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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174화 (174/200)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174화

외전 13화 그때 그 사건 (13)

김건이 만든 혼돈이 버팔로톱스 무리를 장악했다.

일렬로 행진하던 공룡족들이 아우성을 치며 두서없이 사방으로 뛰쳐나가기 시작한다.

이 상황에서까지 곡예를 벌이는 건 자살행위다. 그렇게 판단한 김건은 적당히 방향이 맞는 쪽으로 움직이는 버팔로톱스 한 마리를 붙잡아 그 등에 매달렸다.

악력으로만 버티는 것은 불안정하니, 크게 채찍을 휘둘러 고삐마냥 버팔로톱스의 목에 걸고 버텼다.

그제야 여유가 생긴 한서리는 고개를 돌려 후방을 확인했다. 그런 그녀의 눈에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버팔로톱스 무리와 마주친 애꾸가 보였다.

“……!!”

녀석은 잠시 당황한 듯 보였다. 돌진을 멈추고 좌우로 뛰며 어딘가 돌아갈 곳은 없나 찾아보는 듯하더니, 이내 고양이처럼 갈기를 곤두세우며 크게 소리를 내질렀다.

“카아아아악!”

버팔로톱스보다는 작지만 녀석 역시 공룡족 중 맹수에 속하는 크리니에르였다.

아무래도 소리를 치고 위협을 해서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버팔로톱스들을 멈춰 보려는 생각 같았지만, 소용없었다.

이미 패닉에 빠진 버팔로톱스들은 눈앞에 있는 것이 포식자든 뭐든 상관하지 않고 본능적으로 놈을 향해 돌진해 들어갔다.

퍼억!

거대한 덩치에 치인 애꾸가 비명을 토한다. 몸을 흔들어 좌우로 지나가는 버팔로톱스들을 피해 보지만 그들의 두터운 몸에 스치기만 해도 가느다란 허리를 가진 크리니에르에게는 상당한 충격이 갔다.

“끼르르르르……!!”

애꾸가 이를 갈았다. 한쪽만 남은 눈이 끔뻑대면서 점점 멀어져 가는 김건의 모습을 새겨 넣었다.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흰색 비늘과 갈기를 가진 맹수의 목에 혈관이 솟구쳤다.

크게 뜬 외눈에, 격렬한 살의가 담겼다.

“카아아아아앗!!”

비명과 같은 고성을 내지르면서, 애꾸가 발을 박찼다.

놈은 파도처럼 몰아치는 버팔로톱스의 무리 안쪽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 움직임은 날랬다. 수면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은색 짐승이 덩치들의 파도를 역행해 돌진했다.

“크르륵! 카아아악!”

버팔로톱스의 뿔에 스친 비늘이 찢어지고, 어깨가 부딪혀 비틀거린다. 그것은 괴물에게도 목숨을 건 돌진이었다.

조금이라도 움직임이 틀려 정면으로 치이면 죽는다.

발을 미끄러트려 넘어져도 죽고, 재수 없이 무리를 지키는 수놈들에게 공격을 당해도 죽는다.

하지만 애꾸는 그 모든 리스크를 감수하고, 무시무시한 속도를 발휘해 김건을 향해 달려 들어갔다.

그 엄청난 움직임을 본 한서리가 소리쳤다.

“미친…… 따라오잖아! 이대로는 따라잡히겠어!”

채찍을 조이며 머리 깃을 잡아당겨 버팔로톱스의 움직임을 통제하던 김건이 뒤를 돌아보았다.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애꾸를 발견하곤 질렸다는 표정으로 이를 갈곤 한서리를 향해 외쳤다.

“보고만 있을 때가 아니야! 너도 후위잖아! 뭐라도 쏴서 속도를 늦춰 봐!”

이럴 때야말로 필요한 것이 원거리 공격이라는 것을 한서리도 잘 안다. 하지만 상황이 좋지 않았다.

“쏘려고 해도, 이렇게 흔들리면 조준 못해! 게다가 뒤돌아서 쏘기에는 자세도 너무 불편하다고!”

억지로 우는 소리를 하는 게 아니다.

그녀는 여전히 김건에게 업혀 있는 상태였다.

서커스를 하는 것도 아니고, 거칠게 날뛰고 있는 황소의 등 위에, 그것도 한 사람의 등에 매달려서 팔을 뒤로 돌려 사출 무기를 발사해 목표물을 맞춘다라.

어지간히 숙련된 기마 궁수라도 하기 힘든 짓이었다.

김건 역시 한서리의 말을 듣고 가볍게 혀를 차더니, 버팔로톱스의 목을 감아 두었던 채찍의 끝을 당겨 자신의 허리에 매듭을 지어 묶었다.

그러곤 한서리의 뒷덜미를 잡아 새끼고양이처럼 들어 올려 품에 안고는, 그대로 등을 돌려 정면이 애꾸를 바라보는 쪽으로 했다.

갑자기 안기는 꼴이 된 한서리가 당황해서 물었다.

“……!? 뭐, 뭐 하는 거야?”

“가만히 있어.”

당황하는 한서리를 놓치지 않도록 강하게 끌어안으며, 김건은 그대로 엉덩이를 내려 버팔로톱스의 등 위에 앉았다. 떨어지지 않기 위해 허벅지를 꽉 조이며 말했다.

“주문 외워. 조준은 내가 해 줄 테니까.”

그는 그러면서 자유로운 한 손으로 한서리의 팔을 잡아 앞으로 내밀었다.

“……!”

김건의 생각을 눈치챈 한서리가 재빨리 마력을 움직였다. 김건이 원하는 대로 그가 쥔 손끝에 마법의 사출구를 생성.

그리고 마력 회로를 통해 조합된 마력을 분사하자 그녀의 손앞에 날카롭게 다듬어진 얼음의 창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 끝은 불안정한 자세와 계속해서 움직이는 지지대 때문에 정신없이 흔들렸다.

그런 한서리의 손목을 붙잡으며, 김건은 눈살을 좁혀 버팔로톱스의 무리를 거슬러 올라오는 애꾸의 모습을 눈으로 쫓았다.

“쏴!”

그 외침에 반사적으로 마법을 발출하는 한서리.

쐐애액!

파공성과 함께 얼음 창이 총알과도 같은 속도로 날았다. 그리고 그것은 정확하게 애꾸의 어깨에 틀어박혔다.

김건이 말했다.

“캐스팅해, 계속!”

“아, 알았어!”

한서리가 연달아 얼음 창을 발사했다. 김건은 그런 그녀의 손끝을 조정해 조준을 도와주었다.

퍼버벅!

“크아아악!”

머리와 어깨, 그리고 등에 창이 박힌 애꾸의 비명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그야말로 백발백중. 쏘는 대로 다 맞는다.

한서리는 기가 막혀서 김건을 돌아보았다.

“뭐야, 조준을 이렇게까지 잘한다고? 당신, 사격술이라도 배웠어?”

“어렸을 때 교양으로 활쏘기를 배웠어. 지금은 그냥 운이 좋았던 거고. 방심하지 마.”

빠르게 한서리의 말을 끊어 내는 김건. 그는 애꾸의 상태를 살폈지만 놈의 움직임이 전혀 둔화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얼음창 말고 다른 건 없나? 불이나, 번개 같은 열 공격이면 좋겠는데.”

“없어! 여러 속성의 마법을 다루는 게 쉬운 줄 알아? 난 화력 지원이 아니라 버프 마법이 전문이라고!”

“어쩔 수 없군.”

김건은 포기하고 한서리에게 얼음 창을 더 주문했다.

계속해서 발사.

운이 좋았다는 말이 마냥 겸손의 표현은 아니었는지, 몇 발이 빗맞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상당한 수의 얼음 창을 애꾸의 몸에 박아 넣는 데에 성공했다.

“크르륵, 켁!”

점도가 높은 끈적한 체액이 몸 깊숙한 곳으로 창이 꽂히는 것을 막는다. 자상과 관통상에 강한 크리니에르에게 얼음창은 별 효과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자 사방을 뒤덮던 버팔로톱스들의 장벽도 점차 밀도가 낮아졌다.

애꾸의 움직임이 더욱 가속화된다. 놈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발을 박차 가속을 걸었다.

“키르륵!”

피할 장애물이 줄었다. 거리 역시 아까 보다 가까워졌다. 여유를 찾은 애꾸가 척추뼈를 따라 뻗어 있는 뾰족한 가시를 한서리와 김건을 향해 조준했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순간, 한서리가 비명을 질렀다.

“악!”

다른 것이 아니라, 그녀의 몸이 갑자기 옆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일일이 소리 지르지 마.”

김건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의 손이 어깨를 꽉 붙들고 있었다.

한서리는 눈을 한번 깜빡이고 나서야 김건이 애꾸가 발사한 가시를 피하기 위해 그가 버팔로톱스의 옆구리로 몸을 떨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쐐애액!

다시 한번 발사된 가시가 얼굴 옆에 꽂혔다. 뾰족한 골침이 비늘을 뚫고 들어가며 피를 뿌린다.

크리니에르의 가시에는 강력한 즉효성 독이 발라져 있다. 한서리와 김건 대신 애꾸의 공격을 받아 낸 버팔로톱스가 격통에 비명을 질렀다.

“큭!”

김건이 이를 악물었다. 그는 버팔로톱스의 발버둥에 휩쓸리기 전에 재빨리 허리를 묶어 둔 채찍의 매듭을 풀었다. 그러곤 한서리를 붙들고는 곧장 녀석의 등 위에서 뛰어내렸다.

이미 무리가 많이 흩어져서 주변에는 달리기 위한 충분한 공간이 확보되어 있었다.

김건은 한서리를 짐짝처럼 어깨 위에 걸쳐 놓고는 발을 박차며 달리기 시작했다.

“으, 아! 뭐야! 숨, 막혀! 왜 이렇게……!”

김건이 훌쩍 훌쩍 뛰어다닐 때마다 그의 어깨가 배를 누르며 횡경막을 압박해서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한서리가 투덜거렸지만 김건은 단칼에 그녀의 불만을 잠재웠다.

“정신 차리고 뒤에 봐! 방어 마법으로 등을 지켜 줘야 해!”

그러고 보니, 상체가 김건의 등 바깥쪽으로 빠져나와있다.

엄청나게 불편하긴 하지만, 조금만 허리를 들면 두손이 자유로운 상태로 후방을 경계할 수 있다.

김건의 의도를 깨달은 한서리가 힘겹게 허리를 들어 올렸다. 그러곤 버팔로톱스의 무리를 피하며 그들을 추적해 오는 애꾸를 쳐다보았다.

놈의 어깨가 솟구치며 가시가 솟구친 등을 이쪽으로 향하는 것을 발견. 그녀는 바로 마법을 펼쳤다.

퍼퍼퍽!

그녀가 만들어 낸 얼음의 방패가 애꾸가 발사한 가시를 막았다.

충격과 함께 차가운 얼음 조각이 사방에 튀었다.

계속해서 가시가 날아온다. 한서리는 얼음의 방패로 그것을 쳐 내며 계속해서 애꾸와의 거리를 쟀다.

점점 거리가 좁혀지는 것을 확인하곤 김건의 등을 두들겼다.

“저놈이 우리보다 빨라! 금방 따라잡히겠어!”

김건이 크윽, 하고 이를 깨문다. 달려 나가는 그의 눈이 빠르게 좌우를 훑으며 주변을 탐색했다.

이제는 드물어진 버팔로톱스의 꽁무니.

듬성듬성하게 솟아 있는 나무.

그리고 그런 나무 위로 뻗어 있는 기다란 목.

기다란 목.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브라키오의 무리가 모여 평활롭게 나무의 잎사귀를 뜯어먹고 있었다.

김건의 눈이 번뜩였다.

그들이 인간들의 본대와 충돌을 일으킨 브라키오의 무리가 아니기를 빌며, 김건은 어깨 위의 한서리를 붙잡았다. 가볍게 들어 올린 그녀를 다시금 등에 업으며 소리쳤다.

“꽉 잡아!”

“또 뭘 하려고……!”

방금 전 가슴 떨리는 경험을 한 한서리는 그 말을 듣자마자 양팔과 양다리를 이용해서 김건의 목과 허리를 조였다.

김건이 도약했다. 그의 손에서 뻗어 나간 채찍이 높게 서 있는 나무의 가지를 붙잡았다.

팔을 튕겨 그것을 잡아당기는 김건. 그러자 당연하다는 듯이 몸이 날아오르고 두 사람이 가속했다.

쐐애애애액-!

파공음과 함께 김건과 한서리가 공중을 갈랐다.

김건이 극소량의 오라를 이용해 채찍 끝을 조작했다.

가지를 붙잡은 구속이 풀리고, 자유를 찾은 채찍이 다시금 김건의 손을 따라 다른 나뭇가지를 붙잡기 위해 뛰쳐나갔다.

그 동작을 연속적으로 취한다. 한서리를 둘러멘 김건이 새끼를 업은 원숭이마냥 나무와 나무 사이를 뛰어넘으며 고속으로 움직였다.

“크륵, 카아악!”

그것을 발견한 애꾸가 가시를 난사했지만, 애초에 김건이 묘기를 부린 것은 애꾸의 사선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무시무시한 몸놀림을 선보이며 공중 기동을 계속했다.

그런 그가 공중에서 몸을 회전시키며 땅에 내려앉은 곳은 한가로운 분위기로 풀을 뜯고 있던 브라키오 무리 한가운데에서였다.

무리 안에 들어온 이물질의 존재를 눈치챈 브라키오들의 시선이 꽂혔다. 눈동자를 끔뻑거리며 고개를 갸웃하는 브라키오들.

‘대체 어쩌려고……!’

새끼를 건드렸다고 본대마저 박살 내 버린 괴물들이다.

만약 이 브라키오들이 인간들에 대한 경험이 있고, 설령 그것이 적대적인 형태의 기억이었다면 두 사람은 끝장이다.

침을 삼키며, 한서리가 김건의 어깨를 꽉 쥐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무심한 듯이 탑처럼 높게 선 괴물들의 시선이 다른 곳을 향했다.

별다른 해를 끼치지 않았다면, 그들의 입장에서 인간 따위, 그저 조금 신기하게 생긴 벌레일 뿐인 것이다.

브라키오들이 적의를 가지지 않았다는 걸 확인한 한서리가 한숨을 쉴 때, 바깥쪽에서 끼르르르르, 신경질적인 울음소리가 들렸다.

애꾸가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버팔로톱스의 무리를 헤치며 달려오느라 하얗던 놈의 몸은 이제 빨갛고 파란 상처와 멍으로 가득했다.

“카아아앗!”

하지만 놈은 맹수. 저 정도의 상처로 기세를 잃지는 않는다.

놈은 크게 입을 벌려 포효하며 두 사람을 향해 살기를 드러냈다. 놈의 등 근육이 물결치며 꼬리 쪽으로 밀려나 있던 가시가 전방을 향했다.

하지만 그것을 뻔히 두고 봤음에도 김건은 피하려고 하지도, 도망치려 하지도 않았다. 그는 가만히 서서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애꾸를 지켜보고 있었다.

“뭐 해!?”

한서리가 당황스러운 말을 쏟아냄과 동시에, 애꾸가 가시를 발사했다.

이쪽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오는 골침을 발견한 한서리가 눈을 크게 떴다.

그 순간, 김건이 움직였다.

“미안.”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허리를 젖혀 골침을 피했다.

아슬아슬한 회피.

날카로운 가시가 그의 머리칼을 한 움큼이나 뜯어내고 지나갔다.

그리고 김건을 스쳐 지나간 그것은 당연하게 그의 뒤에 있던 물체에 명중했다.

“꺄아악!”

지금까지 들어 보지 못한 새된 비명 소리에 놀란 한서리가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그녀는 발견했다.

애꾸가 발사한 가시에 얻어맞고는 펄쩍 뛰어오르는 브라키오의 새끼를.

“꺄아악! 까아아악!”

공격을 받은 새끼가 긴 목을 좌우로 흔들며 비명을 질렀다.

새끼라곤 해도 이미 어지간한 트럭보다도 커다란 거구다. 김건은 한서리를 데리고 얼른 새끼의 배 아래로 들어가 브라키오들의 시선을 피했다.

“끼르르?”

다가온 어미가 새끼의 옆구리에 박힌 가시를 발견했다. 그리고 사납게 고개를 돌려 시선을 바깥쪽으로 향했다.

그런 어미의 눈에 공포를 잊은 듯이 광란하며 이쪽으로 달려오는 애꾸의 모습이 보였다.

“끼르르르르르르!!”

어미가 소리 높여 울었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모든 브라키오들의 시선이, 한 마리 크리니에르에게로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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