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181화
외전 20화 우리 엄마는 한량 (4)
“어쨌든 지금 몸으로 격투기 선수를 노리는 건 무리야. 적당히 지역구에서만 놀게 아니라면 말이지.”
한마디로 잘라 말하는 김건.
하지만 한서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 그러면 체질을 좀 바꿔 보지 뭐.”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눈을 감았다.
그러자 잠시 후, 온몸에서 빛이 나며 콩나물 자라나듯 그녀의 몸이 쑥쑥 자라나기 시작했다.
김건보다 머리 하나는 작던 키가 어느새 비슷해지고, 어깨가 넓어지며 헐렁하던 운동복이 근육으로 가득 차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다.
기린의 주인격의 좌에 오른 한서리.
그런 그녀에게 육체를 변형시키는 것은 너무나도 간단한 일이었다.
김건이 눈썹을 찌푸렸다.
“기린의 힘은 어지간해서는 안 쓰기로 했잖아. 그것에 자꾸 의지하다 보면, 점점 인간성을 잃어버리게 된다니까.”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닌데 뭐. 체질 개선 정도는 괜찮잖아.”
“그건 그렇다쳐도 너무 많이 부풀렸어.”
김건은 뜨악한 표정으로 한서리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작고 아담하던 몸이 김건 자신보다도 커져 있었다.
더 이상 여자의 것이라고는 볼 수 없는 근육 덩어리의 신체. 그런데 목 위로는 이전과 똑같은 형상이었다.
헤비급 보디빌더의 몸통에, 아리따운 여자의 머리가 붙어 있으니 괴리감의 차원이 아니라 기괴함에 공포가 느껴질 정도다.
한서리는 근육 덩어리가 된 자신의 몸이 신기한지 공처럼 부풀어 오른 이두박근을 들어 보이며 오오, 남자들은 이런 느낌이었구나, 하고 감탄하고 있었다.
김건은 이마를 감쌌다.
“그건 너무 괴물 같잖아. 애들한테는 어떻게 설명하려고 그래?”
“에이, 이건 그냥 장난친 거고. 잠깐만 기다려 봐.”
킥킥 웃던 한서리가 몸을 줄였다. 언뜻, 원래대로의 모습으로 돌아온 그녀가 양팔을 들어 보였다.
“어때? 이 정도면 됐어?”
뚱한 표정이 된 김건은 가볍게 한서리의 팔을 쥐어 보았다.
손아귀 안쪽으로 느껴지는 탄력과 강도를 확인하곤, 슬쩍 눈을 돌려 한서리의 얼굴을 확인했다.
“…….”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천연덕스러운 아내의 표정을 보고는 슬쩍 손을 내려 그녀의 운동복을 들춰 그 안쪽을 확인했다.
순간적으로 드러나는 한서리의 배.
하얗고 매끈매끈 하던 평소의 모습이 아니다. 징그러울 정도로 섬세하게 근육의 결이 다 보이는 복근이 그곳에 있었다.
“어딜 들춰 보는 거야?”
남편의 손을 한서리가 찰싹 때렸다. 김건이 투덜거렸다.
“보는 사람도 없는데 왜.”
“그래도 그렇게 보면 부끄럽다고. 차라리 그냥 웃통을 벗으라고 해.”
“벗는 건 안 부끄럽고?”
“남편한테 보여 주는 게 뭐가 부끄러워.”
“??”
종잡을 수 없는 부끄러움의 기준에 대한 생각은 젖혀 두고, 김건이 말했다.
“하여튼 지금 몸도 너무 과해. 완전히 근육 덩어리잖아. 어지간한 사람은 십 년을 노력해도 이렇게는 안 돼.”
김건이 만져 본 감각으로, 지금 한서리의 몸은 극도의 훈련을 거친 최정상의 운동 선수에 비견될 정도였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하면 익숙지 않은 걸 해 보는 게 의미가 없는데. 단련 안 해도 어지간한 건 다 때려눕히겠어.”
“하여튼 꽉 막혔다니까. 알았어.”
한서리는 입맛을 다시며 몸을 원래대로 되돌렸다. 그러곤 슬쩍, 양팔을 내밀어 보이며 말했다.
“그럼 당신이 직접 조정해 줘. 당신이 생각하기에 적당히 재능이 있다 싶은 정도로.”
“조정을 어떻게 해?”
“당신 감각이 좋잖아. 직접 만져 보면서 지시해 줘. 근육량을 늘리라든가, 뼈의 형태를 바꾸라든가, 그러면 말하는 대로 변화시킬 테니까.”
“……알았어. 그럼 여기 누워 봐.”
한서리는 김건이 시키는 대로 체육관에 깔려 있는 매트에 누웠다.
그런 그녀의 옆에 앉은 김건은, 아내가 원하는 대로 그녀의 몸을 조정해 주기 시작했다.
근육의 형태와 뼈, 그리고 관절의 상태까지 파악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세심하게 한서리의 팔다리를 어루만졌다.
가볍게 정강이를 쓸어, 뼈의 상태를 확인하곤 말랑말랑한 종아리를 조물거리며 근육을 확인했다.
그 조심스럽고 부드러운 손길을 느끼던 한서리가 문득, 얼굴을 붉혔다.
“혹시 지금 애무하는 거야? 아무도 없다지만…… 여기서 하긴 좀 그런데.”
“이상한 소리 좀 하지 마. 바보야.”
“앗…… 거기, 방금 그렇게 만져 주는 거 진짜 좋았어.”
“…….”
계속해서 농담을 던지는 한서리.
입을 열어 봐야 분위기에 휘말릴 뿐이라서, 김건은 엎드려 있는 아내의 등짝을 철썩 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화끈거리는 등을 어루만지며, 한서리가 칭얼거렸다.
“아프잖아~.”
김건은 차갑게 대꾸했다.
“당신이 자꾸 바보 같은 소리를 하니까 그런 거잖아.”
“이렇게 당신이랑 둘뿐인 게 오랜만이라 신나서 그런 건데, 너무해.”
토라진 목소리로 말하는 한서리.
그러자 김건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가 미안해하고 있다는 걸 눈치챈 한서리가 엎드려 있던 몸을 돌리며 슬며시 웃었다.
“키스 한번 해 주면 안 잡아먹지.”
“……하여튼.”
김건은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언제나 아내의 요구에 약한 그는 투덜거리면서도 그녀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었다.
김건이 한서리의 몸을 조정해 주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김건은 아내의 체형이 크게 변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육체의 성능을 끌어올려 주었다.
조정이 끝난 뒤, 김건의 지시에 따라 가볍게 스트레칭을 해 본 한서리가 어깨를 휘둘렀다.
김건은 붕붕 팔을 휘두르며 바뀐 몸의 상태를 재확인하는 아내에게 물었다.
“어때? 좀 바뀐 게 느껴져?”
“……잘은 모르겠어. 움직이는 게 좀 편해졌다는 느낌은 있는데.”
“운동을 해 보면 확실히 달라졌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거야. 이전 몸이랑은 가지고 있는 잠재력 자체가 다르니까.”
“잠재력이 있다고? 힘은 그대로인 것 같은데.”
“근육량을 늘린 게 아니라, 근육이 자랄 수 있는 기본바탕을 마련해 둔거니까. 당신이 제대로 갈고닦으면, 같은 체급에서 육체 능력으로 뒤떨어지는 일은 없을걸.”
“흐음. 그러면 세계 챔피언을 노릴 수도 있어?”
“불가능하진 않아. 하지만 어려울 거야. 체질 개선은 했어도, 오버 스펙으로 설정하진 않았으니까 당신보다 몸이 좋은 사람들도 많을 거고, 기술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강력한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이 많을 테니까.”
“그렇게 어려울 것 같진 않은데. 세계 최고의 전사한테 배우는 건데.”
“난 세계 최고가 아니고, 가르치는 건 전문 분야가 아니야. 내가 보기엔…….”
“당신이 보기엔?”
“……지역구 챔피언만 돼도 열심히 했다고 봐.”
나라라는 개념이 많이 소멸된 지금 지역구는 과거의 국가와 비슷한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한마디로 김건은 세계 챔피언은 힘들고, 국내 챔피언정도나 노려 보라고 말한 셈이었다.
한서리는 코웃음을 쳤다.
“하! 나를 너무 우습게 보는 거 아니야? 내가 누군데, 킹메이커야! 화신이 되기 전에도 어지간한 인간은 다 발아래로 두던 사람이란 말이야.”
“그래그래.”
격투기 선수에게 자신감은 아주 중요한 요소였다.
상대보다 기술이 뛰어나도 흔히 말하는 근성. 깡이니, 기합이니 하는 요소에서 밀려 지는 경우가 생각보다 훨씬 많다.
그렇기에 김건은 기세등등한 아내를 당분간 내버려 두기로 마음먹었다.
체질 개선을 하는 데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써서, 두 사람은 일단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집에 도착하자 이미 아이들이 돌아와 있었다.
한서리를 본 재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엄마, 뭐 깔창 같은 거라도 낀 거야?”
“왜?”
“아니, 평소보다 키가 더 커진 것 같아서…… 몸집도 더 불어난 것 같고.”
아버지의 감각을 물려받았는지, 재하는 미묘하게 변한 한서리의 체격을 알아보았다.
아이들은 한서리가 화신이라는 걸 몰랐다.
엄마는 절대자에 가까운 신이고, 아빠는 육체를 잃어버려서 인형에 빙의해서 사는 유령 같은 사람이야~ 라고 말할 수는 없었으니까.
한서리는 식은땀을 흘리며 재빨리 변명의 말을 쏟아냈다.
“오늘은 아빠랑 같이 운동을 했거든! 오랜만에 해서 그런지 효과가 좋았나 봐!”
과장스럽게 팔을 들어 올리며 웃어 보이는 한서리.
평소와 조금 달라 보여서 물어봤을 뿐, 별다른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은 재하는 더 이상 꼬치꼬치 캐묻지 않았다.
도리어 질문을 걸어온 것은 유미였다.
“운동을 했다고? 엄마가?”
의뭉스러운 표정으로 한서리를 바라본다.
한서리는 그런 딸을 향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럼, 이제 운동 엄청 열심히 할 거야.”
“왜? 게임 더 잘하려고?”
그건 비꼬는 말이 아니었다. 순수한 궁금증으로 가득한 유미의 눈. 아이는 그저 평소의 행실에 따라 부모의 행동을 예측했을 뿐이다.
‘끄응…… 이 녀석이…….’
진심을 몰라주는 딸이 야속했지만 그것도 다 자신의 잘못이었다.
속으로 앓는 소리를 낸 한서리는 애써 웃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야. 엄마도 이제 직업을 찾았거든. 그것 때문에 그래.”
“직업? 뭔데?”
엄마가 집에서 한량 노릇만 하고 있는 것을 정말로 싫어했던 모양이다. 그 말을 들은 유미의 목소리가 올라가며 눈빛에 기대감이 차올랐다.
옆에 있던 재하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은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한서리를 올려다보았다. 그런 두 사람의 어깨를 그러안으며, 한서리는 말했다.
“격투기 선수가 되려고.”
그 말을 끝맺는 그 순간까지, 한서리는 자신의 말에 아이들의 눈빛이 반짝일 줄 알았다.
격투기 선수가 뭔지, 아니면 한서리가 왜 그것을 직업으로 선택했는지 등을 흥분해서 물어봐 줄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아?”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는 재하.
그리고.
“……그게 뭐야? 하나도 안 어울려.”
대체 누구를 닮아서 그런 건지, 유미의 반응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 * *
“두고 봐! 내가 세계 챔피언이 될 테니까!”
어제 아이들의 싸늘한 반응을 마주한 뒤, 자존심이 상한 한서리가 길길이 날뛰며 흥분해서 뱉은 말이다.
하지만 머리가 차갑게 식은 지금,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한숨밖에 없었다.
“어쩌지…….”
잔뜩 주눅이 들어서는, 안방의 침대에 누워 베개에 얼굴을 박고 있다. 그런 아내의 모습을 바라보던 김건이 안쓰럽다는 듯이 혀를 찼다.
새삼스럽지만, 아무리 대단한 인간이라도 자기 아이 앞에서는 그냥 엄마이고, 아빠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한서리는 마신의 화신과 마주쳤어도, 전 세계를 적으로 돌렸어도 고개 한 번 숙여 본 적이 없는 아내였다.
오랜 시간 아내와 함께했지만, 김건은 한서리가 저렇게 자신 없어 하는 모습을 처음으로 보았다.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한 뒤 아이들에게 실망감을 줄까 봐 두려운 것이다.
김건은 침대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그러곤 잔뜩 위축되어 있는 아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괜찮아. 당신이라면 할 수 있어.”
“……정말로?”
소심한 목소리가 베개 밑에서 흘러나왔다.
고개가 돌아가고, 부드러운 솜뭉치 사이로 빼꼼 드러난 한쪽 눈이 김건을 바라보았다.
김건은 웃으며 아내의 머리칼을 만져 주었다.
“그래. 분야는 조금 다르지만, 당신도 역전의 용사였잖아. 그 경험을 살리면 해낼 수 있어.”
남편의 응원을 듣자 용기가 났다. 한서리는 베개에 얼굴을 박은 채 이를 꽉 깨물었다.
‘그래, 어디 한번 해 보자.’
처음에는 반쯤 장난으로 시작한 것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반드시, 세계 챔피언이 된다.
세계 제일이라는 타이틀이라면 아이들에게 박힌 한량 엄마라는 이미지를 부수고 누구에게 내놓아도 자랑스러운 엄마라는 의식을 새겨 줄 수 있을 테니까.
그것으로 부모로서의 권위를 되찾고, 부서져 버린 자존심을 회복한다.
벨제불과 티아마트의 화신들과 싸우고, 여섯 세계의 침략에 저항했으며 선계의 관리자들과 사투를 벌여 기린의 주인격에까지 오른 자신이다.
기린의 힘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못 다다를 목표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며, 한서리는 빠득 하고 이를 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