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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173화 (173/200)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173화

외전 12화 그때 그 사건 (12)

사방에 널려 있는 시체와 차량의 파편.

더 볼 필요도 없었다.

본대는 이곳에 있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전투가 벌어졌기에 자리를 떴다.

근처에 있는 괴물의 시체는 모두 거북이처럼 넙데데한 몸뚱이에 기린처럼 긴 목을 가진 공룡족의 것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김건이 말했다.

“브라키오에게 습격을 당했군. 온순한 놈들이라 어지간해서는 먼저 달려들지 않는데. 왜지?”

“……멍청한 새끼가. 결국은 사고를 쳤군.”

뭔가 짐작 가는 것이 있는 모양이다. 한서리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아무래도 새끼를 건드린 것 같아.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될 수가 없어.”

알을 낳는 다른 공룡족과 달리, 브라키오는 새끼를 낳았다. 개체수가 비교적 적고, 무리 생활을 하기 때문에 극도로 모성애가 강하다.

때문에 브라키오의 새끼를 건드리는 것은 새끼가 속한 무리 전체와 싸움을 벌이겠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확실히, 새끼를 건드렸다면 이렇게 전투가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의문은 남아 있었다. 김건이 물었다.

“그런데 새끼를 왜 건드려? 어렸을 때부터 잘 키우면 길들일 수도 있다는 귀한 몬스터라는 건 알지만…… “

“간부 중에 브라키오의 새끼를 가지고 싶다고 하던 놈이 있었어. 어차피 지구로 돌아가는 길이고, 잔소리꾼도 없겠다, 혹시나 무슨 일이 있어도 전 병력이 뭉쳐 있는 본대가 함께하니까 괜찮을 거라고 판단했겠지.”

잔소리꾼을 자처하던 사람이 그렇게 말했다.

김건은 침음을 삼켰다.

그는 경험이 많았다. 상부가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짓을 하는 것을 지금까지 수십 번은 본 사람이다.

그렇기에 그는 그 멍청한 행동에 불평을 토하는 대신, 화제를 돌렸다.

“벌어진 싸움은 어쩔 수 없고, 남아 있는 흔적을 봐서는 브라키오 무리와 죽도록 싸운 것 같지는 않아. 브라키오는 발이 느린 편이니까, 적당히 싸우다가 그냥 다른 곳으로 도망친 것 같아. 그러면 이 다음 이동 경로를 예측할 수 있겠어?”

앓는 소리를 내며 한서리가 골머리를 싸맸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이마를 꾹꾹 누르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제는 나도 정확히 몰라. 어쩌면 조금 떨어진 곳에 다시 자리를 잡고 휴식을 취할 수도 있긴 한데…… 그러기에는 지구로 향하는 게이트까지 남은 거리가 상당히 애매하단 말이지.”

고민을 거듭하는 한서리.

그러던 그녀가 이내 입을 열었다.

“하지만 생각이 있는 놈이 있다면, 여기서 머뭇거리는 짓을 하지는 않을 거야. 이왕 출발한 김에, 조금 무리를 해서 바로 게이트를 통과하려 들걸. 이곳에 더 머물러 봐야, 쓸데없는 변수만 마주칠 뿐이거든.”

“……그럼 지금이라도 빨리 달려가서, 본대를 따라잡아야 한다는 거군. 이대로 있다간 우리가 도착하기도 전에 게이트가 닫혀 버릴 테니까.”

한마디로 한서리의 말을 정리한 김건이 이마를 찌푸렸다.

“좆같은 상황이 됐군.”

만난 이후 처음으로, 그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여유가 있었다면 그것을 가지고 장난을 쳤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시기가 아니었다.

“그래.”

깊은 한숨이 한서리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42킬로미터 마라톤을 하는 와중에 골에 다 도착한 줄 알고 마지막 전력 질주를 했더니만, 갑자기 달려온 심판이라는 놈이 실수를 했다면서 결승 테이프를 들고 저 멀리 도망가는 듯한 기분이다.

하지만 한탄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김건은 바로 움직였다.

그는 널브러져 있는 사람들의 시체를 뒤져 그들이 가지고 있던 식량과 약물을 챙겼다. 그리고 그것을 한서리에게 던져 주었다.

어쩌면 어제보다 더 고된 행군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한서리는 바로 각성제를 찾아 목에 주사했다.

일시적으로 능력을 증진시키는 약물은 언제나 이럴 때 도움이 된다. 그녀는 효과와 부작용이 충돌하지 않는 선에서 다른 약물들을 주입했다.

그러다 가만히 서 있는 김건을 돌아보았다.

“당신은?”

“난 됐어. 약물은 감각을 흐트러트리니까. 나한테는 오히려 역효과야.”

“흠.”

확실히, 지금까지 본 바로 김건은 약물의 도움을 받지 않더라도 육체의 능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것으로 보였다.

한서리는 더 이상 말을 보태지 않고 그에게 손을 뻗었다.

그녀의 손에서 뻗어 나온 하얀 서리가 김건의 몸을 덮어 간다. 그리고 그것은 이내 얼음의 갑옷이 되어 김건의 전신을 감쌌다.

설화기사, 한서리가 사용가능한 최고 성능의 버프다.

엄청난 힘이 몸속을 흘렀다. 버프를 두른 김건이 어깨를 들썩였다.

“굉장한데. 이전보다 훨씬 더 상태가 좋아.”

단순히 더 강한 힘을 얻은 것이 아니었다. 몸에 딱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움직임이 편해졌다.

“당연하지. 계속해서 당신을 관찰하면서 조정했는걸.”

한서리가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지었다. 김건은 웃으면서 무릎을 굽히며 그녀에게 등을 보였다.

한서리는 익숙한 동작으로 그에게 업혔다.

김건이 말했다.

“꽉 잡아. 시간이 없으니까, 좀 거칠게 달릴지도 몰라.”

“알았어.”

한서리가 대답하며 김건의 어깨를 꽉 잡았다.

김건이 발을 박찼다.

그는 한서리가 부여한 버프의 힘을 최대한으로 사용했다.

그가 지면을 찰 때마다, 폭음이 터지며 충격파가 번져 나왔다.

머리를 앞으로 숙인 채, 무시무시한 각력으로 고속이동을 수행한다.

쏜살처럼 날아가는 김건. 그의 등에 매달린 한서리가 놀란 숨을 들이켰다.

“으윽!?”

어제부터 계속 그의 등에 매달려 달려왔지만 지금까지와는 주법 자체가 달랐다. 그가 앞으로 쏘아져 나갈 때마다 매달린 몸이 미친 듯이 튀어 올랐다.

‘진짜, 지금까지는 엄청 봐준 거잖아!’

두 다리로 이루어진 관절 구조, 지면과 접지되는 발의 크기, 그리고 근육의 형태 때문에 아무리 각력이 좋다 한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빠르게 달리지 못한다.

하지만 김건은 기이한 주법을 사용해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추진력으로 전환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한서리는 감탄했다.

지금까지 많은 전위들을 만나 봤다. 마력적성이 SS급이어서 한서리의 버프보다 훨씬 더 강한 출력을 지닌 전위들도 보았다.

하지만 그런 그들도 대부분은, 지금의 김건처럼 달리지 못했다.

전력 질주하는 차량에 맞먹는 수준으로 초원과 숲의 경계를 통과한다.

듬성듬성 서 있는 나무가 빠르게 뒤로 지나가고, 졸졸 흐르는 시냇물이 다리 밑으로 빠져나갔다.

쐐액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김건을 마주친 몇몇 괴물들이 기이한 괴성을 내질렀다.

한서리는 생각했다.

‘이 정도 속도라면 본대를 따라잡는 데에는 문제가 없겠어.’

하지만, 그런 김건의 질주는 그렇게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음.”

난데없이 생겨난 새카만 장벽이 앞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김건이 재빠르게 발을 멈춰 세웠다. 그는 발로 깊은 고랑을 파며 얼음판처럼 지면을 미끄러져 감속했다. 그리고 눈앞에 떠오른 장애물의 정체를 확인했다.

우두두두두!

지면이 떨렸다.

검은 무리가 지표면 위에서 일렁일 때마다 엄청난 흙먼지가 피어올라 하늘로 솟아올랐다.

“우음.”

“뿌어어어어!”

수천이 넘는 괴물의 무리가 대규모 이동을 하고 있었다.

전면부를 향해 길게 뻗은 두개의 뿔과 목 위에 둥글게 솟아 있는 머리 깃은 과거 지구에 살았던 공룡인 트리케라톱스와 비슷하다.

하지만 그 생태는 무리 지어 사는 아프리카 물소와 닮았기 때문에 인간들에게는 버팔로톱스라 불리는 공룡족이었다.

“이런.”

그들을 마주한 김건이 혀를 찼다.

육식을 하는 생물이 아니라 딱히 공격받을 위험은 없지만, 수천이나 되는 무리가 가야 할 길을 완전히 가로막아 버렸다.

단번에 뛰어넘기에는 너무 멀고, 그 사이를 빠져나가는 것은 쌩쌩 달리는 차량으로 가득한 10차선 도로를 일직선으로 횡단하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짓이었다.

마음은 급하지만 어쩔 수 없다. 김건은 한숨을 쉬었다.

“잠깐 기다려야겠어.”

그렇게 말한 김건이 편한 휴식을 위해 등에 업은 한서리를 내려 주려 할 때였다.

전방에 집중하는 김건 대신 주변을 경계하던 한서리가 무언가를 발견했다.

“잠깐만, 뒤에 뭔가가 있는데?”

“뭐?”

한서리는 눈살을 좁혔지만, 마력으로 시야를 강화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그것은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일렁이고 있는 것으로 밖에 안보였다.

뒤를 돌아본 김건이 물었다.

“어디야?”

“저쪽이야.”

손가락을 들어 녹색으로 얼룩덜룩한 지평선의 한 점을 가리키는 한서리.

그녀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긴 김건이 한서리가 발견한 연기 같은 형체를 바라보았다.

김건은 눈이 좋았다. 그는 한 눈에 그것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제기랄.”

다시 한번, 그의 입에서 욕설이 토해졌다.

“뭐야? 뭔데 그래?”

좋지 않은 예감에 한서리가 다급하게 묻는다. 김건은 씹어 뱉듯이 말했다.

“애꾸야. 빌어먹을 놈이 여기까지 나를 쫓아 왔군.”

한쪽 눈이 없는 크리니에르.

반려를 잃은 백색의 괴물이, 복수심을 불태우며 그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 * *

애꾸는 빨랐다. 김건이 놈의 정체를 확인하고 몇 초 지나지도 않았는데, 그저 흐릿하게만 보이던 놈의 형체가 이제는 한서리의 눈에도 또렷하게 보였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대로라면 놈이 여기까지 도달하는 데에 채 1분도 걸리지 않을 것 같았다.

뒤에는 복수심에 불타는 크리니에르.

앞에는 무심한 듯 장벽을 세우고 있는 버팔로톱스의 무리.

“어떻게 해?”

한서리가 묻자, 김건은 쳇 하고 혀를 찼다.

“별수 없지. 모험을 하는 수밖에.”

그는 그러면서 둘러메고 있던 한서리의 허벅지를 꽉 조였다.

“모험?”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 거냐고 한서리가 묻기도 전에, 김건은 한처리를 업고는 와글와글 움직이고 있는 버팔로톱스의 무리 위로 뛰어들고 있었다.

“뭣……!”

깜짝 놀란 한서리가 김건의 목을 휘감는다. 훌쩍 뛰어오른 김건이 움직이고 있는 버팔로톱스의 등을 밟았다.

타앗!

정신없이 움직이는 생물의 등을 밟고 바로 도약.

발을 박차는 순간 놈이 몸을 움직인 탓에 균형이 뒤틀렸다.

김건은 필사적으로 허리를 틀어 공중에서 자세를 제어하며 비틀비틀 다음 괴물의 등 위에 착지했지만 휙 하고 발이 미끄러져 버렸다.

“……!!”

순식간에 머리가 기울며 허리가 부웅 떠오른다. 몸이 추락할 때 느껴지는 부유감이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대로 떨어져서 버팔로톱스의 무리에 끼이면, 버프고 나발이고 순식간에 놈들에게 짓밟혀 죽을 것이다.

하얗게 질리는 한서리의 얼굴. 그런 그녀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기 직전에, 김건이 양다리를 크게 벌려 그들이 떨어지는 방향에 있던 버팔로톱스의 옆구리를 강하게 걷어찼다.

“크르릉!”

배를 걷어차인 괴물이 콧김을 뿜으며 어깨를 털어 냈다.

발차기의 반발력을 이용해 가까스로 균형을 되찾은 김건이 다시금 훌쩍 뛰어 다음 괴물의 등 위에 내려앉았다.

그렇게 김건은 괴물과 괴물의 등을 건너뛰며 버팔로톱스의 무리 위를 지나갔다.

계속해서 펼쳐지는 곡예 같은 움직임에 한서리의 호흡이 멎었다.

‘너, 너무 아슬아슬해……!’

온몸에 힘이 꽉 들어간다. 미친 듯이 심장이 뛰고, 계속해서 번갯불이 등줄기를 내리쳤다.

그래도 벌써 무리의 절반 이상을 건넜다.

이대로 몇 번만 더 뛰면 성공적으로 버팔로톱스의 무리를 건너 반대편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조금만 더 참으면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이려는 찰나였다.

“더 단단하게 잡아! 잘못하면 떨어진다!”

김건의 고함 소리와 함께 단단하게 다리를 붙잡고 있던 압박감이 떨어져 나갔다.

“……!!”

한서리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깜짝 놀란 그녀가 양팔과 양다리를 교차해 김건의 몸에 달라붙고, 한서리의 몸을 받치고 있던 팔을 풀어낸 김건이 한 손으로 버팔로톱스의 머리 깃을 붙잡으며 허리춤에서 벨트처럼 두르고 있던 채찍을 끌러 냈다.

‘저걸로 대체 뭘 하려는 거지?’

라는 생각이 한서리의 머리를 스쳐 지나가고─ 이어진 김건의 행동은.

짜아아악!

벼락처럼 날아간 채찍이 괴물의 엉덩이를 때렸다.

짜아악, 짝!

사방으로 누비는 채찍.

김건은 미친 듯이 채찍을 휘둘러 앞뒤 가리지 않고 근처에 있는 버팔로톱스들을 때리기 시작했다.

“뿌우우!”

“크워어!”

갑작스러운 자극에 깜짝 놀란 괴물들이 펄쩍 뛰었다.

두 사람이 올라탄 버팔로톱스의 등이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황소의 등 뒤에 올라간 것처럼 몸이 펄쩍펄쩍 뛰어오르니 영혼이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대체, 뭘! 하는 거야!”

“혼란을 일으켜야 해! 이 녀석들을 장벽으로 써서 도망친다!”

비명을 지르는 한서리.

그런 그녀의 질문에 답하며, 김건은 채찍을 계속해서 휘둘렀다.

그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채찍이 공간을 누비며 음율처럼 혼돈이 퍼져 나갔다. 괴물들의 무리가 급격하게 파도친다.

우르르르릉!

전차만 한 괴물들이 동시에 날뛰며 무너질 듯이 지진이 울렸다.

“크아악!”

“케에엑!”

서로에게 채인 버팔로톱스의 비명이 귀청을 울렸다. 도미노가 쓰러지듯, 전염병이 퍼져 나가듯 패닉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스치기만 해도 몸을 조각 낼 거대한 뿔이 눈앞을 휙휙 오가고, 계속해서 펄쩍펄쩍 뛰는 몸에서 팔이 미끄러질 때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야! 이…… 미친, 새끼……!”

전사란 놈들은 원래 이런 건가.

별다른 말도 없이 사람을 데리고 지옥의 불구덩이로 뛰어들고 자빠졌다.

스릴이 지나쳐서 온몸이 얼얼해 왔다. 눈앞이 새까맣게 멀어져서, 한서리는 그저 죽자고 김건의 몸을 붙잡고 늘어졌다.

혼돈이 무리 전체를 뒤덮는 건 순간이었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버팔로톱스가 이상을 눈치채고 고성을 내질렀지만 소용없었다.

이미 당황에서 태어난 공포가 주변의 모든 공룡족들을 사로잡고 있었다.

“우워어어어!”

그리고 그들은, 김건이 의도했던 대로 대열을 이탈해 사방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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