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188화 (188/200)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188화

외전 27화 우리 엄마는 한량 (11)

학교의 쉬는 시간.

재하는 만화책을 보고 있었다. 그가 보고 있는 책 속에는 금발을 휘날리는 미녀가 거대한 황금빛의 검으로 악당을 물리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탐정 영웅 세라스, 좋아해?”

갑자기 끼어든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는 재하. 한 여자아이가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반 내 여자 그룹의 패권을 놓고 유미와 앙숙처럼 싸우는 마이아라는 아이였다.

‘또 시작인가…….’

재하는 한숨을 쉬었다. 말을 걸어온 것이 그리 달갑지는 않았지만 그는 착실하게 대답을 해 주었다.

“그래.”

재하가 고개를 끄덕이자 마이아는 박수를 치면서 좋아했다.

“나도 좋아하는데! ‘잊힌 예배당’ 에피소드가 정말 재미있었지!”

“…….”

재하는 말이 없었다. 그런 그의 속마음을 대변하듯, 또 한 사람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너 잘 모르는구나? 재하는 ‘반즈의 유산’ 에피소드를 좋아한다고. 네가 말한 건 이야기의 깊이도 없고 영웅으로서의 세라스가 제대로 표현되지 않아서 싫다고 했단 말이야.”

유미와 마이아의 뒤를 잇는 반 여성 서열 3위. 프레이다.

프레이는 입가를 가리며 비웃는 모양새로 마이아를 쳐다보았다.

그 반응에 와락, 마이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뾰족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넌 뭐야? 네가 재하에 대해서 뭘 아는데?”

“최소한 너보다는 잘 알걸? 그치? 재하야?”

“마음대로 친한 척하지 마! 재하가 싫어하잖아!”

그렇게 두 사람을 재하를 가운데에 놓고 싸움을 시작했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재하는 지겹다는 표정으로 얼굴을 감쌌다.

재하는 여자아이들한테 인기가 많았다.

높은 마력적성을 지닌 덕에 보석처럼 빛나는 푸른 머리, 사파이어색 눈동자와 언뜻 여자로 보일 정도로 아름다운 얼굴.

거기에 성격도 의젓하여 벌써부터 어른 티를 내고 있으니, 여자아이들로부터 인기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내성적인 성격을 지닌 터라, 이미 사회적인 우위를 점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툭하면 주변에서 자신을 두고 여자아이들이 싸우거나, 텃세를 놓으니 남자아이들과는 자연스럽게 멀어진다.

그 탓에 재하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아직까지 변변한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

그나마 그가 어느 정도 학교 생활을 해 나갈 수 있는 것은, 언제나 그의 곁에 억척스럽기 그지없는 쌍둥이 동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주 지랄을 한다. 지랄을 해. 꺼져! 이것들아!”

잠깐 자리를 비웠던 유미가 돌아와 외치자 마이아와 프레이 두 사람의 표정이 굳었다. 쪼르르 달려온 유미가 재하와 두 사람의 사이를 갈라 놓았다.

딱히 그룹을 만들지도,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도 않는 유미였지만 그 성질머리와 영악함 때문에, 반에서 유미를 우습게 보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쳇, 혀를 차며 두 사람이 물러난다. 재하는 그제야 압박에서 벗어나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그렇게 학교의 수업 시간이 모두 끝나고, 퇴교 시간이 되었다.

재하와 함께 교실을 빠져나온 유미가 입술을 삐죽였다.

“바보처럼 가만히 있지 말고 딱 잘라서 한마디 해. 들러붙지 마! 이 개 같은 녀…… 까지는 아니어도 이 못난이들아! 정도는 할 수 있잖아.”

동생의 타박에 재하는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정도는 예전에 몇 번이나 해 봤다고. 조금만 뭐라고 하면 울고불고 난리를 치는데 어떻게 해.”

“울든 말든 내버려 둬! 그거 다 내숭이니까! 그런 애들 눈물엔 개미 눈곱만큼의 가치도 없어! 그런 걸 대체 왜 신경 쓰는데?”

“그래도 신경 쓰이는데…….”

유미는 혀를 쯧쯧 찼다. 그녀는 우유부단하기 그지없는 오라비를 보며 말했다.

“정 그러면 아예 확! 여자 친구라도 사귀어 보던가.”

“여자 친구? 그런 건 어른이 돼서나 하는 거잖아.”

“그건 선생님들이나 하는 소리고…… 우리 옆반 애들이 자기네들끼리 사귄다는 이야기 못 들었어?”

“……누가?”

“왜 있잖아, 그 키 크고 눈이 좁쌀만 한…….”

유미는 옆 반에 떠돌고 있는 연애담을 시시콜콜 늘어놓았지만 재하는 그런 종류의 이야기에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난 생각 없어. 학교에는 딱히 좋아하는 사람도 없고.”

“학교에는? 그러면 다른 데에는 있다는 말이야?”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하여튼 애들은 싫어. 굳이 말하자면 어른스러운 사람이 좋아.”

두 사람은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운동장을 지나쳐 교문을 빠져나갔다.

둘이 다니는 학교 근처엔 게이트가 있다.

아이들로서는 홀로 게이트 시설을 이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하교 시간이 되면 보통 어른들이 게이트 근처에서 아이들을 맞이한다.

두 남매 역시 어머니든, 아버지든, 나탈리아든, 자신들을 데리러 나온 어른을 찾았는데, 아이들을 맞이하러 나온 어른들의 분위기가 어쩐지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른들이 뭐라고 속삭이며 어느 한 곳으로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뭐지?”

“…….”

유미와 재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려 사람들의 시선을 쫓아갔다.

그리고 그렇게 바라본 곳에는, 마치 천사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황금색 머리칼이 바람결에 휘날린다. 등허리를 넘어 엉덩이에 닿는 장발은 마치 황금색 장막이 펼쳐지는 것처럼 아름다웠다.

여성치고는 커다란 키. 다리가 얼마나 기다란지 그녀는 허리 위치가 어지간한 사람의 가슴께에 가까이에 위치해 있었다.

거기에 탄탄한 상체는 반듯하게 펴져 아름다운 라인을 그려 냈다.

단련된 몸에 완벽에 가까운 비율을 가지고 있으니 서 있기만 해도 그림이 되는데, 그런 몸 위에 얹어져 있는 것은 천사의 얼굴이었다.

선홍색 입술에 황금색 눈썹. 그리고 보석처럼 반짝이는 금안은 이 세상 사람의 것이 아닌 것 같은 신비로움을 품고 있었다.

그녀는 누군가를 찾는 듯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재하와 유미를 발견하더니, 문득 새하얀 미소를 지었다.

두근.

그 여자를 보는 순간, 재하는 왠지 모르게 자신의 가슴께에 손을 가져갔다.

여자가 이쪽을 향해 다가온다.

그녀는 두 사람의 앞에 멈춰 서더니, 허리를 숙여 그들을 내려다보며 환하게 웃었다.

“안녕? 유미랑, 재하지? 난 너희들 엄마의 친구야. 부탁을 받고 마중을 나왔어.”

여자가 자신을 내려다보자, 재하는 숨이 턱 막히는 것을 느꼈다.

“…….”

왠지 모르게 말문이 막히고, 얼굴이 뜨거워진다. 스스로의 변화에 당황한 재하가 머뭇거리는 동안 유미가 말했다.

“……언니는 누구예요? 엄마 친구라고요?”

여자가 가진 미모, 그리고 신비로운 분위기에 압도된 모양이다. 누구 앞에 서서도 또박또박 이야기를 하던 유미도 목소리가 조금 떨리고 있었다.

아이들이 자신을 어려워한다는 것을 눈치챈 여자가 웃었다.

“음…… 잠깐만 기다리렴.”

난감한 미소를 짓더니 품에서 휴대기를 꺼낸다. ‘이거 어떻게 쓰는 거였더라…… ‘라고 중얼거리며 한참을 만지작거리더니, 이내 영상 통화를 연결한 뒤 휴대기를 두 사람에게 건네주었다.

잠시 후, 통화가 연결되며 휴대기에서 빠져나온 홀로그램이 한서리의 얼굴을 그려 냈다.

아이들을 발견한 한서리가 미소를 지었다.

“안녕, 학교는 잘 끝났어?”

엄마의 얼굴을 보고 나니 긴장이 조금 풀린 모양이다. 안도의 한숨을 쉰 유미가 물었다.

“엄마, 이 사람, 누구야?”

금발의 여자를 힐끔 거리며 묻는 유미. 그러자 한서리가 대답했다.

“엄마 친구야. 정말 오래된 친구. 이름은 ‘세라스‘라고 해.”

“세라스?”

유미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녀는 금발의 여자를 돌아보았다.

“만화 속 사람이랑 똑같은데요? 이름도, 생긴 것도.”

그러자 세라스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 재미있네. 내가 사람들 없는 곳에 좀 오래 있다가 돌아와서 잘 모르는데, 그런 게 다 있어?”

“네. 있어요.”

유미가 재하를 쿡쿡 찌른다. 그는 화가 난 유미가 옆구리를 꼬집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고는 허겁지겁 가방 속에 들어 있던 만화책을 꺼내 보여 주었다.

책을 받아 든 세라스는 그것을 주르륵 훑어보더니 후후 웃었다.

“정말이네.”

그동안 휴대기에서 빠져나온 한서리가 아이들에게 말했다.

“세라스가 꼭 너희들을 마중 나가고 싶다고 해서 일단 보낸 건데, 괜찮아? 엄마가 바로 데리러 갈까?”

“아니야. 괜찮아.”

언제까지고 부모님을 찾는 건 바보 같은 애들이나 하는 짓이다.

안 그래도 이제 슬슬 어른의 도움 없이 스스로도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유미는 그렇게 말했다.

“그래? 그러면 셋이서 좀 놀다가 들어와. 저녁까지 먹고 들어오면 더 좋고.”

뭔가 좋지 않은 것을 직감한 유미가 물었다.

“엄마는 뭐 해? 오늘도 훈련?”

한서리의 입가에, 장난스러운 미소가 떠오른다.

“아니, 이 기회에 오늘은 아빠랑 같이 데이트 좀 하려고.”

“뭐야, 나도 끼워 줘! 나도 아빠랑 놀고 싶단 말이야!”

“오늘은 안 돼~ 그럼 잘 놀다와~.”

그리고 툭, 전화가 끊어져 버렸다.

“치이…….”

유미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휴대기를 내려다보았으나, 남아 있는 것은 신호가 끊겼다는 알림뿐이었다.

“걱정하지 마! 오늘은 내가 확실하게 즐겁게 해 줄 테니까!”

세라스는 그렇게 말하며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두들겼다.

활짝 웃는 모습이 정말로 천사 같았다. 부모님에게 따돌림을 당해 기분이 상했던 유미였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 예쁜 언니가 어울려 준다고 하자 조금 기분이 나아졌다.

“진짜 예쁘다…….”

“누구야? 연예인인가?”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는 것을 세라스가 눈치챘다. 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며 두 아이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그럼, 일단 차나 한잔하면서 뭐 할지 생각해 볼까?”

* * *

세 사람은 조용한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

각자 음료를 시키고 둘러앉았지만 아무래도 서로 잘 모르는 사이이니 어쩐지 어색한 기류가 흐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세라스가 입을 열었다.

“아, 참. 안 그래도 너희들 주려고 준비한 선물이 있거든?”

“선물이요?”

“그래, 너희들이 엄청 어렸을 때, 약속했거든. 너희야 기억 못하겠지만 말이야.”

유미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기억이 날 리가 만무했다. 쌍둥이 두 사람이 아직 뱃속에 있을 때의 이야기였으니까.

세라스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그녀의 머리 옆 허공이 찢어지더니, 그 안쪽에서 커다란 주머니가 툭 하고 떨어졌다.

그것을 본 유미가 우와! 하고 감탄했다.

“언니, 고위 마법사예요?”

마법 기술이 슬슬 대중화되어 가는 지금, 시공계 마법처럼 일반적으로는 사용하지 못하는 고난이도의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그렇게 불렀다.

세라스는 유미가 신기해하자 의아한 듯이 물었다.

“응? 너희 엄마가 이런 거 쓰는 거 못 봤어?”

“못 봤어요. 예전에 영웅으로 활동했다고는 했는데,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아니라고 했었거든요.”

“흐음…… 그렇구나.”

세라스는 재미있다는 듯이 웃고는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대체 그 안이 어떻게 되어 있는 건지, 세라스가 거의 어깨까지 주머니의 안쪽으로 밀어 넣었는데도 안쪽에서 뭔가가 움직이는 것이 보이지 않았다.

“이건 아니고.”

세라스가 주머니에서 꺼낸 물건을 탁자 위에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에서 물건이 빠져나올 때마다 점차 아이들의 눈이 커져 갔다.

왜냐하면, 그녀가 꺼내는 물건들은 하나같이 평범한 것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까딱까닥 턱을 움직이는 해골, 날개가 달려서는 쇠사슬로 칭칭 감겨져 있는 책, 무지갯빛으로 빛나는 커다란 보석 등 별의별 것들이 다 나온다.

“오빠, 저거 봐봐! 책이 살아 움직여!”

“…….”

흥분한 유미가 재하를 흔들었다. 대꾸는 하지 않았지만 재하도 상당히 기분이 들떠 오른 것 같았다.

대체 엄마 친구라는 저 사람의 정체는 뭘까?

두 사람은 호기심으로 가득한 눈을 세라스에게 향했다.

“찾았다.”

마지막으로 세라스가 주머니에서 끄집어낸 것은 큼지막한 새장이었다.

그 안에 있는 것을 본 유미가 비명을 질렀다.

“우와! 귀여워!”

새장 안에는 하얗고 노란빛의 솜털로 뒤덮인 아기 새 두 마리가 쌕쌕 잠들어 있었다.

우리의 문을 연 세라스는 조심스럽게 아기 새들을 손아귀에 넣더니 재하와 유미 두 사람에 그것을 내밀어 보였다.

“자.”

앙증맞은 머리, 솜털이 보송보송한 몸과 날개. 그 깜찍한 모습을 본 유미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귀여워! 만져 봐도 돼요?”

세라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너희들이 주인인데. 손 내밀어 보렴.”

두 사람이 손을 내민다. 세라스는 각자의 손 위에 새를 한 마리씩 올려 주었다. 두 아이는 신기해서 죽겠다는 듯이 자신의 손아귀에 들어와 꼬물꼬물 잠에서 깨어나는 아기 새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던 중, 유미의 손아귀에 올라가 있는 아기 새가 하품을 하듯이 입을 크게 벌렸다.

그러자 화악! 하고 그 입에서 작은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엄마야!”

깜짝 놀란 유미가 고개를 뒤로 젖힌다. 옆에서 그것을 본 재하도 움찔하고 어깨를 떨었다.

불을 내뿜는 아기 새라니, 들어 본 적도 없다. 유미는 황망해진 얼굴로 물었다.

“이, 이거, 불을 뿜는데요?”

그리고 세라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그거, 불사조의 새끼거든.”

“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