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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165화 (165/200)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165화

외전 4화 그때 그 사건 (4)

남자가 말했다.

“사람들이 다 너 같은 줄 아나? 행동 하나하나에 값어치를 부여하고, 꼭 이득이 있어야만 행동할 거라 생각해?”

한서리가 외쳤다.

“그건 당연한 거야! 이성을 가지고 있다면, 손익을 따질 지능을 가진 생명체라면 그렇게 행동하는 게 맞는 거라고!”

“그게 완전히 틀리다는 게 아니야. 하지만, 모든 행동이 그런 식으로 이루어지는 건 아니라는 거지. 네 말대로 치기에는, 사람들이 행동할 때 손해를 보는 경우가 너무 많다고 느껴지지 않아?”

“그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멍청하기 때문이지. 뭐가 더 이득인지 계산을 못하는 거야.”

“……됐다. 이 주제는 그만두지. 더 말해 봐야 서로 싸움밖에 안날 것 같군.”

그 말에는 한서리도 동의했다. 그녀는 더 따지는 대신 대체 뭐가 불만이냐는 듯 의뭉스러운 시선으로 남자를 쏘아보았다.

남자가 말했다.

“쓸데없는 이야기는 그만하고, 앞으로 할 일이나 생각해 보자고.”

“좋아.”

한서리가 고개를 끄덕인다. 남자가 그녀를 턱짓했다.

“그럼 계획을 말해 봐. 이제 뭘 어떻게 할지.”

한서리의 표정이 조금 미묘해졌다.

“……그걸 왜 내가 해?”

“그럼 내가 해? 난 먼저 떠난 본대가 어떤 루트를 이용해서 어떻게, 언제까지 돌아갈지 세세하게 알지 못해. 우리가 본대를 따라잡으려면 모든 상황을 아는 당신이 직접 동선을 계산할 수밖에 없어.”

“아니, 그럼 돌아갈 계획도 없이 거기에 남아 있었던 말이야?”

“충동적인 결정이었거든.”

그렇게 말한 남자는 칫, 하고 혀를 찼다.

“지금은 상당히 후회하고 있지만 말이야.”

말을 하면 할수록 더하다.

자신 있게 모든 사람들이 이득을 계산해서 행동하는 건 아니라고 하더니, 말을 꺼낸 본인이 그 말을 실천하고 자빠졌다.

한서리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러면, 진짜 지금 아무런 생각이 없다고?”

“없어.”

“그럼, 내가 여기서 죽자고 하면 죽을 거야?”

“뭐, 나름대로 발버둥은 치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죽겠지.”

뻔뻔하게도 말하는 남자. 한서리는 그런 남자의 표정을 자세하게 살폈다.

아직 서른 살도 채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한서리는 지금까지 온갖 인간 군상들을 만나 오며 어느 정도 사람의 진심을 읽는 안목을 키워 왔다.

그녀의 눈에, 남자는 오로지 진심으로밖에 안보였다.

진짜로 그저 충동적인 이유로 스스로의 목숨을 걸고 일을 벌인 것이다.

이건 멍청한 정도를 떠나서 아예 계산이라는 걸 할 줄 모르는 바보의 짓이다.

그녀는 속으로 탄성을 토할 수밖에 없었다.

‘뭐, 이런 멍청한 작자가 다 있지? 제정신인가?’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들여다보지만 변하는 건 없었다. 남자는 동요 한 점 없이 반듯하게 서서는, 나는 아무런 생각이 없어요, 그러니까 빨리 지시를 내려 주세요, 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몇 번 본 적이 있다.

왠지 선입견을 키우는 것 같아서 남들 앞에서 말하지는 않았지만, 은근히 전위의 역할을 수행하는 전사들 중에서만 나오는 인간 군상이 있다.

충견, 혹은 기계 같은 행동 양식을 가진 놈들.

누가 명령만 내리면 무엇이든지 하지만, 명령이 없으면 바보가 되어 버린다.

남자에게서는 딱 그런 스타일이 보였다.

결국은, 한서리가 직접 복귀 계획을 짜는 수밖에 없었다.

이제 남자가 자신을 이용할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없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 정도로 생각이 없을 줄은 몰랐다.

그녀는 생각 좀 하고 살라는 듯이 남자를 쳐다보았다.

그 시선을 느낀 남자는 불쾌한 듯 입술 끝을 일그러트리더니 툭 내뱉었다.

“잘난 척하는 건 좋은데, 그 전에 나한테 해야 할 말이 있을 것 같은데.”

“…….”

그러고 보니 고맙다는 말을 하는 걸 까먹고 있었다.

기지에서, 그리고 강에서.

초단위로 목숨이 오가던 그때, 남자가 아니었다면 한서리는 이 자리에 이렇게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감사를 표하는 건 당연했다.

한서리가 입을 열었다.

“고…….”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질 않는다.

왠지는 모르겠는데 말하기 싫다.

남자와 딱히 무슨 승부를 벌이고 있는 것도 아닌데, 고맙다는 말을 먼저 입에 먼저 담는 것 자체가 지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서리가 말을 하다 말자 남자가 고개를 기울였다.

“고?”

“……뒷말은 이곳에서 완전히 빠져나가고 나면 해 줄게. 아직은 모든 게 끝난 게 아니니까.”

가까스로 말끝을 뭉개는 한서리. 남자는 어이없다는 듯이 그녀를 쳐다보다가 이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보아하니 끝까지 물고 늘어질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그 의중을 눈치챈 한서리는 얼른 다른 쪽으로 주제를 돌렸다.

“정확히 목표를 설정하려면 위치를 바꿔야 해. 딱히 지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여기는 시야가 너무 좁아.”

주변을 빽빽하게 메우고 있는 나무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녀는 품속에서 나침반을 꺼내더니 방향을 확인했다.

“저쯤에서 내려다보면 목표 지점이 어딘지, 우리가 본대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속도로 이동해야 할지 등을 계산할 수 있을 거야. 일단은 저기로 가자.”

그녀는 그러면서 가까운 곳에 서 있는 높다란 언덕을 가리켰다.

그러곤 남자의 동의를 얻기 위해 그를 돌아보는 순간, 지금까지 자신이 무언가를 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물었다.

“그러고 보니…… 당신, 이름이 뭐였지? 전혀 기억이 안 나는데.”

“…….”

* * *

언덕을 오르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곳에 올라 주변의 지형을 파악한 한서리는 금세 앞으로의 계획을 떠올려 냈다.

“본대를 따라잡는 건 가능해. 물류도 많고, 부상자들도 많아서 전진 속도가 그렇게 빠르지는 않을 거거든. 강을 건넌 탓에 조금 돌아가는 길이 있지만, 중간중간 버프나 골렘을 써서 달리기를 해야 할 거야.”

“며칠이면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아?”

“글쎄, 내가 보기에는 삼 일? 아마 사 일까지는 괜찮을 거야. 그 이상은 장담 못해. 그때면 본대가 이미 지구로 돌아가 버렸을 수도 있거든.”

“여유는 거의 없군. 일정을 빡빡하게 잡는 게 낫겠어.”

대충의 목표가 세워지자, 남은 것은 지루한 구보뿐이었다.

두 사람은 성가신 정글의 풀숲과 몬스터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각자가 소지하고 있던 위장용 판초를 걸치고 터벅터벅 걸었다.

찌는 듯한 더위, 그리고 질척거리는 바닥 때문에 체력이 쭉쭉 떨어진다.

“헉! 헉!”

행군에 익숙지 않은 한서리는 금세 지쳐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남자는 체력이 좋은 모양이었다. 그는 조금도 지친 기색 없이 길을 열고 한서리를 이끌었다.

한서리가 말했다.

“헉…… 당신, 이 상황에 엄청 익숙한 것처럼 보이네.”

“정찰 역할을 많이 맡았으니까.”

“…….”

지금까지 정찰병을 보내 본 적은 있어도 실제로 정찰을 해 본 적은 그리 많지 않다.

환경 탓도 있겠지만 한서리는 이게 생각보다 훨씬 더 힘든 일이라는 것을 체감했다.

명령을 내릴 때, 그녀 자신은 사람들의 한계치를 꽤 잘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까지 꽤 무리를 시킨 모양이다.

앞서 나가던 남자가 뭔가를 발견했는지 앞에 늘어진 기괴한 이계의 식물을 만지작거렸다.

이내 그는 식물에서 둥그런 열매 같은 것을 뜯어내더니, 단검으로 그 끝을 쪼개어 틈새로 빠져나오는 액체로 입술을 축이곤, 그것을 한서리에게 건네주었다.

자체적인 보급을 위해 이 세계에서 식량 등으로 쓰일 수 있는 동식물에 대한 정보는 꿰고 있다.

그녀는 말없이 열매를 받아 그것이 담고 있는 액체를 마셨다.

이 열매에는 독성이 있기 때문에 너무 많이 마시면 안 된다. 한서리는 남자와 마찬가지로 입술만 적신 뒤 남은 것은 그냥 버려 버렸다. 그러곤 물끄러미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당신 이런 거 먹어도 돼? F급 마력적성이면 거부 반응을 보일수도 있는데.”

마력적성이 낮다는 것은 그만큼 육체가 마력에 익숙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선계의 모든 물질들은 마력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간혹, 선계에서 난 것들을 섭취하는 등의 행위를 하다 보면 몸이 거부 반응을 일으켜 탈이 나는 경우가 있었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는 괜찮아.”

두 사람은 그렇게 계속 걸었다.

“오늘은 이만 쉬지.”

아직 해가 지지 않았지만, 남자는 그렇게 이야기했다. 한서리는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글에서는 생각보다 해가 빨리 진다. 별다른 장비도 없으니 야영을 준비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도 있고, 당장에 전투를 치른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휴식을 취할 필요도 있었다.

“불은 내가 피울게.”

아무리 익숙하지 않아도 한서리 역시 현역인 영웅이다. 한서리는 능숙한 솜씨로 마법을 사용해 마른 장작을 만들고 작은 골렘을 소환하여 주변을 경계하며 두 사람이 사용할 잠자리를 만들었다.

“그럼 난 먹을 것을 좀 구해 오지.”

남자는 그렇게 야영지에서 벗어났다.

그가 돌아왔을 때, 그의 손에는 공룡족의 새끼로 보이는 시체 하나가 매달려 있고, 부풀어오른 한쪽 주머니에는 각종 열매와 벌레들이 그득하게 들어 있었다.

“으웩…….”

한서리는 질색을 했지만 못 먹겠다고 그것을 내팽개치지는 않았다. 남자가 잡아 온 벌레가 꽤 많은 영양을 지닌 좋은 식량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지금도 살아서 꿈틀거리는 애벌레를 손끝으로 잡아 올리며 물었다.

“벌레는 그냥 생으로 먹어야 했던가?”

“정 거북하면 구워도 돼. 그러면 좀 나으니까.”

“그래, 그래야겠어. 되도록이면 생으로 먹는 건 피하고 싶네.”

두 사람은 도마뱀과 벌레를 나뭇가지로 꼬챙이처럼 꿰어서 그것들을 불에 익혔다.

그렇게 단순히 잠자리를 갖추고 식량을 준비하다 보니 금세 시간이 지났다.

빠르게 해가 떨어지고, 어둠이 사위를 덮었다.

두 사람은 모닥불을 가운데에 두고 마주 앉아 불에 익힌 벌레와 도마뱀의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애벌레의 몸통을 깨물자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얼굴에 체액이 튀었다.

“이런 썩을!”

평소 같았으면 화를 내며 던져 버렸을 테지만, 아까 강을 탈출할 때 못난 모습을 너무 많이 보였다.

눈앞에 앉아 있는 남자에게 더 이상 철딱서니 없는 애새끼 취급을 당하는 건 사양이다. 한서리는 욕을 하면서도 억지로 구운 벌레를 씹어 삼켰다.

반면 도마뱀의 고기는 괜찮았다. 간도 안 되어 있고, 직접 불에 구워 탄내가 가득한 고기였지만 최고의 반찬은 허기라 했던가, 한서리는 꽤 맛있게 도마뱀의 살점을 뜯었다.

손과 입술에 검댕을 묻혀 가며 고기를 먹던 한서리가 문득 남자를 발견했다.

남자는 벌레와 도마뱀은 조금만 먹고, 불길에서 조금 떨어져서 모든 영웅이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지구산 보급 식품을 까먹고 있었다.

“…….”

비위가 약해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낮은 마력적성 때문에, 먹고 싶어도 먹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서리는 허리춤의 벨트에 매달려 있던 주머니 하나를 떼내어 남자에게 던져 주었다.

“자, 당신이 이것까지 다 먹어.”

그것은 한서리의 비상식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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