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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168화 (168/200)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168화

외전 7화 그때 그 사건 (7)

“미쳤어! 미쳤어! 세상에!”

그녀는 똥 범벅이 된 김건을 보고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섰다.

김건은 뭘 그렇게 호들갑을 떠냐는 듯이 말했다.

“이게 냄새를 지우기 제일 쉬운 방법이야. 방금 전에도 이게 아니었다면 우리 둘 다 죽었을 수도 있어.”

“그래도 그렇지, 그걸 그렇게 쉽게 해? 좀 망설여야 하는 것 아니야?”

“망설일 필요가 있나? 방법이 이것밖에 없는데.”

“나라면 차라리 그냥 죽었어.”

“목숨 값이 꽤 싼가 보군.”

김건이 침착을 유지하자 한서리도 금방 냉정을 되찾았다. 그녀는 오만상을 다 찌푸리며 김건의 모습을 훑어보다가 물었다.

“좋아. 다 좋다고 치는데, 그렇게 해도 괜찮은 거야? 문제없어?”

“당연히 안 괜찮지. 똥에 독이 있으니까. 냄새 때문에 후각을 제대로 쓰기 힘들어. 그러면 전체적으로 다른 감각도 떨어지겠지. 오감이 둔해지면 아무래도 실수도 자주 나올 거야.”

한서리는 한숨을 쉬었다.

“……알았어. 그러면 모자란 부분은 내게 메울게. 내가 좀 더 신경 써서 주변을 살피거나 하면 되겠지?”

호들갑을 떨던 방금 전과 달리 의외로 침착하게 말한다.

김건은 의외라는 듯한 눈으로 잠깐 한서리를 바라보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부탁할게.”

“좋아. 그러면 이만 가자. 난 당신처럼 비위가 좋지 않거든. 일단은 이걸 씻어 내야겠어.”

* * *

잠깐 강가에 들러 몸을 씻은 뒤, 한서리와 김건은 다시금 이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제처럼 여유롭게 걷거나 하지 않았다. 이미 상당한 거리를 전진했을 본대를 따라잡기 위해 최대한 속력을 냈다.

이번에는 한서리가 힘을 썼다.

어제 기지를 탈출할 때 했던 것처럼, 그녀는 김건에게 버프를 걸고 자기 자신은 소환한 아이스 골렘에 올라타는 방식으로 속도를 높였다.

낮이 되면 온도가 오르고, 그러면 체력의 소모도 커진다.

새벽 시간대에 이동을 시작한 두 사람은 휴식과 이동을 반복하며 최대한 빠르게 정글을 주파했다.

그들은 그렇게 짧은 시간 내에 수십 킬로미터를 가로질렀고, 목표했던 대로 정오가 되기 이전에 울창한 정글을 빠져나오는 데에 성공했다.

그다음으로 통과해야 하는 곳은 바위산으로 가득한 협곡이었다.

이 이상 마력과 체력을 소비하면 만약에 있을 전투 상황에 대응할 수 없다고 판단한 두 사람은 다시금 일반 구보로 방침을 전환했다.

하늘을 올려다보자 쨍쨍 떠 있는 해와 하늘을 나는 익룡들이 보였다.

“…….”

괴물들을 발견한 한서리의 눈살이 좁아졌다.

매처럼 하늘을 날다가 벼락처럼 내리꽂혀 지상의 사냥감을 낚아채는 괴물들.

다행히 이쪽을 주시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녀는 눈을 돌려 뒤편에서 따라오고 있는 김건을 바라보았다.

터벅, 터벅 걷는 움직임이 이미 상당히 둔해져 있다.

한서리가 혀를 차며 물었다.

“괜찮아?”

“괜찮다.”

김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햇빛에 말라붙은 덩어리가 떨어져나가자 커다란 이파리를 접어 만든 임시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다시금 얼굴에 갈색 분칠을 했다.

이제는 냄새가 문제가 아니다. 한서리는 김건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발견했다.

“슬슬 독이 오르는 모양인데, 진짜 문제없어?”

“문제없어. 감각이 둔해져서 전력을 내기는 힘들겠지만 단순 행군이나 가벼운 전투를 수행하는 데에는 충분해.”

저렇게까지 말하니 이쪽에서는 할 말이 없다. 한서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주변 경계는 내가 할 테니까, 당신은 최대한 체력을 비축하면서 따라오기만 해.”

“그렇게 하지.”

협곡은 경사가 심하고 제대로 된 길이 없어서 몇 번이나 바위와 바위의 사이를 건너 뛰어가며 울퉁불퉁한 지면을 걸어야 했기에 정글만큼이나 이동이 어려웠다.

두 사람은 정오를 지나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질 때까지 걸었지만 그렇게 많이 전진하지 못했다.

그래도, 조금만 더 가면 한서리가 계산했던 오늘의 목표 지점이 코앞이었다.

그렇게 판단하고 발걸음에 박차를 가하려고 하던 그때, 문득 한서리의 앞에 보이는 것이 있었다.

“이건 뭐야…….”

커다란 돌덩어리가 그녀의 앞을 막고 있었다.

한서리는 눈을 크게 떴다.

단순히 돌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놀란 것이 아니다. 주변은 오로지 돌덩어리로 가득한 협곡이었으니까.

다만, 한서리가 의아해진 것은 바로 앞에 있는 돌이 그 자리에 놓인 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은 것처럼 보여서였다.

살짝 주변을 살펴보니, 정면에 있는 것 외에도 크고 작은 덩어리들이 이리저리 박혀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어딘가에서 날아와 데굴데굴 구르다가 박힌 것 같이 지면에 길게 흔적을 남겨 놓고 있다.

김건 역시 그것을 발견했다. 그는 사방에 깔려 있는 흔적들을 살펴보고 말했다.

“뭔가가 싸움을 벌였군.”

그는 그러면서 한쪽을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절벽에는 기다랗게 상흔이 그어져 있었다. 무언가 엄청난 열기가 절벽을 훑고 지나가며 암석을 녹여 버린 것이다.

아무리 공룡족이라 하더라도, 저만한 파괴를 벌일 수 있는 개체는 많지 않다.

김건은 금세 그 정체를 유추해 냈다.

“드래곤 베어끼리 영역 다툼이라도 벌인 모양이야.”

“느낌이 좋지 않은데.”

삼십 미터가 넘는 거구 둘이 전투를 벌였다라. 그것도 그 장소는 크고 작은 암석과 절벽으로 가득한 협곡이다. 그렇다면 그 전투의 여파로 알고 있던 지형이 완전히 뒤바뀌었을 수도 있다.

불안감을 느낀 한서리가 걸음을 빨리했다. 그리고 그녀는 이내 무언가를 발견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제기랄…… 길이 끊어졌어.”

그녀가 도착한 곳은 장대한 절벽의 끝이었다.

한서리가 기억하기로, 이곳은 원래 절벽이 아니었다. 거대한 언덕 사이에 틈이 있기는 했지만 약간의 도움닫기만으로도 충분히 건널 수 있는 정도의 폭이었는데, 괴물들이 서로 얼마나 치고받았는지 사방에 파편이 난자하며 지형이 완전히 바뀌어 반대편까지 수십 미터는 되어 보이는 절벽이 되어 버렸다.

마찬가지로 그것을 본 김건이 말했다.

“돌아갈 수 있는 루트는 없나?”

“없어. 여기서 양옆으로 빠지면 거기는 완전히 괴물들의 영역이야. 우리 둘이서는 돌파할 수 없을걸.”

“그러면 어떻게든 건너야지.”

김건이 고개를 쳐든다. 그는 눈어림으로 반대편까지의 거리를 쟀다.

“대략 오십 미터는 되어 보이는데.”

잠시 턱을 쓰다듬던 그의 시선이 이동했다.

김건은 주변의 절벽과 바위 사위에 널려 있는 식물과 각종 덩굴 등을 확인하고 말했다.

“넘어갈 로프를 만들어 보자.”

“로프로 뭘 어떻게 하려고? 뭘 걸칠 만한 데도 없어 보이는데.”

“몸으로 때워야지.”

깔끔하게 대답한 김건이 한서리를 돌아보았다.

“골렘을 이용해서 날 반대편까지 던질 수 있겠어?”

자신이 직접 절벽 반대편으로 날아가서 로프를 걸치겠다는 것이다.

그 의도를 이해한 한서리가 다시 한번 절벽을 바라봤다. 그녀는 김건의 체중을 눈대중해 보며 말했다.

“……곱게는 못 던져. 원심력을 이용해서 던지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정확히 절벽 위로 던질 수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 정도면 충분해. 버프만 걸어 줘. 그리고 던져 주면, 그다음부터는 내가 알아서 할게.”

“어떻게? 당신 마력으로는 오라를 추진제로 쓰기도 힘들 텐데.”

“내 마력으로도 한 번 정도는 공중에서 가볍게 도약할 정도는 임시 질량을 만들어 낼 수 있어. 그리고 꼭 위에 떨어지지 않아도 돼. 절벽 타는 건 자신 있거든.”

“…….”

확실히, 이전의 전투에서 보인 모습으로 봤을 때 김건은 스스로의 몸놀림에 상당한 자신감이 있어 보였다.

잠시 고민하던 한서리는 이내 그 의견을 받아들였다.

“좋아. 그럼 이건 당신한테 맡길게.”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김건.

그런 그에게 한서리가 제안했다.

“그러면 절벽을 건너는 건 내일 아침에 하자. 모험을 하려면 충분히 체력을 회복한 뒤에 시도하는 게 나으니까.”

김건은 그 의견에 동의를 표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어제 했던 것처럼 일을 분담해 야영지를 꾸리고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김건의 꼴이 말이 아니었기에 어제처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분위기가 되지는 않았다. 한서리를 배려한 김건이 알아서 거리를 벌렸다. 한서리는 정글에서 챙겨 온 열매를 먹었고, 김건은 한서리의 비상식량을 먹었다.

간단한 대화가 몇 마디 오가고 나자 밤이 되었다.

두 사람은 어제와 같은 순번으로 불침번을 서기로 했다.

김건이 먼저, 그다음에 한서리, 그렇게 둘이 번갈아 가며 밤을 지새는 것이다.

한 번씩 순번이 돌고, 김건이 불침번을 설 차례가 되었다.

한서리는 여전히 지독한 냄새를 풍기며 자고 있는 김건에게 다가갔다. 그 꼴이 상당히 처량해 보였기에, 그녀는 쯧쯧 혀를 차다가 작게 말했다.

“일어나. 당신 차례야.”

“…….”

반응이 없다.

어제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가까이 다가오는 발소리만 듣고 일어났었는데.

뭔가 문제가 생긴 게 분명했다.

한서리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이봐! 괜찮아?”

그녀는 재빨리 무릎을 꿇고 앉아 김건의 상태를 확인했다.

더러우니 뭐니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녀는 강하게 김건의 어깨를 흔들었지만 그는 깨어나지 않았다.

“뜨거워……!”

어깨를 붙잡은 손이 화끈거렸다. 한서리는 혀를 차며 그녀를 등지고 웅크려 있는 김건의 몸을 뒤집었다.

그리고 그 이마에 손을 올려 보자, 역시나, 상당한 열이 느껴졌다. 차분하던 숨소리도 상당히 가빠진 상태였다.

단순히 똥독이 올라서 이렇게 된 것 같지는 않다. 무언가를 깨달은 한서리는 수통의 물을 조금 흘려 얼룩덜룩한 김건의 얼굴을 닦았다. 그리고 깊게 한숨을 쉬었다.

“역시, 이럴 줄 알았어.”

멍든 것마냥 푸르게 변색된 피부가 보였다. 그 위에 핏줄마냥 마력 회로가 불거져 나와 있었다.

한서리는 단번에 김건의 상태를 깨달았다.

마력 거부 반응.

낮은 마력적성을 지닌 자는 몸이 그만큼 마력에 익숙하지 않아 그것이 담긴 물질을 섭취하거나 너무 밀접하게 접촉할 경우, 알레르기처럼 심한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아무래도 거부 반응과 독이 시너지를 일으켜 급격하게 상태가 악화된 모양이다.

열이 펄펄 끓는 김건의 이마를 다시 만져 본다.

못해도 열이 40도는 되어 보였다.

어쩐지, 점심때부터 상태가 안 좋아 보인다 했다. 하지만 그녀도 반나절 사이에 이 정도로 악화될 줄은 몰랐다. 아마 김건도 그랬을 것이다.

한서리는 혀를 찼다.

“멍청한 인간…… 몸이 이렇게 될 때까지 참고 있었던 거야?”

인내심이 좋은 사람과 협업을 할 때는 가끔 이렇게 답답할 때가 있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을 해야 거기에 대응할 준비를 할 텐데, 상황이 안 좋은데도 주구장창 혼자서 참고만 있으니 결국 탈이 나게 되는 것이다.

한서리는 얼른 손을 놀려 똥으로 범벅인 김건의 옷을 벗겨 냈다. 온통 갈색 진흙이 묻어 얼룩덜룩한 상체를 발견하고 잠시 고민에 잠겼다.

“어쩔 수 없네.”

지금의 상황, 그리고 앞으로의 상황을 계산해 빠르게 결정을 내린 그녀가 수통을 열었다.

그러곤 겉옷을 벗고 셔츠를 젖혀, 그 안에 있는 내의를 끄집어내 물에 적셨다.

그리고 그녀는, 가지고 있는 모든 식수를 사용해 김건의 몸을 닦아 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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