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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186화 (186/200)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186화

외전 25화 우리 엄마는 한량 (9)

유미는 왠지 모르게 불퉁한 표정이었다.

체스판을 놓고 그 맞은편에 있던 나탈리아가 의아한 듯이 물었다.

“뭐야, 왜 그렇게 기분이 상했어.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어?”

“아뇨.”

“그런데 얼굴이 왜 그래?”

“…….”

유미는 말없이 한 수를 두었다.

체스를 오래 한 사람은 그 한 수 한 수에 생각이 드러난다.

나탈리아는 유미의 수를 확인했다.

딱히 나쁘지는 않지만 좋지도 않은 수. 무난하기보다는 대충 정석대로 두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한수였다.

평소의 날카로움이 없다. 집중력이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였다.

“흐음…….”

콧소리를 내며 턱을 쓰다듬던 나탈리아가 유미에게 맞춰서 느슨한 수를 두었다. 여기서 강하게 압박하면 게임에 몰입해 입을 다물어 버릴 테니까.

하지만 유미는 먼저 기분이 상한 이유를 말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아이는 입을 꼭 다물고 체스판에만 시선을 집중했다.

그러자 약간 떨어진 곳에서 소파에 누워 책을 보고 있던 재하가 말했다.

“어제 엄마한테 게임하자고 했는데, 피곤하다고 거절당했거든요. 그다음부터 저래요.”

그 말에 나탈리아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킥킥 웃으며 귀엽다는 듯이 유미를 바라보았다.

“엄마가 안 놀아줘서 삐졌구나?”

“……그런 거 아니에요.”

유미는 고개를 저었다.

처음에는 그냥 화난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고집부리는 줄 알았는데, 자세히 지켜보니 표정이 진지했다.

아무래도 단순한 문제로 감정이 상한 건 아닌 모양이다. 나탈리아가 다시 물었다.

“그러면 왜 그러는데?”

“…….”

유미는 한참이나 가만히 있다가 겨우 말했다.

“괜히 쓸데없는 말을 한 게 아닌가 싶어서요.”

“쓸데없는 말?”

또다시 입을 다물어 버리는 유미.

하지만 그들의 옆에는 재하가 있었다. 재하는 마치 유미의 속마음을 대변하듯 말했다.

“엄마한테 한량에, 게임 폐인이라고 뭐라고 한 게 유미니까요. 최근에 엄마랑 아빠가 바빠진 게 다 자기가 일으킨 일이니까, 자업자득이라는 거죠.”

“평소에는 벙어리같이 구는 주제에. 이럴 때만 말 잘하지 마.”

도끼눈을 뜨고 오빠를 째려보는 유미. 하지만 재하는 그저 코웃음만 칠 뿐이었다.

어차피 숨겨 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은 유미는 고개를 돌리고 속마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냥…… 다른 엄마들이랑 비교도 되고, 가끔 진짜로 한심해 보이기도 해서 한마디 했을 뿐이에요. 그런데…….”

“너한테 주던 관심이 떨어질지는 몰랐다? 욕심쟁이네.”

“스승님은 말이 너무 직설적이에요. 무서워.”

나탈리아는 코웃음을 쳤다.

“무서워? 내가? 글쎄, 나보다는 서리 언니가 훨씬 더 무서운 사람인데 말이야.”

“……엄마가 무서운 사람이라고요?”

유미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한 눈으로 나탈리아를 쳐다보았다. 나탈리아는 킬킬 웃었다.

“잘 모르는구나? 피도 눈물도 없이 적을 학살하는 폭군이라고.”

“그건 게임에서잖아요.”

“아니, 현실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사람이야. 물론, 사악한 사람이라는 말은 아니야. 그만큼 강단이 있고 냉철한 사람이라는 거지.”

“아닌 거 같은데…….”

집에서 뒹굴거리며 뽀뽀해 달라고 아빠에게 어리광이나 부리던 엄마가 그런 인물일 리가 없다.

유미는 그렇게 확신했지만 나탈리아는 어른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 다른건 몰라도 사람 보는 눈은 확실하거든. 부모님이 재산을 많이 물려주시긴 했지만, 그걸 지킬 수 있었던 것도 다 이 안목 덕분이지. 그게 아니었으면 이미 온갖 놈들에게 다 털려서 뼈만 덩그러니 남았을걸?”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들은 유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재산을 왜 털리는데요?”

“아, 그게 음…….”

자신이 실언을 했음을 깨달은 나탈리아였다.

하도 똑똑하다 보니까 아이들이 아직 때묻지 않은 일곱 살이라는 것을 망각해 버린 것이다.

그녀는 이걸 설명을 해 줘야 하나 말아아 햐나 고민했지만, 독신인 그녀에게 아이들을 생각하는 대단한 섬세함은 없었다.

“아…… 그러니까 돈이 많은 곳에는 그걸 빼앗아 가려는 나쁜 사람들이 우글거리게 된단다.”

“그걸 왜 빼앗아 가요. 남의 돈인데. 그냥 경찰 아저씨 부르면 되는 거 아니에요?”

“…….”

그렇게 남의 돈을 탐내는 놈들은 법의 손이 닿지 않거나, 오히려 법을 이용한 온갖 수단을 사용해 온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나탈리아가 고민하는 동안,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재하가 끼어들었다.

“돈을 얻으려고 사람 죽이는 악당들 많잖아. 뭐만 하면 쳐들어와서 총 들이대고 돈 내놓으라고 하는 사람들.”

재하는 그러면서 자신이 보고 있던 책을 들어 보였다.

재하는 추리 계열의 이야기. 정확히 말하자면 탐정이나 경찰 같은 사람들이 온갖 단서를 긁어모아 악당들을 감옥에 집어넣는 종류의 플롯을 굉장히 좋아했다.

그런 걸 보면 항상 나오는 것들이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자들이다.

하지만 유미는 납득하지 못했다.

“그건 소설 속 이야기잖아.”

“아니야. 진짜로 많은 것 같아. 인터넷 검색해 보면 빌런들이 은행을 습격한 사건도 많이 나오고.”

재하가 나선 덕분에 귀찮은 일을 덜었다고 생각한 나탈리아가 얼른 맞장구를 쳤다.

“그래, 그런 거! 나쁜 놈들이 얼마나 많은데. 요즘은 수인이랑 악마들도 날뛴다고 하니까. 참 조심해야 한다니까.”

“그런데 그런 거에 안 당하려면 힘이 세야 하는 거 아니에요? 마력적성이 높던가. 총 들이대고 돈 내놓으라고 하는데 사람 보는 눈이 왜 필요해요?”

“아…….”

나탈리아가 데룩데룩 눈을 굴렸다. 그녀는 한서리가 이 아이들을 키우는데 왜 애를 먹었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한참이나 고민하다가 그냥 배 째라는 듯이 냅다 말을 돌려 버렸다.

“하여튼, 언니는 보통 사람은 아니야. 네가 언니의 특별함을 모르는 건, 그만큼 언니가 널 신경 쓰고 있다는 거지.”

“…….”

정말로 듣고 싶었던 것은 그쪽의 대답인 모양이었다. 따박따박 따지고 들던 유미가 입을 다물었다.

나탈리아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을 맺었다.

“복 많은 줄 알아. 언니가 지금 그렇게 열심히 하는 것도, 결국은 다 너를 위해서일 테니까.”

“나를 위해서…….”

유미는, 그 말을 되뇌이며 묵묵히 무언가를 생각하듯 고개를 숙였다.

* * *

“그래서, 나탈리아가 나보고 무서운 사람이라고 했다고?”

“응.”

유미는 히히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그녀는 한서리와 함께 단골인 디저트 가게에 와 있었다.

내내 우울하던 기분이 좋아진 이유는 단순했다. 지금 그녀는 한서리의 품 안에 쏙 들어가듯이 안겨서 눈앞에 있는 화려한 파르페를 먹어치우고 있었으니까.

유미의 보고를 받은 한서리가 작게 중얼거렸다.

“혼 좀 내 줘야겠네…… 애한테 대체 무슨 말을 한 거야?”

“응? 방금 뭐라고 했어?”

“아냐아냐, 파르페 맛있어?”

“응!”

한서리는 어젯밤 유미의 제안을 거절한 이후로 계속해서 유미의 기분이 좋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최근에 훈련을 시작한 이후로는 시간도 별로 없고 피곤해서 어리광을 별로 들어주지 못했다. 그래서 기분도 풀어 줄 겸해서 데리고 나온 것이다.

한서리는 유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물었다.

“그래서, 유미는 엄마가 무서워?”

“아니, 무서울 리가 없잖아.”

“그래야지.”

후후 웃으며 한서리가 말을 잇는다.

“체스는 잘 배우고 있어?”

“응. 어제 1900점 찍었어. 조금만 더 노력하면, 스승님이 반년 내에 2천 점까지 갈 수 있을 것 같데.”

“정말? 대단하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모녀는 사이좋게 파르페를 나눠 먹었다.

그러던 와중, 문득 유미가 말했다.

“엄마.”

“응?”

“엄마는 지금 격투기 선수 한다고 하는 거…… 내가 그만두라고 하면 그만둘 거야?”

“왜? 언제는 집에서만 노는 한량이라고 뭐라 하더니.”

“그게 아니라…….”

뭔가가 부끄러운지 유미는 한참이나 꾸물거렸다. 그러다 고개를 들어 올려 빠끔, 한서리를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거 그만두고, 나랑 더 많이 놀아 달라고 하면 들어줄 거야?”

그 말을 들은 한서리는 후훗 웃었다.

어찌 보면 이기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아이의 소유욕이었지만, 그녀는 그것이 썩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손을 들어 올린 한서리. 그녀는 엄지로 유미의 입가를 닦아 주면서 천천히 말을 이었다.

“유미하고 놀아 주면, 엄마가 한량이어도 괜찮은 거야? 다른 아이들한테, 내가 뭘 하는지 부끄럽지 않게 말할 수 있겠어?”

“…….”

“그건 싫지?”

한서리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야기하며 타이르듯이 아이의 어깨를 쓰다듬어 주었다.

유미는 뾰족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사실…… 상관없어. 애들이 뭐라고 하든, 엄마는 엄마니까.”

“그래, 알아. 하지만 엄마는 부끄러운 엄마가 되기 싫은걸. 그러니까 열심히 할 거야. 유미한테,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기 위해서.”

“……그럼, 나도 열심히 할게.”

“응?”

“스승님한테 추천을 받아서 어린이 체스 대회에 나가겠다고 했어. 거기서 이기면, 엄마도 나를 자랑스러워해 줄 거야?”

유미는 그렇게 말하며 얼른 칭찬해 달라는 듯 한서리의 품에 머리를 비벼 대었다.

그 영악함이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한서리는 콧소리를 내며 안겨 있는 유미의 머리에 턱을 문질렀다. 그러곤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물론이지. 이미 자랑스러운 내 딸이지만.”

* * *

머지 않아, 한서리의 데뷔전이 찾아왔다.

한서리는 에디에게 소개를 받아 계속해서 스파링 상대를 공급받았고, 그 결과가 꽤 좋았기 때문에 상당히 기고만장한 상태였다.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감 넘치게 선언했다.

“교수님! 데뷔전 상대는 앤으로 해 주세요!”

그때는 앤 역시 선수 등록을 마치고 데뷔전의 일정을 물색하는 중이었다.

어린 나이, 출중한 외모, 그리고 뛰어난 실력을 겸비한 앤은 협회 내에서도 앞날이 기대되는 인재였기 때문에 상당히 공을 들여 상대를 물색하고 이런저런 마케팅 전략을 짜고 있는 상황이었다.

반면 아직 한서리는 그리 큰 주목을 모으지 못하고 있었다.

원래의 미모를 드러내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다크호스로 떠오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한서리는 신분을 숨기기 위해 외모의 상당 부분을 감추고 있었다. 거기에 지금까지 쌓아 온 이력도 없으니, 에디의 푸쉬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찬밥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었다.

떠오르는 신성과 어디서 왔는지도 모를 어중이떠중이를 데뷔전에서 붙인다라.

누가 봐도 별로 좋은 마케팅 전략은 아니다.

다른 놈이 그런 소리를 했으면 머리통을 쪼개 놨을 것이다. 하지만 에디는 한서리의 정체를 알고 있었기에 그저 난감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건 좀…….”

한서리는 입술을 삐죽였다.

“왜요 왜. 별로 인기를 못 끌 것 같아서 그래요? 근본 있는 슈퍼 루키와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르는 정체불명의 초신성이라는 식으로 붙이면 되잖아요. 나쁘지 않은 타이틀 같은데.”

“초신성이라고 하기에는 네 실력이 좀…… 그렇지 않니?”

“왜요? 내 실력이 어때서?”

에디는 잠시 망설였지만 그냥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나쁘진 않지만 엄청 좋은 것도 아니지.”

“좋은 편이잖아요. 일 년도 안 돼서 이 정도까지 올라온 사람 봤어요?”

“물론 그건 대단하긴 한데, 사실 실력보다는…… 너한테는 그렇게 번쩍거리는 재능이 느껴지지가 않아.”

단순히 실력뿐만이 아니라, 격투기 선수로서 사람들을 끌어모을 만한 매력, 그런 게 없다는 말이다.

계속해서 협회 이사로서의 입장을 고수하는 에디.

그 고집스러운 모습을 바라보며 한서리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말했다.

“그럼, 얼마면 돼요?”

에디는 펄쩍 뛰었다.

“무슨……! 날 뭘로 보고. 내가 돈 따윌 벌려고 이러는 것 같아? 어디까지나 마력 제한 격투기라는 스포츠를 부흥시키기 위해서……!”

“그래요? 그러면 협회장님한테 직접 접근해야겠네. 그분도 교수님이랑 같은 생각일까요?”

“…….”

여차하면 협회 전체를, 아니 시장 자체를 돈으로 사 버릴 생각이다.

그 의도를 깨달은 에디는 그저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무적의 힘을 가진 기린의 주인격께서는 어떻게든 복수전을 하고 싶으신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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