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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171화 (171/200)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171화

외전 10화 그때 그 사건 (10)

수통에다 소변을 받아 오라니, 순간적으로 그 말의 의도를 깨달은 한서리가 물었다.

“설마, 그걸 마시려고?”

말 한마디 하는 데에도 입안이 찢어질 것처럼 아프다.

한서리는 인상을 찡그렸고, 김건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서리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멍청한 짓이야. 정화제가 있긴 하지만 그걸론 부족하고, 그걸 마셔 봤자 염분 때문에 탈수 증상만 더 빨라질걸.”

레인저로 활동했던 김건이 그런 사실까지 모를 것 같지는 않아서, 한서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김건이 말했다.

“정화할 수 있어. 내 기술을 사용하면.”

“그 진동을 이용한다는 기술? 슬럼프라 제대로 사용 못한다며?”

“실전에서 못 쓴다는 거지. 가만히 집중하면 소변에서 노폐물을 분리해 내는 정도는 할 수 있어.”

이전에 말한대로, 정말로 김건이 마력을 극소 단위로 제어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봐 온 성격을 봐서는 그가 이런 상황에서 쓸데없는 소리를 할 것 같지도 않다.

소변을 정화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리라.

하지만 그것이 가능한 것과, 그것을 실제로 마시는 것은 이야기가 달랐다.

굳이 자신의 수통을 먼저 내밀며 소변을 채워 오라고 한다는 것은 아마도 두 사람의 것을 모두 합치기 위한 것일것이다.

그 말은 즉, 서로의 오줌을 나눠 먹자는 이야기가 된다.

“…….”

한서리는 말문이 막혔다.

아무리 위급 상황이라도 그렇지, 생리적인 혐오감이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그녀는 감정보다 이성이 앞서는 사람이었다.

그러면, 안 마실거야? 목숨이 걸린 이 와중에?

그런 생각이 들자 김건의 말에 혐오감을 느끼고 있는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수긍하고 받아들이기에는 본능적인 거부감이 큰 것도 사실이었다.

한서리는 한참이나 고민하다가 물었다.

“……내 건 내 수통에 담아 줄 테니까, 따로 담아서 마시면 안 될까?”

“왜? 그러면 정화를 두 번 해야 해서 내 소모가 커져. 상당한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기술이라. 불필요한 짓은 하고 싶지 않은데, 따로 담아야 하는 이유가 있나?”

“…….”

이 자식, 그냥 아무 생각 없잖아.

멀뚱히 이쪽을 바라보는 김건을 마주하자 온갖 감상이 머릿속을 교차했다. 답답하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허탈하기도 했다.

눈치만 주며 알아서 행동해 주기를 바라는 건 지휘관으로서의 자존심이 용납 못한다.

솔직하게 말하며 타박을 주기에는 여자로서의 자존심이 용서 못한다.

그 와중에 언제나 용서가 없는 태양은 뜨거운 햇빛을 내려쬐며 당장의 대답을 종용하고 있었다.

이래도 손해. 저래도 손해.

그녀는 눈앞의 벽창호와 눈치 싸움을 해 봐야 자신만 못난 꼴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바로 깨달았다.

그녀의 입에서 낮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당신, 진짜 못돼 먹었네.”

“…….”

그렇게 말하며, 한서리는 김건의 손에서 수통을 낚아챘다.

* * *

김건의 실력은 진짜였다.

대체 무슨 놈의 기술을 사용해야 그렇게 되는 건지, 눈을 감고 수통을 붙잡은 그가 손가락으로 수통의 표면을 미끄러트리자, 그 손끝을 따라 안쪽에서 하얀 알갱이가 둥글게 뭉쳐서 바깥으로 떨어져 나갔다.

그렇게 정화된 물에서는 냄새도, 짠맛도 나지 않았다.

맨 처음에는 찝찝해서 못 견디겠다는 표정이던 한서리도 물을 한 번 입술에 대고 나자, 이내 목울대를 일렁이며 그것을 꿀꺽꿀꺽 삼켰다.

역시 사람은 현실을 살아야 한다.

싱숭생숭하던 기분이 깨끗이 가시고, 김건의 의견을 듣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한서리는 과거의 자신을 칭찬하며 소매로 입가를 닦곤 김건을 바라보았다.

“……정말로 이게 정화가 되네. 몸에 현미경이나 저울이라도 달았어? 어떻게 그렇게까지 마력을 세밀하게 제어할 수 있는 거야?”

“열심히, 잘.”

“성의 없는 답변이네.”

“그게 아니라, 정말로 그렇게밖에 할 말이 없어.”

억울하다는 듯이 말하는 걸 보니 사실인 것 같았다.

그만한 기술을 가지고 있다면 어디 가서 자랑할 수 있는 말 한두 마디 정도는 준비해 뒀을 법한데, 어지간히도 말주변이 없는 남자라고, 한서리는 생각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죽을 듯이 힘들더니 물을 마시고 휴식을 취하자 금세 기분이 나아졌다.

바위 위에 올라앉아 쉬던 김건이 몸을 일으켰다.

“다시 출발하자고. 생각보다 휴식 시간이 길어졌어.”

“그래.”

고개를 끄덕인 한서리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할 때였다.

“……어?”

허리를 들어 올리다가 문득 엉덩방아를 찧는다.

그녀는 어안이 벙벙해져서는 눈을 깜빡이다가 다시 몸을 일으키려 했다.

팔을 지지대삼아 엉덩이를 들어 올리는 와중, 중심이 흔들려 아예 뒤로 쓰러져 버렸다.

“……이, 이거 왜 이래?”

한 번 등이 땅에 닿자, 그다음부터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녀는 당황해서 허둥거렸지만 눈만 깜빡이는 게 고작이었다.

“……! ……!!”

팔과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마치 진짜 팔다리를 잘라 버리고, 그 자리에 모양만 잡혀 있는 나무토막을 달아 둔 느낌이었다. 중심을 잡고 설 수가 없다.

설마, 뭔가 독에라도 당한 건가?

그런 생각으로 불안해질 즈음, 김건이 다가와 그녀를 살폈다.

한서리의 손목을 짚어 맥을 확인한다. 그러곤 자신의 마력을 찔러 넣어 안쪽을 살핀 후 말했다.

“그냥 탈진한 거야. 큰 문제는 없어.”

“탈진?”

그딴 나약한 단어가 나한테 붙는다고?

짐덩이 역할을 하는 건 이제 질렸다.

처음 만났을 때 강에서도, 그리고 오늘 아침에도.

더 이상 못난 모습을 보여서 나 자신의 가치를 깎고 싶지 않았다.

한서리는 이를 악물었다. 그녀는 다시 한번 용을 쓰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나 대체 무슨 일인지, 그녀의 팔과 다리는 바닥에 못질이라도 당한 것마냥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익! 이이이익……!”

더 이상은 싫다.

또다시 버림받는 꼴을 당하는 건 사양이다.

어떻게든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한서리는 애를 썼다. 부서져라 이를 깨물며, 목에 핏줄을 세워 가면서 까지 힘을 줬지만 한계에 달한 몸은 착실하게 그녀의 명령을 거부하고 강제로 휴식을 취했다.

“왜 안 움직이는 거야……!”

한시가 급한 와중에 탈진이라니.

내가 고작 이것밖에 안 되는 인간인가 싶어서 눈물이 다 나온다. 얼굴이 타오르는 듯이 뜨겁고, 눈앞이 흐려졌다.

그렇게 발버둥 치는 그녀의 팔을, 김건이 붙잡았다.

팔을 한서리의 등 뒤로 밀어 넣어 천천히 그녀를 일으켜 세우곤 또박또박 말했다.

“무리하지 마. 억지로 움직여 봐야 소용없어, 충분히 쉬는 게 오히려 더 회복이 빨라.”

그러면서 그는 등을 보이더니, 한서리의 팔을 잡아 어깨 위에 얹었다.

움직일 수 없는 한서리를 업고 가려는 모양이었다. 그것을 눈치챈 한서리가 외쳤다.

“됐어! 나 혼자서, 일어나서 걸을 수 있으니까……!”

“고집 피우지 마. 없는 체력이 갑자기 생길 수는 없는 거야. 난 아직 여유가 있어. 당신 한 명 업는다고 크게 지장 없으니까 신경 쓰지 마.”

“그래도……!”

“어젯밤에 내게 잔소리하던 사람답지 않네. 자기가 고생한 만큼, 나를 고생시키겠다고 호언장담하더니.”

“…….”

한서리가 입을 다물었다. 김건은 조용해진 그녀를 스스럼없이 업었다.

그 움직임에 조금이라도 짜증이 나, 불쾌함이 느껴졌다면 설령 이 자리에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한서리는 그의 등에서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김건에게는 그런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이 선의에서든, 단순히 필요에 의해서든,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녀를 업고 단단하게 손을 깍지 껴서 그녀의 체중을 받쳤다.

“몸은 못 움직여도, 마법 정도는 사용할 수 있겠지?”

“응…….”

한서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없이, 김건의 몸에 버프를 걸었다.

힘이 충만해졌다.

김건은 발을 박차며 고속으로 드넓은 평야를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펄펄 뛰어다니니, 업혀 있는 것이 마냥 편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서리는 알아차렸다. 그녀가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김건은 스스로의 움직임을 상당히 제한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는 쥐뿔도 없는 주제에, 이런 데에서는 쓸데없이 배려심이 좋다.

그렇게 생각하며 한서리는 김건이 편하게 달릴 수 있도록 최대한 움직여 그의 등에 몸을 붙였다.

이젠 모르겠다.

이만큼이나 스스로의 무능력함을 직시해 본 경험은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의 경우 그녀는 완벽했고, 누군가에게 아쉬운 소리를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억지를 부려서라도 자존심을 지켜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못난 자신을 인정하고, 순순히 다른 사람의 호의를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녀는 혼란스러웠다.

가슴에 닿는 남자의 등은 따뜻했다. 한서리는 김건의 어깨에 턱을 묻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냄새 나.”

닦아 냈다고는 하지만 어제까지만 해도 괴물의 똥을 뒤집어쓰고 있었으니 당연한 말이었다.

김건은 짧게 답했다.

“참아. 어쩔 수 없어.”

한서리는 대꾸하지 않았다.

김건이 내달리는 동안, 두 사람이 나눈 말은 그리 많지 않았다.

“목말라.”

“다음 휴식 시간에 먹여 줄게.”

“업혀 있으니까 졸려.”

“잠이 오면 자. 어제 무리했으니까.”

무슨 생각인지, 곧 죽어도 싫은 소리는 하지 않던 한서리가 툭툭 불평을 내뱉는다. 그리고 그것을 김건이 받아 줄 뿐인 건조한 대화.

그렇게 한두 마디가 오가는 와중에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계속해서 버프를 운용한 탓에 한서리의 회복은 늦었고, 막상 해 보니 김건이 한서리를 업고 달리는 것이 아이스 골렘을 소환하는 것보다 효율이 좋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쌍방의 합의 하에 새로운 방침을 유지해 서로가 한 몸인 것마냥 내달렸다.

그렇게 해가 지고, 하늘 위로 새파란 달이 높이 떠올랐을 때.

그들의 앞에는 어느 샌가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호수의 전경이 나타나 있었다.

* * *

목표로 했던 오아이스에 도착한 것은 거의 정각이 다 되어서였다.

중간중간 휴식을 취하긴 했지만 장장 열 시간이 넘는 질주였다.

그동안 내내 달렸음에도 김건은 도착할 즈음이 되어서야 힘든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서리처럼 탈진하지는 않았다.

오아시스에 도착한 후, 거칠게 숨을 고르는 그를 보며 한서리가 질렸다는 듯이 물었다.

“당신, 체력이 엄청나네. 그러고 보니 엊그제에도 강물 속에서 엄청 오래 있었던 것 같았는데. 숨 안 쉬고 얼마나 버틸 수 있어?

“활동을 하면서는 6분. 최대한 참는다고 하면 10분.”

“미쳤네. 사람 맞아?”

“마력 적성 F급으로 살아남으려면…… “

“그만, 됐어. 당신이 마력적성만 빼면 완전히 사기에 가까운 능력을 가졌다는 건 충분히 알았으니까.”

김건의 등 뒤에서 내려온 한서리는 아직도 후들거리는 무릎을 붙잡으며 비척비척 걸어 물가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곤 허리를 숙여 고개를 완전히 물 안쪽으로 넣어 버렸다.

파란 머리칼이 수면 위에 퍼지고, 아래쪽으로부터 공기 방울이 올라왔다. 김건이 한서리의 목덜미를 붙잡아 그녀를 끄집어냈다.

“마시지 마. 깨끗한 물이 아니니까.”

한서리는 흠뻑 젖은 얼굴을 손으로 문지르며 눈을 흘겼다.

“잔소리하지 마…… 그 정도는 알고 있으니까.”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수통을 꺼내어 한 번 헹궈 내곤, 적당히 물을 담은 뒤 그 안에 가지고 있던 정수제를 넣고 흔들었다.

그렇게 식수를 확보하곤, 다시 고개를 물 속에 집어넣었다.

계속해서 뜨거운 햇볕을 쬐었으니, 물의 찬 기운이 반갑기도 할 것이다.

오아시스의 물은 생각보다 더럽다.

별로 권장할 수 있는 행동은 아니었지만 김건은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

계산대로라면 본대가 그리 멀지 않았다. 그곳에는 정화 장치가 있으니, 지금 당장 균과 기생충에 노출이 되더라도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찬 기운을 쐬는 것으로 기운을 차린 한서리가 고개를 들었다.

“오늘은 여기서 쉬자. 내일 열심히 달리면 점심 즈음에 본대에 도착할 수 있을 거야.”

“잘됐군. 고생 많았어.”

“당신도.”

서로를 치하한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서리가 말했다.

“그러면 이렇게 물도 있으니까, 자기 전에 목욕 좀 하자. 그동안은 참았는데, 냄새나고 끈적거려서 도저히 못 견디겠어.”

습기 찬 정글에서 하룻밤을 지샌 데다 괴물의 똥을 뒤집어쓰고, 그다음 날에는 미친 듯이 달리기까지 했다.

둘 중 우열을 가릴 필요도 없었다. 두 사람은 완전히 땀과 오물에 젖어 엉망진창이었다.

김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먼저 씻어.”

“아니야. 나보다 당신이 급해.”

“왜?”

“비위도 좋네. 당신 지금 냄새가 얼마나 지독한지 알아? 등에 업혀 오는 동안 코가 썩는 줄 알았어.”

오만상을 찌푸리며 불쾌함을 표시하는 한서리.

그녀는 덩어리가 말라 달라붙어 있는 김건의 하의를 가리키며 코를 움켜쥐었다.

“먼저 씻고, 옷도 좀 빨아.”

“……여벌 옷 같은 건 없는데.”

“말리는 동안은 그냥 벗고 있어. 정 부끄러우면 위에 판초라도 걸치고 있던가. 아니면, 똥 묻은 속옷을 계속 걸치고 있을 거야?”

김건은 냄새가 그렇게 심한가 싶었지만 한서리의 말처럼 더러워진 몸을 그대로 두는 건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실제로 똥독 때문에 하룻밤 앓기도 했으니까.

딱히 반박할 말이 없다.

그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먼저 씻도록 하지.”

물에 들어가기 전에 주섬주섬 더러워진 옷을 벗기 시작하는 김건.

그러던 그는 문득 한서리가 물끄러미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걸 발견하고 동작을 멈췄다.

“……경계라도 서는 건가?”

“당연하지.”

한서리는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옷은 의외로 중요한 방어구이며, 씻는 동안은 무장도 곁에서 떼어 놓아야 한다. 때문에 이런 야외에서 목욕을 할 때에는 되도록 곁에 있는 누군가가 곁에서 보초를 서주는 것이 좋았다.

“…….”

김건도 그것을 잘 아니, 더 이상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한서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는 알몸이 되어서 조금 둔해진 동작으로 몸을 깨끗이 씻었다.

옷까지 벅벅 문질러 닦아 낸 뒤, 호수를 빠져나와 몸에 묻은 물기를 대충 털어 내곤 그 위에 펑퍼짐한 판초를 걸쳤다. 그러곤 끝났다는 듯이 한서리에게 시선을 향했다.

“그럼 이제 내 차례네.”

고개를 끄덕인 한서리가 옷을 벗었다.

김건의 어깨가 움찔 떨리며, 시선이 은근슬쩍 바깥쪽으로 향했다.

“이상한 데서 부끄러워하지 말고. 경계 서 줘.”

그렇게 말하며, 알몸이 된 한서리는 천천히 깊은 물속에 발을 밀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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