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희망
결국은 정품을 구매하였다.
혹시나 대체품이 안 되면, 정품을 또 사야하는데 그게 더 부담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렉오 지압기]는 정말 대단한 재능이었다.
렉오를 바닥에 깔아놓고 걸어 다니는데,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오늘 하루 힘들었던, 온몸의 피로가 전부 다 풀렸다.
핸드폰의 촬영 화면에 젋은 남성이 웃으며, 렉오 블록 위를 걷고, 눕고, 심지어는 뛰는 장면이 보였다. 나중에는 렉오 블록위에서 뒹굴었다.
사방으로 렉오 블록 조각이 튀었지만, 표정은 아주 천진난만 하다.
“여러분! 이 렉오 블록은 정말 최고입니다. 온몸이 아주 시원하네요. 건강에는 역시 렉오 지압기입니다. 영상을 재미있게 시청하셨다면, 좋아요 와 구독을 눌러주세요. 알람 설정도 부탁드립니다.”
촬영과 관계없이 너무나 시원하고 좋았다. 침대위에 렉오를 뿌려둘까?
찍은 영상을 송이에게 전송하고, 렉오 블록위에 편하게 누워있었다.
그러다가 그 편안함에 스르르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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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를 찾기 위해서 열심히 돌아다닌 며칠이었다.
하지만, 쉽사리 퀘스트는 발생하지 않았고, 나는 심각하게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활동 반경을 넓혀야 하나?’
너무 우리 동네만 돌아다닌 것 같다.
퀘스트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어야 생성되기 때문에 내일부터는 지하철을 타고 조금 더 먼 곳 까지 돌아다녀야겠다.
그렇게 렉오 블록에 누워 생각을 하다 또다시 스르륵 잠이 들었다. 렉오 블록에만 누우면 너무 편안해서 잠이 온다.
[깨톡!]
깨톡 소리에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다음날 아침이었다.
‘어휴. 내가 너무 피곤했었나보네. 자는 줄도 모르고 자버렸잖아’
그래도 렉오 블록 위에서 잤더니 온몸이 개운했다. 내가 가진 재능 중에서 가장 좋은 것 같다.
기지개를 켜고, 깨톡을 확인하니 동생이었다.
-천송이 : 오빠!!! 탄산 회사들에서 오빠 영상 트워트랑 우리스타에 올렸어!! 지금 완전 핫 해!
서둘러 너튜브에 접속해보니 구독자 10만에 영상 시청 횟수는 1,200만이 넘어가고 있었다.
세계적인 대기업들이 한 번씩 언급해주니 전 세계로 자동 홍보가 된다.
[깨톡!]
-천송이 : 수익 창출 되면 영상 올리려고 했는데, 안되겠어. 다음 영상 바로 올린다!!
-나 : 그래! 송이 너가 알아서 해.
내가 시스템을 얻은 건 정말 천운이었다. 이제야 내 이름이 효과를 발휘한 것 같다. 그동안은 정말 하늘의 미움을 받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들 정도로 모든 일이 안 풀렸었다.
이제는 열심히 퀘스트만 해내면 된다. 내 삶에도 희망이 보인다.
물론, 실상은 쓸모없는 재능들을 소모하기 위해서 선택되었지만, 모르는 게 약이다.
다시 퀘스트를 얻기 위해서 길을 나섰다. 혹시 사람들이 알아볼까봐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도 썼다.
‘이래서 연예인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힘들어하는 구나. 그 심정을 이제야 알겠네.’
그러다가, 문득 현실을 깨닫고 모자와 마스크를 벗어버렸다.
‘별 것도 아닌 내가 연예인병에 걸리려고 하네. 사람들의 관심은 정말 기분을 들뜨게 하는구나.’
그래도 여전히 기분은 좋았다. 기분 좋은 마음에 노래를 흥얼거리며 지하철 입구로 들어갔다.
‘오늘도 퀘스트를 받기위해 거리를 배회하는 킬리만자로의 백수를 보았는가! 바람처럼~ 왔다가~’
옆 동네에서 내려 노래를 흥얼거리며, 거리를 걷던 중이었다.
‘띠링’
“그렇지!! 역시 멀리까지 온 보람이 있구나!”
[퀘스트 발생 - 고양이가 무서워서 지나가지 못하는 아이를 도와주시오. 제한시간 1시간]
정말 귀여운 퀘스트였다.
귀여운 아이와 귀여운 고양이는 못 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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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아저씨.”
귀여운 꼬마 아이가 구십 도로 배꼽인사를 해왔다.
“괜찮아! 괜찮아!”
열심히 손을 흔들어주며 인사를 해주었다.
인사를 해주는 내 얼굴에는 선명하게 발톱자국이 그어져 있었다.
“무슨 고양이가 완전히 맹수네! 맹수야! 와~ 그냥 죽는 줄 알았네.”
이 거리의 제왕인 녀석에게 잘 못 걸린 것 같다. 번개처럼 빠르고 강했다. 나는 눈빛으로 제압을 하려고 했지만, 고양이는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고 공격을 해왔다.
사실은 멍하니 바라보다 한 대 얻어맞은 것이지만.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50만원과 최하급 재능 ‘제기차기의 달인’을 습득하였습니다.]
이건 뭐지? 제기 차기? 달인이면 엄청 대단한 거 아닌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민속놀이 세트를 사서 테스트를 해보았다.
“아.. 이건 최하급 재능이 아닌데? 특급 아냐?”
테스트를 해본 결과, 이게 왜 최하급 재능인지 이해가 안 되었다.
제기차기를 내 체력이 다 할 때까지 떨어트리지 않고, 계속해서 할 수 있었다.
우선은 최상의 컨디션으로 영상을 촬영하기 위해서 렉오 블록위에 누었다.
한 숨 자고 일어나면 개운해질 것 같았다.
고양이한테 맞은 얼굴이 너무 화끈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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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힐링입니다. 오늘은 제가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운동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바로! 제기 차기입니다.
제기 차기는 우리나라 한국의 전통 민속놀이입니다.
그럼 바로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탁! 탁! 탁! 탁!.........]
안정된 자세로 계속해서 제기를 찼다.
차고, 또 차고, 여전히 차고.
거의 30분 정도를 찼다.
그리고, 발을 바꿔서 또 찼다.
20분 정도를 더 차다가 이제는 양발을 번갈아가면서 찼다.
그렇게 10분 정도를 차니, 이제는 정말 한계가 왔는지 발이 올라가지를 않는다.
거의 한 시간을 찬 것 같다.
“헉.. 헉.. 제 체력이 이 정도여서 여기 까지만 하도록... 우욱..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헉.. 헉..”
너무 힘들어서 구독과 좋아요를 눌러달라는 멘트도 하지 못하고 꺼버렸다. 잘못했으면 구독이 아니라 구토를 할 뻔 했다.
나중에 송이보고 자막으로 넣어달라고 해야겠다.
내 영상의 특징은 편집으로 자르지 않는 것이다. 편집이나 합성 논란이 나오면 안 되기 때문이다.
렉오 블록위에 쓰러져 있는데, 연락이 왔다.
[깨톡!]
-천송이 : 오빠! 이제 수익 창출 됨. 그리고, 두 번째 고추냉이 영상도 대박남.
핸드폰으로 내 영상을 찾아보았다.
-야. 이건 백퍼 합성이다.
⌎ 저거 마트에서 파는 치약임.
⌎ 치약도 저렇게 먹으면 토한다.
-저거 집에 있는 거랑 똑 같은 거 있어서 살짝 입맛 대봄
⌎ 어떻게 됐는데?
⌎ 코에서 정수리까지 고속도로 뚫림
-따라했다가 지금 천국을 보고 왔다.
⌎ 따라한 2인
⌎ 따라할까 망설이는 3인
⌎ 따라하다 죽은 4인
⌎ 그걸 왜 따라하냐고! 미친 ㅋㅋㅋㅋ
⌎ 호기심이 사람을 죽이는 거지
도대체 따라하는 사람들은 뭐지? 아무튼, 이번에도 대박이네! 벌써 구독자가 30만이다. 구독자 10만 명 이상이면 실버버튼인데, 진짜 시작하자마자 실버버튼으로 시작하는 구나.
이러다가는 실버버튼 뿐만 아니라, 골드 버튼도 노려볼 수 있겠다.
“정말 다행이다.”
사실은 아직도 실감이 잘 나지 않고, 언제 이 행운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본능적인 두려움도 항상 가지고 있었다.
이대로만 계속 문제없이 가고 싶다.
지금까지는 노력해도 되는 게 전혀 없는 삶이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노력뿐이어서 그것에만 매달렸었다.
그런데, 지금은 노력을 하면 그 대가가 따라온다.
그 사실이 너무나 행복하다. 노력하면 결과가 나온다는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았던 현실이 있었기에.
그러다, 문득 아버지가 생각났다. 믿었던 친구에게 사기를 당해 모든 것을 잃어버린 아버지.
조그마한 중소기업을 운영하시던 아버지가 회사도 잃고, 집도 잃어버렸다.
나도 막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라, 정확한 것은 모르지만, 엄청나게 큰 금액의 빚이 생겼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개인파산을 신청하면 어느 정도는 빚을 청산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아버지께서는 자신을 믿고 빌려준 지인들의 돈은 꼭 갚고 싶다고 개인파산을 포기하셨다.
그리고는 사채업자들을 피해 엄마와 몰래 떠나셨다. 고등학생인 나와 초등학생이었던 송이를 두고서.
아직도 아버지와 엄마를 이해할 수는 없다. 지인들의 빚을 갚기 위해서 자식들을 방치해 놓은 것인데, 나라면 그럴 수 있을까 싶다.
지금은 내가 모르는 이유가 더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아버지와 엄마가 떠났을 때, 엄청나게 원망을 했었다.
무서운 아저씨들이 매일 찾아오고, 집 앞에 세워놓은 차에 항상 그 아저씨들이 타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학교를 갈 때면 학교 앞까지 따라오기도 하고, 그걸 계기로 끔찍한 일도 겪었다. 나의 평범했던 학창 시절은 아버지의 사기 사건과 함께 끝이 났다.
그때부터는 하루하루가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나날들이었다. 부모님의 품이 그렇게 큰지를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머리가 조금 굵어지면서부터 부모님한테서 독립하고 싶다는 생각이 생겨나던 시기여서 잘 해낼지 알았다. 우리를 놔두고 떠나신 부모님에게 보란 듯이 잘 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모두 나의 착각이었다.
먹고 사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동생의 보호자가 되어야 했고, 내 스스로의 보호자도 되어야 했다.
심지어는 쓰레기봉투 하나도 어떻게 사는지 몰랐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사회에 던져져 버렸다.
하지만, 한 달에 한 번씩 무슨 일이 있어도 항상 보내주시는 돈 100만원과 공중전화로 오는 전화 한 통화를 통해서 부모님이 우리를 버린 게 아니라는 희망을 계속 가지고 살 수 있었다.
너무 힘들었지만, 나보다 더 힘든 목소리의 아버지의 통화를 들으면 나는 웃는 목소리로 괜찮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얼마 전 통화에서는 아버지가 희망에 찬 목소리로 이제 얼마 안 남았다는 말을 하셨다.
이제 나도 너튜브로 돈을 벌게 되었으니, 같이 힘을 합친다면 우리 가족도 같이 살 수 있게 될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다.
떨어져 지낸지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어도, 우리는 여전히 가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