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191화
외전 30화 우리 엄마는 한량 (14)
“??”
당황한 늑대인간이 숨소리를 토해 냈다. 놈은 몸을 일으키려고 발버둥 쳤지만 소용없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여의주로 얻은 화신의 힘이 오히려 몸을 억누르고 있었다.
전신이 천근처럼 무겁다. 무릎을 꿇고도 버틸 수가 없어서, 그는 아예 바닥에 누워 버렸다.
짓밟힌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늑대인간에게 세라스가 다가갔다. 그녀는 허공에 떠 있는 구체를 쿡쿡 찌르면서 말했다.
“빌어먹을 정령 놈이 죽어서도 문젯거리를 만들고 다니네. 다른 관리자들한테도 말해서 좀 정리를 해야겠어.”
늑대인간이 크게 눈을 떴다.
“관리자…… 네놈, 설마!”
세라스의 발이 늑대인간의 머리를 짓눌렀다.
“조용히 해. 쓸데없는 말 지껄이지 말고.”
차갑게 말하는 세라스.
강제로 턱이 닫힌 늑대인간이 거친 신음 소리를 흘렸다.
그때였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나동그라져 있던 수인들 중 한 명이 몸을 일으켰다.
순간적으로 놈과 세라스의 발밑에 깔린 늑대인간의 시선이 교차했다.
“넌, 또 뭐…….”
인상을 찡그린 세라스가 입을 열려는 순간, 수인은 가타부타 말도 없이 저편에 있는 재하와 유미를 향해 마법을 발사했다.
순식간에 짜인 화염의 불줄기가 아이들을 향해 날아간다.
‘이 새끼들이!’
아이들을 노려 시간을 벌려는 뻔한 수작.
세라스가 이를 악물었다.
당황스럽기보다는 짜증이 났다.
그녀에게 그따위 공격을 막는 것은 일도 아니었으니까.
빌어먹을 놈들이 아이들 앞에서 심한 꼴 보이고 싶지 않아 손속에 여지를 두었더니, 아주 천방지축으로 날뛴다.
화가 난 세라스가 제대로 힘을 발휘하려 할 때였다.
문득, 시간이 멈췄다.
세라스는 눈을 크게 떴다.
정말로 전 세계의 시간이 멈춘 것이 아니다. 마법을 이용해 주변의 시간 흐름을 극도로 느리게 만든 것이다.
강력한 화신의 힘을 가진 그녀였기에, 세라스는 그렇게 얼어 버린 시간 속에서 주변의 모습을 살필 수 있었다.
세상이 흑백으로 물들어 있었다. 주변의 중력이 급변하며 빛과 에너지가 이상하게 뒤얽히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흰색 면사포와 드레스를 걸친 자가 스르륵 솟아올랐다.
그것이 나타나자 회색빛으로 칠해진 공간이 마치 유리조각이라도 된 것마냥 거미줄이 가더니 쩍쩍 쪼개져 갔다.
쪼개진 공간 아래로 나타나는 것은 그저 새까맣기 그지없는 공허.
그 속에서, 면사포의 인물은 새하얀 손을 들었다.
딱, 하고 손가락을 튕겨지는 손가락.
검은 공허가 부풀어 오르더니 순식간에 주변에 널려 있던 늑대인간들을 집어삼켰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잠깐 눈을 감았다 뜨니 난장을 피우고 있던 늑대인간들이 모조리 사라져 버렸다.
“??”
“뭐야?”
사람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유일하게 멈춰져 있던 시간 안에서 있었던 일을 아는 세라스만이 헛웃음을 지었다.
“나 참…… 이건 좀 과한데.”
그들이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또각또각 구둣발 소리가 울리더니 누군가가 난장판이 된 전당포 안으로 들어왔다.
아주 고급스러운 옷을 걸친, 우아한 미녀였다.
익숙한 그 외형에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저 사람…… 용왕 아니야?”
“용왕이 갑자기 여기 왜…… “
그 미녀의 얼굴을 본 세라스가 놀랐다.
“엘리 씨?”
“세라스 씨.”
엘리는 난감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세라스의 뒤편에 있는 아이들을 흘끗 쳐다보고는 말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가세요. 이 자리는 제가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보아하니 누군가에 의해 이곳까지 불려온 모양이다.
세라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들을 향해 다가갔다.
유미는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고, 재하는 여전히 유미의 손을 꽉 쥐고 있었다.
그깟 잡놈들을 상대로 아이들을 이토록 겁먹게 하다니, 세라스는 아직도 자신이 갈 길이 멀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괜찮아.”
그녀는 부드럽게 속삭이면서 두 사람의 어깨를 안아 주었다. 등을 톡톡 두들겨 주자 점차 유미의 떨림이 멎었다.
아이들을 진정시킨 세라스가 몸을 일으켰다.
마력을 뿜어내어 허공에 마법진을 그리던 그녀는, 문득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두 아이를 발견하고는 떨떠름하게 표정을 굳혔다. 그러고는 난감한 기색으로 전당포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엘리를 돌아보았다.
“저…… 좌표 값을 불러 드릴 테니 순간이동 좀 시켜 주시겠어요? 저 아직 공간 마법은 그렇게 익숙하지가 않아서 다른 사람들까지 데리고 이동하는 건 좀 부담스러운데.”
“……알겠습니다.”
엘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 *
언제 연락을 받았는지, 집에 돌아오자 한서리와 김건이 돌아와 있었다.
“무서웠어어!!”
유미는 잔뜩 흥분해서 울며불며 한서리에게 매달렸다. 그녀는 방금 전에 전당포에서 겪었던 일에 대해서 한참을 떠들다가 지쳐서 잠이 들었다.
돌아와서부터 계속해서 품에 안고 있던 불사조와 잠든 딸의 머리를 쓰다듬던 한서리는, 가벼운 이불로 아이의 몸을 덮어 준 뒤 방에서 나왔다.
다음에 그녀가 향한 곳은 바로 옆에 있는 재하의 방이었다.
방에는 의자에 앉아 있는 김건과 어쩐지 방안을 거닐고 있는 재하가 있었다.
재하는 유미처럼 겁을 먹은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엄청나게 흥분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세라스 씨…… 강했어…… 그 늑대인간도…….”
“그 정도로 강한 사람은 본 적이 없어…… 선생님도, 현역 영웅이라는 사람들도 상대가 안 돼…….”
뭐라 중얼거리면서 계속 왔다갔다 방안을 누빈다. 주먹을 쥐락펴락하는 모습이 당장이라도 방방 뛰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런 재하를 바라보던 한서리는 조용히 앉아서 그를 지켜보고 있는 김건의 옆구리를 찌르더니 귀엣말로 물었다.
“왜 저래? 무슨 문제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지?”
김건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냥 흥분한 거야.”
“흥분했다고?”
“처음으로 겪은 실전의 공기에, 그리고 상상을 초월하는 강자의 모습에 자극받은 거지.”
“…….”
한서리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김건은 웃으며 그런 아내를 안심시켰다.
“괜찮을 거야. 나도 어렸을 때 저랬으니까.”
고개를 끄덕여 보인 그는 문득 재하에게 고개를 향했다.
“방에서 그러고 있지 말고, 나가서 좀 뛰다가 돌아와. 체육관에 다녀와도 좋고. 한창 몸에서 땀을 빼고 나면 좀 흥분이 가라앉을 거야.”
재하가 김건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리고 뭔가를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리고 재하는 바로 창문을 열고 2층 밖으로 뛰어내렸다.
“재하야!”
그 모습을 보고 놀란 한서리가 달려가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하나 재하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수풀에 숨겨 둔 신발을 신고 밖으로 달려가 버렸다.
척 보니 한두 번 저렇게 나간 것이 아니었다.
“이 녀석…… 위험하니까 뛰어내리지 말라고 했더니…….”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구시렁거리던 한서리가 째릿, 옆에 있던 김건을 쳐다보았다.
김건은 어깨를 으쓱였다.
“장난친답시고 전망대에서 뛰어내리는 사람이 할 소리는 아닌데.”
“난 어른! 재하는 애고!”
“애라도 타고난 재능이 있잖아. 재하한테 이 정도 높이는 침대에서 내려가는 거랑 별 차이가 없어. 겁을 먹으려야 먹을 수가 없지.”
“흥.”
한서리는 아들 대신 변명을 하는 남편에게 코웃음을 치면서 방을 나갔다.
계단을 내려가 거실에 도착하니, 소파에 앉아 탁자 위에 올려 둔 컵에 술을 따르고 있는 세라스가 보였다.
세라스가 컵을 흔들며 씨익 웃었다.
“여, 한잔해.”
한서리는 그 맞은편에 앉았다. 그러고는 처음으로 보는 술병을 들어 보였다.
“이건 또 어느 선계에서 구한 거야?”
평범한 병이 아니다. 마치 짐승의 이빨을 엮고 겹쳐서 만들어 낸 것 같은 흉악한 생김새의 조형물이었다.
“수인의 세계에서 구했지. 건방진 그 녀석들도 이빨을 털어 주면, 곧장 고분고분해지거든.”
사나운 미소를 지어 보인 세라스는, 그러면서 술잔을 들이켰다. 그녀는 한서리와 김건의 잔에 술을 채우며 말했다.
“오늘 문제를 일으킨 물건도, 사실 거기서 구한 거야.”
“흠.”
“이건 뭐야? 냄새가 너무 독한데?”
술잔을 든 김건이 질색을 했다. 한서리는 별생각 없이 세라스를 따라 술잔을 기울였다.
그리고 토했다.
“커헉! 컥!”
활활 타는 횃불을 통째로 입안에 쑤셔 박은 것 같았다. 조금 술이 입안에 들어온 것만으로도 목구멍부터 배까지 화끈거리며 짜르르 아파 왔다.
“괜찮아?”
기침을 하는 한서리의 등을 김건이 두드려 줬다.
세라스가 낄낄 웃었다.
“좀 많이 독해. 인간이 마시려면 마력을 써서 내장을 보호해야 할 거야.”
“제, 제기랄. 이딴 게 뭐가 좋다고…….”
“꽤 인간적인 반응이네. 아이들을 지키겠다고 시간 동결 마법까지 걸어 둔 분이.”
장난처럼 말하지만, 그 어투에는 질책의 어조가 섞여 있었다.
시간 동결 마법은 법칙을 깨트리는 금기 중 하나다.
너무 과한 수를 쓴 게 아니냐는 말에 한서리는 코웃음을 쳤다.
“뭐가 너무해. 그것만큼 확실한 게 어디 있다고.”
“그건 알겠는데…… 관리자 입장에서 별로 추천하고 싶지는 않아. 나야 괜찮지만 다른 녀석들은 불만을 가질 수도 있어.”
“제까짓 것들이 불만을 가져서 뭐 어쩔 건데.”
주도권을 쥔 주인격이 그리 말하자 세라스는 할 말이 없어졌다. 그녀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 그거야 그렇지.”
다시 한번 세라스가 술을 들이켰다. 그녀는 후, 술냄새가 섞인 숨을 내뱉곤 그대로 드러누웠다.
“나, 당분간 여기에서 신세 좀 질게.”
한서리는 활짝 웃었다.
“응. 안 돼.”
* * *
“왜, 왜 안 되는데에!”
단호한 거절에 세라스가 울상을 지어 보였지만, 한서리는 차갑게 말했다.
“되야 하는 이유는 뭔데? 머무를 장소라면 얼마든지 구해 줄 수 있어. 호텔이든, 별장이든, 펜트하우스든, 그런데 그 많은 선택지를 두고 우리 집에 빈대 붙으려는 이유가 뭐야?”
“장소가 문제가 아니야. 누구랑 같이 있느냐가 중요한 거지! 너랑 여행한 것까지 합쳐서 10년을 방랑 생활을 했더니 사람 냄새가 그리워 미치겠단 말이야. 평범한 가정집이 좋아. 혼자서는 살기 싫어!”
울화를 쏟아 낸 세라스가 벌컥벌컥 술을 들이켰다.
쾅-! 소리를 내며 잔을 내려놓은 그녀는 문득 슬픈 표정이 되어 읊조렸다.
“에휴, 그래. 내가 나가 죽어야지. 가족도 버리고, 일도 버리고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여정에 어울려 줬더니, 일 끝나니까 그냥 나 몰라라 하네.”
“…….”
또 한번 술잔이 기울고 한탄이 흘러나왔다.
“언니는 그 꼴이 되어 버렸고, 남자도 못 찾았으니 내가 누구랑 살겠어. 그래, 그냥 혼자서 살아야지. 맞이해 줄 가족도, 상냥한 남편도, 돌아갈 집도 없는데. 그냥 호텔방에 틀어박혀서 햄버거나 시켜 먹어야지. 나 같은 노처녀가 따뜻한 밥 먹어서 뭐 하겠어?”
아주 온갖 궁상은 다 떨고 있다.
한서리는 혀를 쯧쯔 차며 저것 좀 어떻게 해 보라는 듯이 옆에 앉아 있던 김건을 돌아보았다.
“응?”
하지만 어느새 움직였는지, 김건은 이미 도망쳐 버린지 오래였다.
그러고 보니, 다시는 자신과 세라스의 술자리에는 끼지 않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한서리는 앓는 소리를 내며 이마를 붙잡았다.
슬슬 취기가 오르는 모양이다. 세라스는 이젠 컵을 놔 두고 병나발을 불며 폭음을 하기 시작했다.
거칠게 비어 버린 병을 내동댕이치며 소리친다.
“너무해, 너무하다고! 내가 그동안 얼마나 많이 도와줬는데! 빈대 취급이나 하고!”
흰 얼굴이 홍당무가 됐다. 혀가 꼬부라지고, 붉어진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야! 야! 조용히 안 해? 위층에서 애 자는데!”
“으허어엉! 내가, 내가 애들 선물 마련하려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그, 그 알 훔치려고 머리칼을 몇 번을 태워 먹었는지 알아? 그런데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고, 친구한테 잘해 줘 봐야 다 소용없다니까! 엄마아! 엄마아! 나 서러워서 이렇게는 못 살아아!”
오랜 여정으로 완전히 정신을 놔 버린 모양이다.
저 꼴을 보고 대체 누가 저 여자가 인간을 초월한 화신이며, 선계의 관리자, 그리고 지금은 수많은 차원을 호령하는 최강의 전사 중 한 명이라고 상상할 수 있을까.
‘다 내 잘못이지.’
한서리는 대성통곡을 하는 세라스를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