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타오르다.
송이는 생각보다 빨리 괜찮아졌다.
그동안 못한 이야기들을 매일 엄마와 함께했다. 같이 영화도 보러가고, 맛있는 것들도 먹으러 다녔다.
행여라도 다시 떠나실까봐서 잘 때도 꼭 옆에 붙어서 잤다. 그렇게 엄마와 송이는 서로에게 의지하며 상처를 치료해가기 시작했다.
“오빠 뭐해? 아까부터 계속 불렀는데!”
요즘 들어 나도 모르게 멍하니 있는 시간들이 늘어났다. 의식하지 않았을 때는 몰랐는데, 주변 사람들과 송이의 말로는 자주 그런다고 한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흐를 때가 있었다. 슬픈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도 그런다.
‘요즘에는 퀘스트가 발생하지 않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에 아직까지 한 번도 퀘스트가 발생하지 않았다. 내 마음과 정신 상태가 남을 도와줄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고 시스템이 알려주는 것 같은 기분이다.
‘아... 아무것도 하기가 싫다.’
삶의 의욕이 많이 없어졌다.
그전에는 어떻게든 돈을 벌어서 송이 대학생활도 문제없이 해결하고 싶었고, 부모님과도 같이 살고 싶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두 가지 문제가 해결되고 나니 의욕이 많이 떨어져버렸다.
이대로 그냥 쉬고 싶었다.
그러다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였다.
아침에 일어나는데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한 밤중인줄 알고 더듬거리며 일어나서 형광등 스위치를 눌렀는데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냥 일반적인 어둠이 아니었다.
눈을 감았을 때, 아주 살짝의 밝음이 느껴지는 그런 어둠이 아니었다. 정말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문득 두려움이 몰려왔다.
이대로 영영 눈이 안 보이는 건 아닌지 겁이 났다. 다행히 잠시 뒤 서서히 눈이 보이기 시작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너무나 큰 공포에 온몸이 땀으로 젖어있었다.
그날 바로 병원을 찾아가 검사를 하였고, 의사 선생님의 말씀으로는 스트레스로 인하여 몸의 호르몬 분비에 이상이 생겨서 일시적으로 눈 쪽 혈관이 막힌 것 같다고 하셨다.
잘못하면 영구적인 실명이 될 수도 있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하셨고, 기름진 음식은 되도록 피하고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고 하셨다.
너무나 두려웠던 경험이었다.
아버지의 죽음을 이겨낸 줄 알았다.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이 그렇게 나에게 큰 스트레스를 주고 있는지도 몰랐다. 엄마와 송이에게는 비밀로 할 수 밖에 없었다.
누구에게도 말 할 수 없었다.
‘띠링’
[연계 퀘스트1 ‘나를 도와주자’ 발생 - 산책하기. 제한시간 2시간.]
퀘스트의 대상자가 바로 나였다.
이런 종류의 퀘스트는 처음이다. 염라 대왕님도 내가 걱정되시나보다. 그래도 나를 걱정해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에 안도감과 고마움이 들었다.
집 밖을 나와 산책을 시작했다. 새로 이사 온 동네가 아니라, 원래 살던 동네로 갔다.
처음으로 받은 퀘스트 장소였던 버스 정류장.
두 번째 퀘스트 장소인 등산로 입구.
세 번째 퀘스트 장소인 할머니의 아파트.
그리고 놀이터까지.
지금껏 퀘스트를 진행했던 장소들을 바라보며, 생각에 빠져들었다.
예솔이의 귀여운 모습, 할머니의 미안하고 고마워하던 미소, 예의바른 오룡 초등학교 아이들.
누군가에게는 정말 작은 도움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작은 도움이 퀘스트 대상자들에게는 그래도 큰 도움이 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드니 마음이 조금씩 따뜻해져왔다.
솔직히 지금까지는 재능을 얻기 위해 퀘스트를 하였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퀘스트를 하며 내가 더 많은 도움을 받고, 마음의 상처들을 치료해 왔던 것 같다.
상처 받은 내 마음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살았었다. 그러다 퀘스트 덕분에 사람들과 소통하고 도움을 주고, 받았다.
나에게 이 시스템은 정말 행운이다.
‘띠링’
[퀘스트1 완료 - 연계 퀘스트2 ‘가족에게 직접 만든 식사 대접하기’. 제한시간 5시간.]
어느새 두 시간이 지나갔나보다.
이번에는 두 번째 연계 퀘스트가 발생하였다. 생각해보니 가족들이 다 모이고 나서 같이 식사 한 번을 못했었다.
송이와 엄마는 같이 외식도 하고 하였었지만, 무의식중에 나는 그걸 피해왔다. 아버지 없이 우리끼리 행복해 하는 것 같은 기분에 미안했었던 것 같다.
‘엄마 좋아하시는 된장찌개와 송이가 좋아하는 두부조림 해줘야겠다.’
마트에 들러 애호박과 대파, 두부 2모를 샀다.
집에 도착하니 엄마는 송이 학교에 가신 것 같다. 요즘에 항상 송이 학교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마중을 나가신다.
어렸을 때 못해준 게 마음에 걸리시나보다.
아무튼 다행이었다. 엄마가 계시면 본인이 하시겠다고 할 건데, 안 계시니 빨리 해야겠다.
두부조림부터 시작하였다.
두부를 한 입 크기로 썰어주고, 키친타월로 물기를 제거했다. 그리고 소금을 살짝 뿌려주었다.
다진 대파와 다진 마늘을 넣고, 고춧가루, 간장, 맛술, 설탕, 참기름을 넣고 섞어주었다. 살짝 맛을 보니, 양념장이 맛있게 완성되었다.
팬을 달구고 식용유를 넉넉하게 둘러주었다. 그리고 두부를 노릇노릇해질 때까지 부쳐주었다. 예쁘게 두부가 부쳐지고 나서 양념장을 숟가락으로 조금씩 고루고루 두부에 얹어 주었다.
그런 다음 물을 조금 부어주고, 중불로 달궈주었다. 중간 중간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서 두부에 끼얹어주니 우리 송이가 제일 좋아하는 두부 조림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우리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된장찌개를 할 차례다.
엄마는 특이하게도 그냥 된장에 애호박과 두부만 넣고 끓이는 것을 좋아하셨다. 육수도 멸치 육수 같은 걸 넣으면 싫어하셨다.
어린 나이에도 너무나 특이해서 기억하고 있었다.
물을 냄비에 중간정도 넣고, 된장을 풀어주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MSG 살짝. 엄마의 비법이었다.
잘라놓은 호박을 넣고 푹 끓였다.
다 끓고 나서 마지막으로 두부를 넣고 조금 더 끓였다.
조금은 심심하지만, 깔끔한 맛의 된장찌개가 완성되었다.
이제는 우리 가족이 다 모일 때까지 쉬면된다. 혼자서 멍하니 앉아 있다 보니 현관문이 열렸다.
“어? 맛있는 냄새! 오빠 두부조림 했어? 된장찌개 냄새도 나는 것 같은데?”
“아들. 직접 한 거야?”
“그럼. 오빠가 하지 누가해?”
엄마는 아직도 나를 어린 아들로 생각하고 있었고, 송이는 어렸을 때부터 내가 밥을 해주다보니 인식의 차이가 컸다.
“우리 가족끼리 밥 먹고 싶어서요. 손들 씻고 오세요. 밥 퍼 놓을게요.”
식탁에 우리 가족이 모두 모였다. 코끝이 찡해온다. 이미 엄마는 눈가에 눈물이 맺히셨다. 잘 커준 아들의 모습에 감동하시고, 혼자서 고생했을 아들의 과거에 미안한 마음이신 것 같다.
“엄마 좋아하시던 된장찌개 끓여봤어요. 그 맛이 나는지 모르겠네요.”
눈가의 눈물을 손으로 훔치시고는 서둘러 숟가락을 이용해 된장찌개를 맛보셨다.
“음? 내가 한 거랑 똑같이 했네? 어떻게 이렇게 똑같지?”
“엄마 요리할 때 항상 뒤에서 구경했었잖아요. 그때 봐둔 거예요.”
“다 컸네. 우리 아들... 엄마가 너무 미안하다.”
“아니에요. 맛있게 드세요. 엄마”
“오빠! 오랜만에 먹으니까 너무 맛있다!”
두부조림 양념에 이미 밥을 비벼먹고 있는 송이가 밥알을 튀어가며 말을 하였다.
“밥 먹을 때 말하지 말라니까. 말 또 안 듣네.”
얼굴에 묻은 밥알을 엄마가 떼어주었다. 그 모습에 송이는 기분이 좋은지 씩 웃는다.
“아들. 아들도 어서 먹어.”
“그래 오빠! 얼른 먹어. 맛있어!”
나도 모르게 웃고 있었다. 간단한 음식들인데도 너무나 맛있었다. 문득 요즘 밥을 거의 안 먹었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허기가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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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더는 못 먹어.. 히잉 살찌겠다.”
“송이 너는 더 쪄도 돼. 너무 말랐어.”
엄마의 립 서비스에 진심인줄 알고 기뻐하는 송이였다.
“내일이면 굴러서 학교 가겠네.”
내 말에 도끼눈으로 나를 쳐다보지만, 너무 많이 먹어서인지 움직이기 귀찮은 송이가 화내는 것도 포기했다.
“저는 잠시 산책 좀 하고 올게요.”
“응. 그래. 조심히 다녀와.”
“오빠! 올 때 메롱바!”
철없는 동생의 주문을 귓등으로 듣고 집을 나섰다.
가족과의 식사는 엄청나게 행복하거나 기쁘지는 않았다. 그러나 무언가 잔잔하게 채워지는 기분이다. 자극적인 탄산 음료수가 아니라 담백한 누룽지를 먹은 느낌이다.
‘띠링’
[퀘스트2 완료 - 연계 퀘스트 마지막 ‘나의 너튜브 채널 감상하기’. 제한시간 3시간.]
전혀 예상하지 못한 퀘스트였다.
공원 벤치에 앉아 나의 채널을 보기 시작했다.
“크흐흐흡! 콜록! 아. 내가 봐도 웃기다. 김 pd님 표정이 정말 대박이네.”
마지막 업로드 영상인 콧바람으로 촛불 끄기였다.
처음부터 마지막 영상까지 순식간에 보았다. 그리고 영상에 달려있는 수많은 댓글들도 꼼꼼히 읽어보았다.
- 예전부터 느꼈지만, 힐링님은 사람이 아님.
⌎ o o. 사실은 사이보그임.
⌎ 뭔 소리야?
- 영상 보면 별거 아닌 것 같은데, 막상해보면 도저히 따라할 수가 없음.
⌎ 이거 인정.
- 이건 천재인가? vs 노력인가?
⌎ 천재지! 어딜 봐서 저게 노력으로 가능함?
⌎ 제기차기 봐라! 저건 평생 노력한 증거임!
⌎ 그냥 천재가 노력한 거라고 생각함
- 그런데 이번 영상은 너무 CG티가 나네.
⌎ 힐링님은 한 번도 영상 잘라서 올리지 않아.
⌎ ㅇㅇ. 그런데 이번 거는 의심됨.
⌎ 사람 콧바람으로 초가 날아가는 게 말이 됨?
⌎ 이거 비하인드 영상 올라왔다! ㅋㅋㅋㅋㅋ
⌎ 와! 영상 보니 진짜였네.
- 이번에는 pd 표정이 다함.
⌎ pd 표정 잼. ㅋㅋㅋㅋㅋ
⌎ 맞아! 저 표정 봐. ㅋㅋㅋㅋ
⌎ 이게 조작이면 저 pd는 남우주연상감이다.
댓글 하나하나가 전부 재미있었고,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다. 내가 하는 모든 영상들에 다들 관심을 가져주었다. 그 관심들은 구독자의 수로도 증명이 되었다.
구독자 750만.
시간이 지날수록 구독자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이미 코로 탄산 마시는 영상은 1억 뷰가 넘어갔다.
나는 몰라봐도 코로 탄산 마시는 영상은 누구나 한 번씩은 봤다. 그리고 온갖 패러디 영상들도 아직까지 올라오고 있었다.
‘아. 나는 정말 사랑받고 있었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너튜브에 내 영상을 올리면서도 그냥 와 닿지가 않았던 생각이었다. 내 영상이 인기가 많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내 영상의 댓글들을 보니 그렇지가 않았다. 나를 실제로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들인데도 나의 영상 하나 하나에 환호해주고 댓글을 달아주고 있었다.
‘더 열심히 해야겠구나. 정말 잘 해야겠구나.’
가족과의 식사로 잔잔하게 채워졌던 내 마음속의 무언가가 내 영상의 댓글들을 계기로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열심히 살고 싶어졌다.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최상급 재능 ‘위로의 목소리’를 습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