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속사 계약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50만원과 최하급 재능 ‘내가 기다리는 자리가 곧 빈자리’를 습득하였습니다.]
뭐지? 무슨 재능인지 전혀 모르겠다.
저 재능의 성능을 알게 된 건 며칠 후, 지하철을 이용했을 때였다.
2호선 지하철. 지옥철의 대명사. 가득 찬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갔는데, 다음 정류장에서 바로 내 앞에 앉아계시던 분이 내렸다.
‘오~ 오늘은 뭔가 되는 날인가보다.’
3호선으로 갈아탔을 때도, 한 정거장 지나니 바로 앞에 앉으셨던 분이 내리셨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올 때, 버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어김없이 내 앞에 앉아계신 분이 내리셨다.
“내가 얻은 재능 중에 이게 제일이다!!”
정말 최고의 재능이었다. 비록 돈은 안 되지만 대중교통에 내 전용 좌석을 등록한 것 같은 성능이었다.
그리고 정이의 민속놀이 영상은 송이에게 보내서 번외편으로 올렸다. 그런데, 영상의 반응이 심상치가 않았다.
갑작스러운 민속놀이 열풍이 일어나 버린 것이다.
문방구에서는 민속놀이 세트가 품절되었고, 인터넷으로도 전부 품절 사태가 이어졌다. 심지어 뉴스에서는 전통놀이 세트를 만드는 공장 사장님 인터뷰까지 실렸다.
“사업을 접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던 상황이었습니다. 아버지 때부터 내려오던 가업이라서 접지는 못하고, 빚으로 이어오던 사업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힐링님 사랑합니다.”
그리고, 너튜브와 트워트, 우리스타그램, 톡톡에서는 외국인들의 민속놀이 게임 영상이 계속해서 올라왔다. 문어게임 이후에 다시 시작 된 한국 놀이 컨텐츠의 부활이다.
연일 뉴스에서는 한국 민속놀이에 대해 나오고, 각종 예능 프로에서도 출연자들과 민속놀이를 하는 장면은 필수로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 민속놀이 열풍의 일등공신인 정이는 학교에서 최고의 인기인이 되었다.
“안녕하세요. 형. 형 덕분에 학교에서 최고로 유명해졌어요. 그리고 여기는 제 여자 친구요.”
“안녕하세요!”
“어? 어! 그래! 정이 여자 친구라고? 그래. 반갑다”
초등학생도 여자 친구가 있는데. 나는? 갑작스럽게 자괴감이 든다.
“형 저 이제 가볼게요. 둘이 데이트하기로 했거든요”
“어.. 어.. 그래... 부럽.. 아니! 형이 용돈 좀 줄게. 이걸로 맛있는 거 사먹어”
둘이서 꽁냥 거리며 걸어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오른손으로 눈물을 닦았다.
부럽네. 잘 사귀다가 확 헤어져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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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내가 몇 곳 알아봤는데, 여기가 제일 괜찮을 것 같아”
[예리 엔터테인먼트]
“너튜버들 소속사인거야? 처음 들어보는데?”
“여기가 처음에는 배우들만 소속되어 있었는데, 아이돌 기획사 하나를 흡수 합병했어. 그런데, 남자 아이돌 그룹인 스타즈, 여자 아이돌 그룹인 러브러브가 대박이 나서 지금은 엄청 커졌거든”
“그런데? 설마 나보고 아이돌을 하라고? 외모야 되겠지만 나이가...”
“아니! 그 얼굴로 무슨 아이돌이야? 그냥 좀 들어봐”
일이 많아지더니 많이 날카로워졌네. 우리 송이. 얼른 소속사와 계약을 하고, 일에서 해방시켜줘야겠다.
“어... 알겠어..”
얼굴 이야기를 하면 자신이 없어진다. 팩트 폭력! OUT!
“그곳에서 이제는 인플루언서 쪽으로도 사업을 넓히고 싶은가봐. 그래서 1호 너튜버로 오빠를 영입하고 싶대.”
“너튜버 관련해서 경험이 없다는 건데, 오히려 모험 아닐까?”
“거기 설명으로는 관련 업종 경력자들로 전부 셋업 해놔서 그런 걱정 안 해도 된대. 그리고 오빠가 1호니까 대대적으로 밀어줄 거라고 하더라고”
그러면 괜찮을 것 같기는 하다. 그런데, 뭔가 더 있는 것 같은 찜찜함이 있네.
인터넷에 [예리 엔터테인먼트]를 검색해보니, 소속 연예인 중에 박모겸이 있었다.
천송이의 최애 배우.
“박모겸과의 교제는 절대 허락할 수 없다.”
“어? 왜? 왜 안 돼?”
송이가 갑작스럽게 목에 핏대를 세우면 나에게 따지고 들었다. 박모겸 하고는 일면식도 없으면서 결혼 허락 받는 것 같네.
“그런 국보급 배우에게 너라는 오점을 묻히는 건 죄악이야”
“아! 무슨 소리야! 아무튼 그런 거 아니야!”
어렸을 때부터 내가 키워서인지 딸 같다. 정말 괜찮은 사람에게 시집보내야지. 아무나한테 보낼 수는 없다.
“우선은 미팅부터 해보자. 송이 너 말대로라면 우리에게도 좋은 기회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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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리 엔터테인먼트 너튜브 기획팀 팀장 나특]
엄청나게 긴 직함을 가지신 분이 나오셨다.
“안녕하세요. 힐링님. 너튜브 기획팀 팀장 나특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천운이라고 합니다. 힐링보다는 이름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아직은 많이 어색하네요. 이쪽은 제 동생 겸 채널 운영담당 천송이 입니다.”
“안녕하세요. 팀장님.”
“아! 이쪽이 저랑 통화하신 분이시군요. 목소리도 예쁘셨는데, 얼굴은 더욱 미인이시군요. 우리 회사 연습생으로 들어오셔도 되겠는데요?”
“하하하. 그런 소리는 꾸준히 듣고 있어요.”
천송이가 요즘 많이 힘든가보다.
“저 천운님? 저희 회장님께서 직접 뵙고 싶다고 하셔서 오고 계신대. 같이 봐도 될까요? 이쪽 사업에 관심이 아주 많으시거든요”
“네. 뭐. 저야 상관없죠.”
“혹시 사모님도 나오시나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사모님 팬이었는데요.”
송이가 기대에 찬 표정으로 팀장님에게 물어보았다.
“사모님? 사모님이 누구신대?”
“오빠! 오빠는 박예리 배우님도 몰라? 예리 엔터테인먼트에서 예리가 박예리님 이름을 따서 만든 거잖아. 회장님이 박예리 배우님 매니저로 시작하셨고, 배우 전문 기획사로 성공하셨어.”
나는 누군지 정말 모르겠다.
“하긴 오빠는 세상사 전부 관심 없이 살았었지. 학생때 그 놈만 아니었어도..헙!!”
“아무튼 유명하신 분인가 보네.”
송이의 말실수를 조용히 넘어가 줬다. 뭐 송이에게도 좋은 기억은 아니었을 테니까.
“박예리 배우님은 대한민국 남성들의 공식 첫사랑이자,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 국내, 국제 영화제란 영화제는 전부 다 수상 경력이 있는 퀸 오브 퀸! 이라고!”
“어머. 저를 이렇게 칭찬해 주시니 정말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헉!! 박예리 배우님? 꺅!! 정말 팬이에요!”
얼굴에서 빛이 나는 여성분과 커다란 덩치에 얼굴이 험악하신 남성분이 서있었다.
“안녕하세요. 최장군이라고 합니다. 여기는 제 와이프 박예리 배우입니다.”
“안녕하세요. 지금은 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주부에요.”
어디서 많이 뵌 분들인데, 누구시더라? 아!
“예솔이 어머님, 아버님?”
“하하하하. 기억하시는군요. 지난번에는 정말 실례가 많았습니다.”
“아.. 네.. 아니요. 괜찮습니다. 염라 대왕님과는 친분이 있어서요.”
“네? 무슨.. 아무튼 제가 저희 회사 1호 너튜버로는 힐링님이 제격이라고 생각해서 강력하게 밀어 붙였습니다.”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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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이 하나도 없는 미팅이었다.
예솔이 아버님이 기획사 회장님이신지는 꿈에도 몰랐고, 회장님이 나를 추천한 것이라고는 더욱 더 몰랐다.
그리고 그때는 다 못했던 예솔이의 자랑을 정말 열심히 하셨다. 예솔이 어머님이 말리지 않으셨다면 미팅 시간의 대부분을 예솔이 이야기만 하다가 끝났을 수도 있었다.
한 번만 봤던 예솔이 인데도 회장님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거의 내가 키운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계약서는 받아와서 변호사를 통해 검토를 받았다. 업계 표준보다 더 후한 계약조건이었고, 독소조항은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송이도 너튜브 기획팀으로 계약을 하였다. 우선은 내 채널관리를 계속하는 것으로 결정하였고, 영상 촬영과 서포트, 광고와 세금 관련한 부분은 회사에서 담당하기로 하였다.
회사에서 원하는 것은 소속 연예인들이나 새로 계약하는 너튜버들의 채널을 위해 합방이나 여러 가지 컨텐츠를 같이하며, 도와주길 바라고 있었다.
배우들의 경우에는 새로운 영화나 드라마를 시작하면 홍보 용도로 출현하고, 아이돌의 경우에는 조금 더 다양한 컨텐츠를 기획중이라고 한다. 뭐 아이돌들이 코로 탄산 먹는 그런 걸 하는 것은 아니겠지.
나는 퀘스트를 열심히 해서 재능을 얻고, 그 재능으로 너튜브만 잘 하면 된다.
‘띠링’
바로 이렇게! 자 이제 출동이다! 나를 퀘스트의 노예라고 불러다오!
[퀘스트 발생 - 이에 낀 이쑤시개 조각 때문에 괴로운 회사원을 도와주시오. 제한시간 2시간.]
제한시간이 2시간이지만, 그 전에 빼낸다면 실패가 될 수도 있다. 최대한 빨리 가보자. 우선은 편의점에서 치실 좀 사고 출발!
지하철로 2 정거장 거리였다. 평일 낮인데도 지하철에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하지만, 나에게는 엄청난 재능이 있다. [내가 기다리는 자리가 곧 빈자리]
고작 2 정거장이었지만, 앉아갈 수 있으니 정말 행복했다.
지하철역을 나오니 퀘스트가 발생한 건물이 바로 보였다. 건물을 들어가 엘리베이터에 타고, 5층 버튼을 눌렀다.
5층에 도착해서 엘리베이터를 내렸더니 퀘스트 장소가 보였다.
‘봄봄 패션이라. 저긴가 보네.’
다행히 사무실 문이 통유리여서 퀘스트 대상이 보였다.
‘아... 여성분이시네..’
굉장히 난감하다. 이대로라면 퀘스트를 성공하더라도 미친놈 소리를 들을 수 도 있다. 이제는 소속사도 생겼는데, 사회적인 평판도 신경써야한다.
사실은 민망해서 못하겠다. 다짜고짜 다가가서 치실을 주면 뭐라고 할지 뻔하다. 최소한 미친 인간이겠지.
우선은 작전상 후퇴. 건물을 나와서 주변을 빠르게 둘러보았다. 그때 내 눈에 보이는 [다 이쓰까] 매장.
‘저기다! 저기서 사야겠다.’
급히 뛰어 들어가서 아주 예쁜 선물 상자를 하나 샀다. 그리고 치실을 안에 넣고 다시 봄봄 패션 사무실을 찾아갔다.
[딸랑]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다들 일하느라 그런지 아무도 관심이 없다. 정말 다행이다. 퀘스트 대상자 분한테 다가가니 자리에 이름표가 붙어있었다.
[회계팀 대리 정미소]
이름이 예쁘시네.
“정미소 대리님?”
“네? 제가 맞기는 한데, 누구시죠?”
“아. 어떤 남자분이 이걸 전해달라고 하셔서요. 저는 심부름꾼입니다.”
“누가 주신 거죠?”
“이름은 밝히지 마시라고 하셔서요. 아무튼 전 분명히 전해드렸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뒤로 돌아서 나오는 내 뒤로 회사 여직원들이 정미소 대리님 자리에 모여드는 게 보였다. 막 환호하며 재잘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제발. 혼자 있을 때 열어 보시기를.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50만원과 최하급 재능 ‘실뜨기의 달인’을 습득하였습니다.]
실뜨기는 혼자 할 수 없으니 송이와 같이 하거나, 나중에 소속 연예인들과 하면 되겠다.
퀘스트를 완료한 기쁨에 흥얼거리며 건물을 빠져나오는데, 5층 창문이 열리며 정미소 대리님이 소리치셨다.
“이런 변태 새끼!!!”
그래도 치실은 사용하셨나보다. 퀘스트가 완료된 걸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