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금 전쟁
“천운씨. 이번 주 주말에 행사 하나 컨텍 왔는데, 일정 괜찮으신가요?”
일정 관리 담당해주시는 송여진 대리님이 나한테 일정을 물어왔다. 보통 주말이면 가족이나 여자 친구와 같이 보내야하지만, 나는 여자 친구가 없으니 단호하게 말을 하였다.
“당연히 되지요. 솔로인 이유가 주말에도 일을 하기 위해서 입니다! 믿어 주십시오!”
“호호호. 말도 참 재미있게 하신다. 관련된 자료는 출력해서 드릴게요. 잠시만 앉아 계세요.”
별로 웃기지 않았는데 웃어주시는 느낌이다. 나도 이제 부장개그를 하는 나이가 된 건가? 송여진 대리님. 회사생활 잘하시네.
“이제 연말이 되가니까 불우이웃 돕기 행사들이 많잖아요. 이것도 그런 건데요. 조금 특이한 게 있어요.”
“특이한 거요?”
잠시 머뭇거리시던 대리님이 말을 이었다.
“미션을 해서 성공하면 그 시간만큼 불우이웃 돕기 성금을 성공한 사람 이름으로 주최 측에서 내주신대요.”
“오~ 좋은 거네요. 무슨 미션인데요? 제가 완전 열심히 해서 돈을 왕창 받아내야겠네요! 하하하”
“강물에 몸 담그기요.”
“.... 지금 12월인데요?”
“이게 행사 주최 측이 아라수 생수 업체에요. 한강에서 할 수 있는 이벤트를 한다고 하더니 이런 행사를 기획했네요. 호. 호. 호.”
“그럼. 얼마나 버티면 되는 건가요?”
“거기 적혀 있는데요. 30분이면 성공. 기본 1,000만원에, 5분마다 1,000만원씩 추가 해주신대요.”
이건 성금 내기 싫다는 걸 돌려서 이야기 하는 거네.
“행사 시간은 제한 없나요?”
“우선 기획서 상에는 강물에 몸 담그기 행사를 1시간 잡아놓긴 했어요. 이후로도 일정이 있긴 한데, 행사 자체는 5시간이면 끝나네요.”
계산을 해보자.
5시간이면 300분.
300분에서 30분을 빼면, 270분.
270분을 5로 나누면 54.
30분 기본 성공 금액 1,000만 원.
270분 추가 성공 5억 4천만 원.
“목표는 5억 5천만 원이다!”
“네? 뭐라고 하셨어요?”
내 혼잣말에 대리님이 말씀하셨다.
“아. 아닙니다. 혼잣말이었어요. 하하”
내가 이렇게 자신하는 이유는 별게 아니다. 초보 아빠를 도와주고 받은 [냉탕과 온탕사이]라는 재능 때문이다.
내 몸에 닿는 물의 온도를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는 재능이다.
너튜브 촬영을 해볼까 생각하며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보고 있었는데, 이렇게 잘 사용할 수 있는 행사가 기획되었다. 그렇다면 잘 이용해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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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우 배우님과 유명 너튜버인 힐링님이 같이 참석해 주셨습니다. 박수 부탁드립니다.”
[짝짝짝짝...]
“안녕하세요. 신인배우 김신우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힐링입니다. 이렇게 좋은 행사에 초대해 주신 주최 측에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주최 측에서 이벤트 성금 예산을 얼마로 책정하셨는지 모르겠지만, 기획하셨던 직원분에게 미리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진심을 가득 담아 사과 인사를 했지만, 농담인 줄 알고 모두 다 웃고만 있었다.
나 혼자 참가하기 그래서 신우도 데리고 왔다. 신우는 처음에 같이 행사를 간다고 해서 좋아했지만, 이벤트 내용을 듣고는 기겁을 했다.
“형. 저 진짜 그냥 들어만 갔다가 나올게요. 진짜에요.”
“어. 그래. 너 운동 열심히 한 몸매만 잘 보여줘. 저기 회사 홍보팀 직원분이 너 찍어 줄 거야.”
홍보팀 직원분이 우리를 보며 열심히 촬영을 하고 계셨다. 나와 신우는 카메라를 보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나 오래 들어가 있을 거니까. 지루하면 먼저 가. 날이 너무 추우니까 감기 걸려.”
“에이. 있어봤자 10분일건대요. 이거 주최 측이 돈 안 줄려고 머리 엄청 썼나 봐요.”
신우가 내 귀에 대고, 조용히 귓속말을 하였다.
“그래봤자. 냉탕이지.”
“네? 뭐라고 하셨어요?”
내 혼잣말에 신우가 되물었다.
“아무튼 추우니까 너 먼저가.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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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이번 행사의 특별한 이벤트가 펼쳐질 예정입니다. 간단하게 설명 드리자면, 참가자 분들 중에서 30분을 물속에서 참으시면 기본 1,000만원! 30분이 넘어서면 5분을 추가 할 때마다 다시 1,000만원을 성공하신 분의 이름으로 기부를 하는 그런 이벤트입니다.
현재 참가하신 분들은 총 120명입니다.
자! 누가 이벤트의 당첨자가 될지 모두 지켜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몸에 이상이 생기시면 지체 없이 바로 진행요원에게 알려주셔야 합니다. 앰뷸런스도 대기하고 있으니 안심해주세요.
자! 그럼 이벤트를 시! 작! 하겠습니다.”
“와!!!”
인플루언서들은 자신의 모습을 셀카봉을 이용해 촬영을 하며 물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으악! 나..나는 포기!! 안 돼! 안 돼! 와! 이걸 한다고?”
“살.. 살려... 주세요..”
“우어어어어!! 흐들들들... 여..러..분.. 저는.. 여기..까지입니다... 좋아요.. 한번씩..흐익!!”
“꽃풍선! 감사드립니다! 저는 남들과 다르게! 다이빙으로 팍!! 보여드리겠습니다!! 후압!!!”
[풍덩!!]
“후룰랄르알악!!!!”
시작부터 절반 이상이 포기를 하였다.
‘음.. 온도는 32도 정도가 적당하겠네. 너무 따뜻하게 했다가 땀나면 연구소에 잡혀갈 수 도 있으니깐.’
물에 들어가자마자 [냉탕과 온탕사이] 재능을 이용해 온도를 조절하였다. 목욕탕의 온탕에 들어온 듯 편안한 기분이 들고, 온몸의 긴장이 풀려왔다.
“으으으으... 형... 너..무.. 추..워요...”
바로 나갈 거라고 그렇게 강조하던 신우가 이를 악물고 참고 있었다.
“대충하고 얼른 나가. 그러다가 쓰러져.”
“으... 형도 아직...으드드드드... 안... 나가....는데요..”
그래. 참을 만큼 참다가 나가라. 앰뷸런스도 있으니까 별일 없겠지.
“어흐!! 아우!! 좋다! 어허!!”
수염을 길게 기른 할아버지가 너무나 가뿐하게 참아내고 계셨다. 그 할아버지를 발견한 카메라가 가까이 다가갔고, 곧장 인터뷰를 시작하였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KBBS 방송국에서 나왔습니다. 인터뷰 가능하실까요?”
“어흐!! 그럼요! 당연히 가능하죠!”
“와! 엄청 잘 참으시는데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18살입니다!! 어허!!”
“네? 18살이요? 에이 70세는 넘어보이시는데요?”
“허허허! 인생은 60부터! 그래서 내가 18살입니다! 험험!!”
“하...하..하하. 예.... 추위를 잘 참으시는 비법이 있으신가요?”
“제가! 젊을 적부터! 한 겨울에도! 냉수로! 막! 어! 어... 으흐..어허허..”
할아버지 주위로 노란물이 퍼졌다.
“으익! 이게 뭐야!”
“험..험.. 이만 포기 하겠습니다...”
가장 유력했던 할아버지마저 포기하시고, 이제는 나와 신우를 포함해 대략 10명 정도만 남아있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김신우 배우님과 힐링님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그런데 지금 신우는 대답을 할 상황이 아니어서요. 하하하”
“우으으으으... 안..녕..하..”
“아.. 예. 신우님은 얼른 나가셔야 되겠는데요? 어떻게 차가운 물에서 참으실 수 있는지 비법이 있을까요?”
“저는 뭐. 미지근하니 딱 좋습니다. 딱히 참는다는 느낌은 아니어서요.”
“그렇군요! 신우님은.. 아.. 아닙니다.”
“으....저..느.... 몸...이.. 안...으으으...살..려..”
“네? 뭐라고요?”
“살..려..주...세....”
대기하고 있던 진행요원이 황급히 달려와 앰뷸런스를 향해 들것에 싣고 달려갔다. 잘 참고 있는 줄 알았더니 몸이 안 움직여서 그대로 있었나 보다.
‘별일 없어야 할 텐데.’
한바탕 소란이 지나가고 나서 몇 사람이 포기를 선언하였다. 큰 시계에 표시된 시간이 28분을 지나갈 때 아직 버티고 있는 사람은 나와 학생으로 보이는 여성분뿐이었다.
“두 분이 마지막까지 남아있습니다. 30분까지 약 1분 30여초가 남아있는데요. 저기 여성분과 인터뷰를 진행해 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으흐흐흐.. 안녕한걸로... 보이나요? 으흐흐...”
“아.. 예. 죄송합니다. 어떤 계기로 이 이벤트에 참여하시게 되었나요?”
“봉사활동.. 점수..으흐흐...”
“네? 뭐라고 하셨죠?”
“봉! 사! 활! 동! 점수요! 이거 하면 봉사활동 점수...으흐흐.. 인정해 준다고! 어흑.. 했다고요!”
역시 대한민국의 수험생은 위대하다.
“자! 이제 마지막 10초가 남았습니다. 다 같이 카운트를 해보시죠!”
“10, 9, 8, 7, 6, 5, 4, 3, 2, 1! 성공!!!”
“우와!!! 대단하다!!!”
사람들이 엄청나게 환호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여학생도 진행요원의 도움으로 무사히 물에서 빠져나왔다.
“어? 아직 힐링님이 남아있습니다. 힐링님! 다 끝났습니다. 어서 나오세요!”
“이거 계속하면 5분에 1,000만원씩 추가 아닌가요?”
“어? 네. 그렇긴 한데, 너무 위험하시지 않을까요?”
“괜찮습니다. 바쁘신 분들은 먼저들 돌아가세요. 저는 오래 있을 계획입니다.”
“하하하하하”
“우와~~”
사람들이 내가 허세를 떠는 줄 알고 웃고만 있었다. 그러나 그 웃음과 환호는 내가 처음 천만 원을 추가하고, 2천만 원을 추가 할 때까지였다.
40분을 넘어 45분을 향해 가자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저러다가 저 체온증으로 위험한 거 아냐?”
“말려야 할 것 같은데?”
“형님들! 지금 여기서 기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힐링 형님이 힘내실 수 있게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그쪽에 후원하는 거랑 내가 힘내는 거랑 무슨 상관이지? 정말 열심히 사는 분이시네.
나는 편안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주최 측에서도 점점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한 분이 나에게 와서 조용히 이야기를 하셨다.
“힐링님. 더 이상 버티시면 위험하실 것 같은데, 이정도만 하시죠?”
“네? 그럼 기부금이 적어지잖아요. 저는 괜찮습니다. 하루 종일도 가능합니다.”
“어? 아니.. 그게.. 하...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지금 저희 부장님이 기부금으로 결제 받아오신 게 1억 원이에요. 성공하시거나, 실패하시거나 상관없이 1억 원을 기부하려고 했었거든요. 이제 그만 하셔도 될 것 같아요.”
“그러면 제가 딱 1억 원 채우고 나오면 되겠네요. 알겠습니다. 30분에 40분 추가하면 제가 9천만 원이고, 여학생이 천만 원이니까 딱 1억 맞죠? 그래야 주최 측에서도 깔끔하게 행사가 마무리 될 것 같은데요.”
“음...네. 알겠습니다. 그래도 몸이 안 좋으시면 바로 나오셔야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나는 대답을 하고는 물위에 누워 가만히 눈을 감고 떠다니기 시작했다.
“아. 방금 들어온 소식에 의하면 힐링님이 정확히 1시간 10분을 채우고 나오신다고 하십니다. 모두 힐링님에게 박수를 쳐주시기 바랍니다.”
사회자의 멘트에 사람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카메라를 들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촬영하기 시작했다.
“형님들!! 힐링님이 형님들의 후원의 힘으로 저렇게 버티고 계십니다!! 더 많은 후원으로 힐링님을 응원해 주십시요! 감사합니다! 형님들!!”
그러니까 그 후원과 내가 힘내는 게 무슨 상관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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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엄청난 시간을 버티셨는데, 어떤 마음으로 그렇게 버티셨나요?”
“네. 좋은 일에 기부할 수 있다는 행사 취지에 공감을 하였고, 제가 버티는 만큼 많은 금액이 꼭 필요한 분들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 덕분에 참을 수 있었습니다.”
“네. 오늘 정말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원래 제 목표는 행사가 끝나는 시간까지 해서 5억 5천만 원이었습니다. 목표로 했던 금액에는 미치지 못하였지만, 부족한 금액은 제가 사비로 기부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이런 통 큰 기부를 하신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이 시대의 진정한 기부 천사를 향해 박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박수를 쳐주는 사람들을 향해 인사를 하고, 회사 차량 안으로 들어갔다.
차안은 히터를 최대로 틀어놔서 후끈거렸고, 신우는 두꺼운 패딩을 입고 잠들어 있었다.
“신우 괜찮은 거 맞죠?”
신우의 매니저님에게 신우의 상태를 물어보았다.
“네. 기다리다가 잠깐 잠든 거예요. 아까 구급 대원님도 이상 없다고 하셨어요.”
“미련하게 오래 버틸 때부터 알아봤더니. 약골이네.”
“어.. 그냥 천운님이 사람이 아닌 걸로..”
“네?”
“아. 아닙니다! 바로 출발 하겠습니다.”
매니저님이 황급히 차를 출발 시켰다. 나는 목욕탕에서 방금 나온 것 같은 개운함을 느끼며 좌석에 몸을 기댔다.
중간에 차가 너무 더워서 살짝 창문을 열고 밖을 멍하니 바라보다보니 어느새 회사에 도착을 하였다.
“아이고! 우리 1호 너튜버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어? 예솔이 아버님. 아니! 회장님. 어쩐 일이세요?”
“하하하 오늘 행사 이야기 다 들었습니다. 아주 활약이 대단하셨다고요? 홍보팀에서도 전력을 다해서 각 방송사 9시 뉴스에 나올 수 있게 노력한다고 했으니 기대하세요.”
“에이. 뭘 이정도로 9시 뉴스까지요. 하하하”
농담인줄 알고 웃었는데, 진심이신 것 같다.
“오늘 9시에 꼭 뉴스 보시기 바랍니다. 하하하. 그리고 기부금을 사비로 내신다니 저도 보태야겠네요.”
“오! 회장님이 같이 해주신다면 더 좋죠!”
“그런데 기부금은 거기 행사 측에서 지정한 곳 말고 다른 곳으로 하시죠.”
무슨 말씀이시지? 행사 주최 측하고 사이가 안 좋으신가?