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6/170)

면접자를 도와라.

‘띠링’

퀘스트와 함께하는 상쾌한 아침이다. 오랜만에 집에 있는데도 퀘스트가 발생하였다.

“이번에는 어떤 퀘스트일까나?”

퀘스트를 완료하면, 돈도 벌고 재능도 얻을 수 있으니 신이난다.

한 건당 50만원이면 정말 최고의 직장이다.

실적이 곧 돈이다! 달라!! 나에게 일거리를!

[퀘스트 발생 - 얼룩이 생긴 옷 때문에 면접을 망칠까봐 고민인 면접자를 도와주시오. 제한시간 3시간]

아.. 이건 좀 까다로운 퀘스트다.

결국은 옷을 빌려주라는 이야기인데, 상대방이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모르고, 체형이 어떤지도 모르는데 무작정 옷을 들고 갈 수도 없다.

결국은 미리 면접자를 확인해본 후에 옷을 구해서 전달해야 한다. 거기에 시간도 3시간이면 굉장히 빠듯하다.

그 면접자에 대해서 알아보고, 맞는 옷을 사고, 다시 전해주는 과정이 꽤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결국, 스피드만이 살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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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한 마음에 택시를 탔다. 아무래도 퀘스트를 완료하고 받는 돈은 이런 상황을 위한 최소한의 활동비 명목인가보다.

퀘스트가 가리키는 곳은 삼성동이었다. 택시에서 내려서 주변을 확인해보나, 퀘스트가 가리키는 방향은 대룡제약 빌딩이었다.

“대기업 면접인가 보네. 부럽다. 내가 꿈꾸었던 일을 도와주는 건가?”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못 들어가십니다. 방문증 받아오세요.”

방문증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다니. 그런데, 프론트에서는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방문증을 줄 수가 없다고 한다. 아는 사람도 없고, 방법이 마땅치가 않다.

어쩔 수 없이 나의 비상한 머리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내가 안 써서 그렇지, 쓰면 좋은 머리다.

“아...아저...읍!!! 씨... 제가.. 정말...살려주...세..요..큽!!!!”

“아.. 아니. 그래도 방문증이 없으면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지..금.. 지금!!! 나온다!!! 나와!!! 아!!!”

“어?? 어? 아니죠? 어? 빨리!! 빨리 들어오세요!”

나의 완벽한 연기력에 사람들의 시선이 몰려들고, 당황한 경비 아저씨가 황급히 자신의 신분증을 찍고, 들여보내 주셨다.

“화장실만 얼른 다녀오셔야 합니다!”

경비 아저씨가 신신당부를 하셨다. 여차하면 따라올 기세다.

“네.. 네.. 정말.. 흡!! 감사.. 합!!! 니다...”

혼신의 연기로 아저씨에게 신뢰감을 주고, 혼자서 화장실 쪽으로 뛰어갔다.

그렇게 화장실 쪽으로 가다가 순식간에 비상구로 몰래 들어갔다.

“휴.. 다행이다. 아까 면접장이 10층이라고 붙어있었는데. 어휴.. 오늘도 계단 타야 되나?”

그래도 이번에는 운동화를 신고 와서 한 결 수월하다.

요즘 들어 강제로 운동을 해서인지, 10층까지 그나마 수월하게 올라왔다.

비상구 문을 살짝 열고 밖을 살펴보니, 면접자들로 보이는 인원들이 쭉 앉아 있었고, 퀘스트가 가리키는 사람을 찾을 수 있었다.

‘다행히 남자다!’

다행이었다. 남자면 그나마 나은데, 여자한테 다짜고짜 옷을 건네면 불필요한 오해를 받을 것이다.

남자의 바지에는 얼룩 자국이 심하게 생겨있었고, 표정은 죽을 것 같이 울상이었다.

‘얼추 체형이 나랑 비슷하네. 이럴 줄 알았으면 쓰지도 않는 내 정장을 가지고 올걸 그랬네.’

목표를 확인했으니 바지를 사러 가야겠다.

이번에는 당당하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로비로 내려가니, 아까 그 경비아저씨가 화난 얼굴로 기다리고 있었다.

“화장실 간다는 사람이 어딜 다녀오시는 겁니까? 어서 나가세요!”

“예! 예! 죄송합니다. 1층에서 화장실을 못 찾아서요.”

“어서 나가요!!”

아무래도 믿지 않으시는 것 같다. 더 화내시기 전에 빠르게 건물을 빠져나왔다.

서둘러 대룡제약 건물을 나와 옷 가게를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옷가게는 보이지 않았고, 시간만 흐를 뿐이었다.

대로변을 돌아 코너를 도니 바로 보이는 매장이 보였다. 명품 매장 [둘째 애는 가져봤니].

“여긴 아닌데.. 안 되는데...”

시간이 없다. 우선 들어가 보자. 설마 아무리 명품이어도 싼 건 있겠지. 이월 상품이나.

“어서 오세요.”

명품 매장이어서 그런지, 후줄근한 내 모습에도 친절히 인사를 해왔다.

“네. 혹시 바지만 살 수 있을까요?”

“네. 고객님.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조심스러운 내 물음에도 직원분은 웃으시며, 친절히 안내를 해주셨다.

“여기서부터 신사 정장 바지입니다.”

“네. 조금 둘러볼게요.”

“그럼 필요하신 것 있으시면 불러주세요.”

마지막까지 친절하다. 너무 친절하니 부담스럽네. 안 사가지고 나가면 왠지 죄책감이 들 것 같다. 이집 장사 잘하네.

어디. 색깔은 검정색으로, 가격이? 가격이!!!!

[1,520,000]

내가 잘못 봤나? 어디 옆에는

[2,370,000]

어... 0이 하나 더 붙어 있는 것 같은데? 하나같이 인쇄가 잘못된 것 같다.

“저기.. 저기요?”

“네. 고객님.”

“혹시 검정색에 가장 저렴한 바지가 있을까요?”

“음... 이건 어떠신가요? 고객님?”

[520,000]

“이것보다 더 싼 건 없는 거죠?”

“네. 고객님. 이게 가장 대중적인 가격입니다.”

말도 예쁘게 잘 돌려서 이야기 해주신다.

“이걸로.. 주세요...”

“네. 고객님. 포장해 드릴까요?”

“아니요. 그냥 쇼핑백에 넣어주세요.”

부들부들 떨며 체크카드를 드렸다.

“결제 완료 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고객님.”

“네. 안녕히 계세요.”

적자다. 퀘스트 완료비용이 50만원인데, 쓴 건 52만원이다. 그리고 택시까지 탔는데, 정말 눈물 난다.

“가자!! 늦기 전에 빨리 끝내고 한 건 더 하러가자!!”

돈보다는 재능이 더 중요하니 기운내자. 완전 적자는 아니다! 나에게는 재능이 있지 않나! 파이팅!!

그런데, 자꾸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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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 아저씨는 교대도 안하시네. 이번에는 화장실도 못 써먹겠는데, 이제 시간도 별로 없고. 방법이 없나?”

어쩔 수 없다. 이제는 타이밍 싸움이다.

최대한 경비 아저씨 눈에 안 띄게 숨어 있다가 타이밍을 잘 맞춰보자.

“자..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사람들이 다 내렸으니까. 이제 타기 시작하고, 지금이다!!”

전속력으로 뛰기 시작했다. 목표는 닫치기 일보직전의 엘리베이터.

미친 듯이 뛰는 나를 보며 경비아저씨가 잠시 멈칫 하더니 소리 쳤다.

“거기!! 거기 멈춰요!! 멈춰!!”

보안 설비를 뛰어넘고 아슬아슬하게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리고 닫힘 버튼을 연타했다.

[타타타타타타타!!!!]

“헉! 헉! 헉! 죄송합니다.”

엘리베이터에 탄 사람들이 전부 한 쪽 구석으로 피해있다.

문득 엘리베이터에 설치 된 거울을 본 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이해하게 되었다.

복장은 츄리닝, 얼굴에는 고양이 발톱 자국. 위험한 사람으로 보였다. 아니면, 미친놈이거나.

조용히 10층 버튼을 누르고, 벽만 쳐다보고 있었다.

중간에서 사람들이 전부 내리고 나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계속해서 올라갔다.

그런데, 이상하게 중간에 다른 층들 버튼들이 눌려져 있었다.

“뭐지? 누가 장난쳤나?”

미친 사람을 피해 전부 내렸다는 것은 생각지도 않은 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10층에 도착한 나는 바로 내려서 시간을 확인 했다.

아직 퀘스트 완료 시간까지 15분이 남았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 바지가 얼룩진 퀘스트의 남자에게 쇼핑백을 내밀었다.

“어? 뭔가요? 이게?”

당황한 남자가 쇼핑백과 나를 번갈아 보며 물어봤다.

“안녕하십니까. 사단법인 [친구]에서 나왔습니다. 면접을 보시는 분들 중에서 곤란한 분들을 도와주는 단체입니다. 같은 면접자 분들 중에서 저희에게 연락을 주셨습니다. 도움이 필요하다고요.”

“아... 네.. 정말 감사합니다. 누군지는 몰라도 정말 감사합니다.”

다른 면접자들을 향해 열심히 인사를 하고 있었다.

“저기 혹시 모르니 연락처 하나만 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너무 감사해서 감사 인사라도 꼭 하고 싶습니다.”

“저희는 심부름꾼 역할이기 때문에 잘 모르겠습니다.”

“그럼. 그쪽 전화번호라도 주시면 안 될까요? 정말 감사해서요. 제가 합격하면 꼭 연락드리겠습니다.”

“아.. 네. 그런데 제가 펜이 없어서요.”

거절하기 위해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을 내뱉었다. 아주 적절한 핑계거리라며 나 스스로 칭찬을 하고 잇었다.

“여기 펜 있습니다. 이걸 쓰세요.”

옆에서 지켜보시던 면접진행 사원께서 친절히 펜을 빌려주신다. 이러시지 않으셔도 되시는데.

“어? 감사합니다. 여기 제 번호로 적어드릴게요.”

너무 당황해서 진짜 내 번호를 쇼핑백에 적어주었다.

“그럼. 면접 잘 보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훈훈한 장면에 면접자들의 인상도 한결 따뜻하게 풀려갔다.

“저기다!! 거기 꼼짝 마!!”

아이고! 빠르기도 하셔라. 그래도 이미 전부 다 끝났으니 순순히 잡혀야겠다.

“여기까지 어떻게 올라오셨어요? 제가 어련히 찾아갈 텐데, 어서 가시죠!”

경비 아저씨의 팔에 팔짱을 끼고, 같이 걸어갔다.

“어? 어?? 아니. 당신을 체포해야 하는데?”

“얼른 가시죠! 근무 시간에 자리를 비우시면 안 되죠!”

황급히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 로비로 내려왔다.

그리고 바로 쫓겨났다.

“다시는 여기 올 생각 하지도 마! 경찰 안 부른 걸 다행으로 알라고!”

“네. 감사합니다. 덕분에 좋은 일 했습니다.”

경비아저씨에게 구십 도로 인사를 드리니, 당황해 하신다.

그래도 뿌듯하다. 비록 나는 실패한 길이지만, 대기업 입사를 도와준 것만으로도 뿌듯함이 몰려왔다.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50만원과 최하급 재능 ‘양파는 울지 않아요’를 습득하였습니다.]

음.. 양파는 울지 않지.. 대신 내가 울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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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이 지났다.

[양파는 울지 않아요]라는 재능은 별거 없었다. 양파를 써는 데 하나도 눈이 맵지 않은 것뿐이다.

별거 아닌 게 아닌가? 아무튼 양파를 좀 사와야겠다. 이번 영상은 양파 썰기 스페셜로 가면 될 것 같다. 요리하는 남자는 항상 섹시하지.

[띵동!]

나의 문자 메시지 알림 소리였다. 뭐지? 대출 안내 문자인가?

-도움을 받았던 면접자입니다. 덕분에 무사히 면접을 볼 수 있었습니다. 비록 면접에는 붙지 못하였지만, 이 세상이 아직 따뜻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도 나중에 다른 사람들을 돕고 싶네요.

어? 음? 면접을... 떨어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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