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178화
외전 17화 우리 엄마는 한량 (1)
온 가족이 모인 아침 식사 자리에서 유미가 말했다.
“엄마는 한량이야?”
“……그 말은 누구한테 배웠어?”
한서리는 조금 당황스럽다는 얼굴로 딸을 바라보았다.
“마이아한테서.”
마이아라면, 유미와 같은 반인 여자아이의 이름이다.
그것을 떠올린 한서리는 새삼 감탄했다.
“요즘 애들은 그런 말도 다 알아?”
유미는 어깨를 으쓱였다.
“우리 반 애들 다 천재잖아. 슈리는 검사해 봤더니 정신 연령이 20살이 나왔다고 자랑했어!”
“뭐, 그 단어를 아는 데에 그 정도까지 갈 필요는 없지만…… 20살이라는 거 진짜야?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사이비 같은 검사한 거 아니야?”
“아니야! 의사 선생님과 상담해서 제대로 된 검사를 했다고 했어!”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유미가 다니는 학교는,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천재들이 다 모이는 곳이었으니까.
원래는 유미도 평범한 학교에 다녔다. 하지만 그녀는 평범하지 않았다. 유미는 성장이 빨랐고 머리가 좋았다.
비상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러다 보니 쉽게 주변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어울리기는커녕, 시비를 걸어서 말싸움으로 엉망진창을 만들어 놓거나, 짓궂은 장난으로 아이들이 우는 꼴을 보는 걸 더 좋아했다.
그래서 다른 곳으로 보내 놓았더니, 이번에는 다른 문제를 물어 온 모양이다.
“직업도 없이 만날 놀면서 밥만 축내는 사람을 한량이라고 한대.”
유미는 똘망똘망한 눈으로 한서리를 올려다보았다.
앙증맞은 얼굴, 남편을 닮은 검은 머리를 짧게 늘어트렸다. 그 모습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귀여웠지만 그 입에서 나오는 것은 서슬 퍼런 단검과 다를 바 없었다.
“집에서 게임만 하고, 밥도 다 아빠한테 맡기고. 딱 엄마랑 어울리는 단어라고 생각했어.”
그 말을 듣자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울컥한 한서리가 말했다.
“청소는 내가 다 하잖아……!”
“엄마가 아니라 골렘이 하는 거잖아.”
“그 골렘을 다루는 게 엄마야.”
그때, 조용히 있던 재하가 말했다.
“엄마는 돈이 많잖아. 엘리 이모한테 들었는데, 엄마는 젊었을 때 엄청 고생했다고 했어.”
“재하야……!”
자신을 감싸 주는 말에 감동한 듯, 한서리가 아들을 쳐다보았다.
반면 유미는 볼을 부풀리며 투덜거렸다.
“젊었을 때 고생만 하면 뭐 해! 지금은 그냥 게임 폐인인데!”
그러자, 지금까지 잠자코 있던 김건이 입을 열었다.
“유미야. 엄마한테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똑바로 유미를 바라보며 엄하게 말한다.
그 위압감에 질린 유미가 고개를 숙인다. 포크를 접시 위에서 깨작대더니, 우물쭈물하며 작게 말했다.
“……잘못했어요.”
한서리는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딸의 충격적인 발언으로 벌렁거리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말했다.
“폐인이라니…… 청소도 꼬박꼬박 하고, 너 돌아오면 같이 체스 두면서 놀아 주고, 공부도 시켜 줬잖아.”
게임에 빠져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부모로서의 할 도리는 다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한서리였다.
하지만 뭐가 그렇게 심통이 났는지, 유미는 계속 불퉁한 표정이었다.
오리처럼 입술을 내밀고는, 작게 꿍얼거렸다.
“마이아네 엄마는 도시락도 잘해 주고, 부지런한 데다가, 예쁘기까지 하던데……!”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재하가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여자애들 이상해. 맨날 그런 걸로 싸우더라. 바보 같아.”
“바보 아니야! 네가 뭘 알아?”
“오빠라고 불러. 멍청아.”
“오빠? 운 좋게 몇 초 먼저 나왔다고 잘난 척하지 마!”
“싸우지들 말고, 식사 시간에 그렇게 소리 지르는 거 아니야.”
김건이 주의를 주고서야, 두 아이는 싸움을 멈추고 다시금 식사를 시작했다.
김건은 여전히 뿔이 나서 식기만 깨작이고 있는 유미를 바라보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보아하니, 학교에서 누구 부모님이 더 나은가 따위로 싸움이 붙은 모양이다.
유미는 승부욕이 강했다.
그게 뭐든 간에, 이기지 못하면 분해서 잠도 못 자는 성격이다.
머리도 좋고, 승부욕도 강하니, 뭘 해도 크게 될 자질을 가졌다고, 김건은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승부욕을 불태울 방향이 잘못됐다. 김건은 유미가 학교에 갔다가 돌아오면, 그 점에 대해 확실히 주의를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였다.
조용히 식사를 하던 김건의 옆에서 멍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른 엄마는 예쁜데, 나는 아니야…… 그럼 못생겼다는 소리야? 이 내가?”
거기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한 한서리가 있었다. 그녀는 의견을 구하듯이 맞은편에 앉은 아들을 바라보았다.
“…….”
재하는 말없이 시선을 피했다.
그 말없는 긍정에, 한서리는 충격으로 눈을 부릅떴다.
부끄럽다는 듯이 유미가 말한다.
“거울 좀 봐…….”
“……!!”
한서리는 식기를 내버려 두고 바로 마법을 사용해 얼음으로 이루어진 거울을 생성했다.
그러곤 반사되어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했다.
부스스한 머리와 퀭한 눈이 보였다.
확실히, 밤을 자주 샜더니 상태가 별로 안 좋긴 하다.
옷도 새로 사기 귀찮아서 오래 입었더니 다 늘어졌다.
몸매야 가끔씩 클리닉 센터에 가서 마법을 사용해 강제로 지방을 태워 버리곤 하니까 괜찮았다.
다만 피부가 조금 퍼석퍼석해졌다. 잡티도 올라오기 시작했고.
그래도, 타고난 미모는 그대로였다.
절대로 어디 가서 못났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는 아니라고, 한서리는 생각했다.
그녀는 김건을 바라보았다.
“당신 눈에도 지금 내가 이상해 보여?”
“내 눈에야 항상 예쁘지.”
“당신 눈 말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말이야!”
그러자 김건은, 조용히 식기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이만 일어나야겠다. 학교 시간에 늦겠어.”
“……!!”
연달아 충격을 받은 한서리가 입을 쩍 벌렸다.
학교로 갈 게이트까지 배웅을 해 주는 것은 김건의 역할이었다. 아이들 역시 그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건과 유미가 먼저 밖으로 나가고,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재하가 한서리에게 다가왔다.
재하는 넋이 나가 있는 한서리의 손을 꼭 잡아 주며 말했다.
“괜찮아. 유미가 엄마를 부끄러워하든 뭐든, 난 그런 거 신경 안 쓰니까.”
그 말이 한서리에게 더 큰 충격을 주었다는 것을, 그때의 재하는 알지 못했다.
모두가 각자의 일로 집을 나가고, 넓은 식탁에 홀로 앉아서야, 한서리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
한숨이 흘러나왔다.
유미가 뭐에 그렇게 심통이 났는지 모르는 건 아니었다. 아직 스스로의 기반이 없는 아이들이 부모님의 능력을 가지고 서로를 빗대어 누군가를 평가하는 것은 그렇게 드문 일이 아니니까.
하지만 그 시기가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그냥 집에서만 잘해 주면 됐었다.
잘 먹이고, 잘 재우고, 예뻐해 주고.
그런데 밖을 돌아다니기 시작하니 이게 뭔가, 벌써부터 사회적인 위치와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쓰기 시작했다.
한심하다는 듯이 자신을 바라보는 유미와, 안쓰럽다는 듯한 눈을 한 재하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한서리는 깨달았다.
그녀 자신이 가진 부모로서의 권위가, 지금 엄청난 위협을 맞이했다고.
한날한시에 같이 태어난 쌍둥이 자식이, 7살을 맞이했을 때의 일이다.
“사춘기 때는 얼마나 난리가 날지 벌써부터 무섭네…….”
한서리는 한탄을 토할 수밖에 없었다.
* * *
아이들은 학교.
남편인 김건도 학교에 갔다. 그는 근처의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홀로 남은 한서리는,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마계의 위협에 몸서리치던 인류가 안정을 되찾은 것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았다.
그동안 전쟁과 헌터 사업을 제외한 분야는 그렇게 크게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도 인류는 디지털 세계를 조작하는 데에 있어서 키보드와 마우스라는 인터페이스의 굴레에 갇혀 있었다.
딸깍딸깍, 키 패드와 버튼을 누르는 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졌다.
그 와중에 헤드셋을 눌러쓴 한서리가 외쳤다.
“A 지점으로 이동해! 이동! 저쪽이 뚫리고 있잖아!”
“전열이 엉성해! 그러니까 화력이 모자란 거라고! 야! 제우스123! 이상한 데로 빠지지 말고 거기에만 있으라고!”
“비내리는시간 님? 지금 중립들이 저희 방해한답시고 다리 쪽에서 길막 하고 있으니까 가서 좀 밀어 주실래요?”
그녀가 지켜보고 있는 화면에는 빼곡하게 쌓여 있는 게임 캐릭터들이 수없이 뒤얽혀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한서리가 재미를 붙인 것은, 각자의 플레이어들이 모여서 세력을 이루고, 그런 세력들끼리 전쟁을 벌이는 것이 주요 컨텐츠인 온라인 게임이었다.
쉽게 말해, 온라인상의 사람들끼리 모여 전쟁하는 것을 즐기는 것이 재미인 게임.
게임 화면 옆에 떠 있는 채팅 프로그램에는 수십 명의 사람이 들어와 있었다.
그들은 군대를 통솔하는 각자의 조장들이었다. 한서리가 그들에게 명령을 내리면, 그들이 하위 조원들에게 연락하여 지휘를 하는 것이다.
회귀 전에도, 회귀 후에도 한서리는 진짜 군대를 이끌어 본 사람이었다. 현실과는 많이 다르지만, 그 능력은 게임에서도 여실히 증명되었다.
전황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은 정확했고, 그녀가 통제하는 사람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전황을 휘어잡았다.
잠시 후, 채팅 프로그램을 통해 여기저기서 승전보가 들려오기 시작하며 결국은 한서리의 화면에 ‘승리’라는 글자가 떠올랐다.
헤드셋 안쪽이 사람들의 환성으로 가득 찼다. 음성 채팅뿐만이 아니라 게임 내의 채팅창이 ‘수고하셨습니다.’ 라는 한마디로 가득 찼다.
“오늘도 한 건 했네.”
만족스러운 숨을 내뱉은 그녀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한 뒤 아무도 없는 음성 채팅방을 새로 만들었다.
잠시 기다리자 한 사람이 채팅방에 들어왔다.
“언니, 오늘도 수고하셨어요~.”
꾀꼬리 같은 목소리.
채팅방에 들어온 것은 한 여자였다.
이름은 나탈리아 마르코바. 한서리가 게임에서 사귄 친구로, 실제로 몇 번인가 만난 적도 있었다.
나탈리아는 애교가 많은 편이었다. 그녀는 그 뒤에도 한서리를 치하하는 말을 늘어놓았지만 그에 익숙한 한서리는 한마디로 모든 말을 받아쳤다.
“그래. 수고했어.”
나탈리아는 웃었다. 그리고 전쟁 후의 현황을 보고했다.
“게시판 분위기 보니까 발라키아 길드 애들, 이번 쟁으로 완전히 와해된 것 같은데, 앞으로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하긴, 사냥터 통제하고, 척살령 내려서 보는 족족 죽여.”
“이번에 저희 방해한 중립들은요? 해방 전쟁이니 뭐니 하는 것 같던데.”
한서리는 차갑게 말했다.
“마찬가지야. 게임 접거나 계정 새로 팔 때까지 죽여. 다시는 덤비는 녀석 안 나올때까지 씨를 말려야지.”
“와, 또 철권 통치하시는 거예요?”
문득, 한서리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나탈리아. 내가 게임을 왜 좋아하는지 알아?”
그러고 보면 서로를 안 지 꽤 오래됐는데, 그런 주제로 이야기해 본 적은 없다.
궁금해진 나탈리아가 순수하게 물었다.
“왜 좋아하는데요?”
“현실이 아니니까. 게임에서는 마음에 안 드는 놈들 다 죽여 버려도 문제가 없잖아.”
그동안 참을 만큼 참았어. 그러니 게임에서 정도는 스트레스 풀어도 되잖아.
한서리는 그 뒷말을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찌 들으면 무시무시한 말이었으나 나탈리아는 깔깔거리고 웃었다.
“그러다가 게임 생태계 다 박살 내 버렸잖아요. 왜, 저번처럼 개발자들 무릎 꿇리고 싶어서 그러는 거예요?”
“꼬우면 게임 그렇게 만들지 말았어야지. 시스템에 허점을 만들어 놓은 그치들 잘못이야.”
지금까지 몇 번이고 있었던 일이다.
나탈리아는 뻔한 미래를 예측해 내고 말했다.
“그럼 다음에 할 게임도 슬슬 알아봐야겠네요. 길드원들한테도, 미리 이야기해 둘게요~.”
“그래.”
“그건 그렇고, 오랜만에 만나서 술 한잔 어때요? 좋은데 알아 놨는데.”
“……오늘은 안 돼. 다음 주. 다음 주에 만나자.”
“그래요. 그럼.”
나탈리아는 붙임성이 좋았다. 그녀는 그 뒤에도 계속해서 수다를 떨었다. 묵묵히 그 말을 듣던 한서리가 문득, 입을 열었다.
“나탈리아.”
“네?”
“어쩌면, 나, 게임 접어야 할지도 몰라.”
“예에?”
시간을 거슬러온 회귀자이며 수많은 화신들과 싸운 영웅.
더 나아가 셀 수도 없는 차원을 거느린 마신, 기린의 주인격인 한서리.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얻었으니,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고 제 마음대로 살겠다고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그런 그녀도, 아이들 앞에서는 그저 엄마였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