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1/170)

토네이도

간식으로 개 사료를 먹으며, 너튜브 영상들을 보고 있던 오후였다.

‘아. 매일이 오늘 같기만 하면 정말 좋겠다.’

너튜브 영상들은 재미있었고, 개 사료는 담백하니 계속해서 당기는 맛이었다.

[오독. 오독. 오독]

“하하하하. 촛불을 코로 끄네. 나도 나중에 한 번 해봐야겠다. 관심영상으로 저장하고.”

‘띠링’

[퀘스트 발생 - 바지에 오줌을 싼 초등학생을 도와주시오. 제한시간 3시간.]

“어? 바지에 오줌? 아. 이건 빨리 처리해줘야겠다.”

퀘스트 네비게이션이 작동하자마자 황급히 뛰어갔다. 초등학생인 아이에게는 너무나 당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헉. 헉. 헉. 저기구나.”

퀘스트 네비게이션은 골목길의 구석으로 나를 이끌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구석에 쪼그려 앉아있는 아이가 보였다.

내 생각보다는 큰 아이였다.

어떻게 말을 걸어야할지 잠시 망설여졌다. 아주 어린 아이였다면 오히려 쉽게 말을 걸 수 있었겠지만, 초등학생이어도 고학년이면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는 문제여서 잠시 멈칫했다.

그런데, 인기척이 들리자 나를 쳐다본 아이는 눈물이 가득한 얼굴로 나에게 말을 걸어 왔다.

“도와주세요. 아저씨.”

“어. 그래. 우선 아저씨 집으로 가서 씻고 옷도 좀 갈아입자.”

“네....”

우리는 서로 아무 말 없이 집까지 조용히 걸어왔다.

나는 무슨 말로 위로를 해야 할지 난감해서 말을 못하였고, 아이는 딱히 할 말이 없어서 말을 안 하는 것 같다.

그래도 무사히 집까지 도착해서 씻을 수 있게 화장실로 들여보내고, 내 추리닝도 빌려주었다. 아이에 비해 옷이 많이 크지만, 아이의 옷이 마를 때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고맙습니다. 아저씨.”

“아니야. 별거 아닌데 뭘. 그런데 이름이 뭐야?”

“오룡 초등학교 6학년 3반 한정후입니다.”

역시 근처에 있는 오룡 초등학교 학생이었다. 6학년이 바지에 실수를 했으니 얼마나 창피했을까. 그런데, 나를 어떻게 믿고 도움을 요청했는지 의문이다.

“그래. 나는 천운이라고 해. 반갑다.”

“알고 있어요. 너튜버잖아요.”

“어? 알고 있었어? 어떻게 알고 있지? 신기하다.”

아직까지는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을 만나면 신기하다.

“우리 학교에 송정이라고 민속놀이 하는 영상 찍은 애 있어서 유명해요.”

아. 정이가 같은 학교였구나. 하긴 근방에 초등학교는 하나뿐이니 초등학생 대부분이 같은 학교일 확률이 높긴 하겠다.

“그렇구나. 배는 안고프니? 뭐라도 해줄까?”

“괜찮아요. 도와주신 것만 해도 정말 감사합니다.”

이전부터 느꼈지만, 요즘 아이들은 정말 예의가 바르다. 부모님한테 잘 배운 건지 학교에서 잘 배운 건지 모르겠다. 뭐 둘 다 일수도 있지만.

“그래도 뭐라도 먹어야 할 시간이야. 잠시만 앉아있어. 형이 금방 해줄게.”

고등학생 때부터 나와 동생의 밥을 하다 보니, 간단한 요리는 금방 할 수 있다. 맛은 그냥저냥 이지만.

금방 오무라이스를 해서 같이 나눠먹었다. 그런데, 굉장히 잘 먹는다.

“더 먹을래? 형꺼 남았는데.”

“감사합니다.”

넉살도 좋고, 인성도 바르다.

“그런데, 너튜버는 어떻게 될 수 있는 거예요?”

“왜? 너도 관심 있니?”

“네. 저도 너튜버 채널 있는데 구독자가 30명 정도밖에 안돼요. 어떻게 해야 잘 하는지 모르겠어요.”

사실 나도 어떻게 해야 잘 되는지 모르겠다. 나야 워낙에 특이한 것으로 시작해서 이슈가 되었고, 운이 따라줬을 뿐이다.

“음. 다른 사람들이 어떤 영상을 올리는지 연구도 해보고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너가 좋아하고 잘하는 걸 올리는 게 제일 중요할 것 같다.”

뭐. 잘 될지는 솔직히 운이 많이 작용하겠지만, 일반적인 대답밖에 해줄 수 가 없었다.

“네...”

무언가 실망한 표정이다. 아마 노하우를 비밀로 하는 게 아닌지 생각하나보다.

“그럼. 오늘 형이랑 같이 영상 촬영해볼래? 촬영해서 나랑 너랑 각자 채널에 올리는 거야. 어때?”

“와!! 진짜요? 완전 좋아요!!”

“그럼 장비 셋팅 좀 할게. 잠시 쉬고 있어.”

“네!”

얼마 전까지 촬영하던 장비들을 셋팅했다. 뭐 조명 두 개하고, 셀카봉에 핸드폰만 장착하면 끝이다.

“다 됐다. 이리로 와봐.”

기다란 털실 뭉치를 들고, 정후를 불렀다.

“우선 촬영이 시작되면 인사를 하고나서 실뜨기를 해볼 거야. 너 채널명이 뭐야?”

“바람의 아들의 아들이요.”

그 야구 잘하던 바람의 아들의 아들과 이름이 같아서 그런가보다.

“그럼 너는 바람이라고 할게.”

“네.”

간단하게 멘트 연습을 하고, 촬영을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 오늘은 다른 너튜버와 합방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소개드립니다. [채널 바람의 아들의 아들]을 운영하는 바람님입니다.”

“안녕하세요. 바람입니다.”

같은 옷을 입고 서있는 우리가 조금은 웃겼지만, 참고 촬영을 계속했다.

“오늘 촬영하는 영상은 제 채널과 바람님의 채널에 같이 올라가게 될 겁니다. 바람님의 채널도 많이 구독해주세요.”

“구독 부탁드립니다.”

정후가 핸드폰을 향해 90도로 인사를 했다.

“오늘 컨텐츠는 저와 바람님이 실뜨기를 해볼 건데요.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그런 실뜨기가 아닐 겁니다. 기대하세요.”

“기대하세요!”

내 말을 따라하는 정후가 귀엽다. 잠시 핸드폰을 만져서 나와 정후의 손 부분이 더 잘 보이게 각도를 조정했다.

“자. 실뜨기 실이 생각보다 아주 길죠? 이제부터 잘 보셔야합니다.”

내 손이 현란하고 복잡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로켓이 만들어지고, 정후에게 로켓의 날개부분을 잡고 당기라고 하였다.

“우와!!”

정후가 잡아당기자 로켓은 비행기로 변하였다. 이어서 비행기의 머리와 꼬리 부분을 잡고, 다시 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 와!!!”

이번에 내가 만든 것은 멋진 스포츠카였다. 정후가 너무나 좋아한다. 나의 눈짓에도 스포츠카를 없애기 싫은지 잡아오지 않는다.

그럼 어쩔 수 없이 혼자 할 수 밖에.

혼자서 양손을 이용해 한손씩 주고받았다. 나무가 되었다가, 고양이가 되기도 하고, 어느새 배가 되어 있었다.

정후는 같이 해야 한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열심히 감탄만 하고 있었다.

“자! 이제 마지막입니다. 마지막은 바람님이 마무리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이쪽과 이쪽을 잡고 당기시면 됩니다.”

멍하니 감탄만 하던 정후가 내 말에 정신을 차리고 실뜨기를 잡아갔다. 그리고 조심히 양손을 당겼을 때, 정후가 너무 놀라며 좋아했다.

“마지막은 바람님의 얼굴입니다.”

섬세하게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누가 보아도 정후의 얼굴인지 알아볼 정도였다. 신기한지 자신의 얼굴모양만 바라보는 정후를 놔두고 마무리 멘트를 하였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알림 설정도요!”

촬영이 끝이 났다. 끝났는데도 정후는 자신의 손에 들린 얼굴모양이 흐트러질까봐 손도 움직이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택배 박스를 칼로 잘라 평평한 판을 만들어왔다.

“정후야 그거 여기에 조심히 내려놔봐”

내 말에 아주 조심히 박스판위로 자신의 얼굴 모양을 내려놓았다.

[찍! 찌이익!]

테이프를 이용해서 실뜨기 실을 박스 판에 고정해주었다.

“와! 정말 감사합니다. 이거 정말 최고에요.”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네. 그건 선물로 줄게. 그리고 핸드폰 번호도 주고가. 그래야 영상 주지. 참고로 편집은 하지 말고 올려. 조작 논란이 있으면 안 되니까.”

“네! 어차피 편집할 줄 몰라서 괜찮아요.”

어...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구독자님들 30명은 의리가 대단하네. 하하...

“옷도 이제 다 마른 것 같네. 가자. 형이 집까지 데려다 줄게.”

“네!”

어느새 잘 마른 옷으로 갈아입은 정후는 가방을 등에 메고 집에 갈 준비를 하였다.

“이건 선물이니까 영상 찍을 때 입고 찍어.”

빌려주었던 추리닝을 선물로 주었다. 내 너튜브 촬영 공식 복장이다.

“와! 정말 감사합니다. 형!”

어느새 처음에 부르던 아저씨가 형이 되었다. 처음에 어색하던 우리 사이의 분위기가 이제는 한 10년은 만나온 형, 동생같이 변하였다.

집을 나와 정후의 집으로 향하는 길은, 처음에 옷에 실수를 하고 우리 집으로 가던 그때와 너무나 달랐다. 서로 재잘거리며 웃고 장난을 쳤다.

의외로 나와 개그 코드가 잘 맞았다.

정후가 아재스러운 건지, 내가 초등학생 수준인지는 모르겠지만, 재미있었다. 나도 모르게 술 한 잔 하자고 할 뻔했다.

물론 정후는 콜 했을 분위기였지만, 잘 참았다.

“형! 오늘 너무 감사했습니다. 제가 구독자 많이 늘어나면 형 채널 홍보해 드릴게요!”

“어! 그래. 부탁 좀 할게.”

얼마 전에 구독자가 350만을 넘어섰다. 정후가 구독자 500만정도 되면 확실히 도움이 될 것 같다. 나 늙어 죽기 전에는 달성 하겠지.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50만원과 최하급 재능 ‘내 콧바람은 토네이도’를 습득하였습니다.]

어? 아까 보던 코로 촛불 끄던 너튜브 영상을 나도 촬영할 수 있겠다. 보상으로 주는 재능이 뭔가 내가 원하는 거나 필요한 것들이 나오는 건 아닌가 생각하게 만드는 재능이었다.

김상구 pd님께 다음 촬영 컨셉에 대해서 설명해드렸고, 드디어 촬영일이 되었다.

촛불 100개를 켜 놓고, 심호흡을 하였다.

‘반만이라도 꺼져라.’

촛불 100개를 보니 완전히 횃불 같다. 그리고 끝이 안 보인다. 재능 이름만 보고 허세를 부려 100개를 끄겠다고 했는데, 실제로 켜져있는 촛불들을 보니 무리인 것 같다. 하다못해 연습이라도 해보고 올 걸 후회되었다.

완전히 기대로 가득 찬 스텝들과 송이를 보니 못한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볼 수밖에.

“자! 이제 불어보겠습니다. 후우우우웁!! 크으으응!!!!”

[후아아앙!!! 콰당탕탕!!]

아무래도 내가 내 재능을 과소평가 했나 보다. 촛불이 꺼지는 게 아니라 전부 박살나서 날아갔다.

“이.. 이게 무슨...”

김상구 pd님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완전히 난장판이 된 초였던 것들을 바라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장면을 베테랑 카메라 감독님이 잘 잡아주셨다. 이번 영상의 하이라이트 장면이다.

“이건 말도 안 돼... 이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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