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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177화 (177/200)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177화

외전 16화 그때 그 사건 (16)

전사들은 보통 보수적이다.

실력이 좋을수록, 싸움터에 오래 남아 있을수록 그 성향은 더욱 강해진다.

왜냐하면 목숨은 하나뿐이고, 실수는 곧 죽음으로 이어지니까.

전사들은 도박을 좋아하지 않는다.

검증되지 않은 무기, 성공 가능성이 낮은 기술 따위를 믿고 목숨을 거는 바보는 없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그 누구보다도 과감하게 뛰어들어야 하는 것이 그들이었다.

목숨이 오가는 생과 사의 경계.

그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확실한 방법 따윈 존재하지 않고, 결국에는 모든 것이 리스크를 안고 있는 위험한 짓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김건이 평생을 걸려 만든 기술, 미극공진동.

그 기술 중 하나인 충파권은 오라로 생성한 진동을 상대의 체내로 흘려 넣어 급소를 파괴하는 방어 불가의 공격이었다.

그리고 지금 김건이 애꾸를 쓰러트릴 수 있는 수단은 오로지 그것뿐이었다.

바로, 지금.

해야 한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 1초라도 더 빨리 싸움을 끝내고, 중독된 한서리를 의사에게 데려가야 했다.

어쩌면 실패할지도 몰라, 그런 생각은 머리에서 지운다.

‘반드시, 아니 무조건 성공시킨다.’

김건의 집중력이 극도로 상승했다. 그의 시선에 걸린 세상의 시간이 느리게 흐르기 시작했다.

떨어져 가는 나뭇잎. 부서져 흩어지는 나무의 파편이 보이고, 소리가 길게 늘어지며 모든 것이 기이한 소음이 되었다.

김건은 그렇게 느려진 시간 속에서 이쪽을 향해 날아오는 애꾸의 손톱을 바라보았다.

그것을 피하고, 놈의 가슴팍 안쪽으로 파고드는 최소한의 움직임이 잔상마냥 그의 눈앞에 펼쳐진다.

남은 것은, 오로지 놈의 숨통을 끊어 놓을 일격을 자아내는 것뿐이다.

김건이 손안에 모인 오라를 조작했다.

생성한 운동 에너지를 일정한 진폭으로 움직인다. 그 진폭이 그의 손을 떠나서도 원하는 대로 동작하도록, 여러 가지 다른 진폭과 길이의 진동을 생성해 계속해서 중첩시켰다.

어떤 시선에서 보면 그것은 프로그램의 동작 방식을 설정하는 프로그래밍과도 같았다.

다만 그 구성 요소가 0과 1의 연속성으로 이루어진 숫자의 배열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경험과 수련으로 얻은 감각이었을 뿐이다.

기술 조합을 완료.

김건이 발을 박찼다.

방금 봐두었던 대로, 그는 애꾸의 안쪽으로 파고들어 놈의 가슴팍에 지금 막 자아낸 진동을 때려 박으려 했다.

하지만, 앞을 한 발짝 내딛는 순간.

괴성을 질러 대던 이전과 다르게 이를 꽉 깨물고 있는 애꾸의 모습을 발견했다.

뭔가 위험하다.

눈이 보였으면 의도를 읽을 수 있을 텐데, 놈은 더 이상 눈이 없었고 인간이 아니었기에 표정도 알아볼 수 없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들어갈 것인가?

아니면 물러날 것인가?

찰나의 순간, 김건은 선택했다.

체중을 앞으로 기울인다. 앞꿈치에 힘을 불어넣으며, 단숨에 앞으로 뛰어들었다.

싸아악!

손톱이 머리칼을 자르고 지나감과 동시에 애꾸의 가슴팍을 향해 진동이 담겨 있는 손을 내질렀다.

그러자.

애꾸의 몸이 격렬하게 휘몰아쳤다.

김건의 손이 가슴에 닿으려는 찰나, 애꾸는 급격하게 몸을 꺾으며 고개를 틀어 품 안에 들어온 김건의 머리를 향해 아가리를 들이댔다.

김건의 손이 놈의 가슴 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눈앞이 검어진다. 앞으로 닥쳐 오는 구멍과 뾰족한 이빨.

전율이 김건의 등줄기를 관통했다.

그는 깨달았다.

지금까지의 광기 넘치는 모습도, 계속되던 다소 난잡한 공격도, 모조리 포석이었다.

애꾸는 미치지 않았다.

짐승에 불과하나, 사고를 가진 그것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목적을 이루기 위해 가진 지혜를 다했다.

놈은 김건이 자신의 배우자를 죽이는 모습을 봤다. 그리고 그때, 그가 진동을 전달하기 위해 가슴 언저리를 만졌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놈은 기다렸다.

김건이 자신의 가슴 안쪽으로 파고 들어오는 것만을.

“……!”

공격이 빗나갔다. 그리고 머리가 프레스같이 강력한 턱에 걸려 바스라질 참이었다.

“큭!”

공격에 들어가기 직전, 마지막에 느꼈던 위화감이 있었기에 가까스로 놈의 반격을 의식해 반응할 수 있었다.

김건은 재빨리 고개를 틀어 애꾸의 아가리를 피했다.

콰드득!

칼날 같은 이빨이 어깨에 박혔다.

씹어 뜯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단박에 어깨가 원형으로 파이며 쇄골 끝과 승모근, 그리고 삼각근의 일부가 애꾸의 입 안으로 사라졌다.

비명을 억누르며 김건이 후퇴했다. 뒤로 몸을 굴리며 애꾸와의 거리를 벌렸다.

“카아앗!”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포효하는 애꾸.

놈은 남은 세 다리를 이용해 단숨에 김건의 목줄기를 물어뜯기 위해 달려들었다.

“이 자식!”

김건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가까스로 균형을 되찾고는, 그 와중에도 반격을 위해 손을 뻗었다.

파앗!

한 사람과, 한 짐승의 일격이 교차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승부가 났다.

“끼르르르르…….”

끓어오르는 괴성과 함께, 한 마리 크리니에르가 지면에 몸을 뉘었다.

양 눈이 없고, 상처로 가득한 괴물의 머리. 그것은 마치 짓눌러 뭉갠 찰흙 인형처럼 안쪽으로 주저앉아 있었다.

“헉! 헉!”

거친 숨을 토하며 김건이 손을 거뒀다.

머릿속이 하얬다. 신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한계다. 살아 있다는 실감이 들지 않았다. 지금 있는 곳이 현실인지, 꿈인지, 아니면 이미 몸은 죽고 영혼만 남아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학, 하악─!”

가빠지는 숨결. 코로 들어온 공기가 뇌에 산소를 공급해서야 겨우 이성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가까스로 회복된 이성이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애꾸가 입을 벌리고 돌진해 온 순간, 측면으로 이동하며 그것을 피한 자신은 그대로 주먹을 내리쳤었다.

그것을 통해 놈의 머리 안쪽으로 들어간 진동이, 그대로 놈의 뇌는 물론 두개골의 구조까지 무너트려 단박에 즉사시켰다는 것 역시도.

생각을 해서 한 일이 아니었다.

그저 죽기 싫어 내지른 발악이 생각보다 훨씬 잘 통했을 뿐이다.

진동을 이용해 뇌와 두개골을 동시에 파괴하는 것은 단순히 심장에 충격을 주어 이상을 일으키는 것보다 몇 배나 어려운 기술이었다.

그런데 그만한 기술을, 그저 무의식적으로 사용해 성공시켰다.

그것이 가능할 것이라고는 김건 자기 자신도 예상하지 못했다.

숨을 고른 김건이 방금의 기적을 일으킨 손을 바라본다.

그는 떨려 오는 손가락을 움직여 꽈아악, 주먹을 쥐었다.

웃기는 일이지만, 희열이 느껴졌다.

스스로의 재능과, 지금까지 쌓아 온 기술의 완성도에.

그는 자신이 슬럼프에서 빠져나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김건이 고개를 저었다. 그는 빠르게 싸움꾼으로서의 자신을 털어 버리고 정확히 이성적인 상태로 돌아왔다.

당연하지만 애꾸의 이빨에도 독이 묻어 있었다. 게다가 반쯤 날아가 버린 어깨 아래의 팔은 당장이라도 떨어져나갈 듯이 덜렁거리듯이 매달려 있는 상태였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출혈이 극심한 탓에 오히려 독은 별 영향을 못 준 것 같았다.

김건은 한서리에게 놓아 주었던 해독제를 자신에게도 주사한 뒤, 상반신의 혈도를 눌러 고통을 경감시키고는 주머니에 있던 포션 한 병을 통째로 어깨에 부어 버렸다.

치이이이익!

무시무시한 고통이 덮쳐오며 날아가 버린 어깨 위로 새살이 돋아났다.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없어진 쇄골의 일부와 근육이 원상태로 돌아오지는 않았다. 그저 푹 파인 상처를 돋아난 피부로 틀어막았을 뿐이다.

“……한서리.”

김건은 응급 처치를 마치자마자 한서리를 찾았다. 그러곤 한참 뒤의 수풀 아래에 쓰러져 있는 파란 머리를 발견하고 그곳으로 다가갔다.

“이봐. 괜찮나?”

남아 있는 한 팔로 늘어져 있는 여자를 안아 올린다. 그러자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는 얼굴이 미소를 지으며 그를 맞이했다.

“……이겼어?”

“그래.”

고개를 끄덕인 김건은 한서리의 의식이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하고 그녀를 등에 업었다.

기절할 정도가 아니라면,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본대를 따라잡아 적절한 치료를 받는다면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상당한 후유증은 각오해야겠지만 말이다.

다행스럽게도 아직은 버프의 위력이 남아 있었다. 발을 굴러 늘어난 힘의 양을 확인한 김건이 곧바로 지면을 박찼다.

하늘 위에 솟아 있는 깃발을 목표로 숲속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김건 역시 체력이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호흡이 흐트러지며 숨이 가빠졌지만, 김건은 내색 하나 하지 않고 달리기를 계속했다.

그런 그의 등에 맥없이 매달려 있던 한서리가 문득 말했다.

“그거 알아…… 나, 돌아오고 싶어서 돌아온 거 아니야.”

그녀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반쯤 잠에 빠진 사람마냥 늘어진 목소리. 점차 의식을 잃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기절하면 정말로 상태가 위험해진다. 김건은 조금이라도 그 시간을 연장하기 위해 호흡이 가쁜 와중에도 한서리의 말에 대꾸를 해 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당신 구하려고 돌아온 거 아니라고.”

“그러면?”

“달려가는데, 눈앞이 캄캄해져 오더라. 그러니까 골렘도 제대로 제어가 안 되고, 혼자서는 도저히 본대까지 갈 수 없겠더라고. 체력이 딸려서 그런가 봐.”

“…….”

“원래는 저격 한 번으로 끝내려고 했는데…… 안 돼서 당신을 도발해 본건데, 어땠어? 조금은 도움이 됐어?”

김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도움이 됐어. 덕분에 슬럼프에서도 빠져나온 것 같아.”

“잘됐네…….”

점차 목소리가 잦아들어 간다.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고 있는 것이다.

아직 본대에 도착하려면 몇십 분은 더 달려야 한다. 목숨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한서리가 못해도 앞으로 십 분 이상은 의식을 붙잡고 있어야 했다.

초조해진 김건이 뭐라 말하려 할 때였다. 한서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당신, 결혼 안 했다고 했지? 따로 사귀고 있는 사람도 없고.”

김건은 달리기에 집중해 그 말의 의도를 파악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그는 물음이 던져진 의도를 파악하지도 않고 곧장 사실대로 말했다.

“그래, 없어.”

“그럼…… 나는 어때?”

“…….”

그 말에는, 김건도 대답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정신이 번쩍 든다. 김건은 갑자기 이 여자가 무슨 소리를 하나 싶어서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키키킥, 한서리가 웃는다.

“다 알면서, 모르는 척하지 마.”

김건이 말을 잃었다. 그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한참을 망설였다.

한서리가 말했다.

“부끄러워서 그러는 거야? 아니면 싫어서 그러는 거야?”

“……남녀 관계에는 그리 익숙하지 않아.”

“그러면 딱 이것만 말해. 싫어?”

“……싫다고는 말 못하겠군. 부담스럽긴 하지만.”

“그럼 됐어. 일단 만나 보자.”

김건의 목에 둘러진 팔에 문득 힘이 들어간다. 기운 없이 늘어져 있던 한서리가 그를 꽉 끌어안았다.

“더 이상 혼자는 싫단 말이야…….”

“…….”

“그러니까, 버리지 마…….”

그리고,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이 급격한 체력저하와 독 때문에 온 심신 미약 상태이기에 그런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제정신인 상태에서 그러는 건지, 김건은 구분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했다.

자신의 마음속 깊숙이 숨어 있는 진심.

그것은 한서리를 도와주고 싶다 말하고 있었다.

한서리를 둘러멘 팔에 힘이 들어갔다. 김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말하는 대로 해 줄 테니까, 울지 마.”

뚝 하고 울음소리가 그쳤다.

그리고, 웃음소리가 들렸다.

낄낄낄낄.

한서리가 꺼억꺼억 숨도 제대로 못 쉴 정도로 웃어서, 김건은 순간적으로 한서리가 심신 미약으로 완전히 정신을 놔 버렸다고 생각했다.

“당신, 진짜 다루기 쉽네. 그냥 불쌍한 척만 하면 누구한테라도 다 넘어가는 거 아니야?”

서늘한 목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그것은 절대로 심신 미약 상태에 빠진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김건은 자신이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뭐만 하면 호들갑을 떨면서 난리를 치는 걸 하도 봤더니, 그런 소리를 해도 이상하지 않은 여자라고 생각해서 그랬을 뿐이야.”

한서리는 웃었다.

“그건 나랑, 당신 둘밖에 없어서 그런 거지. 나, 그렇게 쉬운 사람 아니야. 보는 눈이 많았으면 절대로 그렇게 행동 안 했어.”

“아주 잘나셨군그래.”

퉁명스럽게 말하는 김건. 한서리는 푸른 눈을 깜빡이며 그의 귓가에 숨을 불어넣었다.

“그래, 그런 잘난 내가 말하는데, 방금 말한 거. 완전히 다 거짓말은 아니야. 어때, 당신, 나랑 만나 볼 생각 있어?”

“……생각은 좀 해 보도록 하지.”

“진짜 알기 쉽다. 그냥 알았다고 해. 당신 같은 타입은 진짜로 싫으면 딱 잘라 싫다고 이야기하는 거 다 알고 있거든?”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하는 그 말투는 정말로 싫군.”

두 사람은 그렇게 대화를 나누며 달렸다.

둘 다 한계 상태에, 한 호흡 한 호흡이 아까운 상태였는데도 그랬다. 하지만 웬일인지, 두 사람은 그것이 그렇게 힘들다고 느끼지 못했다.

독이 퍼져 보랏빛으로 질린 상태에서도 웃어 젖히는 한서리, 숨이 차 헉헉 대면서도 뾰족하게 한서리의 말을 꼬집는 김건.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와중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어느새 두 사람은 본대를 이루고 있는 차량의 끄트머리와,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그것은 여정의 끝.

그리고 새로운 인연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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