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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176화 (176/200)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176화

외전 15화 그때 그 사건 (15)

애꾸는 빨랐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크리니에르가 앞발을 휘둘렀다. 그 속도는 가히 섬전을 방불케 했다.

하지만 흥분한 나머지 그만큼 동작이 단순해졌다.

고개를 숙여 공격을 피한 김건은 그대로 허리를 들어 올리며 올려 친 일격으로 카운터를 먹였다.

그의 채찍 손잡이 아래쪽에 달린 송곳이 애꾸의 턱을 꿰뚫었다.

콰악!

하지만 그것은 크리니에르 특유의 체액 때문에 깊숙이 파고들지 못했다. 애꾸가 고개를 비튼다. 김건이 채찍의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카드득!

애꾸의 근육에 붙잡힌 송곳이 단번에 부러져 나갔다. 혀를 차는 김건. 동시에 애꾸가 머리를 휘둘러 김건을 들이받았다.

김건은 팔을 들어 방어했으나 공룡족의 체중을 버티지 못하고 멀리 날아갔다.

공중제비를 돌아 착지한 김건이 지면을 긁으며 미끄러져나가다 훌쩍 뛰었다.

그가 있던 자리를 애꾸의 손톱이 가르며 파공성이 울려 퍼졌다.

“킥─!”

숨소리를 토하는 애꾸. 김건은 이미 놈의 머리 위로 빠져나갔지만, 놈은 기다렸다는 듯이 허리를 뒤틀었다.

쐐애액!

애꾸의 몸 전체가 채찍처럼 휘며 무서운 속도로 쏘아진 꼬리가 김건의 허리를 노렸다.

상대를 도망칠 곳 없는 공중으로 몰아넣고, 꼬리로 요격한다. 짐승의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한 연계였다.

하지만 김건은 그것을 피했다.

그의 손끝에서 날아간 채찍이 위쪽의 나무줄기를 붙잡고 그대로 그를 끌어올렸다.

김건은 그 특유의 이동법을 이용해 줄기와 줄기를 건너뛰며 한참 높은 곳으로 올라왔다.

“카앗!”

그것을 본 애꾸가 자세를 잡았다. 놈은 앞발을 쭉 뻗고 어깨를 낮춰 등에 솟은 가시를 발사해 그를 떨어트리려 했다.

최소 시속 600킬로미터는 넘는 아음속에 가까운 투사체 공격.

하지만 집중력을 극도로 끌어올린 김건은 그것에 대응했다.

채찍으로 하나를 쳐 내곤, 나머지 하나는 손으로 캐치. 그러곤 팔을 휘둘러 붙잡은 가시를 애꾸와 비슷한 속도로 뿌려 냈다. 김건이 내쏜 크리니에르의 가시가 애꾸의 머리에 명중.

하지만 애꾸는 움찔도 하지 않았다.

가시에 묻은 독은 애꾸의 체내에서 직접 만들어 낸 것이다. 자가 생산한 독이니 당연히 자체적인 내성 역시 존재한다.

혀를 차며 김건이 뒤로 후퇴하자, 애꾸가 괴성을 지르며 그의 뒤를 쫓았다.

“카아아앗!”

그 덩치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애꾸는 날랬다. 놈은 나무줄기를 박차며 지그재그로 움직여 순식간에 공중에 있는 김건을 따라잡았다.

그의 등을 향해 휘둘러지는 손톱. 김건은 순식간에 몸을 반전시켜 팽팽히 당긴 채찍으로 그것을 막았다.

퍼엉!

한계까지 늘어났다가 돌아온 채찍의 반발력으로 김건이 튕겨져 날아갔다. 애꾸에게 걷어차인 것마냥 허공에 뜬 그의 몸이 대각선을 그리며 지면으로 내리꽂혔다.

능숙하게 낙법을 치며 균형을 잡지만, 태세를 가다듬을 시간이 없었다.

추락하는 그를 따라온 애꾸가 연속해서 손톱을 날려 왔다.

콰드득!

크리니에르의 손톱에 스친 나무줄기가 손톱 모양으로 파이며 파편을 뿌렸다.

찢어진 공기가 비명을 지르고, 놈의 손끝에 닿은 김건의 옷이 토막 나 허공에 나부꼈다.

김건은 계속해서 공격을 피했다.

일 대 일 결투에서 방어적인 태세를 취하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패착이 된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김건의 무기인 채찍은 저런 거대한 몬스터를 사냥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버프가 있으니 코모도사우르스를 처리했을 때처럼 타격을 가할 수도있겠지만 크리니에르의 유연한 육체는 충격에도 강했다.

결국 그가 노릴 수 있는 것은 하나.

바로 눈이었다.

회피를 하던 김건이 허리춤에서 단검을 빼 들었다.

문제는 눈이 약점이라는 것을 애꾸도 알고 있다는 것.

계속해서 날아오는 공격을 피한 김건이 스텝을 밟으며 애꾸의 측면으로 돌아갔다. 정제된 움직임으로 공격 기회를 얻는 데에 성공.

그러자 애꾸는 곧장 고개를 틀어 눈을 보호하는 움직임을 취했다.

아까 채찍의 손잡이에 달린 송곳을 부러트렸던 것처럼 섣불리 공격을 했다간 마지막 남은 공격 수단을 잃게 된다.

김건은 아쉬운 대로 주먹을 날려 애꾸의 목을 가격했다.

애꾸의 목 위로 원형의 충격이 퍼지며 놈의 입에서 켁 하는 소리가 흘러나왔지만, 그게 다였다. 애꾸는 발작적으로 발버둥 치며 손톱을 휘둘러 왔다.

코끝을 스치고 지나가는 괴물의 손톱에 목덜미가 섬뜩해졌다. 김건이 침을 뱉었다.

당연하지만 가시에 발라져 있는 독은 놈의 손톱에도 듬뿍 묻어 있다.

애꾸는 한 가지 공격만 방어하면 되는데, 이쪽은 가볍게 날린 일격에 스치기만 해도 사망이다.

좌, 우로 휘둘러지는 앞발을 피하고 정면에서 다가오는 이빨을 채찍으로 막는다. 그리고 바로 몸을 굴려 허리춤을 쓸어 오는 꼬리를 피했다.

“음.”

김건의 입에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무리 그가 날렵하고, 회피 기술이 좋아도 한계가 있다.

상황은 극도로 불리.

더 이상 시간을 끌 수는 없다고 판단한 김건이 각오를 다졌다.

다음 공격으로 승부를 본다.

발을 박차 후방으로 몸을 날린 그가 재빠르게 채찍을 빙빙 돌려 한쪽 팔에 감았다. 후퇴하는 그를 추격해 오는 애꾸를 맞이했다.

지면에 발이 닿는 순간, 김건의 허리가 빠지며 그의 몸이 순간적으로 아래로 꺼졌다.

“킥!?”

애꾸가 반사적으로 앞발을 날렸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리듬을 바꾼 김건의 움직임 때문에 공격의 기세가 어지러졌다.

속도가 떨어진다.

예리함이 떨어지고, 정밀도가 급락한다.

그는 채찍으로 둘둘 만 팔을 들어 애꾸의 손톱을 받아 냈다.

찍! 찌익!

계속해서 공격을 받아 낸 채찍이 사정없이 찢어졌다. 하지만 여러 번 겹친 덕에 가까스로 피부에 손톱이 닿는 것을 막는 데에 성공.

안전하게 공격을 막은 김건이 애꾸의 앞발을 잡아당겼다.

애꾸의 중심이 흔들린다. 놈이 휘청거리며 자세를 잃었다.

빈틈이 열렸다.

김건은 그것을 놓치지 않고 재빠르게 측면으로 움직였다. 상처만이 남아 있는 애꾸의 왼편으로 돌아가 완전히 놈의 사각을 파고든다.

“……!”

순간적으로 김건을 시야에서 놓친 애꾸가 경악하며 고개를 돌렸다. 놈은 무리하게 고개를 틀어 사라진 김건의 모습을 눈에 담으려 했다.

김건이 노린 대로였다.

그가 질러 낸 단검이 단숨에 애꾸의 눈알에 처박혔다.

푸우욱!

뾰족한 단검의 끝이 각막을 가르고 홍체를 절단.

수정체를 찢어발기며 유리체를 관통하여 시신경까지 잘라 낸다.

깊숙이 질러 낸 일격에 단검뿐만 아니라 김건의 손목까지 놈의 눈 안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크아아아악!”

찢어지는 듯한 짐승의 괴성이 울려 퍼졌다.

끈적한 체액과 함께 피가 철철 흘러넘친다. 고통에 미쳐 날뛰는 애꾸. 놈의 발작적인 공격에 당하지 않기 위해 김건은 재빠르게 손을 빼고 뒤로 물러났다.

멋지게 공격을 성공시킨 것으로 보였지만, 그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제기랄.”

욕이 절로 나왔다.

원래 김건의 목적은 눈을 넘어 뇌에까지 상처를 입혀 단번에 놈을 절명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의도는 실패했다. 그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끝을 내려다보았다.

찌르기의 위력이 생각보다 나오지 않았다.

그간의 여정으로 누적된 피로.

완전치 못하게 펼쳐진 버프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분석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김건은 전술적인 목표를 수정했다.

버팔로톱스와 브라키오 무리에게 입은 상처. 거기에 하나뿐인 눈마저 잃어버렸으니, 애꾸는 완전히 야생에서 도태되었다고 봐도 좋았다.

굳이 김건이 마무리를 하지 않더라도, 무정한 자연이 알아서 놈의 목숨을 거둬 갈 것이다.

그러니 무리할 필요 없다.

후퇴라는 선택지를 고른 김건이 몸을 날렸다.

그는 그대로 한서리를 쫓아 본대에 합류할 생각이었다.

완전히 시야를 잃었다고 생각한 애꾸가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그를 향해 달려들기 전까진 말이다.

“끼에에에엑────!!”

소름 끼치는 괴성이 고막을 울렸다. 거친 숨소리, 그리고 사방에 흩뿌려지는 피가 김건의 오감을 가득 채웠다.

어찌 보면 아름답던, 하얗고 탄력적인 몸은 더 이상 없다.

오로지 상처와 피, 그리고 광기밖에 남지 않은 생물이 더할 나위 없이 정확하게 김건을 죽이기 위해 달려들었다.

“큭!”

가까스로 공격을 피해 낸 김건이 옆으로 구르며 숨소리를 토했다.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그는 두 눈을 잃은 애꾸가 어떻게 그렇게 정확히 자신을 쫓아오는지 단숨에 깨달았다.

‘냄새인가……!’

본대에서 떨어져 나온 이후로 김건과 한서리는 수백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움직였다. 애꾸는 그만한 거리를 오로지 후각 하나에 의지해 추적해 왔다.

그런 녀석에게, 불과 수 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대상의 위치를 찾는 것은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폭풍 같은 공격이 몰아닥쳤다.

상하좌우, 완전히 사고라는 것을 잊어버린 애꾸는 양발을 휘둘러 사방에서 김건의 목숨을 노렸다.

“……!”

정교함 따윈 눈곱만큼도 없는 난잡한 공격이지만 그 기세가 범상치 않다. 순식간에 김건이 뒤로 몰렸다. 그는 어떻게든 놈의 기세를 늦추기 위해 몇 번이고 놈의 머리에 카운터를 먹였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누적된 고통과 상처를 오히려 힘으로 전환하는 것 같다.

반격하면 반격할수록, 피하면 피할수록 애꾸는 더더욱 가속하며 스스로를 파괴의 화신으로 탈바꿈시켜 갔다.

“시이이이잇──!”

그것은 더 이상 짐승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저 살의와 광기가 응집되어 형체를 갖춘 것처럼 보였다.

떨어지는 피, 푹 파인 눈두덩이에서 흘러나오는 눈물. 화상으로 얼룩진 근육이 맥박 치며 뾰족하게 튀어나온 발톱이 시릴 정도로 빛을 뿌린다.

전신전령(全身全靈).

온몸과 온 영혼을 장작 삼아 피워 올린 불꽃이 김건을 그을린다.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아무리 침착하고 냉정한 정신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을 눈앞에 두고 털끝 하나 다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방어를 위해 치켜든 채찍이 순식간에 찢어진다. 스쳐 지나간 머리칼이 한 움큼이나 잘려 나가고, 이어서 날아든 공격이 김건의 가슴팍을 두 조각을 갈라 놓으려는 찰나였다.

콰아아아앗!

어디선가 뿜어져 나온 백색 광선이 애꾸의 앞다리에 명중했다.

삽시간에 하얗게 얼어붙는 팔. 그리고 그것은 일순에 먼지가 되어 허공에 휘날렸다.

“케엑!”

앞다리 중 하나를 완전히 소실한 애꾸가 비명을 질렀다.

그제야 놈의 공격이 멎고, 그사이에 김건이 몸을 굴려 바깥쪽으로 빠져나왔다.

그를 목숨의 위기에서 구한 광선의 발생지를 쫓은 김건의 눈이 크게 뜨였다.

한쪽 손을 길게 뻗은 한서리가 거칠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하얗던 얼굴이 거무죽죽하게 물들었다.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한서리가 이죽거렸다.

“빌어먹을, 제어가 흐트러져서……!”

방금 그녀가 사용한 것은 앱솔루트 제로라 불리는 마법이었다.

맞추기만 한다면 필승을 보장한다고 하는 극대소멸공격의 일종. 하지만 온몸에 퍼진 독기가 마력 회로에까지 영향을 줘서, 주문이 온전히 발동되지 못했다.

그 때문에 공격을 적중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앞다리 하나를 소멸시키는 것이 전부였다.

“크륵, 켁!”

애꾸가 침을 뱉었다. 한쪽 다리가 소멸되어 잠시 주춤하긴 했으나, 놈은 이미 목숨을 도외시한 상태였다.

어차피 죽을 건데, 다리 하나가 날아간 게 대수겠나.

놈은 남은 다리를 박차고 김건을 마무리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한 다리를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놈의 움직임은 여전히 빨랐다. 체감상으로는 진짜로 다리 하나가 없어진 게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김건은 가까스로 그 공격을 피해 내며 외쳤다.

“이 멍청이가…… 시간을 끌면 진짜로 죽는다니까!”

헉, 헉, 거칠게 숨을 몰아쉬던 한서리가 목소리를 짜냈다.

“내가 도망갔으면 당신은 죽었어! 감사하지는 못할망정, 핀잔을 줘!?”

김건은 이를 갈았다. 당장 그의 목숨도 초읽기 상태에 들어간 것이나 마찬가지였지만 도저히 말을 하지 않고서는 참을 수 없었다.

“됐어! 그 정도면 충분하니까. 지금이라도 다시 달려!”

“싫어!”

어처구니없는 답변에, 순간적으로 김건의 동작이 멈췄다. 가까스로 몸을 재가동해 공격을 회피.

한순간에 죽음의 강을 건넜다가 돌아온 김건이 당황한 한숨을 토해 냈다.

한서리는 정말로 움직일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외쳤다.

“그렇게 자신이 없어?”

“뭐!?”

“당신, 자신이 없는 거잖아!”

“……??”

“그놈을 이길 수 있다는 자신이 없으니까, 날 먼저 보내려는 거 아니야? 설령 당신이 지더라도! 나는 안 죽을 테니까!”

지금 그딴 걸 따질 때인가. 사람 목숨이 걸려 있는데.

“야! 그게 무슨……!”

어처구니가 없어지는 김건. 그런 그의 귀에 풀썩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가느다랗게 이어지는 숨소리. 아무래도 한서리가 쓰러진 것 같았다.

“염병할…….”

독 때문에 체력이 떨어져서 이제는 서 있지도 못하는 모양이다.

극도로 위험한 상태.

할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의사에게 치료를 받아야 한다.

어차피 남남이다.

며칠 여정을 같이 했을 뿐, 두 사람은 서로 친구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관계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애가 탔다.

이 와중에도 도발을 걸어 오는, 저 정신 나간 여자의 목숨이 걱정되어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갈 수가 없다.

눈앞의 괴물이 계속해서 방해를 해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 자식……!”

김건의 이마에 핏줄이 돋는다.

쉬이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남자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저도 모르게 쥐어진 주먹.

그곳의 중심부에, 평생을 멸시받으며 살아온 F급의 마력이 모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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