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영향력.
결국 마트에서 개 사료를 샀다. 그것도 종류별로.
개 사료가 그렇게 종류가 많고, 비싼 줄 처음 알았다. 너무 많은 종류가 있어서 가장 대중적인 10가지 종류만 사왔다.
“오빠.. 이건 아닌 것 같아. 아무래도 이건 아냐.”
“이거 어차피 사람도 먹을 수 있는 성분들로 이루어져있대. 너무 걱정하지마.”
사람들을 많이 도와주고 싶다. 그러려면 돈이 많이 필요하다. 돈은 너튜버로 벌 수 있다. 고로 먹어야 한다. 개 사료라도.
기적의 삼단논리로 나 스스로를 설득하고 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도 촬영 준비를 열심히 하는 내 동생 송이는 이제 프로가 다 되었다. 자랑스럽구나. 내 동생.
“포장지 보이면 광고 말 나오니까 그냥 접시에 담아서 하자.”
“어. 그래. 그게 좋겠다.”
단단히 정신무장 중이어서 대충 대답을 하였다. 아무리 열심히 내 스스로를 세뇌해보고 있지만, 역시 쉽지는 않은 일이다.
“오빠. 다 됐어. 이제 시작하자. 첫 번째부터 앞쪽에 이름 써놨으니까 잘 보고 해.”
“어. 그래. 알겠어.”
“큐!!”
“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 오늘은 평소에 제가 정말 궁금한 내용을 가지고 와봤습니다.
여러분들은 궁금하지 않으셨나요?
우리의 반려견들이 먹는 저 사료가 맛이 어떤지, 식감은 좋은지, 정말 맛있어서 먹는 건지!
문득 든 생각에 이번 컨텐츠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컨텐츠는 생활정보! ‘우리 개가 가장 좋아하는 사료는?’ 입니다.
제 앞에 총 10종류의 사료가 있습니다. 이제부터 제가 순서대로 먹어보고, 그 맛을 표현해보겠습니다.”
평소보다 너무나 긴 멘트는 개 사료를 먹기 싫은 내 마음이라고 생각하면 오해다. 꺼림칙했던 내 마음은 개 사료를 본 순간 입안에 침이 고이기 시작했다.
첫 번째 아리젠.
[오도독! 오독!]
“음~ 사람 입맛에는 그냥 밍밍하고 그럴 수 있는데, 이건 강아지 입맛에는 고급 진 맛이 나는 것 같네요.
마치 프랑스 파리에 있는 오래된 빵집에서 갓 나온 바게트 빵에 크림을 살짝 얹어 한 입 하는 느낌이랄까요?
이건 대형견들보다는 시츄같은 소형견 애들 입맛에 맞을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오카리나.
[오독! 오독! 오독!]
“오~ 이건 굉장히 풍부한 풍미가 나는군요! 이건 칼로리 소모가 많은 비글이나 슈나우저 같은 아이들이 좋아 할 것 같습니다.
부작용으로는 에너지가 넘쳐서 악마견이 대 악마견이 될 수 있다는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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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은 무사히 끝났다. 그런데, 조금씩 먹었는데도 배가 꽤 부른다.
“이거 맛있네. 나는 이게 제일 낫다.”
간식 먹듯이 열심히 먹고 있는 건 첫 번째 아리젠.
“나는 소형견 체질인가 봐”
“오빠. 이제 그만 좀 먹어. 지금 굉장히 이상하거든?”
“어? 어? 내가 계속 먹고 있었어?”
무의식중에 계속 먹고 있었나보다. 그래도 맛있네.
[개 사료는 내 밥] 재능은 개 사료를 먹을 때, 내 입맛을 강아지들의 입맛에 맞춰주는 것이다.
10가지의 사료들을 맛을 보고, 맛 평가와 추천하는 강아지 종을 말해주었다.
그런데, 이걸 찍을 때만 하더라도 그냥 그저 흔한 컨텐츠로 생각하고 찍었는데, 후폭풍이 장난 아니었다.
-야~ 이제는 하다하다 개 사료 먹방이라니, 먹방계의 빌런이네
⌎ 지금까지 컨텐츠는 다 따라 해봤는데, 이건 도저히 못하겠다.
⌎ 아니. 다른 것도 다 정상이 아닌데, 따라했다고???
⌎ 전 세계에 미친 사람들은 여기 다 모이나봄.ㅋㅋㅋㅋ
-그런데, 추천해주신 사료, 우리 애한테 먹여봤는데 정말 좋아하던데요?
⌎ 애한테 왜 먹여! 개 사료인데!!
⌎ 윗님. 애가 강아지를 말하는 것 같아요.
⌎ ㅋㅋㅋ 네. 우리 애기가 시츄인데 추천한 사료 먹였더니 너무 좋아했어요. 원래 먹던 건 입도 안 댐.
-이거 진짜임. 우리 개는 대형견인데, 추천한 사료로 바꿔줬더니 먹는 양이 두 배가 됨. 사료비도 두 배....
⌎ 저희랑 똑같네요. 원래 꺼 남아서 줬더니 쳐다도 안 봄
-이정도면 그냥 김형옥 사육사님하고 같이 먹방 해도 될 듯 ㅋㅋㅋ
⌎ 김형옥 사육사님은 강아지 교육하고, 힐링님은 강아지랑 먹방하고?
⌎ 컨텐츠 하나 나왔네 ㅋ
너튜브가 난리가 났다.
그리고, 내가 리뷰한 제품들을 판매하거나 관련 된 회사들의 주식이 일제히 오르기 시작했다.
이제는 내가 하는 컨텐츠들을 따라하거나 리뷰해주는 너튜브, 트워트, 우리스타그램 인플루언서들이 늘어나고 있다. 나는 인정하지는 않지만, 송이 말로는 사회적인 유행을 선도해가는 인플루언서가 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보다 더 난리가 난 건 바로 송이였다.
“오빠. 이제는 진짜 나 혼자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상황이야. 광고 전화가 너무 많이 와서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어. 빨리 소속사를 알아보자.”
“그래. 얼른 알아봐. 너 얼굴이 반쪽이 됐어. 다크 서클도 심하다. 판다인줄.”
“이게 다 오빠 때문이야! 왜 개 사료를 먹어가지고. 에휴..”
“어..미안.”
내가 사과해야 하는 일인가? 처음에는 인간이 할 짓이 아니라는 반응이었는데?
렉오 블록위에 앉아서 남은 개 사료들을 먹고 있었다.
‘이게 바로 힐링이구나.’
편안한 의자와 맛있는 간식이라니 최고의 조합이다. 이런 나를 송이가 이상한 눈으로 보고 있었지만, 나만 좋으면 되지 뭐.
부모님 문제와 학창 시절에 겪었던 힘든 일, 취업 문제까지 겪다보니 원래의 밝은 성격이 많이 위축되어있었지만, 이제는 여유가 생기다보니 어렸을 때의 성격이 나오기 시작했다.
느긋하고, 낙천적인 내 성격.
‘아.. 이대로 한 숨 자고 싶다.’
‘띠링’
아.. 정말 좋았는데.. 하지만, 내 여유의 원천인 퀘스트는 무조건 최우선이지. 무슨 퀘스트려나?
[퀘스트 발생 - 놀이터에서 혼자 노는 아이와 놀아주기. 제한시간 3시간]
우리 동네 공식 퀘스트 해결 유니폼인 츄리닝을 입고,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한 운동화를 신은 다음, 집을 나섰다.
“송이야. 오빠 일이 있어서 나갔다올게. 너도 대충 정리하고 기숙사 가. 나머지는 내가 치울게.”
“네. 아. 그건 제안서를 보내주시면 검토하고 다시 말씀드릴게요. 네. 네.”
통화하느라 많이 바쁘네. 소속사 계약을 서둘러야겠다.
퀘스트 네비게이션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어가니 동네 아파트 놀이터가 보였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3시간 안에 해결하는 게 아니라, 세 시간을 놀아줘야 하나보다. 그럼 우선은 같이 놀 수 있는 것들을 문방구에서 사고, 놀이터로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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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이름이 뭐야? 아이스크림 하나 먹을래?”
편의점에서 산 아이스크림 하나를 내밀고, 말을 걸었다. 그네에 앉아있던 9살~10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 아이가 나를 쳐다보며 말을 하였다.
“송정이요. 아이스크림 고맙습니다.”
“아. 송정? 형은 천운이야. 여기서 혼자 뭐해? 놀고 있어?”
“송정 아니고, 송 정! 이! 요.”
“어? 아. 미안.”
다시 그네에 앉아 바닥만 바라보며 우울해 하고 있었다.
“뭐 특별히 할 거 없으면 형이랑 이것 좀 할까?”
미리 문방구에서 사온 민속놀이 세트를 보여줬다.
“어? 같이 해도 되요?”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아이의 눈동자가 조금씩 흥미를 보이고 있었다.
“그럼! 이런 건 같이해야 재미있는 거야!”
“감사합니다.”
“그럼. 너 공기놀이는 할 줄 아니?”
“학교에서 조금 배웠어요!”
“그래? 그럼 내가 먼저 한다!”
내가 한때는 동네에서 공기의 신이라고 불렸다. 그래도, 애인데 조금 살살 해줄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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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조금 배웠다고 하지 않았니? 응?”
이빨이 부러지지 않을까 싶도록 꽉 깨물며 말을 하였다. 어떻게 조금 배웠다는 애가 1단계부터 나이 먹기 까지 다이렉트로 성공해버렸다.
핸디캡을 준다고 정이한테는 10살만 해도 된다고 했는데, 한 번의 시도에 연속으로 성공을 해서 끝내버렸다.
재도전, 삼세 판, 7판 4승제까지 우겨봤지만, 정이가 공기를 잡으면 그대로 끝이었다.
“너 자꾸 반칙 쓰고 그러면 안 돼! 손가락은 오므려야지!! 너 반칙패야!! 반칙패!!”
“네. 그럼 다시 할까요?”
“아니! 딴 거 하자. 딴 것도 해봐야지! 오늘은 형이 공기 컨디션이 아냐! 그래! 저거! 비석치기 해보자.”
“저건 안 배워봤는데요?”
오! 제대로 골랐다.
“형이 친절히 알려줄게! 처음에는 이쪽에다가 요거 나무판을 세우고, 반대쪽 선에서 던지면 돼. 원래는 돌로 해야 재미있는데, 요거 민속놀이 세트에 있는 이 나무판으로 하면 돼”
민속놀이 세트에는 똑같은 모양의 나무판이 몇 개 들어 있었다.
“자. 요렇게 던지면 팍!! 아.. 아쉽다! 아무튼 이렇게 던져서 쓰러트리면 1단계야! 우선 해보자!”
“네. 한 번 해 볼게요”
[휘익!! 팍!!]
“어? 이러면 된 거죠? 그 다음은 뭐에요?”
얜 뭐냐? 뭐 운동선수야? 뭐 이리 다 잘해?
“어? 어... 그 다음에는 동네마다 다르긴 한데, 우리 동네에서는 발등위에 올려서 걸어가다가 휙 던지면 돼. 이선은 넘으면 안 돼는 거야! 형이 지켜본다!!”
[저벅! 저벅! 저벅! 휙! 팍!!]
“다음은요?”
..... 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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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를 상대로 너무 흥분했나보다.
“다른 거 하면 안 될까?”
두 시간이 넘게 둘이서 여러 가지 게임을 했지만, 유일하게 내가 이겼던 게임은 가위 바위 보였다. 비록 한 번이었지만.
물론, 제기차기를 하면 무조건 이기겠지만, 그건 반칙 같아서 같이 하지 않았다. 나의 마지막 양심이다.
“정이야. 다른 거 하자!”
“형. 이제 저 가봐야 해요. 엄마가 많이 기다리실 거예요. 저 아까 전에 학원가기 싫어서 있었던 거라서. 이제는 집에 가야돼요.”
“안 돼! 한 시간만 더 놀아주고 가! 이기고 가는 건 정말 안 되지!”
“가야 되는데...”
나의 눈물 나는 설득에 정이는 다시 게임을 시작했다.
‘이제 10분만 더 같이 놀면 퀘스트 클리어구나!’
사실 중간부터는 퀘스트 보다 승부에 집착하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었다. 정이가 간다고 말하니 그때서야 시간이 1시간 정도 남은 걸 알았고, 겨우 설득해서 같이 놀고 있었다.
“정이야! 송정이! 너 학원도 빼먹고 여기서 뭐해!”
“엄마! 어... 그게...”
끝판왕 등장이시구나.... 아직 나에게는 10분이 남아있습니다. 어머니.
“어머님. 안녕하십니까.”
“네? 누구세요? 우리 정이랑 뭐하시는 거예요?”
“아.. 저는 너튜브를 하고 있는 너튜버입니다. 사실은 정이가 민속놀이에 엄청난 재능이 있어서요. 잠깐 촬영을 좀 하고 싶습니다.”
“너튜버요? 채널 이름이 뭔데요?”
“한가로운 오후의 힐링 타임이라고 검색하시면 됩니다.”
“한가로운 오후의 힐링 타임이라.. 어! 구독자가 50만이 넘네요?”
“하하하. 네. 아직 초보입니다.”
다행히 구독자 수만 보시고, 영상은 안 보셔서 다행이다. 영상 보셨으면 코로 탄산 먹고, 고추냉이 먹고, 개 사료 먹고 이런 걸 보셨을 텐데, 그러면 바로 도망가실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정이가 이 민속놀이에 엄청난 재능이 있더 라고요. 그래서 영상을 촬영해서 좀 올리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네? 네. 뭐.. 잠깐이면 괜찮을 것 같긴 하네요.”
“네. 그럼 한 10분정도만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정이야. 지금까지 한 것들 다시 한 번 해보자.”
“형.. 진짜 너튜버에요?”
“맞아. 우선은 처음부터 다시 해보자. 공기놀이부터. 이제부터 촬영할 거니까. 진지하게 해야 돼”
“네. 형!”
지금까지 했던 모든 민속놀이를 다시 한 번씩 해 보았다. 정이 뒤에서 내가 제기차기 하는 모습도 배경으로 같이 촬영했다. 물론 촬영은 정이 어머님이 해주셨다.
“감사합니다. 너무 영상이 잘 나왔네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건 출연료입니다.”
무슨 일이 있을지 몰라서 항상 봉투에 50만원을 챙기고 다녔다. 퀘스트로 받은 돈은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퀘스트 대상에게 필요한 게 있으면 사용하기 위해서이다.
“아니요! 출연료는 받지 않을게요. 우리 정이가 재능이 있다고 하기도 하고, 저렇게 신나하는 모습이 오랜만 인 것 같아서 허락한 것이니까요. 돈은 필요 없어요.”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왜 이렇게 다 바르지? 뉴스 보면 애들을 학대하고, 버리고, 돈 버는데 사용하고 하는 부모들이 많던데.
“그러시면 제가 정이 영상으로 버는 돈들은 정이와 제 이름으로 기부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건 괜찮으시죠?”
“기부요? 그건 좋죠! 그래주시면 감사하죠!”
“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정이야! 나중에 형네 놀러와. 재미있는 것들 구경시켜줄게”
오늘은 솔직히 내가 더 재미있게 논 것 같다. 어렸을 때 아무 걱정 없이 놀았던 그때가 기억나서 더 좋았다.
우리 송이 그네는 항상 내가 밀어주었었는데, 예전 생각이 난다. 오랜만에 그네 밀어주겠다고 하면 혼나겠지? 안 그래도 개 사료 먹을 때부터 나를 보는 눈이 심상치 않았는데.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50만원과 최하급 재능 ‘내가 기다리는 자리가 곧 빈자리’를 습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