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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167화 (167/200)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167화

외전 6화 그때 그 사건 (6)

두 번의 불침번 이후, 김건에게 마지막 불침번을 맡겨 놓은 한서리는 피곤에 지쳐 기절하듯이 잠에 들었다.

죽음과도 같은 깊은 잠이었다.

누군가가 어깨를 흔들어 그녀를 깨우기 전에는.

“음…… 읍!?”

억지로 잠에서 일어나 게슴츠레 눈을 뜨며 신음 소리를 흘리는 한서리의 입을 누군가가 틀어막았다.

깜짝 놀라 순간적으로 몸부림을 쳤지만, 이내 자신을 붙잡고 있는 것이 김건이라는 것을 발견하고는 몸에서 힘을 풀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사위가 어두웠다. 햇빛을 받지 못해 차가워진 공기가 옷 사이로 파고들고, 슬슬 맺히기 시작하는 이슬이 또르르 굴러서 땅 위에 떨어졌다.

“…….”

김건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아주 조심스럽게 누워 있는 한서리를 안아 올렸다. 그리고 살금살금 걸어 모닥불로부터 멀어졌다.

그런 그에게 한서리는 왜 자신을 깨워서 그냥 걸어가지 않느냐고 말하지 않았다.

단순히 멀어지는 것일 뿐이지만 김건은 극도로 제어되어 있어서, 한서리를 안고 있는 와중에도 그야말로 소리 하나, 발자국 하나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충분히 모닥불로부터 멀어진 김건은 말없이 어딘가에 한서리를 내려놓았다.

뭔가, 뭉클하고 따듯한 것이 등 뒤에 닿았다. 그리고 그렇게 누운 한서리를 김건이 깔아뭉개듯 몸으로 짓눌러 왔다.

“……!?”

한서리는 깜짝 놀랐다. 외간 남자가 갑자기 누워 있는 자신에게 갑자기 전신을 밀착해 왔으니까.

소리라도 질러야 하나, 아니면 뭔가 발악이라도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이 고개를 치켜들려는 순간, 복잡하던 그녀의 머리를 깨끗하게 날려 버리는 것이 있었다.

이상한 냄새가 났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김건의 행동 때문에 정신이 확 들어오며 지독한 악취가 코를 찔렀다.

아니, 지독한 정도가 아니다.

바늘로 쑤시는 것처럼 코 안쪽이 아파 왔다. 순간적으로 눈앞이 하얗게 물들 정도의 냄새가 코의 점막을 찢어 놓고 지나갔다.

“……!”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려는 한서리의 입을 다시 한번 김건이 막았다.

물어보니, 진동으로 만든 소리를 전달하는 기술이라고 했던가.

물속에서 그랬던 것처럼 김건의 목소리가 귓속으로 흘러 들어왔다.

<<코도모사우르스의 똥이야. 냄새가 지독해도 좀 참아.>>

한서리는 그제야 등에 닿은 뜨뜻미지근한 것이 다른게 아니라 괴물의 대변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이런 씨발.

욕이 절로 나왔지만 참았다. 냄새가 너무나 지독해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김건이 몸 어딘가를 살짝 찔렀다.

전위 중에는 간혹 침술 등의 의술에도 능통한 자가 있다고 하던데, 그걸로 경혈이라도 눌러 준 모양이다.

그 조치가 도움이 되었는지, 한서리는 겨우 숨을 삼키며 구역질을 참아 낼 수 있었다.

말을 하는 대신,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몸을 꿈지럭거려 물어봤다.

그 몸짓을 이해한 김건이 답했다.

<<습격이야. 소리 내지 마. 지금 사냥꾼이 우리를 탐색 중이니까.>>

그는 그러면서 살짝 턱 끝을 치켜들어 그들이 머무르고 있던 모닥불을 가리켰다.

그에 한서리는 질겁을 하면서도 똥 위에서 몸을 굴려 납작하게 엎드린 채 김건이 가리키는 방향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자신이 뭔가 놓친 것이 있나 싶어 또록또록 눈망울을 굴리며 한참을 찾았지만 벌레 한 마리 발견하지 못했다.

‘대체 뭐가 있다고 그러는 거야?’

답답해진 나머지 김건을 재촉하려는 찰나였다.

푸스스, 수풀이 흔들리는 소리가 나더니, 그 안에서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빠져나왔다. 그것을 발견한 한서리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것은, 크리니에르라는 몬스터였다.

기본적인 외형은 코도모사우르스처럼 커다란 도마뱀의 형체를 하고 있다.

하지만 다르다. 은빛으로 빛나는 동체와 길쭉하게 뻗은 사지, 그리고 날렵한 허리를 보면 인간의 입장에서도 아름답다는 말이 나온다.

하얀 갈기가 뻣뻣하게 솟아 있고, 우둘투둘한 등뼈는 과도하게 솟아 올라 마치 가시처럼 자라 올라 있다.

그 등뼈는 그것 자체로도 훌륭한 무기이지만 먼 거리에서도 그것을 사출해 무언가를 관통할 수 있다는 것이, 그것을 상대하는 인간들에게 치를 떨게 만들었다.

몸놀림이 빠르고 강력한 원거리 무기를 갖췄으며, 거기에 교활함과 높은 지능까지 더해져 전투력 자체는 델타급으로 평가받지만 사냥 난이도는 엡실론급에 가깝다 하는 녀석.

그런 놈이, 한서리와 김건이 머물렀던 야영지를 탐색하고 있었다.

놈은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냄새를 맡는 듯, 코로 지면을 훑고 다녔다. 그런 놈이 잠깐 고개를 돌려 한서리가 있는 방향을 쳐다보았다.

“……!”

순간적으로 눈이 마주쳤다.

놈은 한쪽 눈이 없었다. 길게 머리를 가로지르는 상흔만이 그 자리에 남아 있다.

외눈의 괴물을 마주한 한서리의 어깨가 굳었다.

위험을 눈치챘는지 김건이 손을 뻗어 푸르게 빛나는 한서리의 눈을 가렸다.

김건은 절대 움직이지 말라는 것처럼 한서리의 몸을 붙잡았다. 한서리는 눈을 꾹 감고 어둠 속에서 괴물이 움직이는 소리를 들었다.

터벅, 터벅, 소리가 점점 가까워져 온다.

괴물의 숨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가까이 왔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그녀를 깔아뭉갠 남자의 긴장된 숨소리가 목덜미를 간질였다. 그 긴장이 전염되어 한서리의 숨이 멎고, 그녀의 온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키륵!?”

무슨 일인지, 괴물이 기괴한 소리를 냈다. 그러고는 빠르게 발소리가 그들에게서 멀어져 갔다.

눈을 가리고 있던 김건이 손을 치웠다.

그것이 눈을 떠도 된다는 신호라는 것을 알아챈 한서리는 다시금 야영지까지 물러난 크리니에르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놈은 무슨 일인지 투레질을 하면서 길게 뻗은 앞발로 코를 긁고 있었다. 꽤 고통스러워하는 그 반응이 방금 전의 자신을 보는 것 같다.

한서리는 그것이 코도모사우르스의 똥 냄새 때문에 그런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놈은 코와 입으로 컥컥 체액을 토해 내고서야 괜찮아진듯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러곤 다시 한번 꼼꼼하게 야영지를 한 바퀴 둘러보고선, 뭐가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괴성을 지르며 날뛰기 시작했다.

“크아아악! 캬아아아악!”

사방으로 손톱을 휘두르며 난동을 부리던 놈은 화풀이를 하듯 김건과 한서리가 피워 놓았던 모닥불을 발로 문지른 뒤 걷어차 버렸다.

그러곤 쯧, 쯧, 쯧, 불쾌함이 묻어나는 숨소리를 흘리며 다시 수풀 안으로 들어가 사라져 버렸다.

한서리와 김건은 그 뒤로 한참이나 시간이 지나서야 똥 더미 밖으로 빠져나왔다.

냄새가 어찌나 지독한지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익숙해지기는커녕 아직도 코끝이 아려 왔다.

“이게 뭐야…….”

한서리는 울상을 지으며 범벅이 된 옷을 내려다보았다.

마찬가지로 엉망이 된 김건이 툭툭 옷에 묻은 덩어리들을 털어 내며 말했다.

“아직 강이 멀지 않으니까, 출발하기 전에 가서 씻어 내지. 그쪽도 흙탕물이라 더럽긴 매한가지지만, 그래도 똥보다는 나을 거야.”

한서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김건을 돌아보았다.

“방금 그놈…… ‘애꾸’지?”

김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인간의 눈에는 다 그놈이 그놈인 몬스터라도, 어떠한 한 개체가 죽지도 않고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힌다면 다른 개체들과의 구분을 위해 이름을 붙이게 된다.

일명 네임드 몬스터.

한쪽 눈이 없어 애꾸라는 별칭을 가진 그 크리니에르 암놈은, 자신의 반려인 수놈과 함께 지금까지 수십 명이 넘는 영웅을 죽인 괴물이었다.

그 때문에 놈들을 사냥하기 위한 별도의 토벌대가 편성되었고, 한서리는 그 토벌에 깊숙이 관여하지 않아 세부적인 사항은 잘 모르지만 그러한 토벌의 결과로 수놈은 죽고 암놈은 큰 상처를 입고 도망쳤다고 들었다.

그렇게 도망친 놈이 이렇게 다시 나타날 줄이야.

한서리는 한숨을 쉬었다.

“네임드 몬스터라, 재수가 없네. 이번에야 어떻게 넘어갔지만 움직이다가 만나면 최악의 적이나 마찬가지인데.”

그런데 웬걸, 김건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재수가 없는 게 아니야.”

“응?”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그를 돌아보는 한서리. 그리고 김건은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놈은 내 냄새를 맡고 온 거야.”

지겹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직도 나를 노리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지독한 놈이군.”

당황한 한서리가 물었다.

“……저 괴물이 당신을 노린다고? 왜?”

“저놈이 암수가 쌍으로 행동하던 놈인 건 알아?”

“알아. 그래서 토벌대가 파견되어서 수놈을 죽였잖아.”

“그걸 죽인게 나야.”

김건은 차분하게 설명을 이었다.

“넌 작전에 관여하지 않아 잘 모르는 것 같지만…… 크리니에르는 날붙이나 관통 공격에 내성이 있다. 체액에 점성이 있어서, 몸 안으로 침입해 온 물건을 깊숙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붙잡는 성질이 있지.”

“그 정도는 알아. 그래서 기본적인 상대 매뉴얼이 거대 몬스터를 상대할 때처럼 후위의 마법을 이용해 처리하도록 되어 있잖아. 불이나 전기 따위로 지져 버리면 되니까.”

“그건 매뉴얼일 뿐이고, 직접 상대해 보면 후위로는 대처하기가 어렵다. 워낙 몸놀림이 빠른 데다 영악한 놈들이라 사선을 잘 내주지 않아. 그래서 대부분은 둔기를 다루는 전위들이 두들겨 패서 잡게 되지. 아니면 나처럼 특이한 능력을 쓰던가.”

“당신의 진동을 다룬다는 능력? 그걸로 뭘 할 수 있는데?”

“그렇게 복잡한 건 아니야. 내 진동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방어가 불가능하니까, 그대로 몸 안쪽으로 흘려보내서 급소를 파괴하는 거다. 수놈을 죽이는 데 그 기술이 큰 도움이 됐지.”

거기까지 듣자 한서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까지 김건이 한 말을 들어 보면 지금의 상황이 그렇게 나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 문제 없는 거 아니야? 물론 전투가 일어나면 위험하니까 되도록 안 싸우는 게 좋겠지만…… 막상 마주치면 크게 위험할 것 같진 않은데? 당신에게 그런 기술이 있고, 내가 도와준다면 충분히 사냥할 수 있잖아.”

그 말에, 김건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지금은 내 기술이 성공할지 안 할지 몰라.”

잘만 쓰던 기술을 갑자기 왜 못쓰겠다고 하는 건지. 한서리는 이해가 되지 않아 물었다.

“……왜? 무슨 부상이라도 당해서 그러는 거야?”

“지금 슬럼프에 빠졌다고 말했잖아. 내 기술은 극도로 정밀한 제어를 필요로 해. 마력제어가 조금만 흐트러져도 아무런 효과도 발휘하지 못한다고.”

“그래 봐야 얼마나 정밀하다고…….”

김건은 굴러다니던 작은 돌멩이를 발로 톡 차서 띄워 올리더니 잠깐 만져 본 후 한서리에게 던져 주었다.

한서리는 영문도 모르고 돌멩이를 받았다.

이걸 뭐 어쩌라고? 라는 표정으로 김건을 돌아본다.

김건이 물었다.

“그 돌멩이,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알겠어?”

“아니, 전혀 모르겠는데. 한 50그램? 100그램?”

“정확히 37.8그램이야.”

자신 있게 말하긴 하지만…… 저울로 재 본 것도 아니니 어떻게 믿겠는가. 한서리가 의심쩍다는 듯이 쳐다보자 김건이 계속 말했다.

“지금 네 몸무게는 41킬로그램이지. 장비를 다 합치면 52킬로까지는 올라가겠군.”

“…….”

최근에 재 본 적은 없지만 과거에 재 본 체중과 거의 일치했다.

아무래도, 김건은 저울에 가까운 무게 감각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김건은 그것에 보태 말했다.

“내 기술은 지금 내가 보여 준 무게 감각보다 훨씬 더 세밀한 단위까지 마력을 제어해야 제대로 작동해. 그걸 기계 따위로 측정하면서 사용하는 게 아니니까 제어는 모두 내 ‘감’에 의지하지. 그날그날 컨디션이나 상태에 따라 얼마든지 실수를 할 수 있어.”

“……어느 정도의 단위로 제어하는데? 마나 단위로.”

“0.00000001마나.”

“미친…… 농담하는 거지? 학술적으로나 쓰이는 단위로 계산해야 한다고?”

“F급 마력적성을 가지고 효율을 내려니, 그것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

김건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한서리는 그를 미친놈보듯이 쳐다보았다.

시력으로 비유하자면, 김건은 방금 육안으로 세포의 분열을 관찰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김건은 이내 쓴웃음을 지었다.

“근데 지금은 안 돼. 완전히 감각이 흐트러졌어. 어쩌면, 다시는 기술을 사용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

“…….”

“그러니까 놈과의 전투는 피해야 해. 내 기술은 이제 성공 여부가 불확실해져서 신뢰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야. 실전에서 써먹을 만한 게 못 돼.”

한서리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꾹꾹 눌렀다.

김건이 하는 말을 쉬이 믿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지금 그는 자신감을 잃은 상태라는 것이었다.

자신감조차 없는 자를 믿고 도박을 하는 것만큼 멍청한 짓은 없다.

그녀는 알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럼 최대한 싸움은 피한다고 치고…… 놈이 계속해서 당신을 추적해 올 거라고 봐야 하나?”

“그럴 거야. 복수라도 할 셈인지, 이전에 내가 속했던 분대가 습격당한 적이 있거든. 그때도 어지간히 큰 부상을 입고 도망쳤었는데…… 오늘도 나타난 걸로 봐서는 어떻게든 내 흔적을 찾아서 쫓아올 모양이야.”

“추적을 따돌릴 방법은 있어?”

김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놈은 후각이 좋아. 장거리 추적이 가능한 능력은 그것밖에 없어. 추적을 따돌리려면 내 냄새를 지우면 돼.”

좋지 않은 느낌이 엄습한다.

무언가를 떠올린 한서리가 뭐라 하기도 전에, 김건은 땅에 널브러져 있는 괴물의 똥을 집어서 치덕대며 몸에 바르기 시작했다.

“야! 야!”

미친놈이다.

진짜 미친놈이야.

액체인지 고체인지 모를 물체가 짓물러진다. 그 사이로 흘러나온 액체가 남자의 볼을 타고 흐른다.

그 끔찍한 모습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야, 이 미친……! 돌았어?”

한서리는 격하게 욕설을 지껄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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