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7/170)

작지만 큰 베푸는 기쁨.

“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 힐링입니다. 오늘은 잔잔한 쿡방입니다.”

멘트를 마친 나는 도마에 양파를 올려놓고, 썰기 시작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스스로 요리도 하고, 동생 밥도 챙겨주다 보니 수준급의 요리 실력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탁! 탁! 탁! 탁!]

경쾌한 소리와 함께 양파가 잘려나간다.

양파 한 개가 순식간에 썰려나가고, 이어서 또 하나가 순식간에 해체되었다. 연이어서 5개의 양파를 썰었더니, 양파를 담은 그릇이 가득 찼다.

“그냥 쿡방이신줄 알았죠? 이제부터 진짜입니다.”

송이가 내 얼굴을 줌으로 잡아주기 시작했다. 나는 양손으로 썰어놓은 양파를 집어 들고, 눈을 비비기 시작했다.

한참을 비비고 손을 내렸는데, 두 눈이 멀쩡했다.

[양파는 울지 않아요]재능의 위력이었다.

“이번에도 절대 따라하시면 안됩니다. 재미있게 보셨다면 좋아요 와 구독 부탁드립니다. 알람 설정도요.”

“컷!! 아주 좋았어.”

물안경을 끼고 있던 송이가 기분 좋게 컷을 외쳤다. 동영상 촬영을 멈추고는 물안경을 벗었다가 기겁을 했다.

“오빠! 얼른 환기 좀 시키자. 눈이 너무 매워!”

“잠시만 참아. 내가 정리 할게. 아! 아니다. 잠시 나갔다가 와. 정리 다하면 내가 전화할게.”

“아니야. 같이.. 엣취!!! 미안! 나갔다올게! 흐이잉!”

서둘러 핸드폰만 들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신기한 게 양파 냄새는 분명히 심하게 나는데, 눈이 하나도 맵지가 않았다. 썰어놓은 양파들은 비닐백에 넣어서 냉장고에 보관해놓고, 환기를 시키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냄새가 사라지자 송이에게 전화를 했고, 근처에 있었는지 바로 집으로 들어왔다.

“아직도 냄새가 나네. 어휴.. 그런데 오빠! 어디 뭐 아프거나 그런 건 아니지? 탄산도 코로 먹고, 고추냉이랑 렉오 블록까지. 전부 다 이상하잖아. 어디 신경이라도 끊어지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걱정마. 몰랐는데, 내가 이런 쪽에 재능이 있나봐. 하하하..”

뭔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송이지만, 뭐 퀘스트를 깨면 재능을 준다는 걸 말해봤자 믿지도 못할 거니까 그냥 대충 넘어가는 수밖에 없다.

“오빠. 그런데 실버 버튼은 오는데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아. 정확한 시간은 자기들도 잘 모르겠대. 아무튼 신청은 해놨으니까 기다리면 올 거야.”

“그런데, 이러다가는 골드버튼도 노려볼 수 있겠는데?”

“되면 좋겠지. 쉽지는 않겠지만. 골드버튼은 구독자가 백만인데 까마득하네. 오빠가 코로 탄산 100만 리터는 마셔야겠는데?”

그래도 구독자가 많이 늘어서 이제는 거의 40만에 육박한다.

“이제는 수익도 좀 나오지?”

“응. 그런데, 협찬이나 광고 요청이 들어오는데, 내가 이런 쪽은 아직 아는 게 없어서 잘 모르겠어. 아무래도 소속사를 알아볼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

안 그래도 이곳저곳에서 연락이 오고 있다. 처음 들어보는 기획사부터 제법 유명한 곳까지 다들 메일은 보내왔다.

“나한테 온 메일들 너가 한 번 검토해보고 괜찮은 회사 알아봐.”

“알겠어. 내가 알아볼게.”

“그래. 그리고 알아볼 때 너와 같이 계약이 가능한 곳으로 알아봐.”

“나도? 그래도 돼?”

“너가 우리 채널 운영자인데 당연하지. 수고해”

기분이 좋아진 송이가 나에게 손을 흔들어주고는 편집을 하러 기숙사를 향해 출발했다. 혼자남은 나는 렉오 블록에 누워서 피로를 풀기 시작했다.

‘아.. 편안하다. 마음이 편안하니 전부 다 편안하네.’

돈이 행복의 기준이 될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는 행복의 중요한 요소는 맞나보다. 먹고 사는 걱정이 줄어드니 세상 모든 것이 고맙고 행복했다.

취준생일 때가 얼마 전인데, 그때는 모든 것이 다 원망스러웠었다. 나만 왜 이렇게 불행한 건지, 신이 있기는 한 것인지, 있다면 나한테 왜 이러는지 궁금했다.

지금은 하루에 세 번씩 꼬박꼬박 염라 대왕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고 있다.

이런 나의 기도에 염라 대왕님이 응답을 해주셨다.

‘띠링’

[퀘스트 발생 - 아이가 잃어버린 500원 동전을 찾아주시오. 제한시간 1시간.]

제한시간이 1시간이다. 퀘스트 난이도보다 제한시간 짧은 게 더 압박감이 심하다.

‘급하다. 급해! 빨리! 빨리!’

급하게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달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주머니에 양파를 사고 남은 500원이 있었다.

‘이번에는 정말 쉽게 해결하겠구나! 하하하하’

뛰면서도 기뻤다. 나의 미래는 모른 채로.

퀘스트 네비게이션이 가리키는 아이가 보였다. 10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 아이가 허리를 숙인 상태로 바닥을 열심히 쳐다 보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너 혹시 500원 잃어버렸니? 형이 저쪽에서 이걸 주웠는데 네 것 맞지?”

내 말에 고개를 든 아이가 내 손에 있는 500원 동전을 바라보았다.

“제가 500원을 잃어버린 건 맞는데요. 그건 제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자신의 동전이 아니라고 선언한 아이가 다시 바닥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 이거 네 것 아냐? 진짜 주웠는데? 그런데, 네가 잃어버린 게 아닌지 어떻게 알아?”

시선은 계속해서 바닥으로 향한 채로 아이가 말을 하였다.

“제 것은 2012년도이구요. 아저씨가 보여 주신 건 1998년도 것이에요.”

아...년도를 외우고 계셨군요! 이런 영재 같으니!

“이건 비밀인데, 동전을 떨어트리면 막 년도도 떨어지고 그러는 거야. 이거 네 것이 맞아! 어서 받아”

“엄마가 남의 물건을 욕심내는 건 아니라고 했어요. 제가 찾아볼게요. 감사합니다. 아저씨.”

대한민국의 미래는 정말 밝구나. 어머니들도 정말 다들 대단하시다. 예솔이도 그렇고, 얘도 그렇고, 다들 너무 바르다.

“어느 쪽에서 잃어 버렸니?”

“어.. 이쪽 근방인 것 같은데요. 잘 모르겠어요.”

“같이 찾아보자.”

정말 쉽게 끝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제는 완료 시간까지 30분밖에 남지 않았다.

30분 동안 정말 최선을 다해서 찾아보았다. 심지어는 바닥에 엎드려서 고개를 땅에 붙이고, 옆면으로도 봐 보았다. 그래도 찾지를 못했다.

너무 바닥만 쳐다보니 목이 너무 뻐근하다. 엎드려서 열심히 찾다보니 지나가던 강아지가 친구인줄 알고 다가왔다.

“어머! 공주! 이상한 사람한테 가는 거 아냐! 이쪽으로 와!”

강아지의 주인분이 덕담을 해주신다.

‘아.. 이거 정말 못 찾겠다. 처음으로 퀘스트를 실패하는 건가? 그건 그렇다 치지만, 돈을 못 찾으면 애가 실망할 텐데...’

실망할 아이가 걱정이 되는 그때였다.

“어? 아! 여기 있었네!”

“찾았어? 어? 찾은 거 맞지?”

“네. 여기 찾았어요.”

손에 꼭 쥐고 있는 2012년도 500원이 보였다.

“와! 겨우 찾았네. 어디서 찾은 거야? 내가 근방 바닥은 전부 다 뒤져보았는데?”

“제가 주머니 말고 가방 앞쪽에 넣어놨었는데요. 착각 했었나 봐요. 주머니에 없어서 땅에 떨어진 줄 알았어요.”

아... 어... 음... 그렇구나. 어쨌든 찾았으니까 됐지 뭐.

“그래. 다행이다. 하하하....”

“아저씨. 제가 아이스크림 사드릴게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돈 찾았으니까 하나 사서 나눠먹어요.”

“아냐! 아냐! 형 돈 많아. 내가 사줄게! 가자! 아이스크림이랑 또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너 때문에 50만원이 생길 예정이란다.

내 말에 잠시 망설이던 아이는 조심스럽게 말을 하였다.

“주머니몬 빵이요.”

어?? 뭔 빵? 진짜 장안의 화제이구나...

“....가자. 형이 잘 아는 곳이 있어.”

==========

[딸랑]

“어서오세요~ 어? 형 또 오셨어요? 이번에는 정말 주머니몬 빵 없어요!!”

아이와 같이 들어가니 기겁한 알바 동생이 먼저 말을 하였다.

“어. 알겠어. 오 분 뒤에 차 들어오지? 1개 예약.”

“형.. 점장님한테 저번에 엄청 혼났어요. 제발 봐주세요.”

핸드폰을 들고 모바일 쿠폰을 보내주었다.

[띠링]

“응? 뭐지? 형 이거 뭐에요?”

“일하다 힘들면 뭐라도 먹으라고.”

“하... 알겠어요. 고마워요. 형”

“그래. 잠깐 아이스크림 먹으면서 기다릴게.”

아이와 함께 아이스크림을 골라서 계산을 하였다. 그런데, 쌍둥이바를 고른 아이가 조심히 반으로 자르더니 하나를 알바 동생에게 주었다.

“감사합니다. 형. 이거 드세요.”

“어? 어. 그래. 고마워.”

역시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다. 그런데, 그거 내 돈으로 산 아이스크림인데? 내 돈으로 생색내는 거냐?

그런데, 아직도 아이의 이름도 모르고 있었다. 편의점 앞 파라솔 의자에 앉아서 물어봤다.

“그런데, 너 이름은 뭐야? 아직 이름도 모르고 있었네. 나는 천운이라고 해.”

“저는 오룡 초등학교 3학년 2반 김준석입니다.”

바르다. 정말. 나중에 내 아이도 이렇게 바르게 크면 좋겠다. 귀여운 모습에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

[딸랑]

“형. 이거 진짜 마지막이니까 제발 이제 그만 찾아요.”

“진짜 고맙다. 건강 조심하고, 다음에 놀러올게.”

“네. 형. 다음에 놀러오세요. 주머니몬 빵 사러오지 마시고.”

알바 동생의 귀여운 투정을 뒤로하고, 준석이에게 주머니몬 빵을 주었다.

“감사합니다. 형. 다음에 봬요.”

“그래! 조심히 들어가!”

나의 화려한 말솜씨에 아저씨라는 호칭에서 형으로 바꾸는데 성공하였다.

오랜만에 정말 기분이 좋은 하루였다. 평소에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동생에게 큰 금액은 아니었지만, 모바일 쿠폰을 보내줄 수 있었다.

내가 여유가 없으니, 고마운 일이 생겨도 고맙다는 말 외에는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비록 적은 금액이었지만 선물을 하고 나니, 너무나 행복했다.

이런 기분은 정말 처음이었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했는데, 내가 기분이 좋다니 이상했다.

처음으로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이유가 바뀌었다. 그전에는 그냥 힘든 삶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으로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남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많은 돈을 벌고, 많은 사람을 도와주고 싶어졌다.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50만원과 최하급 재능 ‘개 사료는 내 밥’을 습득하였습니다.]

감동에 젖은 내 마음을 무참히 깨버리는 저 재능은 뭐지? 오늘 개처럼 기었다고 저런 재능을 주시는 건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