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좋다.
‘띠링’
[퀘스트 발생 - 바쁜 아침에 실수로 슬리퍼를 신고 출근한 여사원을 도와주시오. 제한시간 2시간.]
아침을 상쾌한 퀘스트 알람과 같이 시작하였다.
“으응.. 몇 시지?”
오전 6시 45분. 일찍도 출근하신다.
어제 집 청소한다고 엄마가 렉오 블록을 치워버리셨다. 가지고 놀면 정리 좀 하라고 잔소리를 하시며.
그래서 그런지 몸이 많이 찌뿌둥하다.
‘아으으! 피곤하네.’
제한시간이 2시간이니 많이 촉박하다. 빨리 준비해서 가야겠다. 그리고 우선 정보수집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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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출근길의 지하철은 어마어마하게 붐볐다. 그러나 나에게는 최상급 재능에 비견되는 [내가 기다리는 자리가 곧 빈자리]가 있었다.
‘취업에 성공했다면 나도 이분들처럼 이 지하철을 타고 출근했겠지?’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부럽다거나, 우월감이 생기지는 않았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저분들은 저분들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고, 나는 나대로 열심히 살고 있다. 그거면 된 거다.
앉아 와서 좋았던 기분은 퀘스트 장소를 확인한 순간 급격히 나빠졌다.
‘아... 또 여기네.. 대룡제약.’
그리고 그때 그 경비 아저씨는 여전히 열심히 근무 중이셨다.
우선은 큰길가에 서서 퀘스트 상대를 탐색해 보았다.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에는 회사 앞에서 울상을 짓고 있는 여성이 보였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니, 목에 걸려있는 사원증이 보였다. 사원증에는 소속팀과 이름이 적혀있었다.
[대룡제약 회계팀 사원 송미애]
대충 흘깃 보았는데, 키와 체형이 우리 송이와 비슷하다.
‘송이랑 비슷한 키면 발은 235정도 하겠지?’
잠시 망설이던 송미애 사원은 슬리퍼를 신은채로 회사로 들어갔다. 창피한 것 보다는 지각을 하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나보다.
신발부터 사야겠다.
그래도 기왕이면 50만원 가까운 금액으로 맞춰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여성분들이 많이 선호하는 브랜드 매장으로 들어갔다.
직장인들이 많은 곳이어서 그런지 근방에 바로 매장이 있어서 다행이다.
[딸랑]
“어서 오세요. 고객님. 어떤 제품을 찾으시나요?”
“잠시 좀 둘러볼게요.”
“네. 고객님.”
전체적으로 매장을 둘러보는데, 눈에 확 들어오는 구두가 있었다. 매장에서도 주력으로 밀고 있는 제품인지 눈에 잘 띄는 곳에 예쁘게 진열되어 있었다.
정장에도 무난하게 어울릴 것 같으면서도 세련된 맛이 있었다. 가격도 정확히 50만원인 걸 보면 운명인가보다.
“여기 이걸로 235mm 부탁드립니다. 선물 할 거니까 선물 포장으로 부탁해요.”
“네. 고객님.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마음에 드는 구두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준비 다 되었습니다. 고객님.”
“수고하세요.”
“조심히 가세요. 고객님. 또 뵙겠습니다.”
매장을 나와 목적지를 향해 열심히 걸어갔다. 그리고 커다란 건물 앞에 멈춰서서 잠시 망설였다.
대룡제약을 또 오게 될지는 정말 몰랐다.
저쪽에서 나를 발견한 경비 아저씨가 황급히 다가온다. 다가오는 아저씨를 잠시 바라보다 로비의 안내데스크로 향했다.
“회계팀 송미애 사원님을 만나러 왔는데요. 혹시 몇 층에 계실까요? 그리고, 방문증은 여기서 받을 수 있나요?”
“잠시 전화로 확인을 해보고 알려드리겠습니다. 회계팀 송미애 사원님이라고 하셨죠?”
“네. 부탁드립니다.”
내 뒤에서 조금만 이상한 행동을 해도 가만두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경비 아저씨가 느껴졌다.
통화를 하시던 직원분이 나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누구라고 전해드려야 할까요?”
“네. 제가 너튜브를 운영하는데, 송미애 사원님이 제 구독자이십니다. 이번에 구독자 감사 이벤트를 하는데, 당첨이 되셔서요. 선물만 전달해 드리고 갈 겁니다.”
“네. 잠시만요!”
옆에 있던 다른 직원분이 나를 유심히 바라보더니 핸드폰을 켜고 뭔가를 찾아보고 있으셨다.
“앗!”
깜짝놀란 직원분이 옆에서 전화를 하는 직원분에게 자신의 핸드폰 화면을 보여주셨다.
아마 내 너튜브 채널을 찾아서 보여주나 보다.
“내려오신다고 하는데,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아니요. 제가 올라가겠습니다. 그렇게 전달해 주세요. 방문증 주시고, 회계팀이 몇 층인지만 알려주세요.”
“네. 여기에 성함하고, 누구를 만나러 가시는지 여부만 써주시면 되요. 회계팀은 8층입니다.”
“네. 여기요. 감사합니다.”
인적사항을 꼼꼼히 적어 드리고, 방문증을 받아들었다.
방문증을 찍고 들어가는데, 경비 아저씨가 바짝 붙어서 따라오셨다. 내가 어디를 가든지 따라오실 것 같은 기세다.
이번에는 뭐 별다른 걸 하지는 않을 거니까 따라오셔도 상관없겠지만.
[8층입니다. 문이 열립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8층에 내려서 둘러보았다. 오른쪽 앞에 회계팀 명패가 보였다. 퀘스트 화살표도 그쪽을 가리키는 걸 보면 맞는 것 같다.
회계팀 사무실 쪽으로 다가가니 아침에 보았던 그 사원분이 축 쳐진 얼굴로 앉아있었다.
“안녕하세요. 송미애 사원님 맞으시죠?”
“네? 네. 저 맞아요. 어? 힐링님? 맞으시죠? 우와!!”
축 쳐져있던 얼굴이 나를 보고 놀란 얼굴로 바뀌었다.
‘어? 나를 진짜 알고 계신건가? 이런 우연이 있나.’
“정말! 정말! 저 팬이에요. 탄산 드실 때부터 영상 다 봤어요! 댓글도 항상 쓰고 있어요!!”
정말 내 구독자이실 줄은 생각지도 않았었다. 구독자들이 많이 늘었지만, 그래도 현실에서 돌아다녀도 알아보는 분들이 많지 않아 의식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제대로 된 연예인도 아니어서 나 스스로도 예전과 다른 게 없다고 인식하고 다녔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은 나도 당황스럽다.
“제가 너무 감사한 마음에 구독자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송미애 님이 선정되어서 직접 왔습니다.”
“그런데 저를 어떻게... 아니! 아무튼 정말 너무 좋네요! 이번에 춤추시던 영상도 너무 잘 봤어요. 어쩜 춤도 그렇게 잘 추시는지! 최고였어요!”
너무 노골적인 칭찬에 조금은 부끄러워져 왔다. 어느새 사람들이 우리를 구경하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핸드폰으로 우리를 대놓고 촬영하고 계셨고, 그 옆에서는 내가 누구인지 나이 드신 부장님께 설명하고 있었다.
싸인을 해드리고, 사진까지 같이 찍은 후에 말을 하였다.
“그럼 이제 선물 드리고 가볼게요. 소소하지만, 잘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작별 인사를 하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가는데, 회계팀에서 큰 소리가 났다.
“대박! 너무 예쁘다! 이거 나도 사고 싶은 거였는데!”
“어머! 어머! 센스 봐! 얼른 신어봐!”
“와! 진짜 잘 어울린다. 부럽다 미애씨. 저분 너튜브 채널 이름이 뭐라고?”
엘리베이터가 너무 늦게 올라온다. 출근 시간이라서 그런지 많이 늦다.
“저분 그분이잖아요! 코로 탄산 드신 분! 막 고추냉이도 드시고, 개 사료도 드시고! 못 먹을 거 다 드시는 분!”
내가 못 먹을 거 많이 먹기는 했네.
[문이 열립니다.]
엘리베이터가 열리자마자 황급히 탔다. 경비아저씨도 따라서 타시고는 내 뒤에 자리를 잡으셨다. 마지막까지 방심을 하지 않으시는 직업의식이 투철하신 분인 것 같다.
내 뒤에 서 계시던 경비아저씨가 조용히 나에게 이야기를 하셨다.
“가시기 전에 싸인 하나만 부탁드립니다.”
“네?”
“저도 구독자입니다. 저는 콧바람 영상이 제일 좋더군요.”
놀라서 뒤를 바라봤지만, 경비아저씨는 앞쪽만 쳐다보면 나와는 눈도 마주쳐 주지 않으셨다. 둘이서 어색하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안내데스크로 향했다.
방문증을 반납하고, 경비 아저씨에게 싸인을 해드릴 종이와 펜을 부탁 했는데, 경비아저씨가 말을 하셨다.
“종이에 말고 여기에 부탁드립니다.”
윗옷을 걷어 올리고, 하얀 내의를 입은 등을 나한테 내미셨다.
“아...이거 볼펜인데 많이 아프실 것 같은데요?”
“피만 안 나게 해주십시오.”
경비아저씨는 이미지와 똑같이 상남자답게 볼펜으로 하는 싸인을 신음소리 하나 내지 않고 버텨내셨다.
내 인생에 가장 떨리는 싸인을 해드리고, 어색하게 사진도 같이 찍어드렸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네.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집으로 향하는 길에 잠시 어딘가를 들렀다 나왔다. 출근시간이 살짝 지났는데도 지하철에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았다.
‘정말 열심히들 사시는구나. 나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50만원과 최하급 재능 ‘무엇이든 세워드려요’를 습득하였습니다.]
‘응? 이름이 뭐 이러지? 뭐야? 착한 생각! 착한 생각!’
아니 다른 재능들도 정확한 설명이 없으니 이름만으로 유추했어야 했는데, 이번에는 감도 안 온다. 아무리 고민 해봐도 안 좋은 생각만 든다.
‘아. 상세 설명이라도 있으면 좋겠네.’
[무엇이든 세워드려요 - 팔과 손가락이 버틸 수 있는 무게의 물건이면 무엇이든지 손가락위에 세울 수 있습니다.]
“어? 상세 설명이 있었어?”
너무 놀라 나도 모르게 크게 이야기를 해버렸다.
큰 소리에 놀란 사람들이 쳐다봐서 죄송하다고 90도로 인사를 드리고, 조용히 앉아있었다.
다른 재능들도 확인해 보았는데, 전부 내가 예상한 그대로의 성능들이었다. 그런데, 최상급 재능인 [위로의 목소리]만 무언가 달랐다.
[위로의 목소리 - 사용자의 목소리를 들으면 심신이 안정되고, 신뢰감이 생깁니다. 적절한 멘트 또는 노래와 같이 사용하면 효과가 극대화됩니다. 노래의 실력이 증가합니다.]
[위로의 목소리]를 얻고 나서 한 번도 노래를 시도 해보지를 않아 노래의 실력이 늘어났는지 몰랐었다. 그리고 평소에도 노래를 할 일이 없어서 내 노래 실력이 어떤지 잘 모르겠다.
내 재능들의 상세 설명을 읽다보니 금세 시간이 흘러갔다.
집에 도착해서 문을 열고 들어가니, 분주하게 학교 갈 준비를 하고 있는 송이가 보였다.
“어? 오빠 아침부터 어디를 그렇게 다녀와? 뭐 바람났어?”
아침부터 우리 송이의 멘트가 아주 상큼하다.
“잠시 다녀올 곳이 있어서. 지금 학교 가?”
“어! 나 지금 바쁘니까 이따가 이야기 해. 엄마는 운동 가셨어.”
“정말 많이 바빠? 잠시도?”
“어! 완! 전! 박모겸이 데이트 신청하는 일 아니면 아무것도 안 돼!”
“알겠어. 그럼 이건 환불할게.”
“어? 뭔데? 뭐길래 그래?”
송미애 사원의 신발을 사고 나서 집에 오기 전에 우리 송이 신발도 하나 더 샀다. 예전부터 내가 옷이며 신발들을 사주다보니 예쁜 것들을 보면 우리 송이부터 생각났다.
“어! 이거 요즘 완전 핫템이잖아!”
“오다가 주웠다. 감사한 마음으로 신도록!”
오랜만에 오빠로서의 체면이 살게 되었다. 으쓱하는 모습으로 당당하게 송이에게 말을 하였다.
“이거 완전 핫템이라서 어제 내가 샀어. 얼른 가서 딴 걸로 바꿔다줘.”
빠르다 빨라. 요즘 용돈을 넉넉하게 줬더니 이런 문제가 생기네.
내 취향에 송이가 적응을 한 건지, 내가 송이 취향에 맞춰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은근히 취향이 비슷하다.
“영수증 있으니까 너가 가서 바꿔와!”
“아이씨! 바쁜데. 하필 이걸 사와서 귀찮게 하네!”
“내놔!!! 가서 반품 하게!!”
“헤헤헤! 아니야! 선물 고마워!! 오빠 최고!”
꼭 그냥 넘어가지를 않네.
예전에는 사주고 싶은 것들이 있어도 디자인보다는 가격이 항상 우선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사는 건 싸면서 적당한 것이었다. 그 적당한 것들이 항상 미안했다.
그런데, 이제는 사주고 싶은 물건이 보이면 사줄 수 가 있다는 게 정말 좋았다.
돈이 좋다.
돈이 있으니 우리 송이 선물도 사줄 수가 있다.
돈이 있으니 엄마와도 같이 살 수 있다.
돈이 있으니 미래를 꿈꿀 수 있다.
돈이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