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덧
나를 도와주는 퀘스트 이후에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예전의 모습으로 빠르지는 않지만, 천천히 다시 변하기 시작했다.
퀘스트를 최선을 다해서 해결하고, 생긴 재능들을 이용해 너튜브 촬영도 정말 열심히 했다. 그리고 소속사 연예인과 직원들과도 많이 친해졌다.
이전에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했지만,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인맥을 넓히지 않았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일들을 겪고 나서부터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사람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아이돌 연습생들과 특히 많이 친해졌다. 혜미와 가끔 만나서 촬영을 하다 보니 친해지게 되었고, 연습실도 몇 번 놀러갔었다.
그런데, 더 친해지게 된 건 오히려 남자 아이돌 연습생들이었다. 특히 라이언이라는 18살 연습생과 많이 친해졌다.
내 너튜브 채널 초창기에는 내가 공부하며 듣는 음악이나 자연의 소리 같은 영상들을 올려놨었는데, 그때부터 구독자였었다고 한다.
100여명 정도였던 구독자 중에 한 명을 만나다니 기적도 이런 기적이 또 없었다.
연습을 하고 잠을 잘 때 틀어놓고 잤다고 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 영상들이 다 없어지고 코로 탄산을 먹는 영상이 올라와서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계기로 라이언에게 자주 놀러가게 되고, 놀러갈 때 빈손으로 갈 수가 없어 먹을 것들을 사가지고 가니 다른 연습생들도 나를 좋아하게 되었다. 뭐. 내가 좋은 건지 먹을 게 좋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대신 혜미가 많이 서운해 하는 건 약간의 부작용이다.
연습생들과 친해지다 보니 고민 상담도 많이 하게 되었다. 물론 내가 조언을 해줄 수 있는 경험도 없고, 입장도 아니어서 들어주기만 하고 힘내라고 한마디를 해주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내 힘내라는 말을 들은 아이들은 정말 힘이 나는 것 같다고 고맙다고 한다. 어쩌다보니 예리 엔터테인먼트의 비공식 멘탈 코치가 된 것 같다.
이게 전부 먹을 것과 최상급 재능인 [위로의 목소리]덕분이다.
최상급 재능은 정말 상상을 초월했다. 상대방의 마음까지도 움직일 수 있는 마법 같은 재능이다.
처음 보는 사람도 나와 대화를 하면 쉽게 마음을 열게 되고, 특히나 위로를 받게 되면 마음의 상처가 쉽게 아무는 것 같다.
퀘스트를 하다보면 상대방을 도와주는 일인데도, 초면에 불쑥 도와주겠다고 하면 상대방이 꺼려하는데, 이 재능을 얻고 나서부터는 조금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
너튜브를 하기 위해서는 최하급 재능들만으로도 충분했지만, 최상급 재능을 얻고 사용을 해보니 더 좋은 재능들을 얻고 싶어졌다.
‘열심히 하다보면 승급을 할 수 있다고 했지? 더 열심히 해야겠다.’
얼른 수습을 떼고 승급을 하고 싶다.
‘띠링’
[퀘스트 발생 - 입덧이 심한 임신부에게 사과를 사다 주시오. 제한시간 1시간.]
“한 시간! 뛰자!!”
아무래도 입덧중이어서 바로 먹지 않으면 입맛이 바뀌어버리나 보다.
“과일 가게! 과일 가게! 여기다!”
[개인 사정으로 인하여 오늘은 쉽니다.]
“아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하루 쉬면 단골들이 우수수 떨어진다고요!!”
어디로 가야하나? 아! 마트!!
“마트!! 마트!! 마트!! 왔다!!”
[지역 경제와의 상생을 위해 금일은 정기 휴일입니다.]
요즘 하는 일들이 전부 잘되다보니 잊고 있었는데, 원래 나는 항상 이랬다. 하는 일들마다 누군가가 장난을 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안 맞았다.
그러다 문득 내 눈에 호프집이 들어왔다. 아직 장사를 준비하시는지 분주하게 움직이시는 사장님의 모습이 유리창 너머로 보이고 있었다.
[딸랑!]
“아직 장사 시작 전입니다. 조금만 더 있다가 와주세요!”
“사장님! 혹시 여기 과일 안주도 있습니까?”
“있긴 한데, 아직 준비 중입니다. 조금 있다가 와주세요.”
“제 아내가 입덧이 심합니다! 지금! 바로! 사과가 먹고 싶다고 합니다! 과일가게랑 마트 다 문을 닫았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갑작스러운 나의 외침에 주방에서 아주머니가 황급히 나오셨다.
“어서 이리로 와!! 빨리!! 아이고! 애 가졌을 때 먹고 싶은 거 못 먹으면 평생 생각나! 나도 저 인간이 귤 먹고 싶다고 했는데, 술 먹느라 안 사다준 거 생각 하면! 아휴! 저걸 남편이라고!”
검정색 비닐봉지에 사과 세 개가 담겨있었다.
“감사합니다. 사모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여기 돈이요.”
오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내밀며 감사의 인사를 드리니 사모님이 말씀하셨다.
“됐고! 어여 가봐요! 먹고 싶은 시기 지나면 못 먹어!”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억지로 탁자에 돈을 놓아두고 황급히 뛰어 도망갔다.
==========
“헉!! 헉!! 헉!! 아직 안 늦었다!”
10분을 남겨놓고서 겨우 도착을 하였다. 집은 빌라의 1층이었는데, 전달해 줄 방법이 마땅찮았다. 뭐라고 하면서 줘야하는지가 문제였다.
아무리 위로의 목소리가 신뢰를 준다고 하더라도 최소한의 개연성은 있어야 된다. 뜬금없이 입덧 때문에 사과를 사왔다고 하면 믿지를 못할 것이다.
잠시 고민을 하다 집 앞에 있는 다있소에서 메모지와 볼펜을 사와서 황급히 글을 적고 검정 봉지에 넣어서 문 앞에 내려놨다.
그리고 벨을 눌렀다.
[지이잉!! 지이잉!!]
“누구세요?”
“남편 분 심부름 왔습니다. 문 앞에 놓고 갈 테니 가져 가세요.”
“남편이요? 이 시간에 뭘 보냈지?”
잠시 골목에 숨어서 지켜보니 문이 열리고, 임신부가 나와서 검정 봉지를 힘겹게 집어 들었다.
“아.. 이런 멍청이! 바닥에 놓으면 집기 힘드신데, 생각이 짧았네.”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50만원과 최하급 재능 ‘내 발가락은 손가락’을 습득하였습니다.]
먹고 싶은 사과를 드시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비록 힘들게 구한 사과였지만, 맛있게만 드신다면 다 좋다.
기쁜 마음에 콧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향하는 천운의 뒤로 빌라의 문이 다시 열렸다.
열린 문으로 임신부가 다시 나와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콧노래를 부르며 걸어가는 천운을 보았다. 임신부의 손에는 천운이 비닐봉투에 사과와 같이 넣어둔 메모지와 봉투를 들고 있었다.
천운이 빌라를 보았을 때, 넉넉한 살림으로는 보이지 않아 잠시 고민을 하다 넣어 둔 봉투였다.
요즘에는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항상 봉투에 50만원을 넣어 가지고 다니고 있었다.
어차피 퀘스트로 받을 돈이었으니, 내 돈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퀘스트 대상자들이 필요한 경우에는 그대로 드리기로 마음먹고 준비한 돈이다.
나는 재능만 받아도 충분하다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혹시나 돈 봉투를 받고 자존심이 상하실수도 있어서 잠시 고민을 하였지만, 이내 결심을 하고 메모지에 글을 적어 같이 드렸었다.
- 아이가 태어나면 예쁜 옷 사서 입혀주세요.
메모지와 봉투를 손에 꼭 쥐고, 추리닝 차림의 걸어가는 내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
집에 돌아와서 새로 얻게 된 재능을 실험해 보았다. 이름만 보아서는 발가락을 손가락처럼 사용이 가능한 것 같았다.
“오~ 써진다! 써져!”
놀랍게도 발가락으로 볼펜을 잡고 종이에 글을 써보았는데, 아주 예쁘게 잘 써졌다. 오히려 내 손으로 쓴 글씨보다도 더 예쁜 것 같기도 하다.
이어서 젓가락질도 해보았고, 컴퓨터 타자도 쳐보았다. 결과는 완벽 했다.
발가락으로 코도 팔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실패했다. 이유는 몸이 유연하지 않다는 것이다. 도저히 발가락이 코에 닿지 않아 포기했다.
그래서 송이에게 코 좀 파 봐도 되냐고 물어봤다가 발가락 골절상을 당할 뻔 했다.
그리고 너튜브 촬영 날이 되어 촬영을 하는데, 또다시 김상구 pd님이 믿을 수 없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이.. 이게 정말 가능한건가요?”
눈앞에서 보고서도 믿지 못하는 김상구 pd님이다.
나의 발가락을 이용한 종이접기에 너무나 놀라하셨다. 그래서 김상구 pd님의 얼굴을 발가락으로 그려주었다. 손으로 그린 것보다 훨씬 더 잘 그렸다.
자신의 얼굴 그림을 손에 들고 하염없이 보면서 헛웃음만 보이고 있었다. 역시나 오늘도 카메라 감독님이 직원들을 지휘해서 정리를 하셨다. 이러다가 pd님 자리 뺏기겠는데?
촬영을 온 김에 라이언을 보러 연습실에 들렀다. 한참 춤 연습을 하고 있어서 조용히 밖에서 유리문 너머로 춤추는 모습들을 보고 있었다.
확실히 아이돌을 꿈꾸는 아이들은 다르기는 하다.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데 한 명도 빠짐없이 칼 군무였다.
나는 군대에서 행군을 할 때 발맞추는 것도 힘들던데, 저 아이들은 손끝의 각도 하나까지도 정확히 맞추는 걸 보면 정말 대단했다.
그래도 저번에 퀘스트를 해결하고 받았던 [흉내쟁이]를 이용하면 따라 출 수는 있을 것 같다. 비록 기억력 때문에 하루를 못 넘길 테지만.
이 [흉내쟁이]라는 재능도 왜 최하급인지 모르겠다. 이정도 성능이면 최소한 중급은 되는 것 같은데, 최하급이다.
이 재능 말고도 [제기차기의 달인]이나 [내가 기다리는 자리가 곧 빈자리]는 결코 최하급의 재능이 아니었다.
거의 초능력에 가까운 능력을 주는 것인데, 최하급이라니 뭔가 이상했다.
[사실 재능을 만들던 염라 대왕이 실수를 해서 몇 개의 상위 능력들이 최하급으로 섞인 것이었지만, 그 사실은 알 수가 없는 천운이다.]
연습을 쉬는 시간이 되어서인지 다들 자리에 앉아 물을 마시고 있었다. 조용히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연습생들이 쳐다보았다.
“어? 형 언제 오셨어요?”
“와! 천운형이다!”
“어서오세요!”
앉아서 쉬고 있던 라이언이 쪼르르 달려와서 내 옆에 서서 말을 하기 시작했다.
“형! 지금 우리 라이브 방송중이에요! 인사 한 번 해주세요.”
연습생들도 인지도를 위해서 한 번씩 라이브 방송을 하는데, 그게 오늘이었나 보다.
거울 쪽을 바라보니 역시나 카메라가 보였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힐링입니다. 우리 아이들 잘 부탁드립니다.”
“우리 천운형. 아니. 힐링 형은 저희 연습생들에게는 산타클로스 같은 존재입니다. 항상 먹을 것도 사주시고 상담도 해주시거든요!”
“산타클로스는 아니구요. 택배 기사 같은 겁니다. 택배 오면 기분이 좋잖아요. 힐링 택배 왔습니다.”
들고 온 피자와 치킨들을 연습생들에게 내밀었다.
“역시!! 믿고 있었습니다!”
“와!! 피자!!! 달라!! 나에게!!”
단체로 어깨춤을 추며 피자와 치킨을 받아가기 시작했다. 뭔 어깨춤도 꺽기가 상당하다.
“체중 관리해야하니까 한 사람당 피자 한조각과 치킨 두 조각씩만 먹어. 콜라는 금지. 물 마시고.”
트레이너님이 먹깨비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넵!!”
본격적으로 먹방을 시작한 아이들이었다.
“형. 그런데 시청자님들이 형 춤을 보고 싶다고 하시네요! 부탁 드려도 될까요?”
“어? 내가 무슨 춤이야? 나는 국민체조도 엇박자 내는 사람이야.”
“네? 국민체조가 뭐에요?”
세대차이 나네.
“뭐 그런 게 있으니까 대충 넘어가자. 그런데 춤이라. 아까 추던 그 춤 춰도 되나?”
“그거요? 그 춤 완전 어려운데? 스타즈 선배님들 신곡 안무거든요. 지금 완전 히트이기는 한데, 춤이 너무 어려워요.”
아는 안무가 하나도 없다. 그나마 방금 봐두었던 안무는 [흉내쟁이]로 겨우 흉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는 춤이 없어서 그래. 그나마 이건 방금 너희들 추는 거 봐서 조금만 따라 해보려고.”
내 말에 라이언이 블루투스 스피커를 다시 켜고 음악을 플레이 시켰다. 우리 소속사의 성공한 아이돌 그룹인 스타즈의 신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경쾌하고 신나는 음악에 맞추어 연습생들이 추었던 그 춤을 따라 추기 시작했다.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눈을 감고서.
눈을 감으니 기억이 더 선명하게 떠오르고, 음악 소리가 더 잘 들렸다. 한참을 무아지경에서 춤을 추고 정신을 차려보니 음악이 끝나있었다.
어떻게 췄는지 잘 기억이 안나니 걱정이 되었다.
‘너무 엉망으로만 안 췄으면 좋겠는데. 얼마나 못 췄으면 아무 소리가 안 들리지? 안 틀리게 춘 것 같은데.’
조용히 눈을 뜨니 경악한 얼굴의 라이언과 연습생들이 보였고, 트레이너 선생님도 깜짝 놀란 얼굴이었다.
“와!!! 형 연습을 얼마나 하신 거예요? 완전 대박!!”
“최소한 한 달은 연습 하신 것 같은데요? 그런데 이곡은 나온 지 2주일째인데 미리 안무 보셨던 거예요?”
“어? 이거 아까 너희들 연습 하는 거 밖에서 봐서 따라 해본건대?”
“와! 천재였어. 거기다가 아까 눈도 감고 추시던데 그건 더 대박!”
“그러니까요! 어떻게 눈을 감고 균형을 잡으시지? 방향도 하나도 안 틀어지고. 와... 자괴감 든다.”
“형! 지금 채팅창도 난리가 났어요! 지금 시청자들이 엄청 늘어났어요! 와!! 3만 명 넘었다!”
뭔가 굉장히 큰 실수를 한 것 같다.
조용히 다가온 트레이너 선생님이 내 손을 잡아오며 말을 하셨다.
“아직 늦지 않으셨습니다. 우선 계약을 하시고 트레이닝 시작하시죠!”
이미 너튜버로 계약은 했는데? 혼란스럽다.
“장난들은 그만하시죠. 너무 부끄럽네요.”
“와! 역시 천재들은 일반인들의 마음을 몰라주네.”
“그러게. 완전 장난 아니었는데.”
가만히 놔두면 끝까지 물고 늘어질 것 같다.
“더 놀리면 이제부터 간식 없다.”
“헉! 입 다물겠습니다.”
“충성!!”
먹을 것으로 간단히 제압을 했는데, 트레이너 선생님이 문제이다.
“아.. 진짜 너무 탐나는데.. 회장님께 보고를 드려야 하나.. 아.. 고민되네.”
트레이너 선생님. 정신 차리시지요.
본의 아니게 아이돌 연습생 동생들의 자리를 뺏을 뻔 했지만, 조용히 무마되었다. 5만 명의 시청자를 남기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