습격당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남자는 슬쩍 한서리를 바라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한테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없는 탐지 능력이 있어. 그걸 이용하면 물속에서도 주변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지. 그걸로 위험한 것들을 피한 거야“

“탐지 능력? 설마 마력을 사용하지 않은 초능력 같은 건 아니겠지?”

“당연히 아니지. 마력을 사용한 건 맞아. 하지만 그걸 아주 작은 단위로 나누어서 사용했을 뿐이야. 주변의 몬스터들이 눈치 못 챌 정도로.”

의아하다는 듯이 한서리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런 기술이 있어? 마법의 일종인가?”

“아니, 오라 기술이야. 오라로 만들어 낸 운동 에너지를 진동파로 바꾸어 사용하는 거지.”

“뭐야, 그게?”

금시초문이라는 듯한 한서리의 반응에 남자가 한숨을 쉬었다.

“……내 능력에 대해서는 이미 보고가 올라간 걸로 아는데. 몇 번인가 이걸로 특수 임무를 수행한 적도 있다고.”

한서리는 코웃음을 쳤다.

“당신 같은 특수 능력자가 한둘인 줄 알아? 기억해 둬도 얼마 못 가서 죽어 버리는 게 태반이니까 그러는 거야. 나도 이제는 그런 능력자들을 일일이 머릿속에 남겨 두지 않는다고.”

“그래그래. 내가 잘못했군. 높으신 분의 의중을 다 파악하지 못해서.”

남자는 그렇게 툴툴거렸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대화는 이제부터다.

한서리는 새파란 눈동자를 빛내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대답을 제대로 못 들었는데. 당신, 날 데리고 나가려고 기지에서 기다렸다고 했지? 그 이유가 뭐야?”

“대답을 제대로 못 들었다고? 말했을 텐데, 네 멍청한 표정이 눈에 밟혀서라고.”

“장난치지 말고, 진짜 목적을 말해 봐. 지금이라면 얼마든지 거래나 제안에 응할 생각이 있으니까.”

그 말에, 남자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깊은 한숨이 흘러나온다.

“한심하기 짝이 없군. 사고방식이 그따위니까, 에베레스트에서도 네 계획에 반대했던 거야.”

“뭐?”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대답에 당황하는 한서리.

그리고 남자는, 꾸짖는 듯한 시선으로 그녀를 쏘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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